#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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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자사 인수
도쿄지검 특수부는 일본의 이익이 걸린 일이라면 불물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 것이었다.
“설마 죄 없는 보스를 체포하려고 하겠습니까. 미국정부가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은데요.”
미국적의 투자가를 체포하는 작업은 엄청난 위험 부담이 따른다.
“죄목이야 가져다 붙이면 그만이죠. 하여간 당분간은 일본에 가는 건 조심해야 갰네요.”
체포한 다음에 수작을 부리는 것 까지 막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만큼 일본정부에게 규태는 골치 아픈 존재였다.
여러 차례 일본투자로 엄청난 부를 거두어 갔다.
작년 금리가 폭등이전에 일본연기금이 인수해간 미국채의 규모가 350억 달러였다. 회계처리방식까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작년 결산보고에서 엄청난 평가손을 보았을 것이었다.
거기에다가 환차익거래로 일본 금융계 전체를 휘청거리게 만들었으니 규태의 투자내역이 밝혀진다면 일본국민들이 제일 싫어하는 투자자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작년에 도산한 일본은행이 다섯곳, 그중에서 재무구조가 견실하다고 소문났던 관서일흥은행까지 포함되어있었다.
갑작스럽게 막대한 손실을 보아서 파산했다면 규태의 환투자에 직격탄을 맞았다는 소리였다.
주무관청인 일본 대장성에서 규태는 산채로 씹어 먹어도 분이 풀리지 않을 악인인 셈이다.
특유의 폐쇄적인 정보 통제로 일본국민들이 세세하게 자세한 내용까지는 알지 못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게 없다.
“구사장이 중앙투신의 인수문제를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인수는 포기하라고 이야기를 했는데요.”
“지분문제 때문에 새로 회사를 만들라고 지시하셨다는 소리는 들었읍니다만 제가 볼떄는 그냥 인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한데요.
“어째서요?”
“보스가 왜 새로 회사를 만들려는 지는 알겠지만 인력자원의 수급문제가 있습니다. 쓸 만한 사람이 쉽게 이곳까지 오지는 않을 테니까요. 보스가 신경을 쓴다기에 직원들에게 이야기를 해보니 한결같이 머리를 흔들더군요.”
서울도 아니고 대전까지 내려올 투자전문가가 몇이나 되겠는가. 서울에 본사를 둔 기룡증권도 능력 있는 직원을 뽑는 대는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투자에 유능한 인재라면 서울로 기려고 하고 그들 중에서 특출하다면 또 뉴욕에서 일하고 싶은 욕망을 느끼는 법이다.
타이거 홀딩스나 타이거 펀드의 직원을 새로 뽑겠다면 아이비리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 이들이 들어오겠다고 줄을 서지만 새로 만드는 회사는 인력충원이 까다롭다.
“어차피 새로 만드는 회사는 서울에다가 만들 건데요?”
“보스가 요구하는 직원은 타이거 펀드 급의 직원이 아닙니까.”
“당연하지요.”
“그런 인재가 한국에 오겠습니까. 온다고 한들 몇이나 오겠습니까. 한국에 있는 사람들도 보스의 회사로 쉽게 옮겨올것 같지 않은데요.”
샨의 말은 냉엄한 현실이었다. 아직은 글로벌화가 덜 돼서 인재간의 이동이 제한되는 시대였다. 규태가 원하는 정도의 인재는 월스트리트에서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수준이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도 규태의 회사보다는 재벌그룹에 소속된 증권사에 들어가기를 바랄것이었다.
“끄응, 억지로 발령을 내도 금방 다른 곳에서 빼갈 확률도 높겠죠.”
“그래서 든 생각인데 기존 중앙투신이란 회사를 인수하고 운용팀을 개편해서 타이거 펀드에서 한두 명을 파견형식으로 보낼까 합니다.”
“올 사람이 있겠어요?”
“타이거 펀드 채권 운용팀의 올리버가 오겠다고 하더군요. 2년 정도라면 지원하겠답니다.”
올리버 서의 한국이름은 서창진이다. 초등 학교 때에 미국으로 이민 온 가정출신으로 한국에서 2년 정도라면 한국에서 살아보겠다고 자원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요? 전산지원이 필요할 텐데요?”
“전산시스템을 만드는 건 팀을 보내서 작업을 할 계획입니다. 상주할 필요까지는 없을 테니까요.”
“구사장이 단단히 마음을 먹었나보네요? 샨이 이렇게까지 준비한걸 보면은요.”
“저한테 구체적인 사실은 말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지역의 기업이지 않습니까. 여기저기 아는 인맥이 많다고 봐야겠죠. 구사장도 골치가 아플겁니다.”
이미 결정을 내린 규태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때마침 찾아온 샨을 애써 설득한 모양이었다.
샨이야 구봉만의 말을 듣고 보니 나름 합당한 사유라서 찬성한 거고.
“그래도 썩 인수가 내키지가 않는다는 말이에요.”
“지분문제라면 주식을 절반이상 매입한 다음에 증자를 하시면 됩니다. 인수를 망설이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확실히 지분문제로 규태가 중앙투신의 인수를 꺼리는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 친구들하고 선후배들이 많아요. 한국적인 관념에서 볼 때는 조금 껄끄럽죠.”
대전에서 초중고에 대학까지 나온 규태다.
지역기반의 금융기관에 지역출신이 많은 건 당연한 일이다.
“창투사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창투사하곤 조금 다르죠. 거긴 아예 뽑지를 않았으니까.”
회사를 만들면서 일부를 제외하고는 경력직을 주로 뽑은 창투사였다. 규태가 미국에 잇는 사이 구봉만이 추가로 뽑은 인원도 규태도 크게 인연이 없는 사람들이지만 많은 직원들이 근무하는 중앙투신은 이야기가 달랐다.
“그게 보스가 인수를 고민할 이유가 됩니까?”
샨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인도출신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미국에서 학교를 다닌 샨은 미국적인 사고에 익숙했다.
친구나 선배를 부하로 두는 게 편한 일은 아니다. 거기에다 부모님의 인맥들까지 합쳐지면 인사문제로 골머리를 썩힐 거 같았다.
“생각해볼게요.”
그래서 애써 접어두려던 건데 구봉만도 입장이 난처해졌던지 규태의 마음을 돌리려 애를 썼다.
규태의 생각을 돌린 결정적인 한방은 집에서 나왔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가족들끼리 가볍게 과일로 후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이었다. 모친이 규태의 곁에 바싹 다가와 앉았다.
“규태야!”
“왜요?”
“새로 짓는 집은 어떻게 잘 지어진다니?”
“엄마가 가보면 되잖아요. 바로 근처에 새로 짓는 건데.”
규태의 작업공간이 부족해 집에서 집무가 어려워지자 새로 짓는 집은 다다음달이면 완공된다.
지금 집은 가족들이 사는 공간이 넓기는 하지만 경호에는 문제가 있었다.
“에고, 너도 어째 말하는 게 아버지를 닮아서! 닮을 걸 닮아야지.”
“잔소리는 하지 마시고요, 할 말이 있으면 하세요.”
다시 태어나도 성격이 무뚝뚝한 게 어디 사라지겠는가. 밖에서 잘 나오던 말도 집안에선 저절로 사라졌다. 어머니가 이렇게 서두를 꺼내는 것 보면 분명 다른 목적이 있었다.
“너희 막내외삼촌 있잖니?”
“외삼촌이 왜요? 재단에서 일 잘한다면서요?”
막내 외삼촌은 늦은 나이에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가 만든 재단에서 일하는 중이었다.
“너희 회사에 취직시키면 안 되겠냐?”
“어디에요? 창투사에 자리가 없을 텐데? 재단에서 계속 일하면 되잖아요?”
“아니 거기 말고 중앙투신을 네가 인수한다면서? 거기 총무 팀에 넣으면 되지 않겠냐? 막내가 거기에서 일하고 싶어 하더라.”
아이고! 규태는 모친의 말에 골치가 지끈하고 아팠다. 회사 인수 작업을 시도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난리였다. 막내외삼촌이 큰 매형하고 같이 일하기 어려워 도망칠 구실을 찾는 모양이었다.
규태가 봐도 부친이 같이 일하기 편한 성격은 아니다.
“누가 그래요 내가 회사를 인수한다고?”
“대전바닥에 소문이 쫘르르 났다. 네가 아니면 누가 인수를 하겠니.”
“흠흠, 그건 엄마 말이 맞다. 사실 거기가 은근히 골치가 아픈 곳이야. 네가 인수한다니까 사람들도 다들 한시름 놓았다고 하더라. 그런데 말이다.”
목소리가 큰 경상도 남자답지 않게 부친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아이고 당신도 그게 뭐가 어려운 일이라고. 내가 말할게요. 단자사도 네가 인수하면 안 되겠니?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 같던데.”
“단자사요?”
느닷없는 소리에 규태의 눈이 둥그레졌다.
“아버지 친구들이 대부분 사업하는 사람들이잖니. 단자사하고 많이 거래하는데 거기가 자금이 부족해서 어음이 잘 할인이 안 된다지 않니. 네가 하면 그런 문제가 없을 것 아니니. “
“그래 친구들이 하나같이 자금 부족을 호소하더구나. 나를 보고 그런 말을 했겠냐.”
“구사장한테 물어보니까 우리자산이 많이 늘어났다고 하고 그 돈으로 단자사를 인수해도 충분하다고 하지만 우리가 그쪽을 잘 아는 것도 아니니까. 너한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보고 하려고 했지. 네가 인수하면 더좋고.”
“단자사를 인수한다고요?”
“그래 주변에서 많이 인수를 권하더라. 거기도 상공회의소 회원들이 만든 회사 아니니.”
처음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아니면 아버지가 재단을 만들면서 만나게 된 사람들이었다.
유유상종이라 돈이 많다고 소문이 나면 먹을 게 없나 두리번거리는 인간들이 나오는 법이다. 사기꾼들이야 황규철본부장이 어련히 잘 걸러내겠냐만 단자사 인수 같은 사업적인 문제는 규태가 아니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사업하는 사람들이야 자금회전이 원활한 게 제일 아니냐, 단자사가 너무 몸을 많이 사린다고 불평을 하면서 나한테 인수를 은근히 권하더라.”
단자사라?
규태는 잠시 머리를 굴렸다.
규태가 창투사를 만든 건 가진 자금으로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서였다.
단자회사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건 IMF에 휩쓸려가는 회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전단자사를 인수한다면 크게 나쁠 일도 없었다.
IMF로 기업이 어려워지면 돈 많은 자식을 둔 부친의 입장도 곤란해질 터였다.
좁은 지역사회에서 안면 있는 사람이 자금 좀 융통해 달라고 와서 손을 벌리면 그것만큼 난감한 게 없다.
“생각해볼게요. 지분구조나 사업구조를 평가해보고 나쁘지 않다면 인수를 할 수도 있겠죠.”
부모님도 규태가 무조건 싫다는 의견을 말하지 않자 안심을 하는 모습이었다.
품안의 자식이라고 머리가 다 큰 자식 놈을 강제로 뭘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주변사람들에게 큰소리는 쳐놨는데 막상 자식의 얼굴을 보니 입이 안 떨어졌다.
안심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규태는 어지간하면 두 회사를 인수해야 갰다고 마음을 먹었다.
창투사 사무실로 출근한 규태는 아침회의가 끝나고 구봉만과 마주앉아 차 한잔을 마시면서 자초지종을 들었다.
“구사장님, 집에서 단자사 인수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아버님이 말씀을 하신 모양이군요. 사실 주변에서 단자사를 인수하면 어쩠느냐는 제의는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창투사에도 있었고 부모님들께도 여러 번 제의가 있었던 일입니다.”
“그런데요?”
“단자사란 게 어음할인이 주 업무가 아닙니까? 리스크가 커서 기업 평가를 잘해야 하는데 지역에서는 냉정한 평가가 힘들지요. 사실 단자사가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삽니다.”
“그래서 인수를 망설이셨다?”
“예, 크게 잘해낼 자신도 없었고요. 그래서 과녁을 아버님으로 바꾼 모양입니다. 함께 술 마시는 사람들이 은근히 부추기면 넘어가지 않는 게 이상하죠. 술자리에서 몇 번 이야기가 나와서 아버님이 술김에 큰소리를 치신 모양입니다.”
“끄응,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이 되네요.”
“아버님도 나중에 후회를 하셨지만 이미 한말을 어쩌겠습니까. 사실 단자사 자본금도 얼마 하지 않습니다. 사들이면 크게 손해를 볼 업종도 아니고요.”
단자회사를 만들어준 목적이 지하자금을 끌어들여서 기업의 자금조달을 돕겠다는 취지에서 였다.
“단자사의 지분구조는 어떻게 되나요? 인수를 해도 무리가 없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