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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금융재벌-121화 (121/220)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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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바른 미끼

“이게 뭡니까? 환율이 급격한 변동을 보이면 채권만기일 이전에도 환매를 요청할 수 있다고요? 이건 또 뭡니까 환매요청에 불응하면 일정지분을 자동으로 인수한다라고요?”

“이게 내가 준비한 함정이에요. 어때요 넘어갈 것 갔나요?”

규태의 질문에 오선한이 가만히 한참동안을 생각했다.

“환율의 급격한 변동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겁니까?”

“50%라면 어떨까요? 채권발행일을 기준으로 해서.”

“편하게 낚으려면 더 쓰셔야 할 것 같은데요. 재벌들은 지분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70%?”

규태의 말에 오선한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어렵지 않게 낚일 것 같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정도로 환율이 떨어질 거라는 생각을 못할 테니까요. 이건 그냥 사문화된 조항으로 여길 겁니다. 그런데 진짜로 나중에 원화 환율이 그 정도로 떨어질까요?”

“지금 멕시코 페소화를 보면 알죠. 94년에 1달러에 3.5페소에서 7.8페소까지 환율이 떨어졌어요.”

오선한의 입에서 저절로 휘파람이 흘러나왔다.

“휘유! 환율이 두 배가 넘게 떨어졌군요.”

“이걸 한국에 대입해보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 환율이 환율 820원이던데 이게 1,500원 이상으로 올라간다고 봐야죠.”

생각만 해도 아찔한지 오선한이 다시 되물었다.

“요즘 다시 페소화가 오르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 신문에서는 가볍게 멕시코경제를 다루지만 영어로 된 영자신문에선 멕시코의 일들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규태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타임스와 LA포스트, 뉴욕타임스 같은 주요 신문은 매일 받아보고 있었다.

규태의 비서실장인 오선한도 꼼꼼하게 신문을 읽는 편이었다. 특히 앞으로 한국에서도 멕시코의 비슷한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규태의 말에 더욱 신경을 써서 읽어 지식을 쌓았다.

“IMF에서 자금을 지원하면서 다시 오르긴 했지만 앞으로 페소화가 강세를 보이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만큼 멕시코가 힘듭니다.”

슬픈 일이지만 이번 일로 멕시코는 자력으로 산업이 살아나는 일을 보지 못한다. 공기업을 민영화하면서 거대자본을 축적한 재벌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국민의 민생과는 전혀 동떨어진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면서 치안까지 엉망이 되고 마약카르텔이 득세를 하게 된다.

오선한이 규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설마 한국도 그 모양이 되도록 내버려 둘 거냐는 무언의 항의였다.

“오 실장이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알겠는데 그걸 대비하려고 이 짓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IMF가 오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막아야할 정부조차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OECD가입을 밀어붙이고 있지 않는가.

대기업들도 부채비율을 늘려서 인플레이션을 이용한 투자로 부를 쌓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로 IMF가 온다면 후폭풍을 최대한 막아야 했다. 규태가 독바른 미끼를 잔뜩 뿌려서 낚시질을 하는 것도 잘못된 구조조정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미 돈이라면 몇 대가 펑펑 써도 흔적이 남지 않을 정도로 벌어두었다.

멕시코와 같은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가 되지 않도록 만드는 게 규태의 바램이었다.

한참 직원들과 함께 채권투자를 위한 작업을 진행하던 규태는 예상외의 방문을 받았다.

“샨이 여긴 어쩐 일입니까? 뉴욕에서 한참 바쁠 텐데?”

“보스, 혼자만 빠져나가면 어떻게 합니까! 지금 월가는 난리도 아니라고요. 어느 놈이 타이거의 투자성과를 밝히는 바람에 한참 보스를 찾아서 시끄러웠습니다. 한국에 머무는 기간은 계속 길어지기만 하고요. 어제부터 보스를 찾는 전화가 사방에서 쏟아졌습니다.”

인도계 미국인인 샨의 얼굴이 규태를 보자마자 표시가 날정도로 달아올랐다. 규태는 한국으로 사라지고, 돌아온다는 날짜는 지나고 혼자서 감당하기엔 월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 거셌다.

잠시 바람을 피한다는 생각으로 타이거 펀드의 채권투자팀과 함께 급하게 한국으로 빠져나온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알아낸 겁니까? 잘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월스트리트 저널에 이안 휘트리거라고 집요한 기자 놈이 하나 있습니다. 보스에 대한 기사를 아예 반년간 준비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마침 타이거펀드의 투자 성공이 걸려든 거지요. 일본하고 유럽에서부터 집요하게 쫒아왔습니다.”

“젠장, 그 정도로 꼬리가 잡히다니. 월가에서 우리를 보는 눈이 곱지 않겠는데요?”

“그나마 오늘 아침부터는 잠잠합니다. 살로몬이 넘어갈 것 같거든요.”

“살로몬이라면? 살로몬 브라더스 말입니까?”

“예, 그곳하고 트래블러스 그룹이 합병한다는 말이 나와서 한참 시끄럽습니다.”

살로몬 브라더스도 리만 브라더스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연륜 있는 투자은행이다.

주식투자부분은 조금 떨어지지만 채권투자와 인수부분에선 4위를 기록한 채권부분에 강점이 있는 투자은행이었다.

“어디하고 한답니까? 아! 트래블러스그룹이면 산하에 스미스 바니 하고 합병하겠군요.”

“예, 서로 다른 분야에 강점이 있는 두 투자은행이 합쳐지면 나쁜 결과는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들 이 합병에 신경 쓰느라 타이거는 뒷전으로 밀렸습니다. 그래도 눈초리가 여간 날카로운 게 아닙니다.”

“샨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도 당분간 한국에 머무르려는 겁니다. 미국에 있으면 괴롭힐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거든요.”

한참동안 규태에게 쌓인 푸념을 늘어놓은 샨이었다.

건물의 제일 꼭대기에 만들어진 회장실에서 규태와 샨이 창밖 풍경을 보았다.

원래는 사용하지 않던 공간이었지만 규태가 장기간 머물게 되면서 급하게 회장실로 꾸민 공간이었다.

회장실로 꾸몄지만 장식적인 것은 거의 없고 회의를 위해 가져다 놓은 테이블과 의자, 소파, 그리고 규태가 업무를 보는 책상정도가 있어서인지 단출했다.

“이 공간은 보스가 꾸민 거로군요.”

“알아보네요."

"보스는 실용적인 걸 좋아하지 이것저것 꾸미는 걸 크게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예전에도 그랬지 않았습니까. 아랫사람들만 고생이라니까요.”

원래 KT창투에도 회장실을 만들려고 했지만 언제 찾을지 모른다고 규태가 지시를 내려 회장실을 없앴다.

그런데 이렇게 규태가 장기간 머무르다 보니 집무를 할 공간이 없어서 부랴부랴 만들게 된 것이다.

“어떻게 합니까. 집에서 일을 하려고 해도 좁아서 안 된다는데.”

규태가 혼자 다니는 것 같지만 데리고 다니는 경호인원만 12명이다.

적어도 집 주변에 이들이 장기간 머물 공간이 필요했지만 아쉽게도 대전집 주변에는 마땅한 공간이 없었다.

주변 땅을 사서 경호 인력들을 위한 건물을 새로 짓고는 있지만 시간이 필요했다.

거기에다 집에 업무를 위한 준비가 하나도 되어있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사무실로 출퇴근을 하기로 한 것이다.

“해밀턴이 잘한 겁니다.”

“보안문제라서 어쩔 수 없지요. 그래도 여긴 미국보다는 안전하니까요. 그리고...”

치안문제에 있어서는 한국이 미국에 비해서는 절대적으로 안전했다. 미국은 총들고 설치는 미친놈들이 워낙 많아서 많은 수행원들과 함께 있어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다.

경호책임자인 해밀턴은 KT창투의 보안이 허술하다며 한참 보안 강화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국내 보안 책임자인 황규철과 트러블이라도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둘이 아주 죽이 잘 맞았다.

“그렇습니까? 저는 한국은 아주 북한하고 전쟁 중이라고 들어서 머리위로 총탄이라도 날아다니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공식적으로 종전이 되지 않은 채로 한국전쟁이 끝나서 아직도 많은 미국인들은 한국이 전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하면 아직도 전쟁을 하고 있는 거로 여기는 미국인이 많았다.

“그건 편견이라니까. 서울도 가 봤을 거 아니에요. 여긴 휴전선보다 한참 남쪽에 있다고요. 서울이 휴전선과 아주 가깝죠.”

“그러게 아주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전쟁이 끝나지 않았는데 서울은 엄청난 대도시더군요.”

“그런 감정은 혼자만 느끼고, 오면서 이야기는 들었어요?”

“부하의 감정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다니 나쁜 상사입니다.”

“그런 이상한 농담은 여자한테나 하라니까?”

여자이야기가 나오자 샨의 표정이 변하는걸 보고 규태가 머리를 흔들었다.

“이번에도 잘못됐어요?”

샨은 이미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했다. 새롭게 만나는 여자가 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이번에도 잘못된 모양이었다.

“인연이 아닌가 보지요.”

인도출신답지 않게 동양철학에는 눈곱만치의 관심도 없는 샨의 입에서 나온 어울리지 않는 말에 규태가 실소를 지었다.

잠자는 시간 말고는 일에 자신을 갈아 넣어야 월스트리트의 높은 천장을 기어 올라갈 수 있다.

월스트리트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면 100% 확률로 워커홀릭이었다. 타이거 펀드의 CEO인 샨 나링햄도 예외가 아니었다.

“샨의 입에서 그런 말까지 나온걸 보면 이번엔 타격이 큰가 보네요.”

“하아! 잘될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역시나입니다.”

“누가 샨처럼 하루 종일 일 생각만 하는 사람을 좋아하겠어요. 일하는 걸 조금 줄이라니까.”

“말로는 쉬워 보이는데 그게 안 됩니다. 일을 줄이려고 해도 어느 사이 일을 하고 있는 저를 보게 된단 말입니다. 방법이 없을까요?”

CEO까지 올라갔으면 스스로 업무를 조절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가.

규태가 업무를 작게 던져주는 보스도 아니고.

“그 문제는 나도 어쩔 수가 없어요.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하는 일이라. 샨도 내가 주는 일 때문에 그렇게 바쁜 게 아니잖아요.”

“휴우, 맞습니다. 나도 모르게 일을 찾아서 하게 되죠.”

규태도 전생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깨달은 것이다. 돈 더 많은 돈과 엄청난 성공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일에 몰두한다.

“버핏영감님이 어쩐지 조용하다 싶더니 바쁘게 움직였네요.”

살로몬 브라더스의 주식투자는 버핏의 투자인생에서 몇 안 되는 투자실패였다.

워렌 버핏은 87년에 살로몬 브라더스 상환우선주에 7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대주주가 되었다. 32달러였던 주가가 주식시장 침체로 16달러까지 폭락했다. 거기에다 91년에 살로몬 스캔들이 터지면서 국채입찰자격이 박탈되고 살로몬은 파산위기까지 맞았다.

이걸 동분서주하면서 살린 사람이 워렌 버핏이었다.

그리고 살린 살로몬의 매각과정까지 참여하느라 워렌 버핏이 물밑에서 바쁘게 움직였던 것이다.

원래역사에선 97년에 트래블러스에게 매각되지만 보다 빠른 95년에 매각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주식을 트래블러스에 매각하면 버핏도 손해는 보지 않겠네요.”

“이익도 거의 없을 거기는 합니다. 살로몬을 90억 달러에 매각한다고 하는데 그 정도면 손해죠.”

워렌이 87년부터 살로몬의 주식을 가지고 있었으니 10%의 지분에 따른 배당을 받는다면 9억 달러였다. 7억 달러를 투자하고 그동안 배당을 전혀 받지 못한걸 감안하면 손해였다.

“그래도 골치 아픈 살로몬을 팔아버렸으니 워렌도 한시름을 놓았겠는데요. 체이스 모건은요? 그쪽도 어렵다고 들었는데요?”

“이번에 거하게 한방 두드려 맞지 않았습니까. 간신히 대주주가 증자에 참여하기로 해서 위기를 넘겼습니다.”

“거기 대주주야. 뭐 그 정도 위기는 가뿐하게 넘기겠죠. 조지프 모건이 열이 조금 올라왔겠는데요. 쓰러지지는 않았데요? 연세도 있는데.”

체이스모건의 대주주는 말 그대로 모건 가였다.

이차대전이전부터 미국 금융계의 황제라 불리던 가문이었는데 그 힘이 어디로 가겠는가.

당대 가주인 조지프는 나이 80이 넘은 노장이다.

“세상에 조지프를 그렇게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보스밖에는 없을 겁니다.”

“힘은 있지만 이젠 낡은 가문이죠.”

창업자가 사라지고 가문이 가진 힘이 계속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모건이나 록펠러가문은 그걸 보이지 않는 힘으로 대체했다.

대를 이어가면서 가문이 가진 부는 늘어나지만 그만큼 후손들의 숫자가 많아진다.

“머릿속으로 생각은 하더라도 입 밖으로 내는 건 조심하셔야 합니다. 자칫해서 소문이라도 나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샨은 자신의 말에도 내가 무슨 말을 했냐는 듯 태연한 모습을 보이는 보스를 보며 머리를 흔들었다.

자신의 보스는 평소에는 얌전하지만 가끔가다가 엄청나게 공격성을 지닌 야성을 드러낸다.

“이상하지 않아요?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자가 6개월을 기사를 위해 보냈다고 해도 타이거의 투자성과를 아는 건 불가능 했을 텐데요? 그거 내부적으로도 잘 모르게 여러 조각으로 잘라서 투자하지 않았습니까?”

“기사를 읽어보니 전체적으로는 타이거 펀드의 투자내용은 알지 못했는지 일본의 투자성과를 기초로 해서 전체 금액을 추정했더군요. 많이 틀린 사실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기사의 출처는 일본이다?”

“예, 그쪽 정부에서 우리를 조금... 아니 사실은 많이 싫어하지 않습니까.”

“싫어하는 정도가 아닐걸요. 내가 일본에 들어가면 자칫하면 그냥 체포될 수도 있어요.”

일본의 사법체계는 2018년 닛산의 최고책임자였던 카를로스 곤이 체포되면서 도마 위로 올랐지만 그전에는 더 막나가는 측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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