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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금융재벌-120화 (120/220)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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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투자

“상공회의소에서 모아온 중앙투신 주식이 전부 28%입니다.”

“그것 밖에 안돼요? 처음에는 35%이야기를 했었잖아요?”

처음 인수이야기가 나오면서 이야기했던 지분보다 숫자가 한참이나 줄어들었다.

인수담당인 오정광 상무도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간을 보는 것 같습니다. KT창투가 중앙투신사를 인수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주식을 팔겠다는 사람들이 사라졌답니다. KT창투주식을 사지 못하니 이거라도 들고 있겠다고 말입니다.”

초기에 지방투신사를 설립할 때 상공회의소 회원들이 초기지분을 나누어가졌다.

자금을 모아서 지방기업에 투자하겠다는 설립취지에 반신반의하면서도 들고 있으면 손해는 보지 않겠다 싶은 마음에 상당수의 자산가들이 회사설립자금을 보탰다.

지방의 건설사들 가운데 덩치가 큰, 대전건설과 개호건설이 가장 큰 지분을 가져갔지만 자잘한 회원사들도 1%에서 2%의 지분을 나눠 가졌다.

다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라 돈은 가지고 있지만 KT창투의 주식을 사지는 못했다. KT창투의 주식을 가진 이들이 하나같이 움켜쥐고 팔지를 않았다.

운좋게 초창기에 퇴사한 KT창투 직원들이 가지고 잇던 우리사주를 인수한 몇몇이 대박을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얼마나 배 아파했던가.

중앙투신의 주식을 가지고 있으면 엄청난 이익을 볼 것 같다는 카더라통신에 줄기차게 쏟아지던 매물들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상공회의소에서 준비한 지분이 28%라면 인수는 때려치웁시다. 증권사들도 쉽게 주식을 팔지 않을 테고, 이렇게 지분인수가 어렵다면 우리가 누구 좋으라고 회사를 인수합니까? 조금 기다렸다가 새로 하나 만듭시다.”

원래 계획은 주식을 전부 회수하고 증자를 해서 자본건전성을 높일 계획이었다.

그다음에 적절한 투자로 수익구조를 맞춰나갈 생각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주식인수가 힘이 들면 굳이 기존에 세워진 회사를 인수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내년이면 투자신탁 운용사의 설립기준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100억의 자본금으로 설립이 가능했다. 일년을 기다리지 못해서 남 좋은일을 시켜주기엔 규태가 그리 마음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회사를 인수하지 않고 새로 세우려면 준비를 하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다. 일년이란 기간은 훌쩍 지나가 버릴것이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새로 회사를 하나 만듭시다. 신탁계리하고 자산운영쪽에 사람들을 알아보세요. 법률만 바뀌면 곧바로 회사를 세울 수 있게요.”

신탁계리는 가지고 있는 자산을 매일매일 평가해야 하는 작업이다. 나중에야 전산화가 진행되면서 작업이 간단했지만 아직까지는 전문인력이 필요했다.

“아깝기는 합니다. 중앙투신에서 운영하는 자산이 3조에 가까운 데요.”

“그거 얼마나 된다고 그러십니까. 처음부터 골치 아픈 것 보단 전부 손에 쥐고 운영하는 게 나아요.”

규태가 손을 때라고 지시를 내렸다는 소문이 돌자 매물이 씨가 말랐다던 중앙투신의 주식이 쏟아져 나왔다.

한때 10,000원이 넘었던 거래가격도 7,000원을 깨고 아래로 내려왔다.

이를 주어간 것은 기존에 주식을 가지고 있던 태평양증권이었다.

20%에 가까운 주식을 매수하면서 대주주로 떠올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규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규태의 신경은 오로지 삼정전자의 회사채 발행에 쏠려있었다.

40억 달러가 넘는 대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해서 기존의 생산시설을 증축하고 1GD램의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겠다는 삼정전자의 발표는 주식시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특별한 기억이 남아 잇지 않았지만 1995년 한국경제에 아주 특별한 한해였다.

세계 7위의 반도체 생산업체인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사가 반도체 생산라인을 마이크론에 넘기고 물량을 축소했다.

뿐만 아니라 NEC와 도시바, 후지쓰, 히타치같은 대형 반도체 사들도 계속되는 D램 불황으로 물량을 축소하거나 해외공장을 폐쇄했다.

전체적으로 반도체 가격이 하락을 보이면서 생산물량을 조절하는 가운데 원도우 95가 대박을 터트리면서 반도체 공급물량의 부족현상이 일어났다.

거기에다 기존의 주력 상품이던 4MD램에서 16MD램으로 소비자가 요구하는 반도체가 바뀌면서 생산물량을 줄이기는커녕 늘이고 있던 삼정전자와 대현, LC반도체가 하나같이 엄청난 이익을 보았다.

주력상품인 16MD램의 가격이 60달러를 넘어서면서 반도체 삼사의 영업이익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제조업비중의 10%, 수출비중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이 갑작스럽게 호황에 접어들면서 한국제조업도 활황을 지속했다. 나중에 발표된 95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8.9%였다.

1/4분기부터 반도체 호황이란 사실이 드러나는 삼정전자의 보고서를 받아든 규태가 고개를 갸웃했다.

2조원이 넘는 매출에다 4,200억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1분기에 거둔 것이다.

이러니 삼정의 오회장이 눈이 돌아갔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앞으로도 장기간 호황이 지속될 것이란 전문가들의 의견까지 더해지면서 한국경제가 호황을 맞은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95년의 경상수지는 적자였다.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반도체는 호황이다 못해 활활 타오르는 불장인데 경상수지는 적자라는 게 말입니다.”

“그건 속이 비어서 그렇습니다. 반도체 수출이 잘된다지만 그 재료 대부분이 일본에서 들여오는 겁니다. 삼정도 초창기부터 일본기술을 받아들인 건 아시죠. 반도체를 만드는 소재에서부터 자잘한 단계까지 일본제 제품을 수입해야 합니다.”

규태가 쓴 입맛을 다셨다.

“환율이 문제로군요.”

“예, 엔화환율이 사상 최고를 기록하지 않았습니까. 1달러에 83엔이라니! 80엔이 깨진다는 말도 있습니다.”

엔화강세는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는 국내 제조업 회사들에게 경쟁력을 올려주는 효과도 있지만 반도체처럼 부품을 수입해야 하는 산업에는 막대한 가격인상을 불러일으켰다.

대일 무역수지 적자가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수출해서 번 달러를 고스란히 일본에 가져다 바치는 꼴이었다.

전형적인 외화내빈이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한국의 제조업 산업은 잘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속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삼정에서도 뭐라고 합니까?”

“발행 총금액은 40억 달러, 이자율이 12.8% 짜리 5년 만기 채권을 발행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오회장하고 만났을 때의 요구에서 금액이 줄어든 걸 제외하면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변한 게 없네요.”

“반도체가 잘나가서 기세가 등등한 것 같습니다.”

“하긴 벌써 삼정전자의 수익이 4,000억이라면 그럴 법도 하지요. 전문가들이 2,3년간은 반도체 호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한다면서요.”

말로는 그렇게 하지만 규태는 속으로 욕을 한참 퍼부었다.

어디에나 전문가들이라 자칭하는 놈들은 하나같이 입만 살아서 동동 떠다니는 놈들이다.

반도체호황은 95년에 반짝하고 끝이 난다.

해외의 반도체 회사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이런 대호황을 눈뜨고 지켜볼 리 만무했다. 급격한 생산량의 증가와 이에 반해 소비량은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내년부터 D램 가격이 폭락한다.

규태와 뻔하게 아는 사실이지만 이런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할 필요가 없었다.

“대현하고 LC도 막대한 채권을 인수해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금액은 삼정보다는 적습니다. 아무래도 삼정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말로는 시설투자를 하겠다고 채권을 발행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산업에 진출하려고 마음먹은 것 같습니다.”

“어디요?”

“오회장이 자동차에 관심이 많답니다.”

어이구!

저절로 나오는 탄식에 규태가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삼정의 자동차 산업 진출은 막대한 시설투자자금과 기술력의 부족으로 결국은 실패로 끝이 난다.

허가가 나지 않는 자동차 사업에 무리하게 진출하느라 부산에 공장을 건설하느라 초기비용이 엄청나게 깨졌고 기술도 외국에서 들여오느라 도입비용이 만만치가 않게 들어갔다.

절대로 성공할 리가 없지만 반도체 산업의 성공으로 엄청난 자금이 쏟아지자 눈이 먼 것이다.

“그거 허가가 나겠습니까? 가뜩이나 지금 있는 회사들의 경쟁도 치열하잖아요.”

“그렇죠, 허가가 나지 않으니까 무리를 하는 모양입니다. 상공부와 재경원에 엄청나게 로비를 하는 모양입니다. 부산에 공장을 지으면 대통령도 마다하지 않을 테고요.”

부산경제의 큰 몫을 차지하던 국제상사가 정권의 농간으로 부도가 난후에 직격탄을 맞은 부산경제를 살리겠다는 삼정의 제안은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인 부산시민들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공장을 세우면 뭐하는가. 애써 지은 공장이 잘 돌아가지 않으면 그건 폭탄 돌리기나 마찬가지다.

대현의 반도체 산업이나 삼정의 자동차 산업이나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애초부터 남이 해서 잘된다니까 엄밀한 계산 없이 뛰어든 산업이었다.

“어중이떠중이는 필요 없고 4대기업을 중심으로 채권발행금액을 조절하도록 하지요. 전체 금액은 120억 달러로 하고요.”

처음계획보다는 20억이 늘어났지만 부족하다면 더 늘릴 마음도 있었다.

사업계획서와 요구하는 투자금액을 보면 200억 달러가 넘었다.

한국에서 제법 큰 회사를 가지고 있는 재벌이라 불리는 놈들은 하나같이 규태의 주머니를 노렸다.

기룡증권의 채권팀이 발행조건과 기한을 두고 채권발행사들과 바쁘게 조건을 논의하는 와중에 규태는 대전 집에 머물면서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와 되도록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려고 애를 썼다.

갈수록 할머니의 기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남아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중에 채권발행의 조건이 정해지면 최종적으로 결제만 하면 그뿐이었다.

느긋한 규태와 달리 오선한은 규태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려고 이러십니까?”

“뭐가요?”

“앞으로 2년 이후로 한국시장이 어려워진다면서요? 이렇게 한국재벌들에게 자금을 뿌려주시면 다들 어렵지 않게 위기를 넘길 겁니다.”

규태의 한국 산업에 대한 투자는 이전까지 없었던 막대한 금액이었다.

정부가 차관을 들여오는 자금도 100억 달러라면 기함할 금액이었다. 그런데 산업 전반에 걸쳐서 막대한 투자자금을 살포하면 잘 돌아가던 한국경제가 더욱 잘 돌아가게 된다.

규태의 오른팔이나 마찬가지인 오선한은 도저히 규태의 마음속을 짐작하기 힘들었다.

분명 규태는 한국이 IMF로 위기를 겪을 거라고 예측하지 않았던가.

원화 가치가 개판이 돼 버릴 미래를 생각하면 한국에 투자하는 것은 엄청난 손해였다.

투자하면서 한 번도 손해를 보지 않은 규태의 투자라고 하기엔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규태가 고개를 내저었다.

규태가 볼 때 아직까지 오선한은 배울게 많은 사람이었다.

“여기 특약을 보세요.”

규태가 가리키는 자그마한 글씨로 써놓은 특약의 내용을 살피던 오선한이 흠칫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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