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선호작품 등록/취소
알림 등록/취소
한국투자 확대
“해외 투자펀드요?”
규태가 고개를 갸웃했다. 벤처사가 해외투자펀드를 만들 일이 있겠는가 싶었던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해외벤처펀드를 만들어라 하는 말이지만요. 재경원이 하라니까 준비를 하기는 하지만 조금 답답하긴 합니다. 겉으로는 해외투자 벤처펀드라면서도 정작 원하는건 상해개발채권인수를 하라고 하니!”
구봉만이 규태에게 하소연을 했다.
“그놈의 관치는 여전한가 보네요.”
“지금까지 계속되어왔는데 하루아침에 바뀌겠습니까. 더 높은 곳에서 중국투자를 강권하니 재경원 사람들도 바짝 밑으로 조르는 모양입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지영이 끼어들었다
“저희는 어제오전에 갑작스럽게 연락을 받았어요. 중국투자계획을 만들어서 내일까지 재경원에 들어오라지 뭡니까.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어째서 담당관청도 아닌 재경원이 나서서 설치는 지 모르겠다니까요.”
이때까지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지만 이번 일은 규태도 의아한 부분이었다.
“창투사는 중소기업청 관할이 아닙니까? 왜 재경원에서 창투사까지 연락을 했을까요?”
구봉만이 한숨을 내쉬었다.
“중소기업청이 정부 내에서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한마디로 재경원의 월권이지만 이게 또 먹혀 들어갑니다. 말도 되지 않는 지시에도 저희가 이렇게 올라오지 않았습니까.”
“한마디로 KT창투사가 가진 현금이 많으니까 정부시책에 협조하라는 겁니다.”
규태는 입맛이 썼다. 청와대로 불러놓고 뒤에서는 이런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니 중국에 투자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니지만 이런 게 억지로 투자하는 건 역시 기분이 별로였다.
“왜 이렇게 난리를 치는 겁니까? 대통령이 중국방문이라도 한답니까?”
규태의 질문에 구봉만이 쓴웃음을 지었다.
“모르셨습니까? 다음 달에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에서 중국국가주석하고 회담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청와대에서 재경원으로 내려오는 압력이 보통이 아니랍니다. 매일매일 중국투자내역을 체크한다고도 하고요.”
그럼 어째서 이런 소동이 벌어졌는지 이해가 되는 일이었다.
“얼마나 되는 금액을 투자할 계획입니까?”
“재경원에서는 2억 달러 정도를 투자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2억 달러라? 회사에 여유자금이 그정도인가 보네요?”
생각보다 큰 금액은 아니었다.
“상해지역의 개발채권 인수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만 벤처투자사가 투자하기에는 조금 모양이 좋지가 않습니다. 나중에 뒷말이 나올수도 있고요.”
지금 정권이 영원하다면야 누가 뭐라고 하겠냐만 혹시라도 정권이 바뀌기라도 하면 분명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했다.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정 그렇게 투자하기 껄끄러우면 아예 회사에서 중국벤처펀드를 만들어서 판매를 하면 어때요?”
“중국벤처펀드요?”
“중국에도 벤처회사가 많이 생겨나지 않습니까? 마침 타이거 펀드에서 출자해서 만든 펀드가 있습니다. 상해인터내셔날이라고 그곳에 투자를 하는 펀드를 만들도록 하세요.”
“어려운데요, 정부가 원하는건 상해개발채권을 인수하길 바라는 겁니다.”
“채권을 투자하면 되잖아요. 어차피 상해 인터내셔날도 목적이 상해의 부동산 개발이거든요. 채권을 그쪽에 넘기면 간단하지 않습니까.”
“채권을 투자하는거라면 나쁘지 않겠습니다.”
“출시하는 펀드의 규모도 늘리세요, 한 5억 달러 정도가 좋겠네요. 그 정도면 정부쪽에서도 만족할까요?”
“아마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할 겁니다. 그런데 3억달러나 추가로 투자하기에는 아깝기는 합니다. 상해개발채권 이자율이 8%를 조금 넘는데 한국회사채 금리가 12%가 넘는데 말입니다.”
“장기적인 투자라 생각하세요. 그리고 나중에 상해개발채는 가지고 있어도 손해를 보지 않습니다. 옵션으로 붙는 특약조항이 있거든요.”
“특약조항이요?”
전혀 듣지 못했다는 듯 구봉만의 눈이 동그래졌다.
“상해부동산에 대한 투자우선권이 있습니다.”
“그게 크게 효과가 있을까요?”
이당시만 해도 중국경제에 대해 미심쩍어하는 이들이 많아서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특약조항이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상해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채권가격이 오른다.
“서울을 생각해보세요. 상대적으로 낙후됐던 강남이 본격 개발되기 시작한 게 다리를 놓으면서부터 아닙니까. 상해도 마찬가집니다. 강에 다리를 놓고 중국경제가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부동산 가격은 뛰기 마련입니다.”
“진짜 중국부동산이 뛸까요?”
부동산 투자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다들 미심쩍어 하는 중국부동산의 가격이 크게 뛴다는 말을 다른 누구도 아닌 규태가 했으니 저절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다들 아는 대로 규태는 투자에 실패가 없는 사람이었다.
“이지영부장은 어떨 것 같나요? 중국부동산이 가격이 뛸 것 같나요?”
두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이지영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전 잘모르겟는데, 회장님이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정말 오를 것 같은데요.”
“오릅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죠. 중국투자는 개인이 하기엔 너무 난관이 많아요.”
부동산 투자를 하려면 중국에 들러야 한다. 거기에 사업을 하기에도 여러 가지로 제약이 많았다.
중국 사람과 하는 동업은 절대 추천할 일이 아니었다.
동업자가 사라졌다는 흉흉한 소문이 도는 건 이때도 마찬가지.
“그래서 중국시장에 투자하는 벤처펀드를 만들어서 중국에 투자하는 건 나쁜 투자법이 아닙니다.”
이렇게 까지 이야기를 해줬는데도 놓칠 사람들이 아니다. 보다 젊어서 머리회전이 빠른 박필중이 되물었다.
“앞으로 중국회사에 투자를 하려면 어느 쪽으로 해야 할까요?”
“개방특구지역인 심천이나 광둥 성에서는 TV나 냉장고 같은 전자제품이 잘 팔린다지요? 앞으로 중국에서 이쪽이 유망할겁니다.”
규태의 말에 이지영이 가볍게 푸념을 털어놓았다.
“에효! 앞으로 중국에 갈일이 많겠네요.”
가볍게 이야기를 했지만 규태의 말인 즉은 중국벤처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를 조성하라는 지시 아닌 지시였다.
중국에 투자하려면 당연히 투자대상인 회사를 자주 들를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재경원에는 5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하고 2억 달러는 상해 개발 채를 사고 나머지는 중국의 전자회사에 투자하면 되겠군요. 아직 주가가 그렇게 비싸지는 않을 겁니다.”
재경원에서 중국에 투자하라고 난리를 치는 지금이 해외투자펀드를 만들어서 투자할 적기였다.
그렇지 않다면 국내자금이 해외로 나가는 것에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재경원이 쉽게 해외투자펀드를 허가 내줄 리가 없었다.
“2억 달러는 개발 채고 나머지는 중국전자회사에 투자하는 펀드라? 이거 나중에 펀드를 결산할때 투자수익이 만만치가 않겠는데요.”
가만히 투자결과가 어느 정도 나올지를 머릿속으로 계산하던 규태가 헛웃음을 터트리자 그 자리에 함께 한 세 사람의 눈빛이 변했다.
규태의 청와대행에는 오선한과 황규철이 따라붙었다.
보안검색을 통과하고도 대기실에서 한참이 지나서야 규태는 대통령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규태와 대통령이 함께한 자리에는 이조문비서실장과 정윤경경제수석이 함께했다.
“김사장 반가와요. 내가 신문을 통해서 미국에서 김사장이 하는 활약을 읽었어요. 나이도 어린사람이 아주 대단한 일을 많이 하더구먼.”
군사정권을 끝내고 문민정부를 만들면서 여러 가지 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시기라서인지 대통령은 아주 힘이 넘쳐흘렀다. 규태와 만난 초면인데도 친화력도 엄청낫다.
“별 것 아닙니다. 미국에서 하나씩 일을 하다 보니 허명만 높아진 거 같습니다.”
“에이,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내가 보고를 들어봤는데 아주 대단하더군. 가진 현금으로 한국에 상장된 상장사 전체를 살 수 있다고 하던데.”
규태는 잠깐 머릿속으로 대통령이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를 궁리했지만 크게 짚이는 게 없었다.
“너무 과장된 정보로군요.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그래요? 경제수석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김규태사장이 너무 자신을 낮추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가만히 오전에 들은 믿기지 않는 정보를 떠올렸다. 드러난 재산은 250억 달러지만 실제 자산은 그 열배를 훌쩍 넘고 앞으로도 상장을 기다리는 보유지분이 많아서 시간이 흐를수록 재산이 얼마가 될지 모른다는 거물이었다.
반갑게 맞이했지만 대통령의 속마음은 복잡했다. 군부 내 하나회 척결 같은 정치개혁을 거침없이 밀고 가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실제로 피곤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렇게 돈많은 젊은 투자가 그것도 한국인이 투자를 해준다면 큰 힘이 될 거 같았다.
눈앞에 있는 젊은 투자가의 약점은 역시 국적문제였다. 미국과 한국의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어서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는 현행 한국 법으로는 자동적으로 한국국적이 박탈된다.
그런데 국적문제는 함부로 건드리기 난감한 폭탄 같은 문제였다.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가볍게 나누다가 대통령이 규태에게 물었다.
“그래 미국에서 보고 들은 게 많을 테니 성공한 젊은 투자가로서 내게 해줄 말이 뭐 없나요?”
“앞으로 정부에서 벤처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합니다. 현재와 같은 대기업위주의 산업정책으로는 대통령님의 꿈을 펼치기가 힘드실겁니다.”
“내 꿈이라? 김 대표는 내 꿈이 뭔지 아나요?”
“OECD가입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걸 보고 짐작했습니다. 대통령님 임기 내에 선진국으로 들어가는 한국을 보고 싶으신 게 아닙니까.”
대통령의 목소리가 저절로 높아졌다.
“맞습니다. 맞아요. 내가 경제는 잘 모르지만 임기 내에 OECD에 가입해서 이제 한국도 선진국이 됐다. 이런 소리를 퇴임하기 전에 듣고 싶은 게 꿈입니다.”
“그런데 OECD가입, 꼭 해야 합니까? 사실 그게 선진국이 됐다는 증거도 아니지 않습니까? ‘
규태의 반문에 대통령의 목소리가 한껏 올라갔다.
“OECD가입으로 한국이 선진국이 됐다는 걸 세계에 자랑하고 알리는게 내 평생의 꿈입니다. 돌아가신 어머님 묘소앞에서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맹세한 일이기도 하고요.”
격앙된 대통령을 경제수석이 나서서 다독였다.
“저희도 힘껏 그 꿈을 이루도록 돕겠습니다. 그토록 원하시는 OECD가입은 조만간 이루실수 있을 겁니다.”
장윤경 경제수석이 나서 진정시키자 붉게 달아올랐던 대통령의 얼굴이 원래의 혈색을 되찾았다.
함께 자리를 한 비서실장이 나서서 자그막한 목소리로 규태를 타박했다.
“김대표, 앞으로 입 조심하도록 하세요. OECD가입은 대통령님의 평생소원이십니다. 함부로 반대의 뜻은 입에 담지 말도록 하세요.”
규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뇌리에 박아두었는지 몰라도 이미 대통령의 머릿속엔 OECD가입과 선진국으로 진입이 동일하게 박혀있기에 규태는 더 이상 말릴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OECD가입을 해봐야 져야 할 의무만 늘어난다.
실리만 생각한다면 절대로 권하고 싶지 않았지만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자랑할 치적이라 여긴다면 나름 치적이었다.
“OECD가입을 위해서 해외투자를 늘릴 계획입니다. 김 대표가 적극적으로 해외자금의 한국투자를 이끌어 주세요.”
결론적으로 규태가 청와대로 불려온 것은 한국에 대한 투자요청이었다. 규태가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지는 안기부가 바보가 아닌 한청와대에서도 대충은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투자요건이 완화 되는대로 투자금액을 늘리겠습니다.”
“좋습니다. 나도 적극적으로 협조를 하도록 지시를 하겠습니다.”
한국에 투자를 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투자금액을 늘릴 마음은 있었다.
이미 50억 달러정도의 투자는 준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