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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금융재벌-113화 (113/220)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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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 의견이 그렇다면 틀림이 없겠죠.”

규태가 동의하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그렇다고 멕시코에 같이 들어가는 건 하수입니다. 아마 멕시코 경제는 단기간에 초토화가 될 겁니다. 그리고 그 원망은 고스란히 헤지펀드들에게 쏟아지겠죠.”

규태는 외환위기가 지난 멕시코를 기억한다. 2년이 지나도 치유되지 못한 상처로 가득한 몰락한 중산층들이 수도인 멕시코시티에 가득했었다. 그들이 원망이 결국에는 누구를 향하겠는가.

자국 언론을 손에 쥔 멕시코 재벌들은 아닐 것이었다.

규태의 말에 샨이 동감을 표했다.

“맞습니다. 이젠 우리의 덩치가 너무 커져서 멕시코 정도의 경제규모에선 먹을 게 없습니다. 푼 돈벌자고 들어가서 욕 들어먹을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래도 돈 벌 기회가 왔는데 눈 뜨고 지켜보고만 있자는 말입니까? 그건 직무유기나 다름없습니다.”

샨과 레온의 의견이 충돌했다.

“욕먹기도 싫고 돈벌 기회도 놓치기 싫으니 한 가지 방법은 위기 다음에 폭락한 자산들을 주으면 되지 않습니까. 멕시코가 망할 것도 아니고 망하도록 내버려둘 미국도 아니고 말입니다. 일시적으로 폭락한 자산들을 주어서 조금 길게 투자를 하도록 하면 되지 않습니까?”

규태의 의견에 레온회장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레온이 규태를 찾아온 것은 멕시코 페소화 투자의 허락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의 얼굴을 보며 규태가 한숨을 내쉬었다.

“리만이 페소화로 환투자를 하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직접 들어가는 일은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이말인즉은 간접적으로 펀드를 만들어서 투자를 하거나 중계를 하는 정도의 투자라면 허락을 하겠다는 소리. 리만의 주인이 누구인지 다들 아는 상황이라 나중에라도 규태가 욕을 먹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투자은행의 투자자들이 멕시코의 페소화에 투자를 하겠다고 하면 투자은행은 말릴 방법이 없는 걸 감안한 조치였다.

어두워졌던 레온회장의 얼굴이 조금은 밝아졌다. 이번 투자문제로 아랫사람들에게 꽤나 시달리는 모양이었다.

어지간하면 규태가 투자를 허가할 리가 없다고 판단을 내렸었다.

타이거펀드아래 자펀드를 만들고 이곳을 통해 역외펀드를 조성해서 투자하는 방식이라 누구라도 정확한 타이거 펀드의 투자내역을 알기가 힘들었다.

복잡한 투자과정을 거치기에 담당자들도 자신이 맡은 쪽만 투자내역을 알뿐 전체적인 내역을 아는 이는 투자를 총괄하는 오선한만이 알뿐이다.

그래서 매일 아침이면 규태는 오선한이 들고 오는 투자내역을 살피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듀폰에 대한 투자지분이 어제 일자로 2%를 넘었습니다.”

주가가 조정을 받아도 500억 달러가 넘는 거대 화학회사였다. 꾸준하게 배당을 하는 배당주로 그동안 투자해온 기술주처럼 급격한 주가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규태는 듀폰의 투자를 20%까지 늘릴 생각이었다.

뿐만 아니라 제약주와 방산주에 대한 투자도 조금씩 늘려가고 있었다. 지분을 늘리는 작업은 조심스럽게 진행해서 누구도 타이거가 이들 업종의 주식을 사는지를 몰랐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투자할 것이라 여기는 기술주에 대한 투자는 여전히 계속했다.

기술주가 한참 뜨겁게 달아 올랐을 때의 PER가 1000이 넘는 종목이 허다했었다. 기술주중 1/3이 거품이 가라앉으며 자금 사정 악화로 인한 파산설에 시달렸다.

축제가 끝나면 추한 뒤처리가 남는 법이다.

“타이거 펀드는 어쩠답니까?”

“미리 준비를 했지만 역시 타격을 받았습니다. 보유종목 가운데 40개가 넘는 회사들이 부도가 났고 80개가 넘는 회사가 위험하단 보고입니다.”

역시 벤처종목들은 재무구조가 취약해서 위기에 버티기가 힘이 든다.

“그래도 살아남을 종목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 전체적으로는 아주 큰 타격은 아닌 모양입니다.”

살아남는 기업은 다시 올 기술주의 러시에서 더 큰 이익을 뽑아 낼 수 있을 것이었다.

규태도 개인적으로 사들였던 컴캐스트의 주식은 89달러에 20%가 넘게 팔아서 다시 사들이기 시작했다. 어제 날짜로 32달러까지 하락한 컴캐스트 주가였다.

벌어들인 차익은 AOL에 밀어 넣었다.

주가가 고공행진을 할 때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던 AOL의 주식이 주가가 조정국면에 접어들면서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다.

마이크로 소프트와 오라클의 주가도 마찬가지 한참 주가가 올랐을 때와 비교하면 20%선까지 주가가 내려온 기술주를 바닥에서 대량으로 매집하고 있었다.

또 자금이 부족한 기업에 대한 자금지원도 같이 하고 있었다.

마이크로 소프트와 같은 회사는 자금마련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지만 오라클은 래리 앨리슨회장이 규태와 지분경쟁을 대비해서 개인적으로 주식을 사들이다가 자금이 바닥나 버렸다.

예기치 않은 주가하락은 레리에겐 커다란 타격이었는지 회사가 휘청했다.

또 규태가 관심을 기울이는 회사는 애플이었다.

“애플은 자금사정이 극도로 취약해져서 구조조정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까지 나빠졌습니다.”

스티브잡스가 쫓겨난 다음에 애플은 계속 내리막을 걸었다. 회사의 주력상품인 매킨토시의 판매부진과 기슬주의 주가 하락으로 회사에 남은 자금도 거의 없어서 이러다가 부도라도 나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면서 주가가 1달러 밑까지 떨어졌다.

애플은 유일하게 규태가 투자하지 않은 기술주였다.

시장상황이 계속 나빠지면 진짜로 부도가 날수도 있었다.

“부도가 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가지고 있는 현금 보유량이 얼마 없어서 은행대출이 막히면 위험합니다. 지금같은 추세라면 연말까지 버티지 못할 위험이 크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스티브 잡스의 복귀를 원하는 주주들이 늘어나고 있단 소식입니다.”

한때는 마이크로 소프트와 함께 나스닥을 대표하는 기술주였던 애플이 동전주로 몰락한 것이다.

애플이 부도가 나면 회사를 싼값에 인수해버리면 된다. 가지고 있는 특허가 많으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었다.

원래 역사처럼 97년에 잡스가 복귀해서 살아난다면 그때 가서 지분투자를 해도 그만이었다.

애플투자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한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잡스가 복귀하기 전까지는 계속 애플은 선장 없이 표류하는 배였다.

95년 봄까지 규태는 S&P 200 종목과 나스닥 100에 포함된 회사의 주식들을 꾸준하게 매입했다.

그리고 95년의 봄이 되었다. 세상은 멕시코에서 벌어지는 경제위기에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규태는 아주 오랜만에 한국을 찾았다.

***

전용기에서 내리는 규태를 맞은 것은 진짜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황규철이었다.

규태의 한국 사업에 대한 감시를 맡아서 좀처럼 자리를 비우기 힘들었다.

직급도 올라서 이젠 기룡증권의 본부장이었다.

이년 만에 보는 황규철은 세월을 고스란히 두드려 맞았는지 흰머리가 꽤 많이 늘었다.

“오랜 만이예요.”

“정말 오랜만입니다.”

“미국에 좀 자주 오지 그랬어요.”

“안기부 애들 눈치가 보여서 말이죠. 좀처럼 자리를 비우는 게 쉽지 않습니다.”

“아직도 그렇습니까?”

“예전 같지는 않아도 여전하긴 합니다.”

문민정부가 되었다고 해도 아직 사회 곳곳에 잔재가 꽤 많이 남아있었다.

물론 예전처럼 터무니없이 잡혀가는 일은 없었다.

“말씀하셨던 인터콘티넨탈에 숙소를 잡아두었습니다.”

비워주었던 아파트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호텔을 잡는 게 편했다. 일주일정도 서울에서 업무를 처리한 다음에 집으로 내려갈 계획이었다.

“방한계획을 알린 다음에 청와대쪽에서 접촉을 해왔습니다. 이틀 후에 약속을 잡았습니다.”

당연한 소리였다. 규태정도의 투자가가 방문하면 누구나 만나고 싶어 했다.

89년 미국에 도착한 이후로 규태가 미국을 떠난 것도 처음이었다.

“호텔보다는 먼저 기룡증권으로 갑시다.”

“많이 변했을 겁니다. 서울에 건물들도 많이 늘어났고요. 분당과 일산의 신도시 개발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강북은 변함이 크게 변함이 없지만 강남의 변화는 눈이 부셨다.

김포공항에서 출발한 차량이 일부러 강남을 돌아서 여의도로 들어갔다. 한참 막히는 출근 시간을 지나서인지 그리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았다.

“확실히 변하긴 많이 변했네요.”

89년과 비교하자면 한참이나 도시화가 진행되었지만 초고층빌딩들이 늘어섰던 기억이 남아 있는 규태였다.

기룡증권의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려는 차를 회사입구에 세웠다.

지상 25층이 되는 건물을 통째로 쓰고 있는 기룡증권이었다. 건물 입구에서 한참동안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이곳은 처음으로 방문하시는 거지요?”

“그전건물보다는 한참 크네요.”

“재작년에 새로 지어서 이사를 왔습니다. 전체를 관련사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타이거벤처 코리아도 이곳에 입주해 있습니까?”

“예, 시티은행과 리만브라더스 서울사무소도 이곳에 들어와 있습니다.”

“외국기업들은 대부분 종로에 있지 않습니까?”

“협조해야 할일이 많다보니 이곳으로 온 거 같습니다.”

한국정부가 알지 못하는 기룡증권의 해외자금 투자도 규모가 만만치 않았다.

기룡증권에서 규태를 맞이한 사람은 LA에 머무는 오장우 사장을 대신해서 소진세 부사장이었다.

“어휴! 정말 오랜만이네요.”

“저도 그렇습니다. 오사장님이 자꾸 미국으로 가시는 바람에 쉽게 자리를 비우지 못했습니다.”

일 년에 절반이상을 미국에 머무는 오장우를 대신해서 실질적으로 기룡증권을 이끌고 있는 소진세였기에 잦은 미국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 일 년에 한번 정도 미국을 방문해서 업무를 보고하는 게 고작이었다.

아직 해외여행이 자연스럽지 않은 시절이었다.

처음 찾는 소진세의 집무실을 둘러본 규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는 처음이로군요. 잘 꾸며 놓으셨습니다.”

“회장실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

“뭘 그런걸 만들고 그랬어요. 내가 얼마나 찾아온다고.”

“그래도 회사의 주인이 찾아오시면 일할 집무공간은 있어야지요.”

“그건 넘어가기로 하고 이야기는 들었죠?”

“예, 오사장님이 대충 이야기를 하시기는 했습니다.”

규태가 한국에 온 이유는 한국의 사업장들의 구조를 전면적으로 개편하고 조정하기 위해서였다.

자본자유화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직접 해외투자를 할 수 있게 개방된 것이다.

기룡증권도 이에 맞추어 부서조직을 개편하고 업무를 새롭게 나눌 계획이었다.

“앞으로 소부사장이 기룡증권의 사장자리에 올라서 지금처럼 한국 업무를 총괄해줘야겠습니다.”

“그럼 오사장님은 어떻게 되시는 겁니까?”

“타이거 홀딩스 부회장과 기룡증권 아메리카를 담당하게 될 겁니다. 지금까지 하고 크게 다를 게 없는 업무 분장이지요. 내부적으로 기룡증권도 타이거 홀딩스의 산하로 들어가는 겁니다.”

대체적인 조직개편안은 들었기에 소진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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