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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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위기
94년의 목표는 투자수익이 아니라 그동안 번돈을 이용해서 바닥을 치는 주식들을 긁어모으는 것이다.
쉐브론이나 듀폰, 바이엘과 같은 주식들을 사들이는 건 주가의 상승에 따르는 이익을 보자는 이유도 잇지만 더 큰 이유는 사회적 영향력을 구매하는 것이다.
다만 US 스틸이나 GM,포드와 같은 주식들은 이후에도 경영난에 시달리는 종목이라 투자종목에서 뺐다.
갑작스런 금리인상으로 출렁거리는 채권시장과 주식시장에서 차분하게 미리 투자한 금액들을 환수하면서 조금씩 바닥으로 떨어진 주식을 구매했다.
어차피 1년 동안은 금리인사의 여파로 주식시장은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금리인상이 마무리되는 95년 초반이 새로운 주가상승의 출발점이었다.
금리인상과 이에 따른 강한 달러는 일시적으로 미국경제에 강한 충격을 주었다.
4월에 있은 FOMC에서 추가적으로 0.5%의 금리를 올리자 다시 한 번 금융시장이 흔들렸다.
개막전에서부터 승리를 거두며 연승행진을 시작한 다저스의 홈경기를 본 직접 지켜본 규태였다.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선발로 나와서 6이닝 3실점으로 호투를 하고 타자들이 힘을 내면서 7:4로 수적인 샌프란시스코에 승리를 거두었다. 호쾌한 타격 전에 오랜만에 야구경기를 관람한 규태가 스트레스가 확 풀렸다.
너무 바빠서 시간이 나지 않았지만 구단주가 너무 관심이 없다는 제리의 투정에 억지로 만든 시간이었다.
“시간을 따로 낸 보람이 있네요.”
“바쁜 모습을 외부인들에겐 보여서는 안 됩니다. 타이거 펀드는 이번 금융혼란에 크게 관여한 바가 없다고 알고들 있으니까요. 이번에 오히려 손해를 본 것으로 아는 이들도 꽤있습니다.”
오선한은 신문에도 손을 써서 워싱턴포스트에 금융혼란에도 다저스의 경기를 참관한 규태의 사진이 일면에 보도 되었다.
“신문을 잘 봤습니다. 다저스는 4월내내 잘나가고 있던데요. 양키스도 잘나가야하는데 경쟁자가 만만치가 않습니다.”
투자결산 회의에 참석한 레온이 투덜거렸다. 리만의 회장이기도 한 레온은 집안 대대로 양키스를 지지하는 서포터였다.
양키스 구단주인 스타인브레너가 구단을 판다면 인수를 고려할 정도로 열혈서포터였지만 90년대 들어서 양키스의 성적은 간신히 동부에서 꼴지를 면할 정도였다.
같은 지구에 있는 토론토의 기세가 아직 수그러들지 않아서 양키스는 지구우승도 하지 못하는 암흑기를 보내야 했다.
“토론토가 이제 하락기에 접어들지 않겠습니까. 지금 있는 선수들도 재정문제 때문에 잡지 못하는 판국이니 양키스도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겁니다.”
사실 양키스가 살아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굳이 열혈서포터 앞에서 진실을 밝힐 필요는 없었다.
타이거 홀딩스 사무실이 있는 팔로알토 사무실에서 투자결산을 하는 자리였다. 오랜만에 만나 레온 회장과 가볍게 야구경기 이야기로 긴장을 풀고 회의에 들어갔다. 결산과 함께 이익을 어떻게 투자할지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타이거 펀드에서 만든 자료를 보며 샨이 구체적인 투자내역과 이익을 읽어나갔다.
“마르크화선물과 엔화선물이 전부 정리가 끝났습니다. 남은 투자수익은 전부 490억 달러입니다. 지금까지 실현한 수익까지 전부 합치면 2,400억 달러의 수익이 났습니다.”
“전부 빼냈습니까?”
“천천히 시차를 두고 빼낼 생각입니다. 이익금을 한꺼번에 빼면 시장에 큰 금융충격이 올 겁니다. 아직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서 시기를 보고 있습니다.”
수많은 역외펀드와 페이퍼 컴퍼니를 동원해서 한 투자라 정확하게 얼마나 많은 자금을 벌어들였는지는 양국의 조세당국도 알지 못했다.
환투자수익을 내버려 둘까했지만 독일은 독일통일의 여파로 2000년초반 유럽통합때까지 비실거렸고 일본은 부동산 버블의 충격을 벗어나지 못한다.
전부 자금을 빼내서 미국의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에 투자할 계획이었다. 일부는 중국시장에 간접투자로 부동산리츠시장에 진출할 계획이었다.
“그럼 전부 금액이 5,200억이로군요.”
이 금액도 리만의 자금과 타이거 벤처의 투자금액은 제외한 금액이었다.
“리만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리만이 총수익은 자체적인 투자수익과 수수료 수입을 합쳐서 480억 달러입니다. 타이거 펀드에 비해서 작지만 충분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리만의 프랑크프랑트지사에서 타이거펀드의 유럽투자에 도움을 주면서 막대한 수수료 수입을 거두었다.
비상장 펀드인 타이거의 수익은 숨길 수 있지만 상장회사인 리만의 수익은 숨길수가 없다.
애초부터 리만의 그렇게 몫은 크지 않았다.
“수익도 수익이지만 리만의 주주구성이 많이 변했다고요?”
“말씀대로 리만의 주주구조가 많이 변했습니다. 과반에 가까웠던 유태인자금들이 대부분 빠져나갔고 전체 주주의 15%정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많이 줄였군요. 대신에 아랍자금들의 투자가 많이 들어온다면서요.”
규태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경영권을 잃은 이후로 리만의 유대인 자금의 이탈이 시작되었다. 주주들은 주식을 팔았고 막대한 금액의 예금이 빠져나갔다.
그들의 투자이틀보다 더 큰 자금을 메꾼 것은 석유자본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투자청에서 리만에 펀드개설을 요구했습니다. 200억의 자금이 들어왔습니다. 더불어서 리만 주식도 8%넘게 매수를 했고요.”
“확실한 시그널이로군요.”
“예, 월가의 투자은행 중에 유대자금이 많이 투자된 곳은 부담스럽단 말이 아니겠습니까.”
규태도 이런 움직임은 이전에도 보고 받은 바가 있지만 아랍자금들은 최근 들어서 훨씬 노골적인 움직임이 나왔다.
“그런 의미에서 리만은 확실한 대안이기는 하지요.”
시티뱅크에도 엄청난 석유자금 투자가 쏟아졌고 유대인의 손길에서 벗어난 것이 확실해 보이는 리만에도 투자금을 집어넣었다.
“이번에 막대한 수익을 거두었으니 추가 자금 투자가 이어질 겁니다. 그리고 시티 쪽에서 불만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거기는 왜요?”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자기들만 따돌린다는 거죠. 이번에 아예 저희 쪽에서 언질도 주지 않았지 않습니까. 기술주에 투자했다가 호되게 손해를 본 모양입니다.”
레온회장의 말에 규태와 샨이 머리를 휘휘 내저었다.
“거기는 잘나갈 때는 우리와 아는 척도 하지 않았습니까? 타이거 펀드에 투자한 금액도 없지요?”
일부은행의 요청으로 타이거 펀드가 투자자금을 받아 새롭게 펀드를 만들었다.
샨이 머리를 긁적였다.
“전혀 거래가 없었습니다.”
“웃기는 놈들이네요.”
자기들이 힘들 때만 아쉬운 소리를 하는 놈들이었다. 타이거펀드가 시티은행의 지분 5%를 넘겨받고 자금을 지원해주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오히려 아랍자금의 투자를 받는 경쟁자로 여길 뿐 정보교환 같은 것은 아예 시도하지도 않았었다.
“내버려두세요. 그 작자들은 뒤에 배경이 든든하지 않습니까.”
시티는 FRB의 지분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은행이다. 그래서 시티뱅크의 지분을 인수할 때도 FRB의 승인을 받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굳이 시티까지 끌어들여서 우리 몫을 줄일 필요는 없습니다. 시장이 너무 거칠게 움직일까봐 타이거 펀드의 수익도 애써 조절을 해야 했습니다.”
타이거 펀드를 책임지는 샨 나링햄도 시티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가장 파이가 큰 환시장과 채권시장을 통해 얻은 이익이라 그나마 충격이 덜했지 주식시장 공매도와 같은 방식으로 수익을 거두었으면 엄청난 사회적 파장이 일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지요. 시장의 규모에 비해 엄청난 금액을 벌어들이면 판을 깨고 싶어 하는 자들이 나오기 마련이니까요.”
은행들과 투자은행들의 입에서 아직은 죽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ACX는 위태로운 모양이던데요? 파산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FRB에서도 한꺼번에 시장에 많은 매물이 쏟아질까 싶어서 예의주시하고 있고요.”
ACX는 네덜란드계 자금과 스페인 자금이 함께 투자해서 만든 헤지펀드였다. 350억 규모의 헤지펀드가 이번 금리인상으로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확실히 투자은행보다는 헤지펀드 쪽의 타격이 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지 따로 먹잇감을 노리고 있단 소문입니다.”
레온회장의 말에 규태가 턱을 만졌다. 굳이 레온회장이 팔로알토까지 규태를 찾아온 목적이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금리인상과 개도국에서의 자금유출 시나리오가 실현되면서 제일 타격을 받는 국가는 중미와 남미국가였다. 당연히 이들을 노리는 움직임이 나오는게 정상이었다.
“어디를 노릴 것 같습니까?”
“요즘 흘러가는 추이를 보면 아무래도 멕시코가 표적이 될 것 같습니다. 정치상황도 불안정하고 막대한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거든요. 페소화가 흔들면 막대한 수익을 거둘 수가 있습니다.”
멕시코에 투자한 자금의 대부분은 가까운 미국계 자금이었다.
이들이 한꺼번에 빠진다면 멕시코 경제가 큰 타격을 입기 쉬었다.
토지개혁을 둘러싼 치아파스 독립운동과 대선을 앞둔 집권당 대선후보의 암살, 그리고 이어진 사무총장의 암살까지 멕시코의 정치풍향계는 극도로 혼란에 빠져들었다.
게다가 미국의 금리인상은 멕시코엔 커다란 상처를 입혔다.
멕시코에 투자한 자금이 미국으로 유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돌아가는 정황이 도와주고 있으니 멕시코를 공격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막대한 수익을 거둘 수 있단 계산이 나온다.
아시아 외환위기의 전조인 멕시코 외환위기가 벌어지는 게 95년이었다.
95년의 외환위기를 맞게 된 멕시코는 빈부의 격차로 극도로 커지면서 범죄단체들이 지방을 장악하는 극도의 무질서한 상황으로 치닫는다.
레온의 말에 샨 나링햄이 머리를 흔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멕시코를 공격한 다해도 쉽게 성공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설마요? 멕시코는 250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읍니다? 경제규모에 비하면 충분한 외환보유고가 아닙니까?”
“최근들어 정치 불안이 격렬해지면서 외환유출이 급격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근에 100억 달러가 넘는 자금이 미국으로 빠져나왔습니다. 거기에다가 OECD가입으로 자본시장 개방이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작년에만 무역수지 적자규모가 130억 달러가 넘었습니다.올해도 비슷한 규모의 적자를 보일거라고 예상합니다.”
참석자들이 한결같이 머리를 흔들었다. 이건 누가 들어도 금융위기의 전조를 보이고 있지 않은가!
월가의 하이에나들이 보기에 멕시코는 이미 잘 익은 주인 없는 오렌지였다.
먼저 가서 따먹는 놈이 임자였다.
“구체적으로 언제쯤 작업에 들어갈까요?”
“연말에 들어가지 않을까합니다. 헤지펀드 놈들도 지금 혼란을 어느 정도는 지워야 작업에 들어갈수 있을 테니까요. 거기에 대선이 벌어지는 정치상황까지 합치면 그때가 작전을 펼치기에 적기일 것 같습니다.”
“저도 레온회장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말씀하셨던 자료들이 틀리지 않는다면 내년에 한바탕 멕시코를 외환위기가 휩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