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110화 (110/220)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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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방문

늦은 아침이 되어서야 침대에서 일어났다. 부스스한 몰골로 거실에 나오자 할머니가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계셨다.

“할머니 재미있으세요?”

“그래 LA에서도 이렇게 한국방송을 다보고, 여긴 한국이나 마찬가지구나.”

TV에서 하는 방송은 한국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사들여서 하는 케이블 방송이었다.

오로지 캘리포니아지역의 한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국이라 수지타산이 맞지 않지만 규태의 도움을 받아서 운영 중이었다.

부모님들이 LA올 때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미국방송만 봐야하는 불편을 해소해주었다. 그만하면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었다.

여동생도 영어를 그리 잘하지 못했다. 요즘에는 공부를 한다고 들었는데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냉장고에 넣어둔 차가운 물을 잔에 따라 들이켜니 정신이 조금 들었다.

“아버지는요?”

“무슨 술을 그리 마셨는지, 너희 둘이 저녁 늦게 까지 마셨다면서.”

“예, 오랜만에 부자지간에 이야기를 좀 나눴죠.”

“잘했다. 아범도 너하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많을 게다. 그래도 술은 너무 마시지 말고.”

술이야기가 나오니 그동안 할머니에게 묻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술을 좋아하셨다면서요?”

돌아가신 지가 너무 오래 되어서 규태는 기억도 하지 못하지만 어머니는 집안 남자들이 술을 너무 좋아하는 건 할아버지부터 내려오는 집안내력이라고 투덜거렸었다.

“그래, 너희 할아버지가 살아생전에 말술이었지. 너희 증조부님도 술을 엄청나게 좋아하셨었다.”

“진짜 집안 내역으로 술을 좋아하셨나 보네요.”

“그래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좋아했다. 그래서 말이지······.”

할머니는 천천히 규태에게 옛이야기를 풀어놓아다. 규태는 오랜만에 할머니가 해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어린 시절 할머니 옆에서 잠들 때마다 들려주었던 이야기가 기억이 나서 듣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졌다.

오랜만에 보는 손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자 할머니도 신이 났는데 목소리가 높아졌다.

***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자 거리에는 캐럴이 울려 퍼졌다.

날씨가 겨울답지 않게 영하로 잘 떨어지지 않는 켈리포니아의 크리스마스는 뉴욕보다 분위기가 들뜨지 않지만 그래도 연말은 연말이었다.

그렇지만 비상이 걸린 것이나 마찬가지인 타이거 홀딩스의 직원들은 투자문제로 크리스마스도 연말분위기도 없었다.

“으으으, 진짜 미치겠네. 사흘째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이게 무슨 짓이람.”

혼잣말로 투덜거리는 이사벨라의 옆에서 커피를 타던 저스틴이 무심코 대꾸했다.

“들어가 누가 들어가지 말라고 했나?”

“어떻게 들어가요. 오늘도 런던의 움직임을 체크해야하는데. 그게 얼마짜리인지나 알아요!”

눈을 부릅뜨고 저스틴을 노려보는 이사벨라 메르시드였다.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온갖 남성들의 선망의 대상으로 많은 대쉬를 받던 이사벨라였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월스트리트에 발을 디디면서 워 라벨이 무너졌다.

거기에 이렇게 투자가 급박하게 이루어지면 몸 상태도 엉망이 된다.

일주일째 샵에 들리지 못해서 엉망이 된 머리도 신경 쓰였고 수면부족으로 칙칙해진 얼굴도 짜증이 나 죽겠는데 옆에서 헛소리를 지껄이니 평소와 달리 이사벨라도 좋은 반응을 보이기 힘들었다.

50억 달러가 넘는 포지션을 구축하는 게 쉬운 일인지, 그것도 소리 소문 없이 만들어 내야 한다. 열다섯 개나 되는 역외펀드를 이용해서 지수선물을 매도하는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면 거래량도 신경 써야 한다.

“한꺼번에 사들이면 되잖아?”

“그게 말이라고 해요. 런던은 일본하곤 사정이 다르다고요.”

한꺼번에 많은 거래를 하지 못하고 조금씩 사들이다 보니 신경이 곤두서는 건 당연한 일이다.

저스틴 게티는 이사벨라의 짜증에 그저 어깨만 들썩이고 말았다.

그가 맡은 부분은 일본시장의 환투자라 시간을 맞추기가 그나마 편했다.

일본에는 지사가 있어서 신경을 쓸 부분이 상대적으로 적기도 했고 유렵지사의 인원이 부족해서 도움을 받기 힘든 이사벨라와는 사정이 달랐다.

커피를 한잔 손에 들고 자리에 돌아온 저스틴은 시계를 보고는 전화기를 들었다.

도쿄 외환시장이 오픈한지 두 시간이 지났으니 전화를 해도 될 시간이었다.

“헤이, 거기는 어때? 더럽게 춥다고?”

***

“여긴 다른 나라 같네요. 같은 나라인데도 이렇게 날씨가 다를까요.”

“겨울에도 영하로 잘 떨어지지 않으니까 뉴욕하곤 다르지요. 뉴욕에는 눈이 내렸다면서요?”

“정말 징그럽게 눈이 내려요. 사흘째 폭설이라서 차가 기어 다닌다고요. 보스, 우리도 여기로 옮길까요? 굳이 뉴욕에 틀어박혀 있을 필요는 없잖아요. 샨하고 아라타는 오지 못해 섭섭하다고 전해달래요.”

“내가 뉴욕에 가는 게 빠르긴 한데 말이죠.”

“그럼 월가의 하이에나들이 눈치를 채겠죠.”

뉴욕의 타이거 펀드는 워낙 시선을 많이 끌다보니 주변이목이 집중되는 곳이다.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규태가 타이거 펀드 뉴욕본사에 모습을 드러내면 긴장할 이들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만난 셜리는 여전히 쾌활했다.

“그래서 말인데 이곳으로 옮기면 안 될까요? 여긴 날씨도 마음에 드는데.”

“투자회사는 월가에 붙어야지요. 여긴 타이거 벤처만으로도 충분해요.”

“그야 그렇지만, 그럼 나도 회사를 옮길까요?”

그녀가 말하는 뜻은 타이거 벤처로 자리를 바꿔도 되냐 라는 소리다.

“캐서린이 받아주면요. 밑에서 일할 자신이 있으면 허락할게요.”

셜리도 심각하게 말하는 것은 아니니 규태는 가볍게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끄응, 그건 자신 없는데. 케서린이 잔소리도 심하고 눈치도 얼마나 주는데요. 거기에서 일하다간 스트레스로 내 아리따운 머리가 남아나질 않을거에요.”

길게 자란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자랑하며 규태가 눈치를 주어도 알아차리지 못한 셜리가 신이 나서 한참동안 캐서린의 험담을 늘어놓았다.

그러다가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눈치 챘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뒤에 내가 아는 사람이 와 있나요?”

“그럴걸요.”

“히익!”

“호호, 어디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나 했더니 여기로군요. 셜리 뭐라고요?”

“케서린 언제 왔어?”

“아까부터요, 셜리가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지 충분히 들었다고 나 할까요. 그럼 이제부터 내가 셜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해볼까요.”

케서린이 셜리를 강제로 끌고 밖으로 나갔다. 완강하게 도망을 치려는 셜리를 억센 팔로 붙잡고 나가는 케서린의 기세가 아주 흉흉했다.

두 사람의 소동을 옆에서 지켜본 오선한이 머리를 흔들었다.

“두 사람은 여전하네요.”

“저러면서도 잘 어울려 다니는 게 신기하죠.”

둘은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한 달에 한 두 번정도 술자리를 같이 할 정도로 친했다.

한참 있다가 돌아온 셜리의 얼굴이 초췌했다. 반대로 속이 쌓인 걸 털어냈는지 개운한 얼굴을 한 케서린과 정반대였다.

회의실에 앉은 규태는 테이블위의 두터운 보고서를 넘기며 여기저기 살폈다.

“두 사람의 개인적인 용무는 끝난 걸로 알고 이제 회의를 시작하죠. 셜리부터 시작해요.”

“타이거 펀드는 전체 포지션 3,800억 가운데 95%의 포지션정리를 마쳤습니다. 구체적인 투자내역은 보고서에 나온 데로 미국시장에서 금리 선물지수과 주가선물을 매도하고 유럽시장에서는 환 선물을 매수하는 투자가 전부 끝났습니다. 예상대로 수익을 거둔다면 아무래도 대형은행 두세 곳은 이번에 끝장이 날 것 같습니다.”

금리인상을 대비한 투자에 따른 손익을 계산해보면 전과 다르게 그리 큰 폭은 아니었다. 예상대로 금리가 인상된다면 100%의 수익을 기대하고 있지만 투자금액이 워낙 크다보니 금액이 엄청났다.

금리 선물을 매수한 은행 쪽에서 헤지를 했다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하지 않았다면 은행이 날아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확신하는 셜리에게 조용히 있던 케서린이 되물었다.

“그런 곳이 있을까요? 그래도 명색이 자금을 보수적으로 운영한다는 은행인데?”

“꼭 그런 곳이 한 둘은 나옵니다. 위험을 우습게 여기는거지요. 우습게도 위험이 큰 투자를 많이 하는 투자은행들은 위험대비가 철저한 반면에 위험자산 투자를 기피하는 은행 쪽에서 그런 실수를 자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죠? “

셜리가 씨익하고 미소를 지었다.

“은행문 닫는 거죠. 보스의 예상대로 금리가 인상되면 적어도 지방의 대형은행가운데 두 곳 아니면 세 곳 정도는 이번에 날아갈 것 같은데요.”

은행에 예금한 사람들의 손실은 불을 보듯 뻔했다.

“어디라도 투자를 잘못하면 책임을 져야죠. 케서린은 어때요?”

“벤처펀드야 다른 일이 있나요. 가지고 있는 상장주식가운데 팔 수 있는 건 대부분 정리했고 투자한 회사들도 대출 금리를 고정금리로 바꾸라고 한 것 말고는 특별한 일이 없네요.”

”벤처회사들이 말들은 잘 듣던 가요? “

“안 들으면 어쩔 건데요. 말 안 들으면 투자금 회수한다고 했더니 잘 듣던 데요.”

자금력이 취약한 벤처들은 금리인상으로 제법 큰 타격을 받을 터였다. 오히려 유망한 벤처의 지분을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규태와 마주하며 회의를 하는 김에 셜리는 궁금했던걸 물었다.

“그런데 진짜로 금리를 인상할까요? 12월의 FOMC에서는 아무런 말도 없었잖아요? 이러면 2월에도 별 움직임이 없다는 소리 아닌가요.”

대부분 금리를 내리거나 올릴 때는 미리 힌트를 준다. 갑작스런 금리변동은 시장에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그걸 무시하는 게 94년의 금리인상이다.

“내 예상으로는 재무부와 연준의 기싸움 때문에 2월에 금리를 인상할 것 같습니다.”

“어린애들도 다큰 어른들이 뭐하는 짓이람.”

“어린애가 아니니까 더욱 심각하죠. 이건 엄청난 판돈이 걸린 결정이거든요. 앞으로 금리결정의 권한을 누가 갖느냐 하는가를 두고 벌이는 다툼입니다.”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루빈과 앨런의 주도권 다툼이 한층 격렬해 졌다는 소식이었다.

내부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정보들이 규태에게 전해졌다.

“금리를 올리는데 금리결정권을 가지고 싸운다고요?”

“한번은 일방적으로 앨런이 인상할 수 있지만 그 다음부터는 격렬한 반대에 부딪힐 겁니다. 재무부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요.”

“그거야 당연하죠, 지금 행정부는 경기활성화에 사활을 걸고 있잖아요. 금리를 인상하면 그게 물건너 갈게 뻔 한데요.”

“연준은 금리인상으로 경기가 살아나는 속도를 조절하자는 의도입니다. 자칫하면 인플레이션이 걷잡을 수 없게 오르지 않을까하고 고민하는 겁니다.”

“인상을 안 하면요? 금리인상이 없으면 어떻게 되나요? "

캐선린의 질문에 규태가 한숨을 쉬었다. 그런 결과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기 때문이었다.

“열심히 투자한 거 손해 봐야죠. “

“대충 시뮬레이션을 해보니까 투자금액의 50%가 작살나던데요.”

“그게 전부 얼마야!”

투자금액이 얼만지를 대충 아는 케서린이 어림짐작을 해보곤 화들짝 놀라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2000억이 넘는 자금을 투자실패로 깨 먹는다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었다.

“월가에서 비일비재한 일이예요.”

케서린이 가슴을 두드렸다.

“그래서 내가 월가로 가지않는 거라니까요. 생각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리네.”

“월스트리트에서 성공하려면 야수의 심장을 가져야 한다잖아요.”

“성공을 하려면 야수의 심장이 아니라 로봇이나 사이코패스여야 하겠는데요. 난 1억 달러만 투자에 실패해도 심장이 두근거려서 잠을 못 이루는데.”

“캐서린 어울리지 않는 엄살은 그만떨고,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이젠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네요.”

“그렇죠 셜리말대로 이젠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새해 첫 FOMC가 열리는 2월이 되면 그동안의 준비가 헛된것인지 아닌지가 결판이 날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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