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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금융재벌-109화 (109/220)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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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선물 시장이 제일 많이 거래되는 시장은 시카고 상품거래소(CME)다.

30년물 국채와 10년 물, 5년 물, 2년 물 국채 가운데 제일 많은 양의 거래가 일어나는 종목은 단연 만기가 짧은 2년 물과 5년 물이다.

만기 기간이 길어질수록 위험헤지의 필요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외부적으로 국채의 보유량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타이거 펀드의 적극적인 금리선물 매도는 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다.

미국시장에서는 금리선물의 매도에 주력했지만 일본과 독일 경우에는 3월물 주가지수선물을 야금야금 팔아치웠다.

전체적인 투자방향이 정해져서 인지 규태가 해야 할 일은 크게 많지 않았다.

전체적인 투자현황을 보고하는 오선한에게 규태가 물었다.

“프랑크푸르트는 어때요? DAX선물은?”

독일 주식시장거래는 프랑크푸르트 거래소가 제일 활발했다. DAX 지수는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주식 중 30개 기업을 대상으로 구성된 종합 주가 지수다.

“열심히 팔아치우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지수거래가 활발합니다. 오늘까지 2만 5천계약을 매도했습니다. 런던시장에서의 매각도 순조롭습니다.”

독일과 영국, 일본 시장에서 주가선물을 매도하는 전략은 생각보다 잘 진행되었다. 미국주식시장이 바닥을 찍었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수입시장인 미국의 경기가 살아나면서 주요수출국의 경기도 조금씩 살아나는 추세였다.

독일은 90년의 독일통일이후로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면서 내수경기가 침체, 수출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미국이 호락호락하게 시장을 내줄 리가 없었다.

“일본은요? 거래가 잘되나요?”

“일본경제가 워낙 죽을 쑤고 있어서 은행파산을 막기 위해 제로금리를 유지하지만 썩 좋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큰 수익이 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워낙 규태에게 몇 번이나 두드려 맞아서인지 원역사보다 상태가 좋지 않았다.

파산한 은행의 숫자가 원래보다 두 배 이상 더 많았다. 지하실 밑에 또 다른 지하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보여주듯이 일본증시도 끝을 모를 추락을 경험하는 중이었다.

“그럼 일본은 주식보단 외환거래로 가죠. 그쪽이 빠를 것 같네요.”

“제 생각에도 그쪽이 수익을 내기에 유리할 것 같습니다. 도쿄 외환시장의 거래 규모가 런던다음으로 크니까. 그렇게 투자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정대로 2월초까지는 투자포지션을 완전히 끝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었다.

"알고 있습니다만 다시 한번 직원들에게 주의를 주겠습니다."

"제가 할일이 없으니까 공항에나 나가야 겠네요."

시간을 보니 가족들이 LA에 도착할 시간이 가까왔다. 작년에는 공항에 나가지 못했었다.

세세한 매매에 관련된 사항은 직원들에게 맡겨두고 연례행사처럼 LA로 날아온 가족들을 맞이하러 공항으로 나갔다.

공항에서 규태는 막내와 함께 가족들을 기다렸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어째 얼굴보기가 힘들다? 한 달 만에 얼굴을 보는 것 같은데?”

“얼굴보기가 힘든 건 나도 마찬가지야. 형이 팔로알토하고 LA를 오가면서 지내니까 그렇지 나도 집에는 꼬박꼬박 들어간다고.”

규태가 동생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에리히집사에게 물어볼까? 네가 얼마나 집에 자주 들어오는지?”

“가끔은 밖에서 자느라고 안들어올 때도 있지만. 절반이상은 집에 들어간다.”

“절반? 너 솔직히 말해서 형 집에서 사는 건 엄마잔소리를 피해서지?”

“당연한 소리, 형 집에서 같이 산다니까 엄마가 잔소리를 덜하는거지. 아니면 매일 매일 한국으로 전화해서 어떻게 사는지 꼬박꼬박 보고를 해야 할걸.“

“네가 중고등 학교 때 얼마나 사고를 많이 쳤냐. 그 업보라고 생각해라.”

“하긴 내가 어릴 때는 문제를 일으키긴 많이 했지.”

이젠 중2병에서 벗어났는지 막내도 순순히 잘못을 인정했다.

“학교는 잘 다니고?”

“못다닐 건 또 뭐야. 솔직히 학기 초에는 따라가는 게 조금 벅찼지만 이젠 적응이 돼서 다닐만해.”

시험을 끝낸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조금 얼굴이 마르기는 했지만 활기찬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시험 앞두고 미친 짓 하는 놈은 없고?”

“그게 무슨 말이야? 아! 그건 스탠포드나 하버드대학생같은 또라이들이 벌이는 일이지 여기는 그런 짓을 할 정도로 미친놈들은 없어.”

“그랬었나? 그럼 다행이고.”

스텐포드에서는 기숙사에서 데드윅이란걸 한다. 시험 일 주일 전부터 밤 12시가 되면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소리를 지르는 전통이다.

하버드에서는 기말시험 하루전날 홀딱 벗고 누드로 달리기를 하는 게 전통, 예일은 누드로 도서관을 활보한다고 들었다. 시험압박에 시달리는 놈들은 시험기간이 되면 이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푼다.

“1월 말이면 다시 학기가 시작돼서 일주일밖에는 집에 못 있어. 친구들하고 여행가기로 했거든.”

여름방학이 길고 겨울방학은 1달이 조금 넘는 건 규태도 안다. 일주일이나 집에 붙어있어 주는 게 고맙다고 할까.

식구들이 온다고 동생도 나름 신경을 쓰는 것이다.

“그건 네가 어머니한테 이야기하고.”

“어머니라고 하면 또 엄마가 화낼 텐데. 나이를 먹어도 엄마라고 부르지 않으면 잔소리를 하니 그것도 고역이다.”

“뭐 어때, 엄마가 좋아하면 그뿐이지.”

“그래 네 말이 맞다.”

규태가 동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는 아흔 살이 넘게 장수하신 부모님이었다.

규태가 손주를 보고 나서도 어머니란 말을 쓰는 걸 싫어하셨다.

전용기를 타고 입국하는지라 도착시간이 되자 식구들이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오랜만에 보는 부모님과 할머니, 여동생의 모습을 보며 규태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도착하자마자 낮잠을 잔 부친이 늦은 밤에도 잠이 오지 않는지 거실을 서성거렸다.

“잠이 오지 않으면 술이나 한잔 하실래요? 많이는 말고요.”

“그래 한잔하자, 괜히 낮에 잠을 많이 자서인지 영 잠이 오지 않는구나.”

“올 때 불편한건 없으셨죠?”

“불편하긴 전용기로 오는데 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전용기가 편하긴 편하더구나. “

“다행이네요. 할머니 건강은요?”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고 있는데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아버지가 차마하지 못하는 말끝을 규태는 알아들었다.

“노환은 조심해야죠.”

“그래 그건 어쩔 수가 없지. 좋은걸 많이 구해서 드시기는 하는데 연세가 있으셔서 해가 지날수록 힘이 빠지는 게 눈에 보이니.”

애장하던 양주를 한 병 기회에 깠다. 안주는 가벼운 종류로 미리 준비해둔것들을 꺼내고 나니 그럴써한 술판이 벌어졌다.

“이건 비싼 술이냐? 술이 잘 넘어간다.”

“그렇죠, 한 병에 2만 달러 정도 줬을걸요. 아버지가 오시면 같이 마시려고 준비해 둔겁니다.”

“그래? 입이 호강하는구나.”

예전 같으면 쓸데없는 짓이라고 화를 냈겠지만 워낙 신문과 방송에서 규태의 재산이 얼마인지를 많이 떠들다 보니 그런가 할뿐이다.

술잔을 금세 비운 부친에게 다시 한잔을 따라주었다.

“좋은 술이라고 해도 술입니다 천천히 드세요. 요즘 한국은 어때요?”

“문민정부가 들어섰다지만 그놈이 그놈이지. 네 말처럼 8월에 금융 실명제를 실시해서 한동안 시끄러웠다. 나야 그런 계좌는 아예 가지고 있지를 않으니 문제가 될게 없었다만. 온통 그 소리만 떠들어대서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금융 실명제라고 해봐야 일부가 대상이었다.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할 때 철저하게 규정에 따르는데 실명이 아닌 경우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된다.

그 극히 일부의 계좌가 문제였다.

관료들과 재벌들이 검은 돈을 숨기려고 애용하던 것을 못하게 막아두었으니 시끄럽게 떠들어 댈 뿐이었다.

“아버지한테 손을 벌리는 사람은 없었나요?”

“문민정부라고해도 손 벌리는 놈들은 똑 같더구나.”

부친의 한숨에 규태가 쓴웃음을 지었다. 군부정권이 물러나고 그 자리를 정치인들이 채웠지만 그놈이 그놈이라 하는 짓은 똑 같았다.

“아마 대통령의 아들이 문제가 될 겁니다. 인사 청탁에도 깊숙이 개입한다고 하더군요.”

정권 말이 되면 민낯을 드러내겠지만 아직까지는 새로운 정권이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는 시점이다.

한국의 정치와 경제동향을 황규철이 계속 보고했다.

규태가 한국에 들어가지 않는 것도 황규철의 만류 때문이다. 들어가 봐야 좋은 꼴을 보기 힘들었다.

“이번에 다저스가 우승한 거 축하한다.”

“아버지도 야구를 보세요?”

“나야 크게 관심이 없지만 신문과 방송에서 얼마나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지. 네 엄마는 밤에 잠도 자지 않고 아들이 구단주인 팀이라고 다저스 경기를 보더라.”

규태가 야구를 좋아하는 건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 남여사의 힘이었다.

규태가 고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어머니와 둘이 나란히 앉아서 고교야구경기를 지켜보았다.

“엄마는 여전한가 보네요.”

“그래, 우승했을 때는 엄청나게 좋아했다. 그렇게 좋은 팀이라면서. 네 엄마가 입에 침이 마르더라. 세이버메트릭스인가? 온갖 통계자료를 집안에 두곤 난리를 피우는데.”

집안에 세이버메트릭션이 있을 줄은 규태도 몰랐다. 수학과 통계를 좋아하는 어머니에겐 즐거운 놀이였을 것이다.

“구단에서 전문가로 초청을 해야겠네요.”

“그래 그러려무나. 네 엄마도 네가 알아주면 좋아 할 거다.”

“학교는요?”

“중, 고등학교뿐인데 잘 안 굴러갈 일이 있겠냐. 장학금도 풍족하게 지급을 해서 지역에서도 인기가 많아.”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니니까요.”

사학재단이라도 온전히 장학사업의 목적으로 굴러간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자꾸 딴 생각을 하는 놈들이 많으니까 문제지.

“그런데도 말도 되지 않는 트집을 잡고는 자꾸 시비를 걸려고 하니.”

“누가요?”

“누구겠냐.”

“정치자금을 주지 않는다고 시비를 거는 건가요?”

“네가 한국에 들어오지 않는 건 잘하는 거다. 들어오면 머리 아플 거야.”

그렇게 부친과 술잔을 기울이며 오랜만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여동생의 결혼 이야기로 화제가 옮겨갔다.

“미려가 사귀는 남자가 있다고요?”

“그래 네 동생도 나이가 찼으니까 이젠 짝을 찾기는 해줘야하는데.”

“아버지도 보셨어요?”

“집안끼리는 대충 이야기가 끝났다. 문제는 너지. 오빠도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여동생먼저 결혼시키는 게 흉이 되지 않을까 하는 소리도 있더라.”

은근히 결혼을 조르는 분위기라 규태는 대충 얼버무렸다.

“여동생이 먼저 갈수도 있지요. 저는 아직 생각이 없어요.”

“에잉, 남자자식이 돈만 잘 벌면 뭐하냐. 나이가 됐으면 결혼상대도 데려오고 해야지.”

“저 아직 서른도 안됐는데요?”

“그러니까 그전에······.”

“아버지, 이러시면 내일부터 제 얼굴 못 보십니다.”

한국에서도 결혼이야기가 나오자 집밖을 돌았던 아들의 과거를 떠올린 부친이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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