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106화 (106/220)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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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시리즈

지하수장고는 규태가 꽤 많은 돈을 들여서 만들었다. 420㎡넘는 방대한 크기도 크기지만 때마다 벌어지는 소더비와 크리스티 경매에서 현대미술과 고미술품을 사들였다.

동아시아에 흘러나온 고미술품도 중요한 매입대상이었다.

아직까지 해외에서 거래되는 고미술품의 가격은 그리 높지 않아서 꽤 많은 양의 고미술품이 수장고를 채웠다.

앤드워홀이나 장 미셀 바스키아, 르네 마그리트,막스 에른스트 같은 현대 화가들의 그림도 제법 많은 수를 가지고 있어서 수장고를 둘러보는 내내 히로스에의 기분은 둥둥 허공을 떠다녔다.

“와아! 이 작품도 있네요? 이거 진본 맞아요?”

한 작품을 보고는 너무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히로스에였다. 벽에 걸린 작품은 고흐의 풍경화였다.

독특한 색채의 사용한 명작을 본 히로스에는 한참동안 그림 앞을 떠날 줄 몰랐다.

“저 그림은 언제 산겁니다? 히로스에가 정신을 못 차리네요.”

“작년 말에 일본 쪽에서 매입한 겁니다. 경매에서 나온 것은 아니고 인연이 있는 화랑에서 중개를 해서 매입하게 되었습니다.”

“고흐의 작품은 일본인의 감정을 건드리는 부분이 많은 가봅니다.”

“그렀더군요. 일본인들이 고흐 그림 값을 올린 당사자들이니까요. 쓸많나 고흐그림이 나온다면 일본일들이 매입하려 달려들었죠. 요즘은 경기가 좋지 못해서인지 열기가 줄었습니다.”

거품경제가 극에 달했던 88년과 89년도까지 일본의 부자들은 경쟁하듯이 고흐를 비롯한 인상파 작가들의 작품가격을 올렸다.

규태가 매입한 작품도 고흐의 대표작도 아닌데 5,000만 달러를 주고 매입해야 했다.

“저렇게 그림을 좋아하는데 왜 법학을 전공한 거랍니까? ‘

규태의 질문에 오장우가 조금은 난처한 얼굴을 하더니 이내 마음을 굳힌 듯 입을 열었다.

“원래는 가문의 사업을 물려받아야 해서 그랬습니다. 히로스에의 집안이 동일본생명보험사거든요.”

“거기라면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생보사 아닙니까?”

“열 손가락 안에는 들어가지요. 자본금만 500억 엔이 넘는 회사니까요. 원래라면 제가 데릴사위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자식이 히로스에 하나밖에 없었나 보군요.”

“히로스에가 싫어했으니까요. 대학원을 졸업한 다음에 일본에 들어가는걸 정말 싫어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집안하고 거의 의절을 했는데 자식들을 낳아 키우다 보니 다시 화해를 했습니다. 지금은 장인도 이해를 해줍니다.”

짧은 이야기였지만 파란만장한 스토리가 담겨 있었다. 일본의 명문가의 부잣집 외동딸과 한국 남자의 결혼이 순탄하게 진행되었을 리가 없었다.

“미술관을 하나 만들려고 합니다. 히로스에가 도와주었으면 하는데요.”

“다른 전문가들도 많지 않습니까? 굳이 전공자도 아닌 히로스에에게 그 일을 맡기려는 겁니까?”

“아시겠지만 미술품은 여러 가지로 걸리는 게 많습니다. 꽤 많은 비밀도 지켜야 하고요. 제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히로스에라면 정말 제가 믿을 수 있는 분이 아닙니까. “

규태의 말에 오장우가 이마를 찌푸렸다.

“제 아내에게 위험한 일을 시키려는 겁니까?”

“아니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어디가지나 정상적인 물건들만 사들일 겁니다. 그림투자로 돈을 벌자고 하는 일은 아니고 제가 그림을 사다보니 눈에 들어오는 작품들이 있어서 계속 사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명작들이 여기에 걸려있는 걸보니 마음이 좋지 않더군요. 사실 히로스에형수님이 맡을 일은 법률적인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긴 미술관일이라고 해도 법률적인 지식이 많이 필요하기는 할겁니다. 그리고 많은 대가들의 작품이 경매장에서 창고로 들어가 썩어간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좋은 건 많은 사람들하고 나눠야죠. 그리고 저렇게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아내도 아이들이 다 커서 이젠 손이 가는 일도 적어졌고, 일을 하고 싶어 하기는 했습니다.”

그림들을 감상하며 환하게 웃는 히로스에의 모습을 지켜보던 오장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아내가 저렇게 웃는 모습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로군요. 아내만 찬성한다면 저는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그 걸로는 부족하죠. 제 옆에서 저를 조금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지금보면 형수님도 쉽게 넘어올 것도 같지만 혹시 모르니까요.”

정신없이 벽에 걸린 그림들을 홀린 듯이 바라보는 히로스에에게 다가간 규태가 말을 걸었다.

“히로스에 형수님, 그림이 마음에 드시나요?”

“..... 뭐라고요?”

“그림이 마음에 드시나고요?”

걸려 있는 그림 속으로 파고들것처럼 몰두해있던 히로스에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미안해요. 내가 너무 말도 없이 그림감상에 집중했죠.”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앞으로 계속 그림을 보고 싶지 않으세요?”

“그림을 자주 보여줄 건가요?”

규태의 말에 얼굴가득 화색을 띄우며 물어보는 히로스에였다.

“여긴 보안이 철저해서 한번 개방하기가 힘들어요. 여기 걸린 작품들도 제가 미술관을 세우면 그곳으로 옮겨갈 거고요. 보시다시피 공간이 비좁아서 새로 사들인 작품들은 걸기가 힘들거든요.”

수장 공간이 부족해서 조심스럽게 포장된 그대로 보전되는 작품들도 많았다.

“그건 정말 아쉽네요.”

“그래서 말인데 히로스에가 미술관을 맡아줄 수 있나요?”

“제가요? 미술관을 맡아 달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히로스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자 옆에 있던 오장우가 끼어들었다.

“보스가 사들이는 작품들을 관리해 달라는 소리지. 보스, 새로운 작품 매입까지 포함이죠?”

“당연하죠, 저는 작가만 지정할 뿐이고 매입은 알아서 해주시면 됩니다. 미술관을 짓는 일부터 시작해서 할 일이 많습니다. 캘리포니아 변호사 자격증도 가지고 계시다면서요?”

”따놓기는 했지만 로펌에서 오래 일을 하지도 못했는데요. 한국으로 들어가면서부터 일을 그만 뒀어요. “

말을 하면서 부끄러운 듯이 히로스에가 얼굴을 붉혔다.

아직 국제화가 시작되기 전이라 애엄마인 히로스에가 한국에서 마땅히 할 일을 찾을 수가 없었다. 두 자식을 키우다보니 경력단절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집에서만 있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느 사이 훌쩍 다 자란게 마음 한편에선 섭섭하지만 시간의 여유가 생겨나면서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는 것을 반겼다.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을 하면 자신도 일을 찾아 나설까 마음을 먹었었는데 이런 갑작스런 제의를 받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저는 경험이 없어도 너무 없잖아요? 받아들이기가 부담스럽네요.”

“그러지 마시고 한번 다르게 생각을 해보세요. 미술관의 책임자가 반드시 그림을 전공할 필요는 없잖아요. 부담스럽긴 하겠지만 밑에 전공자를 두고 일을 하면 됩니다.”

처음에는 규태의 제안에 펄쩍뛰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은 그림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아마추어일 뿐 프로가 되기에는 부족하다며 한사코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번 시간을 두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래 여보, 당신도 일을 하면 좋잖아, 이젠 아이들도 다 컸는데. 미술관 일은 당신이 좋아하는 일이잖아. 보스가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남편까지 거들고 나서자 처음에는 완강하던 히로스에의 마음도 조금은 돌아섰다. 두남재는 슬그머니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흔들리는 히로스에를 한참동안이나 설득한 규태와 오장우의 공세에 결국은 히로스에의 마음이 움직였다.

***

포스트 시즌에 들어간 다저스는 준결승전인 리그 챔피언십에서 필라델피아 필립스를 만나 치열한 접전 끝에 4승 3패로 승리하고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다. 88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꺾고 우승한 것이 가장 가까운 기록이었다.

그리고 월드 시리즈에서 만날 상대는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4승 2패로 꺾고 올라온 토론토 블루제이스였다.

전년도 우승멤버가 고스란히 남은 토론토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첫 풀타임이면서도 괴력투를 던지며 1선발의 역할을 해주고 있는 팻 헨트겐과 베테랑 투수 데이브 스튜어트가 선발진에서 자리를 잡았고 역사상 최고의 리드오프로 불리는 리키 핸더슨, 강타자 폴 몰리터, 조 카터와 3할 타자 로비 알로마가 팀타선을 이끌었다.

1차전은 팽팽한 투수전 끝에 캔 그리피 주니어가 주자 1루에서 때린 2점 홈런을 결승점으로 해서 승리했지만 2차전에서 랜디 존슨의 호투에도 불구하고 1:0으로 패했다.

3차전에서는 오렐 허사이저가 오랜만에 자신의 실력을 보이며 5회까지 2실점으로 잘 막고 그 뒤를 이은 페드로의 무실점 투구로 5:4로 승리하면서 시리즈 승기를 가져왔다.

그리고 4차전 선발투수로 나선 매덕스가 의외로 고전하는 가운데 7회까지 3:2로 밀리던 경기를 프랭크 토마스의 역전 3점 홈런으로 3:5로 뒤집자 다저스 홈구장은 떠나갈 듯한 환성으로 지진이라도 난 듯이 흔들렸다.

1번으로 나선 프랑크 토마스의 타구가 다저 스타디움의 담장을 훌쩍 넘어 관중석으로 향하자 규태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을 쥐며 큰 소리를 내질렀다.

“YES! YES!”

치밀어 오르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열광하는 규태의 옆자리에서 함께 경기를 보던 제리도 잔뜩 흥분한 얼굴로 박수를 쳤다.

1차전에 나와서 팽팽한 투수전을 벌였던 상대 에이스 펫 헨트겐을 무너트린 것이다.

“여기서 한방 쳐주겠지?”

“캔이 결정적인 때는 하나씩 쳐주는데 모르겠다. 2아웃이니까 부담 없이 휘두르겠지.”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만큼이나 긴장감을 숨기지 못하는 단장 제리였다.

이적 후에도 꾸준하게 실력을 보여준 캔 그리피 주니어였다. 시애틀에 있을 때보다 LA로 이적하면서 인기가 치솟아 다저스에서 제일 유니폼이 많이 팔리는 인기선수엿다.

이어서 나온 브랫 버틀러가 삼진으로 물러나고 캔 그리피 주니어가 타석에 나오자 잠시 가라앉았던 다저 스타디움의 응원 열기가 다시 달아올랐다. 뜨겁게 달아오른 다저스 관중석에서 응원가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모두가 바라는 대로 2볼 2스트라이크에서 던진 투구의 커브를 특유의 부드러운 스윙으로 노려 친 캔 그리피 주니어의 타구가 다저 스타디움의 밤하늘을 뚫고 날아오르자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승리의 향기가 더욱 강해지자 관중석에선 끝이지 않고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9회 초 마무리 리베라가 던진 투구를 타격한 공을 유격수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잡아 1루로 송구하면서 경기가 끝이 났다.

8:5로 다저스가 승리를 거두자 경기가 끝났어도 경기장을 떠나지 않고 관중들은 노래를 불렀다.

3승 1패로 절대적으로 앞서나가면서 우승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규태나 제리나 모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단기 시리즈에선 미치는 선수가 나와야 승리를 한다고 하더니 1,2,3차전에선 블라디미르가 맹활약을 펼쳤고 4차전에선 기존의 주전인 프랑크 토마스와 캔 그리피 주니어가 홈런을 떼려내며 승리를 견인했다.

잘되는 집안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내일 경기만 잡으면 끝이군.”

“잘 될 거야, 랜디가 이를 갈고 있거든. 타자들도 컨디션이 좋아.”

2차전에서 잘 던지고도 패전 투수가 된 랜드 존슨이 이를 악물었다면 결과를 기대해도 좋을 일이었다.

5차전이 열리는 홈구장 다저 스타디움을 찾는 규태는 표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팬들의 모습을 보며 일찌감치 경기장에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찬 채 시작하기부터 열광적인 응원을 보내는 홈팬들의 VIP석에서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규태의 초대를 받아 함께 온 오장우의 가족들도 하나같이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원래대로라면 5차전을 거르고 6차전이나 7차전을 관람을 하려고 했었지만 돌아가는 분위기가 5차전에서 결정이 날 것 같았다.

“한번 선수들을 보고 올걸 그랬나요?”

“경기를 앞두고 긴장했을 텐데 조금만 기다리시죠. 돌아가는 분위기가 오늘로 마무리가 될 것 같은데요. 랜디가 선발로 나섰는데 질 것 같지 않습니다.”

“난 시간이 나면 캔 그리피 주니어의 사인을 받을 거예요.”

오장우의 큰아들인 오진영이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호오! 넌 캔의 팬이로구나?”

“예, 타격스윙 폼이 진짜 부드럽고 아름답잖아요. 학교 친구들도 좋아하는 애들이 많아요.”

“녀석 선수 보는 눈이 있구나.”

캔 그리피 주니어의 열렬한 팬인 규태는 모처럼 동지를 만난 기쁨에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난 알렉스요. 알렉스가 타격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요. 같은 반의 친구들도 알렉스가 제일 인기가 많아요.”

모처럼 가족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은데다가 VIP석까지 들어오자 친구들에게 자랑할 생각에 잔뜩 흥분한 오선영이었다.

졸업한 첫해에 메이저리그에 올라온 풋풋한 외모의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좋아하는 소녀팬이 많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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