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100화 (100/220)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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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그림자

스탠포드대학과 마주보는 구역인 올드 팔로알토의 집값은 아직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도시의 이름인 팔로알토는 스페인어로 높은 나무를 의미한다.

초기 이주민들이 정착할 때 높은 크기를 자랑하는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심가를 조금만 넘어가도 울창한 나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한적한 동네의 집값이 시차를 두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게 될 것이라 누가 생각하겠는가.

2층짜리 방 다섯 개의 저택이 1,000만 달러를 넘어가고 그것도 싸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오른다.

지금은 65만 달러만 주면 올드타운에 쓸만한 주택을 구입할 수 있다.

홀딩스의 직원 에른스트 헤겔이 올드타운에 집을 사서 입주한 날이다.

몇 안 되는 직원들 가운데 하나인 폴 몰리터의 갑작스런 죽음은 회사분위기를 가라앉혔다. 침울한 회사 분위기에 답답함을 느꼈는지 에른스트는 직원들을 초대해서 집들이 파티를 열었다.

“이게 방이 몇 개야? ‘

“방 다섯 개, 화장실은 여섯.”

“남자 혼자 사는 사람치고는 집이 너무 넓지 않아. ‘

“청소가 문제지만 식사야 회사에서 대부분 해결하니까. 우리 보스가 꼭 집을 사라고 신신당부 했잖아. 그러면 따라야지.”

“보스는 오라클이잖아, 적어도 금전적인 부분에서 보스의 지시를 따라서 손해 본적이 없지. 나도 하나 사야하나?”

“별 필요가 없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투자라고 생각하면 뭐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작년에 받은 연봉과 보너스를 합치면 어지간한 월가의 임원급 대우를 받았다. 세금이 엄청나게 따라붙었지만 그래도 남은 금액이 상당했다.

세금문제가 떠오르자 다니엘이 가볍게 투덜거렸다.

“빌어먹을 IRS(국세청)놈들.”

“해주는 것도 없는 놈들이 떼 가는 건 왜 그렇게 많은지 몰라. 연방세에 주세에, 소셜시큐리티에 건강보험까지 떼 가면 남는 건 얼마 안 된다고. 절반이 뭐야 60%까지 빠지는 것 같은데.”

월급쟁이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국세청을 성토했다. 연봉이 10만 달러를 넘어도 세금폭탄이 떨어지는데 그걸 한참 초과한 고액연봉자인 두 사람이니 당연히 불만의 강도도 높았다.

저쪽에서 처음 보는 아가씨들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는 헨리와 조드릭이 들었다면 당장 달려와서 IRS직원들을 화형에 처해야 한다고 침을 튀며 분노를 표할 것이었다.

하나같이 고연봉을 받는 직원들이다보니 국세청에 대한 원한이 깊었다.

홀딩스에 소속된 직원의 숫자는 열 네 명이다. 임원급으로 분류되는 네 명을 제외하면 열 명 가운데 대부분 대학을 졸업하고 월가에 발을 디딘지 몇 년 되지 않는 피 끓는 신출내기가 8명 이었다.

“헨리 녀석 신이 났군.”

낯선 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헨리를 보며 다니엘이 투덜거렸다. 손에 든 와인 잔을 기울이며 에른스트가 말했다.

“흠, 동양인인걸 보면 조안과 함께 온 아가씨들 인가보군.”

대만출신인 조안은 TBS 지분인수 때에 에른스트와 함께 일을 했었다.

직장 동료들만 아니라 아는 지인들도 함께 초대를 해서인지 여직원들이 데려온 젊은 아가씨들도 많이 자리를 차지했다.

직장동료들이라고 해봐야 매일 지겹게 얼굴을 보는 사이.

파티에서 얼굴을 본다고 해도 새로울 게 없지만 이렇게 밖에서 보니 조안도 새롭게 보였다.

“내버려둬 헨리 녀석 한동안 너무 침울했잖아.”

“너무 뜬금없었지? 나도 허무하긴 하더라. 헨리가 폴하고 친했잖아.”

“폴녀석이 이상한 놈이기는 나쁜 놈은 아니었으니까. 나도 친하지는 않았지만 얼굴을 많이 봤잖아? 그런데 그런 놈이 너무 허무하게 죽으니까 기분이 묘해지더라.”

함께 일하던 동료의 죽음이 쉽사리 받아질 리가 없다. 아직 서른도 되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죽음이란 낯선 단어였었다.

“폴이 담당하던 타이거 펀드는 이제 누가 담당하는 거지?”

“네가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

“제기랄! 그렇지 않아도 난 하는 일이 많단 말이야.”

“엔터테인먼트 쪽이 제일 한가한 것 같은데? 나도 이제 중국펀드에 참여 해야 해서 시간이 없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걸.”

월급은 많이 주지만 그만큼 많이 부려 먹히는 곳이 홀딩스였다. 인원이 적고 하는 일은 다양했다.

“네가 정 힘들다고 하면 사람을 더 뽑던가 하겠지. 요즘 다저스는 승승장구하더라.”

“내가 원해서 지원한 거잖아. 나한테는 엔터테인먼트 쪽이 적성에 맞는 것 같아.”

“넌 원래 대학 때도 야구광이었으니까.”

다니엘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다니엘을 에른스트가 놀렸다.

“네가 응원하는 팀은 다르지만 말이야.”

“뉴욕사람이면 당연히 양키스지! 너처럼 다른 팀을 응원하는 건 이단이야.”

“아쉽게도 난 뉴욕사람이 아니라 미네소타가 고향이라서 말이야.”

“젠장 보스가 양키스를 샀어야 했는데 그럼 일을 하면서 훨씬 즐거웠을텐데.”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고 그거 들었나?”

에른스트가 목소리를 작게 낮추며 주변을 살폈다. 다들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둘을 주목하는 사람이 없었다.

“리만의 레온회장이 어제 펄펄 뛰었잖아. 자기만 쏙빼고 다들 중국에 투자한다고 말이야.”

“그래서 한참 사무실이 시끄러웠구나? 오전에 일이 있어서 나갔다 들어오니 사무실이 어수선 하더라.”

“그래 난리도 아니었다. 리만 레온회장이 와서 보스한테 따지는데 무슨 난리가 난줄 알았다니까.”

“거기는 왜 그렸데? 리만이 투자할 자금이 있나? 중국에 투자하는 자금은 장기투자잖아.”

“보스가 리만이 가지고 있는 채권들 전부 정리하라고 시켰잖아.”

“정말? 난 왜 몰랐지?”

“이건 타이거 펀드하고 리만에만 지시한 거니까. 다저스 담당인 너는 까맣게 모를 수밖에.”

“무슨 일이 생기는 건가?”

“그래서 리만에 자금은 남아 도는데 이런 좋은 투자를 자기만 쏙 빼고 자기들끼리만 한다고 리만 레온회장이 펄펄 뛴 거지.”

“리만은 조금 그렇지 않아? 우리야 그냥 명목상 대주주일 뿐이잖아. 버크셔하고 소프트뱅크하고 같은 지분은 가지고 있는데 왜 우리한테 와서 따지는 거야?”

다니엘의 반응에 에른스트가 혀를 끌끌 찼다.

“넌 참 멀었다. 보스가 실질적으로 리만의 주인이잖아. 버크셔하고 소프트뱅크의 주식지분은 그냥 페이크란 말이지.”

“진짜? 그런데 왜 난 몰랐지?”

“이건 회사내부에서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거든. 이젠 대부분 다 알지만.”

그전까지는 회사내부는 업무파트별로 블라인드처리가 되어서 정보를 교환하지 않았다. 직원들간에도 철저하게 비밀주의를 유지하다보니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까맣게 모를 수밖에 없다.

“그거 나한테 말하는거 내부보안 위반아니야? 보안팀이 지랄할텐데?”

“바보야 며칠전부터 보안이 풀렸어 너무 막아놓으니까 업무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적당히 내부적으론 돌아가는 상황을 알리자는 의견을 보스가 받아들인거지.”

“그래?”

“회사 업무공지 좀 읽어라. 하여간 가지고 있는 채권들을 올해 말까지 전부 정리하라고 해서 리만 채권 팀이 엄청나게 바쁘게 움직였잖아. 가지고 있는 회사채와 국공채 팔아넘기느라.”

다니엘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정도 물량이라면 엄청난 규모라서 시장에 풀렸으면 금방 표시가 날 텐데? 채권시장이 조용하잖아?”

“멍청아, 누가 그걸 시장에 뿌리냐, 블록딜로 넘겼지. 조금 낮은 이자율로 할인해서 넘겼다고 하더라.”

이자율을 할인해서 넘긴다면 안정적인 채권이다 보니 덤벼들 기관이 적지 않다.

“그런데 왜 보스가 산하 투자기관들이 가지고 있는 채권을 전부 정리하라고 지시한 걸까?"

“왜일 것 갔냐? 어떤 경우에 채권금리가 급격하게 오르지?”

“첫 번째 경우는 이자율이 급속하게 오를 경우? 이건 아직 모르는 일인데? 금리를 결정하는 FRB는 큰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으니 열외 두 번째는 시장의 자금이 급속하게 마르는 경우인데 그 정도로 경제가 나빠지면 정부에서 가만 두고 보지 않을 걸. 보스가 예상하는 건 어느 쪽일까?”

“모르겠다. 경제지표는 바닥에서 탈출해서 점차로 활력을 되찾는 모양새인데. 실업률도 낮아졌잖아. 성장률도 좋게 나오고 물가도 많이 오르는 것 같지 않은데 말이야.”

클린턴이 취임 후에 취한 몇 가지 경제정책들은 침체의 늪에 빠졌던 경제에 충격을 주었다. 금리의 지속적인 인하 효과로 경제가 지표상으로 확실하게 살아나고 있었다.

“한 가지 우려라면 인플레이션이지.”

물가 상승률의 수치가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 연준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파티장에서 경제전망을 놓고 설전을 벌이는 이들을 곱게 두고 보는 이는 없다. 침을 튀기며 경제와 투자이야기를 나누던 에른스트와 다니엘은 활짝 웃으며 헨리와 함께 다가오는 아리따운 여인들을 보곤 입을 다물었다.

폴의 갑작스런 죽음이후로 사무실의 분위기도 조금 달라졌다. 결혼에 시큰둥하던 직원들도 결혼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건 둘도 예외가 아니었다.

***

규태에게 리만은 계륵이었다. 화끈하게 복수를 하듯이 경영권을 인수해버린 것은 통쾌한 일이지만 완전하게 손에 넣기에는 껄끄러운 눈길이 많았다.

그래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레온의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불만이었는지 어제 갑자기 들이닥친 레온이 자신들을 홀대한다며 불같이 화를 내는 모습에 조금은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했다.

얌전한 사람이 화를 내면 더 무서운 법이다.

간신히 진정시키고 화를 풀어주려 애를 써야했다. 그리고 머릿속에 담아 두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갔다.

“그럼 가지고 있는 주식도 전부 팝니까?”

“예, 채권 팀의 작업이 마무리 되었으니 주식도 포트폴리오를 지속적으로 줄여나가야지요.”

“앞으로 위기상황이 닥쳐온다는 전망입니까?”

“내 예상으론 아마 내년 초에 일시적인 경제충격이 있을 겁니다.”

“심각할까요?”

이야기를 나누는 레온의 이마가 자연스럽게 찌푸려졌다. 그렇지 않아도 80년대 내내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제 막 경기가 살아나나 싶었는데 또다시 침체라니!

“길지는 않을 겁니다. 경제 팀의 손발이 맞지 않아서 나오는 현상일 테니까요.”

새롭게 정부가 들어서면서 경제팀도 얼굴이 전부 바뀌었다. 여전히 미국경제를 괴롭히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 스태그플레이션의 해결방안이 나오지 않고 있지만 이건 경제가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미국정부와 FRB는 점차적으로 금리를 인하해서 투자의욕을 높이는 정책을 사용해 왔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만성화된 저성장이 금리인하 하나로 해결되기는 어렵다.

“인플레이션을 염려하시는 거로군요.”

규태가 슬그머니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떤 트리거를 건드리면 연준이 화들짝 놀라서 반응할까요?”

“당연히 인플레이션의 위협이죠. 연준은 인플레이션 방어를 제일목표로 삼습니다.”

“레온의 말대로 연말에 나오는 경제 지표가 3%가 넘는 물가인상으로 지표가 인플레이션을 가리키면 연준은 당연히 금리를 인상할겁니다. 그럼 어떻게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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