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97화 (97/220)

#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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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투자

워싱턴의 여름은 무더웠다. 멀리 보이는 워싱턴 기념탑이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도 푸른 하늘아래 싱그러운 모습을 드러냈다.

워싱턴기념탑, 링컨 기념탑 주변은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언제나 분주했다.

오랜만에 보는 리처드는 평소처럼 말끔한 모습을 한 채 약속장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주변에는 언제나처럼 관광객들이 뜨거운 태양 볕을 피해 차 한 잔을 놓고 워싱턴의 풍광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이런 곳에서 만나는 건 또 처음이네요. 좋은 사무실 내버려두고 왜 여기로 약속을 정한 거예요?”

“난 이런 곳이 좋아. 여행객들 속에 묻혀있으면 나도 이곳에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단 말이야. 바쁜 워싱턴 생활에서 내 유일한 취미라네.”

둘은 커피를 시켜놓고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을 했다.

“어떤가? 이렇게 앉아 있으니 영화 속의 스파이처럼 보이지 않나?”

“리처드는 모르겠지만 난 확실히 아니네요. 워싱턴을 배경으로 동양인 스파이가 나오는 영화는 본적이 없으니까요.”

“그런가? 하여간 중국에 투자를 하기로 했다면서? ‘

“리처드도 보고를 듣지 않았나요?”

워싱턴을 자리를 옮겼지만 리처드는 아직도 타이거 펀드의 대주주중 한 사람이었다.

“그래 의아하긴 했지만 나쁘지는 않다고 판단했지. 천안문사태이후로 외국투자가 주춤해지면서 보수 세력들이 드세게 반발한다고 들었거든. 그것 때문에 전임 대통령도 고민을 조금 한 모양이야.”

어찌나 개혁개방을 무위로 돌리려는 힘이 거셌는지 작년에 등소평이 죽음을 앞둔 노구를 이끌고 남순강화라는 걸 해 개혁개방을 지켜냈다.

“일시적인 반발이고 길게 가지는 않을 겁니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부분은 기가 막히게 찾아내거든요.”

“훗 자네 말처럼 그렇게 흘러가면 좋겠군. 백악관은 일본과 독일을 처리하는 것에만 신경 쓰기도 버거워.”

“중국의 일은 뒷전이란 말이로군요. ‘

“행정부나 의회나 마찬가지야. 의회는 양국에서 쏟아지는 로비자금에 파묻혀 좋아 죽으려고 한다지 아마.”

“상무부 쪽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슈퍼 301조라는 잘 드는 칼을 쥐어줄 예정이니 상대방도 겁을 먹고 납작 엎드리지 않겠어요.”

“그래도 커다란 효과는 기대하고 있지 않아. 제조업의 경쟁력이 떨어졌는데 그런 방식으로 협박한다고 수출이 크게 늘어날 것 같지도 않고.”

“철강과 자동차 회사들은 크게 기대를 하고 있을걸요.”

“일단은 해보기는 해봐야지. 몰락해가는 제조업에 목을 매는 직원들의 숫자가 한둘이 아니니까.”

미국경제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디트로이트가 슬럼화 되어가고 활기차게 돌아가던 기계들도 하나둘 멈추어 섰다.

미국 제조업체의 경쟁력을 되살리면서 수출을 늘리는 것이 행정부의 당면과제였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초법적인 슈퍼 301조였다.

슈퍼 301조는 88년에 시작되었다가 애초에 2년을 시한으로 만들어진 법이라 90년에 정지되었다.

클린턴 행정부는 이 슈퍼 301조의 부활을 공언하고 나섰다.

기존의 301조를 대신해서 한시적으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쥐어주는 만큼 협상 상대방에겐 최악의 대응 법이었다.

수틀리면 미국으로의 수출자체를 막아 버리겠다는 소리, 세계최고 수입시장인 미국 수출의 금지는 자국 산업의 붕괴를 초래하는 중대사였다. 수출에 기대는 일본과 독일이 벌벌 떠는 것을 당연지사.

이와 동시에 진행되는 다자간 협정인 우루과이 라운드가 논의되고 있다. 미국정부의 입장은 우루과이 라운드를 진행하되 개별 국가와의 무역협상도 동시에 진행하는 셈이다.

패권국가인 미국만이 가능한 협상방식이었다.

한쪽에서는 공정한 국제무역을 다루는 우루과이 라운드를 진행하면서도 다른 한쪽에서는 무역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협상 아닌 협박을 해댔다.

“하여간 백악관의 최고 관심사는 일본과 독일이야. 중국은 안중에도 없네.”

“중국을 우습게보고 그렇게 태만하게 굴다가 큰코다칠걸요.”

미국과 더불어 G2라 불리는 중국의 경제성장을 잘 아는 규태의 말에 리처드가 코웃음을 쳤다.

“중국이 제발 지금보다 커져서 소련을 견제해 줬으면 좋겠어.”

리처드의 생각이 일반적인 워싱턴의 정서였다. 그들의 머릿속엔 다 망해가던 중국, 문화혁명으로 4,000만이 넘게 기아에 죽어가던 중국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냉전이 끝났어도 여전히 소련은 미국의 제일 주적으로 남은 상대였다. 소련과 넓은 영토를 마주하고 있는 중국의 힘이 커진다면 소련의 부담도 커진다는 의미다.

“당장은 그렇겠죠, 하지만 소련이 붕괴되어 힘이 빠지는 게 눈에 보이는데 그다음은 누가 될까요? 저는 중국이라고 보는데요.”

“반백년은 이른 이야기야. 이대로 중국의 힘을 키워주다가 너무 커진다 싶으면 잘라내야지.”

“말처럼 쉬운 게 아닐걸요.”

“그러면 어떤가? 이미 내가 죽고 난 다음일 텐데. 최소한 십년이내는 아닐 거 아닌가.”

“그건 그렇죠.”

규태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이 세계무대에서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건 2010년이 넘어서였다.

“하여간 자네가 한 중국투자는 잘 한 거라고 보네. 미국정부입장에서도 크게 도움이 되는 투자였어. 그런데 왜 기업에는 투자를 하지 않고 부동산개발쪽으로만 집중한 건가? 자네라면 성장전망이 있는 기업 몇 개쯤은 골라내 투자할 것 같았는데?”

“하하, 그게 중국정부를 믿을 수가 없어서요. 기업에 투자하면 크게 성장하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변수가 많죠.”

규태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리처드가 이마를 찌푸렸다.

“그 변수를 자네가 왜 걱정하나?”

“예?”

“그 변수를 왜 자네가 걱정하나고. 그건 어디까지나 정부의 몫이네. 미국시민이 자본을 투자하고 그 자본을 지켜주는 일을 하는 게 정부의 일이란 말이네.”

“그런가요?”

“그리고 자네가 투자한 돈을 어느 놈이 감히 떼먹겠나. 100억 투자금을 떼먹으면 천억으로 갚아주면 되는 것 아닌가. 자네는 자네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자주 혼동하더군.”

생각하지도 못한 통렬한 질타였다. 거듭되는 리처드의 질타는 규태의 뼈를 때렸다.

“어느 때는 자네나이의 젊은이들처럼 공격적이다가도 어느 때는 이번 중국투자처럼 죽음을 앞둔 눈앞에 둔 노인네처럼 겁에 질려서 투자를 하더군. 월가에는 월가의 규칙이란 게 있네, 안에서야 서로 다투지만 밖에서 규칙을 어기는 자가 나오면 가차 없이 응징하지. 너무 소극적이지 않나? 이젠 자기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정도는 스스로 알아야지. 중국정부 따위가 두렵다고 투자를 조심해! 자넨 월가의 투자자야. 월가의 투자자는 이익이 있는 곳이라면 지옥이라도 쫒아가는 사람들이야.”

점차 언성을 높이는 리처드를 규태가 막았다.

“잠시 만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 알겠는데 여기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영업장이잖아요. 목소리를 조금 낮추시죠. “

“목소리가 컸나?”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의 시선이 둘을 향해 있었다. 아무리 야외라고는 해도 언성을 높이는 건 조금 그랬다.

“싸우는 것처럼 보일 겁니다. 아니 내가 리처드한테 혼나는 것으로 보이려나?”

“할 수 없군. 아예 야외로 나가지. ‘

워싱턴 기념탑 앞의 벤치에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았다. 조금 진정이 됐는지 리처드도 평소와 같이 조용한 목소리로 돌아왔다.

“아까보단 훨씬 낫군.”

“누가 뭐하고 하라고 하던가요. 오늘 리처드가 하는 행동은 평소와 너무 달라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굳이 리처드가 자신을 워싱턴에 불러서 이런 소리를 할 이유가 없었다.

규태의 말에 리처드가 멋쩍게 웃었다.

“눈치 챘나?”

“리처드가 저한테 화를 내면서까지 할 말은 아니잖아요. 평소의 리처드라면 조용하게 내게 충고를 하겠죠. 그게 리처드다워요. 그러고 보면 리처드가 갑자기 날 워싱턴으로 부른 것도 그래요. 누가 부탁을 한 거죠? 아니 내 주변사람들이겠군요.”

“손사장하고 오사장이 내게 부탁하더군, 자네가 중국투자에 너무 소극적이지 않냐고 말이야. 너무 자신의 위치를 모른다고 나에게 따끔하게 충고를 해달라고 하더군.”

규태의 주변에서는 이상하게 여길 만 했다. 복마전 같은 월가에서도 당당하게 상대를 들이박던 자신이 유독 중국투자에만 유난스럽게 소극적이니 말이다.

“이건 내게는 트라우마 같은······. 아니 생각해보니까 내가 너무 조심스러웠네요.”

예전 자신이 중국에 투자할 때와는 여러 가지 상황이 달랐다. 그때는 미국의 많은 부자들의 하나였고 미국에 제대로 뿌리내리지도 못했을 때였지만 지금은 다른 입장이다.

중국투자 실패가 자신의 40이 넘어서 시작된 성공가도에서 유일한 실패였기에 더욱 뼈저리게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중국이 나중에 미국에 버금가는 경제대국의 자리가지 올라간대도 미국의 상대는 아니다. 미국은 중국을 맞상대가 될 만한 정도로 절대 키워주지 않았다.

그리고 2008년의 부동산 버블붕괴까지 기다리면 규태는 월가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규태가 자신의 충고를 순순히 받아들이자 때를 만나 한참동안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던 리처드가 마지막에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말이야 이젠 자네도 너무 정치와 거리를 두는 것도 곤란해. 내 다음사람을 구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는 않을 거야.”

리처드의 나이가 문제였다. 운이 좋게도 리처드는 규태에게 무조건적으로 지지를 보여주었다. 외부의 압박이 있으면 나서서 막아주었었다. 그가 은퇴를 하게 되면 규태를 대신해서 나서줄 사람이 필요했다

워싱턴과 뉴욕은 기본적으로 낯선 동양인 이방인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도시다.

리처드와의 만남에서 나눈 이야기들로 인해 생각할게 많아졌다. 복잡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그를 기다리고 있는 손님이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마사요시였다.

“이거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실례가 아닐까 했습니다.”

“워싱턴에서 어쩐 일이십니까?”

“일이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실제로는 규태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비행기를 함께 타고 가는 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갖는다는 소리였다. 개인용 비행기다보니 주변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없었다.

“서로 할 말이 많은 것 같네요.”

규태도 손정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소프트뱅크는 일본증시 상장에 성공했다. 증시가 침체되어 있음에도 상장후 시가총액이 3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전 역사에 상장후 시장총액이 100억 달러 언저리였음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성공한 셈이다. 가장 큰 차이는 리만에 대한 투자성공이었다.

소프트뱅크가 10%의 주식을 보유해 월가의 대형투자은행 리만의 대주주가 된 일은 일본에서도 크게 다루어졌다.

그만큼 소프트뱅크에 대한 주식수요도 늘어서 벌써부터 일본 벤처업게에선 신처럼 받들어졌다.

상장후 회사의 여유자금도 늘었다.

비행기가 날아올라 궤도에 오르자 마사요시는 거침없이 불만을 토로했다. 소프트 뱅크도 넘쳐나는 자금으로 투자처를 구하고 있었다.

가장 큰 투자대상은 역시 실리콘 벨리였지만 중국에 대한 투자도 준비 중이었다.

“중국투자를 하면서 왜 날 뺀 겁니까?”

“상해에 대한 투자는 전적으로 타이거 펀드의 자금으로 만 투자를 한 겁니다. ‘

“그러니까 회사명칭도 상해 인터내셔널 컨소시움 아닙니까? 설마 날 빼놓고 컨소시움을 구성한 겁니까?”

“다 아시는 분이 왜 이러십니까? 말이 컨소시움이지 실제로는 타이거 펀드의 자금만 들어간 투잡니다.”

“아! 그건 모르겠고. 상해투자에 우리투자자금도 받아주셔야 합니다.”

생각보다 마사요시는 막무가내였다.

“차라리 따로 펀드를 구성하는 건 어떻습니까? 이미 투자한 자금에 추가로 투자를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요. 상해시 당국도 마사요시의 투자를 반길 겁니다.”

“아니 이곳에 꼭 투자를 해야겠습니다. 오죽하면 내가 이 보고서를 보고서는 당장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겠습니까?”

마사요시가 내민 것은 상해사무소가 투자를 하기 전에 만든 보고서였다. 이게 어떻게 마사요시의 손에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마사요시의 반응은 예상보다 격렬했다.

“이 보고서를 보는 순간 돈 냄새가 얼마나 나는지 머리가 아플 정도였습니다. 이건 성공합니다. 그러니 여기에 투자하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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