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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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투자
천안문 사태의 여파로 중국정부가 해외에 개발채권을 팔려고 했지만 수익에 의문을 가진 투자자들이 매수에 응하지 않아서 원하는 250억 위안에 달하는 투자금액을 구하는데 무척 애를 먹었다.
1991년부터 95년까지 황푸 강 해저터널과 양푸다리를 놓는 등의 사회간접자본 투자금액이 그 정도가 들었다. 이후로 2000년까지 투자한 금액이 12조원이 넘었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해가 76년, 80년대 들어 개혁개방을 외치며 잠깐 반등하는 것처럼 보였던 중국경제는 천안문사태이후로 나락에 빠져들었다. 해외투자자가 주춤해진 것이다.
그걸 돌파해보고자 세계최빈국수준의 중국경제사정에서 엄청난 무리를 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부동산밖에는 답이 없네.”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려도 채권에 투자하는 건 하수였다. 기업에 투자하는 건 바보짓이고 국제컨소시엄을 만들어서 부동산에 투자하는 게 최고였다.
상해라! 상해!
규태는 이마를 툭툭 두드렸다.
먹기에는 꺼림칙하고 먹지 않자니 눈앞에 보이는 수익을 그냥 놓쳐버리는 꼴이다. 중국에 투자하려면 고위관리들과 잘 알아야 한다.
혼자 고심하던 규태가 전화기를 들었다. 모르는 건 전문가에게 묻는 게 최고였다.
규태가 전화를 건 사람은 최고의 중국전문가라 할 수 있는 제임스 릴리였다. 얼마 전까지 중국대사를 지낸 중국통이자 그전에는 한국대사를 지낸 이였다.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이름까지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중일전쟁이 격화되면서 미국으로 돌아왔지만 어린 시절을 보내서인지 중국어도 능통한 진짜 전문가였다.
전화로 상담을 요청했더니 냉큼 달려왔다.
“그래 잘 지냈나?”
“그렇지요 뭐,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이제 자리에서 물러나 은퇴한 늙은이가 별수 있겠나. 그냥 연구소에 이름만 올려놓고 무료하게 소일하는 중이네. 그리고 아직 자네한테 섭섭한 게 다 안 풀렸어.”
“아이고! 내가 클린턴한테 대선자금을 지원한건 리처드 때문이라니까요. 화를 내려면 리처드한테 내야죠.”
부시캠프에 참가했다가 물을 먹은 앙금이 남아있는지 잔뜩 투정을 부리는 제임스를 규태가 살살 달랬다.
“제임스 같은 중국 전문가가 그렇게 시간만 죽이면 되나요. 은퇴를 하기에도 아직 젊잖아요. 어때요 나랑 같이 일 안 해볼래요?”
호들갑스런 규태의 반응에 제임스가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어디 내가 갈만한 좋은 자리가 있나?”
“내가 중국에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투자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규태의 말에 제임스가 이마를 찌푸렸다.
“중국에? 썩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군. 거기 공산당 애들은 칼 안든 강도야. 자금을 들여올 땐 굽실거리지만 돈이 들어오면 단번에 안면 몰수한다고 내가 그런 사례를 하나 둘 본 줄 아나?”
역시 전직CIA에 공화당 출신답게 제임스는 거침없이 중국정부를 비판했다.
“기업에 투자하는 것 같은 장기투자는 말고요. 부동산에 투자하고 단기에 치고 빠질 생각이에요.”
“부동산이라? 그럼 조금 낫구만. 그래 투자해서 수익이 나면 즉시로 발을 빼야지.”
“지방에 아는 사람 있나요? 상해면 더 좋고요.”
“상해라? 잠깐 기억을 좀 더듬어보고. 강택민 후임으로 상해시 당서기로 임명된 주룽지가 상해시장을 하고 지금 국무원 부총리로 있는데 아주 잘나간다고 들엇네. 중국관리들중에선 그나마 말이 통하는 사람이지.”
주룽지는 나중에 국무원총리를 하고 승승장구하다 은퇴하는 인물이었다. 그나마 중국관리들중에선 청렴하다는 소리도 들렸고.
“그 사람을 어떻게 알아요?”
“상해시장일 때 몇 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봤지. 상해에 일이 있어서 일도 같이 해봤고. 개인적으로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이라 사적으로 만남도 가졌는데 나중에 내가 중국을 떠날 때 개인적으로 인사를 하기도 했으니까.”
그 정도 사람을 안다면 중국에 투자를 해도 골치 아픈 일을 당하지는 않을 거 같아 규태의 마음이 슬그머니 움직였다.
“그래도 제임스가 미국대사까지 하고 직접 나서서 일을 진행하기는 부담스럽잖아요. 누구 실무를 할 만한 사람이 없을까요?”
제임스가 소파에 깊숙하게 등을 기대고 턱을 만졌다.
“추천할만한 사람이 있기는 한데 의향이 어떤지 한번 알아 보겠네.”
“그쪽 출신인가요?”
“그렇지 뭐. 내가 데리고 있던 부하인데 지금은 기업에 들어갔거든. 그곳에서 잘나간다면 내가 다시 데려오기 그래서 말이야. 그 사람이 안된다면 다른 사람을 찾아보겠지만 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이니까 사정을 알아보도록 하지.”
규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할 사람은 제임스가 알아서 구해오시고요. 그럼 같이 일하는 겁니다.”
“흐음, 그런데 얼마나 투자할 생각인가?”
“일단 100억 달러정도 생각하는데요. 조금 줄어들 수도 늘어날 수도 있고요. 주식시장이 조금 불안정해서 채권 투자하는 액수를 줄이고 중국에 투자를 할 생각이거든요.”
미증시의 불황으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채권에 투자하는 타이거 펀드의 여유자금이 700 억이다.
“그 정도면 한번 부딪혀 볼만 하구만. 금액이 적으면 그놈들이 아주 생무시를 하거든.”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까 제임스도 중국사람같네요.”
“내 고향이 청도 아닌가. 반쯤은 나도 중국인라고 봐야지. 이젠 빌어먹을 고향이지만.”
“천안문의 앙금이 많이 남았나요?”
제임스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 일은 진짜 가슴 아픈 일이었네. 내가 아는 젊은이들도 많이 죽었고. 똑똑하고 올바른 청년들이었는데. 천안문사태이후로 생사조차 알지 못하게 되어 버렸지.”
실종이란 소리는 죽었다는 소리와 같은 말이다. 제임스는 천안문 사태가 일어나자 강하게 중국정부를 비판해서 미중관계가 거친 파열음을 내자 대사 자리에서 밀려났다.
그전까지는 공화당 출신의 대사였지만 중국정부의 고위관료들과도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었다.
친분이 있는 젊은이들도 많았는데 천안문 사태로 꽤 많이 희생을 당했다.
씁쓸해하는 제임스를 달래며 규태가 입을 열었다.
“대우는 섭섭지 않게 해줄 테니 제임스가 최고의 전문가를 추천해 주세요.”
제임스가 소개한 사람은 로드릭 맥컴이었다. 제임스가 81년에 대만대사로 가기 전 근무했던 직장에서부터 시작된 20년을 함께한 사이였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모습은 월스트리트에서 방금 빠져나온 사람처럼 훤칠했다. 다만 이마가······.
규태가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에 로드릭의 이마를 보았다.
“대사님께서 소개를 해주더군요. 한번 가보라고 해서 왔습니다.”
“요즘 회사를 다닌다고 들었습니다만?”
“중국에서 나온 후에 보잉에 들어갔는데 죽을 맛입니다. 경영진이 중국시장에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만 아시다시피 지금 중국이 엉망이지 않습니까.”
“중국시장이 제대로 커지려면 한참 남았죠. 시간이 지나면 중국의 항공시장도 커질 겁니다만.”
로드릭이 규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시간이 문제죠. 당장 실적이 나오지 않으니 참 힘듭니다.”
중국전문가라고 해서 보잉에서 영입한 모양인데 지금 보잉의 사정이 여의치가 않다보니 눈칫밥 꽤나 먹는 모양이었다.
보잉이 야심차게 경쟁사인 더글러스사를 인수 합병한 것 까지는 좋았지만 미국경기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다보니 아직까지 경영실적이 좋지 않았다.
“계획으로는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중국에 투자하는 겁니다. 중국기업에 대한 투자는 생각하지 않고 부동산에 주로 투자할 생각입니다.”
“어휴, 잘 생각하셨습니다. 기업투자를 해봐야 말썽이 얼마나 많은지. 중국이 기회의 땅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진흙탕입니다. 잘못하면 빠져나오지 못하고 고생고생 해야 합니다.”
로드릭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중국에 있으면서 기업의 투자 관련으로 한두 번 골치 아픈 일을 겪은 게 아니란 얼굴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낫지요, 앞으로는 중국에 투자해서 실적을 내기가 더욱 까다로워 지겠죠.”
“그럴 겁니다. 그 사람들 아주 교묘하게 중국에 투자한 기업들 등쳐먹을 궁리만 하거든요. 장기투자를 생각하면 발목 잡혀서 나오지 못할 위험이 너무 큽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투자를 하지 않습니까?”
“워낙 시장이 큰데다가 자신이 있어서 그런 겁니다. 법률적으로는 아주 완벽하게 투자자산을 보호해주는 것처럼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게 소용이 없어요. 작정하고 발목잡을려고 들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중국투자는 51:49의 원칙이 기본이었다. 35%의 지분이상을 가지고 있으면 중국지정은행을 이용해서 자금을 송금에야 했다. 이 경우 온갖 구실을 붙여서 송금을 해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규태도 2010년에 중국에 투자했다가 아주 골머리를 앓아야 했었다. 중국주식시장에 투자해서 이익을 보았지만 철수하면서 중국정부와 마찰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투자를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중국투자를 담당할 마음이 있으십니까?”
“걱정 마십시오. 중국에선 관시가 제일 아닙니까. 제가 그쪽방면으론 아주 훤합니다.”
로드릭은 자신이 넘쳐흘렀다.
“중국정부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제가 친분이 있는 사람 중에 황줘라고 지금 상해시 당서기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중국에서 근무할 때는 북경 대사관에 있지 않고 밖에서 놀았습니다. 그때 상해에서 자주 어울리던 사람입니다.”
“아니! 대사관에 근무하는걸 알고도 중국관리가 어울려요?”
“그게 그때는 제가 대사관 직원이 아니라 위장회사에 다니는 신분이었습니다. 게다가 중국 관리들도 불안한 게 많은 사람들이다 보니 어울리기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 대부분이 문화혁명때 시골로 하방되어 온갖 고생을 다한 사람들이 아닙니까? 주변 눈치를 조금 보긴 했지만 저하고 어울리는 걸 크게 망설이지 않더군요.”
로드릭의 설명에 규태도 납득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시황제라 불리는 이조차 시골로 쫓겨나 7년 동안 토굴 생활을 했다고 하지 않던가.
“하긴 그 사람들도 내심 불안하긴 하겠지요.”
“아마 제 진짜 신분을 알면서도 어울렸을 겁니다.”
상해방은 갑작스럽게 후야오방, 조자양등의 당을 장악하던 이들이 밀려나면서 등소평에 의해 벼락출세한 자들이다.
89년 천안문 사태 이전까지 권력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했던 이들이 대부분이다.
얼마 지나지 않은 문화혁명의 악몽을 잊지 않고 있던 이들이 많았기에 정체가 수상쩍은 미국인과도 잘 어울렸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도피처였다.
“황줘라면 나쁘지 않은 상대이긴 한 것 같습니다.”
황줘는 국무원 부총리를 지내다가 병으로 죽지만 죽기 전까지는 상해방의 실세중의 실세였다.
더군다나 규태가 노리는 상해 푸동지역의 개발 총책임자였다. 그런 사람과 안면이 있다면 투자하기에 나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