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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캐스트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회사경영에 큰 힘이 될 겁니다.”
“단기적으로 인수합병은 큰돈이 들고 수익도 창출하지 못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큰 수익을 가져다주는 경영방식입니다. 누가 뭐래도 난 브라이언의 방식을 지지합니다. 경영권이 불안하게 느껴진다면 서면으로 지금 말한 내용을 작성해 넘겨주도록 하지요.”
대화가 거듭될수록 랄프와 브라이언은 마음을 놓았다.
“솔직히 말해서 대중들에 회사의 악명이 높아서 걱정을 했습니다.”
“인수자금을 마련하려면 고객을 쥐어짜야지요. 싫으면 다른 회사 케이블을 신청하라고 하세요.”
어설프게 고객만족도를 올리라는 둥 간섭을 하면 어쩔까 싶었던 랄프와 브라이언이 대뜸 규태의 말에 동조했다.
“맞는 소리요. 회사가 싫으면 다른 회사에 가입하면 그뿐이지.”
“회사가 크려면 고객들이 협조가 필수라고 할 수 있죠. “
그게 자발적이 아니란 말은 쏙 빼놓았지만 규태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규태는 TV를 보지도 않는 사람이다. 케이블 TV를 시청하지 않으니 컴캐스트가 무슨 짓을 하던지 관심이 없었다.
오선한은 규태와 다른지 할 말이 많은 눈치였지만 꾹 눌러 참는 모습이었다.
회의실의 분위기가 나아지자 규태가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회사에서 인수하려고 준비하는 회사가 있습니까?”
규태의 질문에 브라이언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내부적으로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하고 잇는데.”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회사에서 다른 기업의 인수를 준비하고 잇다는 느낌을 받아서요. 컴캐스트의 자금흐름이 경직되어있어요. 인수를 준비하고 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죠.”
규태의 말에 브라이언이 진실을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내년에 회사하나를 인수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인수하려는 회사의 덩치가 커서 10억 달러 정도가 드는 큰 계약입니다.”
그 말에 규태가 가만히 턱을 긁었다. 케이블 업체의 인수합병규모를 생각하면 10억 달러 정도가 들어가는 계약이라면 브라이언의 호들갑처럼 큰 규모는 아니고 중간정도의 크기다.
“인수하려는 곳이 어딥니까?”
“매클레인 헌터란 회사의 미국지사입니다. 인수하게 되면 컴캐스트 케이블 가입자 수가 350만으로 늘어납니다. 단숨에 업계 3위로 올라서는 거죠.”
브라이언의 인수합병이 계속 성공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건은 큰 성공이 기다리고 있다. 규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한다면 컴캐스트의 기업가치가 크게 오르겠군요. 좋은 결과를 기다리겠습니다. 자금은 충분합니까?”
처음 걱정과는 다르게 경영권을 보장받고 인수에 대한 대주주의 허락까지 받았으니 브라이언에게 거칠게 없었다.
“예, 충분합니다. 미리 충분한 인수자금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자본이 부족하면 요청하십시오. 검토한 후에 타당하다고 여겨지면 지원하겠습니다.”
규태같이 커다란 부자가 돕겠다고 말하니 브라이언도 저절로 흥이 낫다.
처음에는 껄끄럽게 시작했던 회의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부드럽게 변했다.
“앞으로 오이사가 이사회에 참석해서 제 의사를 전할 겁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이사회에 이름을 올리겠습니다.”
까다로운 이야기가 끝나자 회의 주제는 작년에 새롭게 만들어진 로컬방송국으로 옮겨갔다.
“LA 지역에서 LEDS의 가입자숫자가 많이 늘었습니다.”
LEDS는 여러 번 이름을 바꾼 다저스의 로칼 중계권을 가진 케이블 방송국이다. 올 시즌 우승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가입자 수가 대폭 증가했다.
“다행입니다. 첫해는 적자가 상당했거든요.”
매년 2,000만 달러가 넘는 중계료를 지불하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시작한 로컬방송국은 작년에 1,000만 달러 가까운 적자를 보았다.
규태야 예상했던 적자지만 주변사람들은 아닌 모양인지 규태가 시도한 사업 중에 첫 번째 실패가 될 거라고 수근 거렷다. 하지만 올스타전이 끝나고 후반기 다저스의 성적이 좋아지자 가입자 숫자가 급증하면서 이런 뒷소리도 쑥 들어갔다.
올해는 그동안의 적자를 만회하고 흑자로 전환될 전망이다. LA지역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NHL(프로하키)팀인 LA 킹스와 중계권 계약을 체결해서 가입자 수를 늘릴 계획이었다.
브라이언은 컴캐스트의 케이블방송 채널에 LEDS를 넣고 싶어 했지만 LEDS의 책임자와 의견을 조율해야 하니 쉽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다.
“제안을 보내주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생각보다 LEDS에 대한 기대가 큰 브라이언이었다.
험악하게 시작되었던 회의는 화기애애하게 마무리 되었다.
컴캐스트의 로버츠부자가 돌아간 다음에 규태는 머리를 흔들었다.
“잘 끝나기는 했지만 이럴 때는 정말 골치가 아프네요.”
“대규모 주식매입을 통해 대주주가 되었으니 기존 경영진이 긴장하는 건 당연합니다. 이렇게 확인을 받고 싶어 할 겁니다.”
“어쩔 수 없지요. 다툼이 일어나더라도 이익을 볼 것 같은 주식이 있는데 모르는 척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때에 따라서는 소송도 각오를 하셔야 할 겁니다.”
당연한 소리였다.
“그 정도야 감수를 해야죠.”
양키들은 정말 소송을 좋아했다. 어쩔 때는 말도 안 되는 소송인데도 거침없이 소송을 한다.
그래서인지 어지간한 회사나 부자들은 능력 있는 변호사들을 비싼 가격으로 고용한다.
갈수록 로펌의 숫자가 늘어나면 늘어나지 줄어들지 않는 이유였다.
LEDS 의 책임자는 다저스와도 인연이 깊은 지역 케이블 방송경력자 로렌스 하딩이었다.
터너의 추천을 받아서 임명한 사람이었는데 일처리가 깔끔하고 능력도 있어서 규태도 만족했다.
그가 가져온 안건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런칭하겠다는 보고였다.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겠다는 소리로군요.”
“단순하게 경기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게임에서 활약한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대담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 것 같습니다.”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들은 특별한 게 아니지만 꽤 인기가 높다.
“준비는 다 끝났나요?”
“그동안 리포터로 활동하던 엘레나 리조가 사회를 보고 팬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선수들과 대담을 나누는 형식이 될 것 같습니다. 첫 번째로 매덕스선수가 나올 예정입니다.”
엘레나 리조는 라틴계의 미녀로 선수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미녀 리포터였다.
“선수들도 좋아하겠네요.”
“LA 킹스와의 계약은 최종적으로 금액을 놓고 협의를 하고 있습니다. LA 레이커스가 살아나면 좋겠습니다만 힘들겟지요.”
80년대에 매직 존슨과 카림 압둘 자바를 앞세워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LA 레이커스는 90년대 들어 스타 없이 침체기를 보내는 중이었다.
그나마 LA 킹스가 전설적인 하키선수 웨인 그레츠키의 영입으로 의외로 인기를 얻고 있었다.
작년에는 스탠리컵 파이널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솔직하게 규태는 킹스와의 계약을 말리고 싶었다. 마지막 우승문턱에서 주저앉은 킹스의 성적은 계속 내리막을 걷게 된다.
우승전력을 만들기 위해 과욕을 부린 탓에 재정문제가 붉어지면서 킹스는 기약 없는 나락으로 빠져든다.
“킹스와 천만 달러 계약이라면 승인하겠지만 그 이상이면 포기하도록 하세요.”
“킹스 쪽에서는 다저스와 비슷한 금액을 요구하고 있습니다만.”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쉬는 날 없이 이어지는 야구와 달리 하키는 시즌 중에도 2,3일에 한번 경기가 치러진다.
농구의 인기가 야구보다 높아져도 중계권료가 떨어지는 건 경기숫자가 적기 때문이다.
“아마 킹스의 재정문제가 심각해서 고집을 부리는 모양인데 그 금액을 계속 요구한다면 포기하세요.”
어차피 LEDS를 설립한 이유는 다저스의 재정상황을 돕기 위해서다.
자신과 관계없는 킹스의 재정상황이 나빠지던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적극적으로 킹스와 협상에 나섰던 로렌스 입장에서는 김이 빠지는 지시였지만 눈에 빤히 보이는 손해를 감수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건 그렇고 컴캐스트의 구체적인 제안은 받았나요?”
“다저스는 다른 지역에도 많은 팬을 거느린 구단입니다. 제안을 받아들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컴캐스트 말고 다른 케이블회사와도 협상을 해보겠습니다.”
한마디로 다저스는 전국적으로 인기가 있는 구단이라 장사가 된다는 소리였다.
케이블 채널을 묶어서 요금을 다르게 받는데 골수팬들은 큰 돈 쓰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컴캐스트도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올해부터 흑자가 날거란 전망도 있고 회사가 이제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힘을 내주세요.”
사주인 규태에게 칭찬을 듣자 로렌스 하딩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작년의 막대한 적자 탓에 자리를 지키지 못할까 싶어서 혼자 고민을 했던 것이다.
미국도 경기가 좋지 않아서 실업자가 넘쳐났다. 나이 먹어서 자리를 놓치면 비슷한 일자리도 찾기가 쉽지 않다.
사주의 신임을 얻었으니 이제 마음 편하게 밤에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
메이저리그의 시즌 개막이 가까워지면서 규태는 반가운 얼굴과 마주했다.
얼굴에 앳된 기운이 가시지 않은 박천호를 보는 규태는 신기하기만 했다. 한영대에 다니다가 다저스와 메이저리그 계약을 체결하고 미국으로 날아온 박천호였다.
입단식을 가진 후 이루어진 정밀 신체검사에서 허리 쪽에 약간의 문제가 있다는 소견이 나와서 치료 중이었다.
“입단하자마자 부상치료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통에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그래도 구단주님께서 계셔서 마음이 조금은 놓였습니다.”
150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는 계약을 체결했어도 입단하자마자 치른 정밀 신체검사에서 부상부위가 나오고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건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경쟁자들은 스프링 캠프에 참가해서 날아다니는데 혼자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아 신인 선수들은 마음이 조급해지기 마련이다.
규태가 박천호를 보자고 한건 이런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서였다. 사실 규태가 다저스를 인수한 이유의 절반은 박천호의 활약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였다.
“다저스의 의료센터에서 완벽하다는 소견이 나올 때까지는 재활에 전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내가 구단주로 있는 한 박천호선수는 다저스 선발진에 자리를 잡을 충분한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지금 완벽하게 몸 상태를 만들고 천천히 컨디션을 끌어올리도록 하세요.”
성실하기로 소문난 선수답게 재활치료에 열심이란 보고를 들었지만 걱정스런 마음에 규태가 잔소리를 했다. 허리 쪽의 문제를 조기에 발견해서 가벼운 부상이지만 그래도 부상은 부상이다.
고질적인 허리부상이 FA가 되기 전 무리한 투구로 인해 심해지면서 짧은 전성기를 누린 박천호다.
“계약하자마자 드러누워서 면목이 없습니다.”
“아니요, 반대로 생각하면 조기에 발견해서 큰 병이 될 가능성을 막았지 않습니까. 한국을 대표하는 야구선수가 될 인재가 잘못되는 걸 막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