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89화 (89/220)

#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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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캐스트

터너와의 만남에서 돌아온 규태를 기다리는 것은 투자를 하고도 까맣게 잊어버렸던 컴캐스트 경영진의 요청이었다.

“컴캐스트 이사회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귀찮게, 뭐 하러 만나자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불안하지 않겠습니까? 대주주가 어떤 사람인지 얼굴도 비치지 않고 흔한 이사회에 참석하겠다는 의사조차 하질 않았으니 불안했겠지요.”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이 있다.

발행주식의 40%를 사들인 대주주가 생겼다는 소리에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아무런 의사표현도 없으니 스스로 불안해서 먼저 나섰다는 소리였다.

진짜 컴캐스트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는 규태였다.

미래에 주가가 크게 오른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이라 회사경영에 간섭할 마음이 없었다.

거기에 컴캐스트는 악명이 높다. 지나가는 미국인 누구를 붙잡고 물어도 케이블 회사라면 Fuck으로 시작하는 걸쭉한 욕설을 내뱉을 것이었다.

굳이 사람들에게 규태가 대주주라는 걸 밝혀 욕먹을 필요가 없었다.

복잡하게 역외펀드를 이용해서 주식을 매입한 것도 규태가 컴캐스트에 투자했다는 걸 숨기기 위해서였다.

“주식인수 건에 대해 살펴봤는데 저쪽에서는 착각할 수도 있겠는데요?”

“착각이요?”

“법률위반 때문에 여러 명의로 사들였다고 생각한다면 법정다툼을 고려할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사들인 거라. 법정으로 가도 힘들 텐데요?”

이미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서 투자를 했으니 법정으로 가도 크게 불리하지 않았다.

“그쪽에서는 사실을 모르지 않습니까. 약점을 잡았다고 생각하고 덤벼들 수도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까지 고려해서 경호를 강화하겠습니다. 변호사들도 준비를 해놓을까요?”

컴캐스트가 블랙기업이란 소리는 그만큼 경영진도 막장이라는 소리. 경영권이 날아가게 생겼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놈들이었다.

범죄조직처럼 막나가는 짓이야 쉽게 하지 않겠지만 경호를 늘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선한이 비서실장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확실히 규태의 일이 편해졌다.

“다시 한 번 변호사들과 확인을 하세요. 그쪽에서 먼저 시비를 건다면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죠.”

미국에서 TV를 제대로 보려면 케이블 TV를 신청해야 한다. 웃기게도 미국에서 동네에 한 케이블이 들어와 있으면 다른 케이블은 선을 깔지 못하게 되어 있다. 법적으로는 독점이 아니지만 실제로는 독점인 셈이다. 그래서 케이블 회사의 고객만족도는 항상 바닥중의 바닥이다.

컴캐스트는 이런 고객서비스 바닥상태의 케이블 업체 중에서 블랙기업의 끝판왕같은 존재였다.

한마디로 항상 욕을 바가지로 먹는 회사란 소리다.

예를 들자면 모뎀을 빌리는 비용을 따로 청구하고 이런저런 명목으로 말도 없이 갖가지 비용을 청구한다.

매월 100달러에 육박하는 요금을 지불한다고 해도 서비스 품질은 그다지였다. 회선의 상태가 좋지 않아도 배 째라며 뒤로 나자빠지고 케이블이 불통이 되도 나 몰라라 하기 일수였다. 케이블을 설치하면 이런 저런 이유를 붙여 해지도 어렵다.

2017년쯤이 되면 넷플릭스가 강세를 보이며 케이블을 가입하지 않고 해지해버리는 코드커팅이 일어나면서 가입자 수가 줄어들면서 어쩔 수 없이 바뀌게 되지만 그전까지는 악덕기업의 대명사였다.

케이블 회사가 최고의 수익을 거두려면 경쟁자를 줄여야 한다. 인수와 합병으로 최대한 경쟁자를 잡아먹고 지역독점상태로 만들어 수익을 극대화 하는 게 가능해진다.

가입자 숫자가 늘어나면 케이블 회사의 수익률은 올라간다. 독점상태가 되면 케이블 이용요금을 올리고 다시 수익률을 높인다.

단순한 계산 아닌가.

규태가 개인적으로 컴캐스트의 대주주가 되었지만 이런 방식의 경영을 막을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규태가 주식을 인수해 대주주의 자리에 오른 후 기다리다 지친 컴캐스트의 경영진들의 요구로 이루어진 미팅에 오선한과 함께 자리했다.

컴캐스트의 본사는 필라델피아에 있지만 굳이 규태가 그곳까지 가서 만날 이유가 없었다.

목마른 놈이 샘을 판다고 팔로알토의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비어있던 사무실은 타이거벤처와 들어와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약속장소인 회의실에서 마주한 로버츠부자는 고문변호사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처음 대면하는 자리엿지만 분위기는 아주 좋지 못했다.

컴캐스트는 1963년 랄프 로버츠가 작은 케이블 회사를 인수하면서 시작했다. 계속 인수합병으로 덩치를 키워 나스닥에 상장한 상장사였다.

컴캐스트의 사장인 브라이언 로버츠는 실질적인 컴캐스트의 창업자 랄프 로버츠의 넷째아들이다. 90년에 30세의 나이에 부친에게 경영권의 승계를 받아 사장의 자리에 올랐다.

“이렇게 두 분과 자리를 함께 하는 건 처음이로군요. 그래 어쩐 일로 미팅을 요청하셨습니까?”

“도대체가 주식을 인수해서 대주주가 되었으면 어떻게 됐던 접촉이 있어야 할 것 아니요.”

작은 키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랄프 로버츠는 외모처럼 다혈질이었다. 그의 큰 목소리에 규태가 작게 코웃음을 쳤다.

“그걸 꼭해야 합니까?”

규태의 반응에 다시 랄프 로버츠가 화를 버럭 하고 냈다.

“그걸 말이라고!”

“솔직히 회사의 장기전망이 좋아 보여서 투자를 하기는 했지만 경영에 관여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만.”

부친인 랄프가 화를 내며 나서자 뒤에 한발 물러서있던 브라이언이 나섰다.

“저희는 느닷없이 대주주가 생기는 바람에 얼떨떨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습적으로 대주주의 자리를 탈취당한 것 같아서 불쾌합니다. 도대체 왜 경영에 참여할 마음도 없으면서 컴캐스트 주식을 인수한 겁니까?”

“주가가 생각햇던 것보다 싸니까요. 그냥 싸니까 산겁니다.”

대규모 인수합병을 거듭해 덩치를 키우는 통에 컴캐스트의 배당률이 지극히 낮았다. 회사가 배당을 제대로 하지 않으니 나스닥에 상장된 주식이 인기가 없어서 주가도 그리 높지 않았다.

규태가 주식을 매입해 주가를 올리자 기존 대주주들이 고민 없이 주식을 팔아치운 것이다.

그렇게 대규모로 주식을 매입해 주가가 올려도 시가총액이 45억 달러에 불과했다.

주식이 싸서 상장주식의 40%를 사들이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랄프 로버츠에겐 규태의 말이 자신을 놀리는 소리로 들렸다.

“뭐요! 진짜 한번 해보자는 거요? 좋은 말로 할 때 우리 회사주식을 팔고 손을 터는 게 좋을 거야.”

랄프 로버츠가 2차 대전 참전 용사라더니 규태를 노려보는 모습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사람을 죽여본 사람은 풍기는 기운이 다르다.

규태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에 불과하다면 기세를 눌릴 수도 있겠지만 순진해보이기까지 한 겉모습과 다르게 속에는 백년 넘게 진탕에서 구른 요괴가 숨어 있다.

죽일 듯이 노려보는 랄프와 무표정한 얼굴로 마주 바라보는 규태의 기운이 부딪히며 회의실의공기가 싸늘하게 내려앉았다.

“그쪽에선 어떤 방법이라도 있는가보네요?”

“당신 이거 글래스 스티걸법 위반이야. SEC에 재소하겠소. 불법으로 취득한 지분은 의결권이 없는걸 알겠지? 법원제소까지 준비하고 있으니 그렇게 아시오.”

랄프의 당당한 발언에 규태가 쓰게 웃었다. 어쩌면 예상과 한 치도 차이가 없는 소리를 해대는지.

“착각하지 마세요. 이건 타이거펀드의 투자가 아니라 개인적인 투자일 뿐이니까. 로버츠 가문에서 가지고 있는 지분이 컴캐스트 지분이 20%가 조금 안되더군요. 한번 주주총회를 열어서 경영권을 가지고 붙어볼까요. 이런 식으로 나오면 그쪽에도 좋을 게 없을 겁니다.”

상대가 이렇게 떨떠름하게 나오면 규태도 강하게 나가게 된다. 경영권에 관여할 마음이 없지만 상대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말이 달라진다. 수틀리면 주주총회를 열고 경영진을 갈아엎어버릴 수도 있었다.

말문이 막힌 랄프가 변호사를 보았지만 슬며시 고개를 내젓는 것이 방법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자신이 설립한 회사의 경영권이 날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가 찾아낸 방법에 잔뜩 기대하고 있던 랄프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부친 랄프와 규태가 험악하게 대립하자 함께 자리한 브라이언 로버츠가 답답한 얼굴을 했다. 그가 알기로는 규태가 가진 컴캐스트 지분은 40%가 넘었다. 경영권 분쟁이 일어난다면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패배였다.

“두 분 다 진정하시고요. 그럼 컴캐스트 지분인수 자금이 타이거펀드의 투자가 아니라 개인적인 투자란 말입니까.”

“컴캐스트이게 몇 푼이나 한다고. 오이사, 이거 전부 얼마에 인수한 겁니까?”

“17억 5천만 달러에 41%의 주식을 매입했습니다.”

“내가 매입한 주식들 중에서 컴캐스트의 지분이 얼마나 됩니까?”

“사장님 개인적으로 투자한 주식투자금액의 5%쯤 됩니다.”

기다렸다는 듯 오선한이 규태의 질문에 대답을 했다.

규태와 오선한의 대화를 멍하니 듣고 있던 로버츠부자가 충격을 받았다.

“.......”

그래도 케이블 업계에선 목에 힘을 주는 대기업인데 규태입장에서는 크리 큰 투자가 아니었다.

어쩐지 무시를 당한 것 같은 기분에 다시 화를 내려는 부친을 만류하며 브라이언이 서둘러 물었다.

“김사장님이 처음 말씀처럼 경영권에 간섭하지 않겠다면 저희도 따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습니다.”

확실히 사장자리에 있는 브라이언은 젊어서인지 계산이 빠르고 영민했다. 넷째아들인 브라이언이 위의 형들을 제치고 경영권을 물려받은걸 보면 보통은 아니란 소리였다.

실제로도 그가 회사의 경영권을 물려받으면서 컴캐스트는 덩치를 키워 NBC를 인수하는 초거대기업으로 성장한다.

“처음 말한 그대로입니다. 난 회사의 경영권에 손댈 생각이 조금도 없어요.”

거듭 규태가 확인해주자 잔뜩 찌푸렸던 랄프 로버츠의 주름 덮인 얼굴이 조금 펴졌다. 못마땅한 얼굴로 노려보던 시선도 누그러 들었다.

“경영권에 손댈 생각이 아니라면 도대체 저희에게 원하는 게 뭡니까?”

“컴캐스트의 지분을 매입해서 대주주가 되었지만 내 주변에 케이블 전문가가 없어요. 당연히 회사경영에 손댈 생각도 없고요. 로버츠 가문의 컴캐스트 경영권을 인정합니다. 브라이언 사장이 지금처럼 계속 경영을 해주시면 됩니다. 내가 가진 지분을 희석시키려는 시도만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계속 간섭하지 않을 겁니다.”

가만히만 두면 2,000억 달러가 넘는 거대회사로 크는데 어설프게 손댈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규태가 명확하게 브라이언의 경영권을 보장해주자 회의실의 공기가 밝아졌다.

가뜩이나 거듭된 인수합병으로 회사의 수익이 떨어지면서 브라이언의 경영에 의문을 품는 주주들도 많았다. 인수합병에 투자할 돈으로 배당이나 하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새롭게 등장한 대주주가 이렇게 지지를 해주면 한층 경영이 쉬워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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