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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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게임
“이 게임을 이해한다고요?”
“나를 뭐로 보고 그런 말을 하는거에요. 당연히 이해하지요.”
그녀의 반응에 규태가 허탈해져서 되물었다. 한국어로 만들어진 게임을 대뜸 이해한다는 건 케서린이 한국말을 할 줄 안다는 소리였다.
“도대체 언제 한국어는 배운 겁니까?”
“최근 들어서요. 생각보다 크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주변에 일모 같은 친구들도 있고요.”
빌어먹을 천재 같으니라고! 규태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도대체 몇 개 국어나 하는 겁니까?”
“10개쯤 될걸요.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건 언제나 재미있거든요. 여하튼 이게임 아주 재미있겠어요. TRPG게임은 미국에서도 꾸준한 인기를 누리는 분야라서 이 게임도 영어로 만들어서 뿌리면 꽤 인기를 끌 것 같네요.”
단군의 땅에 대한 케서린의 평가였다.
쥐라기 공원보다는 단군의 땅에 대한 평가가 높았다.
“지금 이 게임들을 만든 회사에 투자할지가 고민이거든요.”
“나쁘지 않은데요. 얼마나 많은 금액을 투자하려고 규태가 고민까지 하는 건가요? 천만달러가지는 가볍게 투자해도 되잖아요? 가능하다면 내가 이 회사들에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데요.”
케서린의 타이거 벤처가 두 회사에 투자하는 건 법률 때문에 불가능했다.
그녀의 말에 규태가 이마를 쳤다. 스스로 생각해도 바보 같은 소리였다. 투자를 해봐야 10억 원에서 20억 원 정도.
두 회사의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두 회사에 가벼운 마음으로 투자하면 그뿐이다.
“생각해보니까 내가 바보 같았네요. 두 회사에 투자를 해야겠어요. 그런데 바쁘지 않아요? 내가 부른다고 이렇게 빨리 달려오고.”
“그렇지 않아도 이곳에 올 일이 있었거든요.”
“무슨 일인데요?”
슬그머니 흥미가 돋았다.
“투자할 회사가 나타났거든요. 제리가 추천해준 회사인데 인터넷 홈쇼핑의 결제를 원활하게 해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회사라고 하더라고요.”
전자상거래가 일찍부터 활발해지면서 대금 결제방식의 문제가 커졌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결제방식은 개인송금이나 우편환을 통해 결제를 했지만 불편하고 사고위험성도 높았다.
“그럼 야후의 자회사로 만드는 건 아닌 모양이지요?”
“아마도요. 자회사로 만들 생각이라면 나를 찾을 이유가 없잖아요.”
“쓸 만한 회사이길 바랄게요.”
“그건 그렇고 이곳 사무실 자리가 비잖아요?”
“여기요?”
야후와 넷스케이프가 나간 후 사무실이 비어 있었다.
“그걸 타이거벤처가 쓰면 어때요? 점점 이쪽 회사들에 투자하는 일이 많아져서 팔로알토에 지사를 낼 생각이거든요.”
규태의 원래 계획은 잠시 비워 두었다가 새롭게 회사를 만드는 것이었지만 케서린의 말을 들어보니 타이거 벤처회사가 들어오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생각해 볼게요.”
“급한 건 아니니까. 아이고, 시간이 이렇게 됐네? 가볼게요.”
약속한 업무미팅을 위해 케서린이 서둘러 나가자 규태는 한국에 전화를 걸어서 두 회사의 지분 투자를 지시했다.
***
“제기랄 꼭 우승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매덕스를 보내주면 안되겠나?”
이미 지난 일이지만 월드시리즈에서 토론토에 패한 게 억울한지 오랜만에 만난 터너가 식사자리에서 투덜거렸다.
토론토에 패배한 월드시리즈가 끝나고 난후 시간이 흘렀지만 다저스의 구단주인 규태의 얼굴을 보니 울화가 다시 치밀어 오르는 모양이었다.
“신혼여행 잘 갔다 와서 무슨 헛소리예요. 애틀랜타가 매덕스의 연봉을 감당할 수 있겠어요.”
루드 터너는 월드시리즈가 끝난 후 할리우드 영화배우인 제인과 시끄러운 결혼식을 올렸다. 소년시절부터 제인의 팬이었던 루드가 꿈을 이룬 것이다.
결혼식이 끝난 후 자취를 감춘 루드는 반년동안 얼굴한번 비추지 않더니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저기서 매덕스의 연봉을 가지고 말이 나오는 건 알지?”
“자기들 팀 연봉이나 신경 쓰라고 하세요. 앞으로 선수들 올라가면 올라갔지 내려가지는 않을 테니까요. 다저스는 앞으로도 페이롤을 줄이지 않을 거니까요. 돈을 버는 만큼 쓰는 건데 무슨 불만들이 많은지.”
“그렇게 주고도 적자 아니야?”
“자체적으로 세운 로컬 케이블하고 장기계약을 체결한 금액이 있어서 흑자에요.”
“나도 하나 만들어야 하나.”
“애틀랜타는 TBS하고 장기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나요?”
“그건 예전이야기고. 요즘에는 계약금액이 너무 높아져서 TBS에서 중계를 하지 않는다고.”
“그럼 하나 만들어요. 애틀랜타도 자생력을 길러야죠.”
“생각해보자고. “
규태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천하의 루드 터너가 뭘 그렇게 망설여요. 그렇지 않아도 타임지에 표지모델로 나온 건 잘 봤어요.”
“크흠, 어때 멋있었지?”
디즈니와 CBS의 인수는 대단히 성공적인 평가를 받았다. 더욱이 망해가던 MGM을 인수해서 살린 것이 루드터너의 이름을 높였다.
“잘나왔더라고, 그런데 만화영화 만드는 회사는 싫다면서요.”
처음 디즈니를 인수하라고 했을 때 루드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인어공주가 성공하면서 죽어가던 디즈니가 활기를 되찾았지만 성공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모르는 법.
“크흠, 그때는 만화영화가 얼마나 돈이 되는지 몰랐으니까 한소리였지.”
말해 놓고도 민망한지 터너가 규태의 눈을 피했다. 터너가 디즈니를 인수한 이후로 미녀와 야수, 알라딘이 연속적으로 성공을 거두며 디즈니의 주가가 폭등했다.
거기에 MGM이 제작한 영화들, 보디가드와 원초적 본능도 규태가 나서서 했었던 일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사주인 루드 터너의 이름값이 높아졌지만 속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규태의 안목을 부러워했다.
그랬기에 톰 행크스 주연으로 나오는 필라델피아와 같이 동성애자가 등장하는 영화를 제작하는 것에도 큰 반대가 나오지 않았다.
“올해는 필라델피아하고 시애틀의 잠못이루는 밤, 두 영화가 MGM을 먹여 살려 줄 겁니다.”
“정말 그럴까? 내가 볼 땐 필라델피아는 그냥 그렀던데. 제인도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고.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어쩌고는 제인도 관심을 가지더군.”
“그 영화는 여자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영화니까요.”
“빌어먹을 내가 만든 영화는 왜 그 모양인지.”
“그러니까 루드는 제작에 끼어들지 말라니까요. 루드가 끼어들면 영화내용이 다 때려 부수는 쪽으로만 가잖아요.”
제작에 성공하는 규태의 모습에 힘을 얻었는지 루드 터너가 나서서 제작한 람보 풍의 영화는 말 그대로 쫄딱 망했다.
3,000만 달러를 넘게 들여서 제작한 영화는 500만 달러도 건지지 못했다. 다행히도 보디가드의 흥행 돌풍에 묻혀서 영화는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사라졌다.
“큼, 알았다니까. 자네가 말한 대로 올해 두 영화가 성공하면 마이클을 영화부문 회장 자리에 올리는 걸 찬성하지.”
“그건 당연한 거구요. 마이클의 경영성과는 제대로 평가를 해줘야죠. 성과급도 두둑하게 주세요.”
마이클 아이스너 역시 MGM의 성공으로 한층 이름값이 높아졌다.
“제기랄, 난 그 녀석 진짜로 마음에 들지 않아.”
마이클과 루드는 태생적으로 맞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천하의 루드 터너가 어린애처럼 왜 그래요. 이건 사업이라고요. 사업.”
“젠장! 자네 말이 맞아.”
루드 터너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임워너 쪽에서 연락이 오던가요?”
“제럴드? 가끔 만나기는 하는데 왜? 그쪽하고 무슨 일이 있어?”
“인수합병이야기는 하지 않던가요?”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는데? “
“합병이야기는 나오지 않을까 해서요?”
“어디하고? 타임워너하고 TBS를?”
“예, 이야기가 나올 법도 하잖아요.”
두 회사의 사업영역이 비슷하기는 하지만 합병을 하게 되면 시너지효과도 상당했다.
“불가능한 일이야.”
“어째서요?”
“둘 다 공중파 방송국을 자회사로 가지고 있잖아. 정부에서 허가를 해줄 리가 없지.”
“아참! 그러네요.”
전의 역사만 신경을 쓰느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도 자네 팀과 우리 팀이 내셔날 리그 서부지구에서 1,2위 다툼을 벌이겠지?”
“전문가들의 견해도 그렇고 객관적인 전력을 보면 두 팀이 1위를 다투겠죠. 왜요?”
“나하고 내기를 해보자고. 이번엔 누가 이길지 말이야. 젠장, 이번에는 반드시 월드시리즈에서 승리하고 말테다.”
루드터너는 어지간히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작년 토론토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다투던 전력이 고스란히 남았고 트레이드로 약점이던 타선까지 보강을 했으니 자신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지만 다저스의 전력 보강도 만만치가 않았다.
“힘들 걸요. 이번에 다저스의 전력보강이 만만치가 않아서요.”
“호오! 자신이 있다 이거지. 그럼 내기를 하자고.”
“뭘 걸고요?”
“상대가 원하는 것 하나 들어주기.”
어린아이 같은 내기조건을 내걸며 호언장담을 하는 터너를 보며 규태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루드가 애틀랜타의 전력에 자신을 가지는 건 좋지만 규태도 자신이 있었다.
“좋습니다. 나중에 다른 말하기 없기에요.”
“이거 왜이래, 나 루드 터너야. 내가 나중에 딴소리를 할 것 같은가?”
“흐흐흐, 그럼 내기를 하죠.”
규태의 웃음소리에 불길한 느낌을 받았는지 루드가 흠칫했지만 내기를 무르지는 않았다.
‘제리 이 사기꾼 자식, 어떻게 했기에 프랭크 토마스를 데려온 거지. “
프랭크 토마스는 화이트 삭스의 일루를 보는 강타자였다. 어지간하면 트레이드를 해올 가능성이 없었지만 다저스의 주전 1루수인 에릭 캐로스와 에릭 영을 주고 받아왔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에릭 캐로스나 프랑크 토마스 둘 다 3할 30홈런이 가능한 강타자들이라 전도가 유망한 2루수 에릭 영까지 포함한 트레이드는 다저스의 손해였다. 하지만 미래를 아는 규태의 입장에선 둘은 천지차이의 선수였다.
에릭 캐로스는 찬스에 약한 모습을 보이고 강타자로서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는 선수가 되는 반면에 눈이 좋고 찬스에도 강한 프랭크 토마스는 꾸준하게 실력을 보여서 은퇴하고 명전에 오르는 선수가 된다.
매덕스와 랜디 존슨, 허사이저, 라몬 마르티네스, 페드로 마르티네스로 이어지는 선발 투수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강력했다.
무엇보다도 랜디존슨과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성장이 가팔랐다.
랜디의 경우 감을 잡았는지 던지는 폼이 엄청났다. 제리가 예상하기로는 20승은 가뿐하고 사이영상을 매덕스와 다툴 정도로 성장했다.
거기에다가 페드로의 성장도 만만치 않게 빨랐다. 덩치가 작은 페드로의 롤 모델은 역시 그렉 매덕스.
메이저 리그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체인지 업 1,2위를 다투는 둘을 붙여 놓았더니 성장세가 비가 온후 대나무 죽순 자라는 것처럼 폭발적이었다.
거기에다 프랭크 토마스가 가세한 타선도 쉽게 쉬어갈 곳을 찾지 못할 정도로 강력했다. 유격수가 문제였지만 그것도 지난해 드래프트에서 1픽으로 뽑은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시즌중에 올리면 해결된다.
터너와 내기에서 질것이란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