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86화 (86/220)

#086

선호작품 등록/취소

알림 등록/취소

정보 고속도로

미국 부통령은 가지고 있는 실권이 없지만 엘 고어는 달랐다. 아칸소주지사 출신인 클린턴은 의회에 지지 세력이 거의 없었지만 엘 고어는 긴 상원의원 경력으로 지지기반이 넓었다.

상원의원 시절이던 85년 고성능 컴퓨팅 법을 발의했고 91년 입법화시켰다. 이 법은 1992년 이후로 미국의 정보기술정책의 기본법으로 활용되었다.

정보통신기술에 대한 엘 고어의 열의는 대단해서 미국을 먹여 살릴 산업은 정보통신이란 것이 그의 평소 지론이었다.

“정보고속도로를 만들려면 통신망을 정비해야 하는데 막대한 자금이 소모됩니다. 기존에 있는 회사들은 규모가 영세해서 자칫하면 불황이 오면 부실화되기가 십상입니다.”

“LDDS같은 전문 기업들이 있는데 굳이 대기업을 참여시켜야 한다는 말입니까?”

“다른 부분이라면 몰라도 통신망 확충에는 들어가는 자금이 엄청나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LDDS의 부실이 엄청나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설마요? SEC에서 그걸 보고만 있었단 말입니까?”

엘 고어가 화들짝 놀랐다. 이미 차입인수(LBO)로 규모를 키운 LDDS의 시가총액은 50억 달러가 넘었다.

“SEC도 대놓고 하는 분식회계는 잡을 수가 없습니다.”

클린턴 행정부는 기존 통신 대기업들이 나서는 것보다는 신규업체들이 진출하기를 바라고 정책적으로 지원을 펼쳤지만 결과적으로 이건 엄청난 실수였다.

나중에 월드컴으로 이름을 바꾼 LDDS는 분식회계를 이용해서 막대한 적자를 숨기고 합병으로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2002년에 회사가 파산했을 때 분식회계 규모가 110억 달러였다.

정크본드와 같은 고율의 회사채 발행으로 자금 확보, 기업인수, 또다시 분식회계를 통한 회사의 규모와 수익 포장으로 자금확보와 같은 순환 고리를 통해 규모를 키워나갔으니 불황이 닥치자 버텨낼 수가 없었다.

규태는 조목조목 예를 들어가며 엘 고어를 설득했다.

광통신망을 까는 기반기술은 이미 완성되어 있지만 미국이 조금 넓은가.

미국 전역에 깔려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소모된다. 인구가 집중된 지역을 연결하고 나머지는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었다. 첫 번째로 고려하는 지역이 캘리포니아와 뉴욕을 연결하는 광통신망을 연결하는 것이었다.

“어떤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했으면 좋겟어요?”

“상원 정보통신위원회를 움직여 전문적으로 광통신망을 설치할 기업을 만들고 지원하는 법안을 만들어 주십시오.”

엘고어는 정보통신위원회의 위원장을 오랫동안 지냈으니 당연히 움직일 힘이 있었다.

한참동안 고심하던 엘고어도 승락의 뜻을 내비쳤다.

“알겟습니다. 내가 한번 힘을 써보도록 하지요.”

엘 고어와의 면담을 마친 규태는 한결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

작년처럼 연말이 되자 한국의 겨울추위를 피해 가족들이 LA로 건너왔다. 가족들이 머무는 LA의 벨에어에서 머물며 함께 겨울을 보냈다.

“어이고, 오너 얼굴보기 힘들다.”

이젠 야후의 CEO자리를 차고앉은 제리가 오랜만에 보는 규태를 보며 투덜거렸다.

“잔소리하는 상사얼굴은 안보면 좋지.”

“그래도 네가 없으니까 허전해 자주 얼굴을 보이라고.”

“막바지라 정신없지? “

예전보다 빠른 인터넷방문자 숫자의 증가는 야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무료 사이트라서 고정 수입이 없었지만 클릭 수에 따라 광고비를 책정하는 오버추어광고와 야후쇼핑의 성공으로 수익이 증가했다.

“정신없기는 다들 얼굴에 활기가 넘친다.”

“상장 때문에 기운이 나는 모양이지?”

“그렇지 뭐. 다들 주가가 얼마까지나 오를지 관심이 많으니까?”

원래 보다 2년 정도 빠른 상장이 결정되었다. 리만을 주관사로 해서 기업공개를 추진 중인데 전망이 밝았다.

“이건 직원들의 아이디어인데, 게임을 팔면 어떨까? ‘

“게임을?”

“발매되고 6개월이 지나면 게임판매수가 확 줄잖아. 이런 게임들의 판권을 인수해서 인터넷으로 판매를 하는 거지.”

“가격은?”

“10달러면 어떨까하는데.”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였다. 90년대에는 게임을 발매하면 그 즉시 해적판이 난무했다. 버그도 제대로 잡지 않고 출시하는 경우도 많아서 게임구입을 망설이는 사람도 많았다. 나중에 평판이 좋은 게임을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가 없어서 구입을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벤처에서 투자한 게임회사가 많거든. 케서린의 도움을 받아서 한번 추진해봐. 잘되면 서로 윈윈이 될 수 있겠다.”

“게임을 사려면 돈이 많이 들어갈 것 같거든. 한두 개가 아니라 5,000개 정도의 판권을 구입할 계획이라서.”

규태는 제리의 말에 머리를 흔들었다. 어쩐지 자체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규태에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보나마나 케서린이 야후지분을 더 내놓으라고 난리를 쳤겠군.”

멋쩍은 웃음을 짓는 제리의 모습을 보니 이미 그런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차피 오후에 케서린과의 미팅이 있었다. 그때 가서 의논을 하면 될 것이엇다.

제리의 사무실을 나와서 규태가 찾은 곳은 마크의 사무실이었다.

넷스케이프는 계획대로 마이크로 소프트와 매각협상을 진행 중이었다. 60억 달러를 부르는 마이크로 소프트와 90억 달러를 고집하는 규태의 고집이 치열하게 부딪혀서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80억 선에서 결정이 나는 분위기였다.

개발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마크가 규태를 보고 자신의 사무실을 가리켰다.

벌써부터 머리가 확연하게 후퇴하기 시작한 마크였지만 얼굴이 밝았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던 거야?”

“서버용으로 개발할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고해서. 팀을 구성하는 문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젊은 나이에 억만장자가 되는 기분은 어때?”

마이크로 소프트와 매각협상이 타결되면 넷스케이프 주식 5%를 가진 마크는 4억 달러의 재산을 가진 부자가 되는 것이다.

“네가 그런 말을 하니까 조금 우습다.”

규태의 재산은 이번 매각으로 48억 달러가 늘어난다.

“부자가 되는 건 좋은데 여길 떠나야 하니까 아쉬워.”

넷스케이프가 매각되면 사무실을 마이크로소프트의 본사가 있는 시애틀로 옮기기로 합의했다. 기존 직원들이 전부다 이동하고 마크는 2년 동안 마이크로소프트로 출근을 해야 한다.

야후도 늘어나는 직원들로 인해 사무실이 비좁아 지면서 팔로알토 사내에 사옥을 구했다.

“아이가 자랐으면 요람을 떠나야지. 아쉽다고 언제까지 아이로 남아있을 수는 없잖아?”

빈 건물들에는 새로운 벤처가 만들어질 예정이었다.

“이곳을 떠나면 너희와 함께 저녁때 마시던 맥주가 생각날 것 같은데.”

늦게 까지 야근을 하고 늦은 저녁 피곤을 풀기위해 마시던 맥주는 달콤했다. 그럴 때마다 남아 있던 직원들이 하나둘 모여서 작은 파티가 벌어졌었다.

작은 스타트업일 때는 몰라도 직원들의 숫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규태도 모르는 얼굴들이 많았다.

“이젠 시애틀에서 너희 직원들하고 모여서 하면 되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두사람에게 예상하지 못한 손님이 찾아왔다.

상기된 얼굴로 땀까지 흘리며 달려온 케서린이 소리를 지르며 들이닥쳤다.

“두사람 여기 있었네. 됐어요. 마이크로 소프트와 협상을 지금 막 끝냈어요.”

넷스케이프의 주식 10%를 보유한 타이거벤처의 사장인 캐서린이 규태를 대리해서 마이크로 소프트와 매각협상을 했다.

전화로 해도 될 연락을 직접 찾아온 걸 보면 결과는 대충 짐작이 됐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캐서린을 보는 마크의 모습에 작게 머리를 흔들던 규태였다.

“결과는요?”

활짝 웃으며 손가락으로 8개를 가리키는 캐서린의 모습에 마크가 고함을 질렀다. 80억에 매매를 합의했다는 소리.

“신난다. 이젠 나도 억만장자다.”

예고도 없이 달려온 케서린의 모습에 사장실에 귀를 쫑긋하고 기울이고 있던 넷스케이프의 직원들도 마크의 고함에 돌아가는 사정을 눈치 챘는지 함성을 내질렀다.

“만세!”

“내가 받는 금액이 얼마지?”

옆 건물에서 시끌벅적한 함성이 터져 나오자 영문을 몰라 달려온 야후의 직원들이 부러운 시선을 던졌다.

“나 대신에 협상하느라 수고했어요.”

규태의 칭찬에 캐서린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 정도쯤이야 쉬운 일이죠. 그런데 야후의 기업공개준비는 잘되가나요?”

“계획대로라면 10월이요.”

“날자가 정해졌어요? 예정 주당가격은요?”

“22달러가 될 것 같아요.”

이전과 다른 것은 야후의 수익구조가 탄탄하다는 것이었다. 클릭한 숫자에 따라서 받는 광고수입이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제일 높은 수익은 야후마켓에서 나왔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터넷 쇼핑을 중개하면서 받는 수수료 수입이 꾸준하게 증가하면서 수익이 3천만 달러를 넘었다.

15%의 주식을 가진 타이거벤처의 사장인 케서린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호호호, 엄청난데요. 기대 이상이에요. AOL의 주가도 요즘 미쳤던데요. 주가가 50달러를 넘어섰어요.”

규태가 투자하자마자 재빨리 따라서 투자한 타이거 펀드였다. 평균 매입단가가 18달러이니 벌써 세배의 수익을 올린 셈이었다.

규태의 고민이 그것이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도 과거역사보다 빠르게 인터넷 기업들의 주가가 올랐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가 깊다고 하지 않던가. 버블이 꺼질 때의 충격을 생각하면 아찔했다.

그렇지 않아도 버블이 꺼지면서 IT기업의 90%가 문을 닫아야 했다.

하지만 그건 나중의 일, 미래에 어떻게 되더라도 아직은 닥치지 않았으니 고민할 일이 아니었다.

“케서린 제리가 추가로 자금을 투자해 달라고 하던가요?”

“게임 구입자금 말이죠? 어떻게 생각해요? ‘

“나는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나도 그렇다고 봐요. 투자한 게임회사들에게도 나쁜 일은 아닐 테고요.”

“제리가 너무 짜게 굴어요. 5,000만 달러 추가투자에 5%만 더 달라고 하는데도 한사코 싫다고만 했다고요.”

조금은 삐진 듯한 모습의 케서린이었다. 상장을 앞둔 야후의 지분의 문제는 미묘했다. 직원들 몫으로 돌린 지분이 15%였다. 타이거 벤처가 투자한 지분은 10%, 상장할 지분이 20~25%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상장할 지분 가운데 5%를 미리 타이거벤처에서 가져가겠다는 소리였다.

“그거 상장예정가만 4억 달러가 넘잖아요. 제리가 짜게 구는 게 아니라 케서린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거죠.”

“......”

“공모가가 나오기 전에 한 주장이니 무리하다고 하기는 그렇고 추가로 5%를 가져가고 싶으면 4억 달러에 가져가요.”

“에효, 어쩔수 없네요. 그렇게 할게요.”

케서린도 한숨을 쉬며 순순히 포기를 했다. 벤처펀드의 성과에 욕심이 많을 뿐이지 무리한 주장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야후의 주식 1%는 케서린에게 줄게요.”

“예! 그게 무슨 소리예요?”

놀란 캐서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번 넷스케이프 매각협상을 잘한 포상이라고 생각해요.”

생각하지 못한 성과 보상이었는지 케서린의 얼굴이 밝아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