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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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탈 출범
90년대의 인터넷 벤처들은 씨를 뿌리고 싹이 트는 단계였다.
92년은 아직 씨를 부리는 단계.
넷스케이프의 출범도 일 년 빨랐지만 포탈의 등장은 그보다 더 빨랐다. 94년에 자리를 잡고 출범하는 야후가 92년에 출현했으니 말이다.
포탈을 만들면서 붙이는 이름도 설왕설래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지만 전과 마찬가지로 제리의 의견에 따라서 야후로 정해졌다.
굳이 규태도 그것도 제동을 걸지 않았다. 듣기에 아주 익숙했던 것이다.
정식으로 포탈을 선보이기 전에 규태는 회사를 분사했다. 비어있던 옆 건물로 포탈 팀을 옮기고 회사를 만들었다.
야심차게 출발한 시작이었지만 순탄하지 만은 않았다. 전생과 같이 야후라는 이름을 달고 출범한 인터넷 포탈의 시작은 미미했다. 하루 방문자수가 1,000명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예상보다 방문자수가 저조한데.”
“이 정도는 예상 했어야지.”
“상업용 인터넷이 초창기라 사용자가 한정되니까 당연한 결과물이야. 게다가 크게 광고도 하지 않았잖아.”
“아! 진짜! 내가 광고 좀 하자니까! 그렇게 광고를 하지 않으니까 사이트가 있는지도 모르잖아.”
분사한 회사를 책임진 제리가 투덜거렸지만 규태는 머리를 흔들었다.
“지금은 시범단계라고 생각해. 초반에 에러가 나올 때마다 고치느라 시간을 허비해야 하잖아. 이건 베타테스트기간이야.”
넷스케이프가 규태의 손에 들어와있으니 야후는 어차피 성공할 수밖에 없는 사업이었다.
일본교환학생 자리를 포기하고 포탈의 개발 책임자 자리에 앉은 제리의 얼굴은 예상보다 저조한 방문자 수에 심각했지만 규태와 마크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건 인터넷 사용자 수가 아직 초기단계라 적기 때문에 나온 결과물이기도 하고 쓸 만한 자료들은 무료사이트가 아니라 유료사이트를 가입해야 찾을 수 있었다. 미국의 AOL이나 한국의 천리안 같은 서비스가 괜히 성공한 게 아니다.
유료사이트들은 유용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인터넷의 접근성을 높였던 탓에 가입자가 급증한다.
야후와 같은 사이트를 방문하는 방문자들의 목적은 메인에 떠있는 뉴스를 검색하는 것과 원하는 정보를 찾는 것이다.
뉴스야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를 메인으로 하고 나머지는 중소 신문사의 기사로 채웠지만 검색부분은 정말 취약했다. 정보 백과사전도 나오기 전이고 사이트를 분류하는 작업도 자동이 아니라 수동으로 처리를 해야 했다.
미리 규태에게 설명을 들었음에도 제리는 쉽게 늘어나지 않는 방문자수에 한숨을 쉬었지만 그런 걱정은 한 달 만에 방문자수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조금 사그러들었다. 일 방문자수 20,000을 돌파한 것이다.
그래도 제리의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했다. 상황이 나아지기 시작한 것은 넷스케이프를 사용하면 곧바로 야후를 이용할 수 있게 만들고 나서였다.
넷스케이프는 경쟁자 없이 웹브라우저 시장을 독점했다. 누구나 인터넷을 접속하려면 넷스케이프를 이용했다. 넷스케이프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방문해야 하는 사이트로 인식이 되면서 방문자 숫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월 방문자 숫자가 천만이 넘어서자 빠른 상장의 기대감이 회사를 덮었다.
일을 하면서 마주치는 직원들의 표정도 밝아졌고 작업진척도 빨랐다.
직원들의 창의성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벤처기업의 사내 분위기는 아주 중요했다.
아침마다 셋이서 가지는 미팅은 평소처럼 간단하게 진행했다. 말이 회의지 그냥 출근해서 얼굴을 마주보며 가볍게 담소를 나누는 정도였다.
“데이터 센터를 미리 짓기 시작한건 잘한 것 같아. 가지고 있는 회사의 서버만으로도 충분하다 못해 넘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규모가 늘어날 줄은 몰랐으니까.”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인터넷 속도가 빨라지면 방문자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돼 있어. 데이터 센터를 건설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단 말이야. 나중에 한 달 방문자숫자가 1억이 넘어가게 되면 감당을 하기 힘드니까 미리 데이터 센터를 여유 있게 건설하는 건 당연한 일이야.”
데이터 센터를 많이 보유하는 건 미래에는 경쟁력의 기초가 된다. 제리가 규태가 생각하는 데이터 센터의 숫자와 크기를 알았다면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었다.
“휴우! 달마다 방문자 수가 1억이라? 그게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당연하지 미국의 인구만 해도 얼만데. 거기에 세계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방문자들이 찾아온다고 생각해봐. 앞으로 십년정도가 지나면 방문자 숫자는 그보다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거야. 그래서 AOL에도 투자를 한거고 말이야.”
83년에 게임판매회사로 시작한 AOL은 영업방향을 유료포탈로 바꾸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2000년 IT 버블이 꺼지기 전에 AOL은 월 방문자 수 6,300만 명, 가입자 수 2,600만 명, 그리고 매출 10억 달러를 기록했다. 주가는 버블직전 시총 2,000억 달러를 넘어서는 그야 말로 IT버블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연히 지금은 비상장 상태였다. 규태는 작년에 케서린 그린을 보내서 AOL의 지분인수협상을 벌였다. 아직 회사가 성장하기 직전의 단계에서 비싼 값을 부를 수가 없었는지 20%의 지분을 2천만 달러에 인수에 성공한 것이다.
케서린은 주식을 인수하면서 회사의 규모에 비해 주식가격이 비싸다고 투덜거렸지만 인수한지 1년도 되지 않아서 입이 귀에 걸렸다.
말 그대로 AOL이 폭발적 성장하면서 거래되는 주가도 급등. 당연히 대주주들이 주식을 매물로 내놓을 리가 없었다. 지금은 주식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
AOL의 가장 큰 장점은 회원들에게 받는 요금, 매달 일정하게 들어오는 수입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단점은 돈을 받다보니 다른 사이트들과 차별화가 되지 못하면 언제라도 회원들이 이탈한다는 것.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의 성장기였다. 손에 쥐고 있으면 1999년 AOL의 주식만으로 적어도 400억 달러의 돈이 들어온다.
규태가 AOL의 주식을 팔려하는 타이밍은 타임워너와 합병하는 직전이었다.
역사상 규모가 가장 큰 합병이자 가장 큰 실패작이라 불리는 타임워너와 AOL의 합병은 2000년 1월에 발표된다. 이후 거짓말처럼 IT버블이 꺼지면서 합병은 실패한다.
“이런 배신자 자식, 언제 AOL에도 손을 뻗은 거야.”
“진짜 빠르다니까. 거기는 또 언제 말도 없이 손을 댄 거야.”
마크와 제리가 옆에서 투덜거렸다.
야후와 AOL은 경쟁자라면 경쟁자 사이.
유료서비스와 무료서비스지만 비슷한 정보를 제공한다. 야후의 책임자인 제리는 특히나 경쟁의식을 불태우는 중이었다.
“어째서 AOL에도 투자를 한거야? 우리와 비슷한 콘텐츠를 제공하잖아. 경쟁자에게 군자금을 조달시켜주다니 이 반역자!”
활발한 성격의 제리가 규태의 목을 졸랐다.
“캑, 이거 안 놔! 이 자식이.”
처음에는 예상하지 못한 기습에 말렸지만 운동하고 담을 쌓은 제리가 규태의 반격에 속절없이 당했다.
“억! 살려줘!”
바동거리는 제리를 헤드록으로 잔뜩 괴롭힌 다음 풀어주었다.
“진짜 왜 투자를 한거야? 이거 직원들이 알면 속으로 불만을 가질 수도 있어. 오너가 자신들을 믿지 못하고 경쟁사에 투자를 한다고 말이야.”
마크의 질문에 규태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간단해 돈이 되니까.”
“돈이라고?”
“거기에 글을 올리면 돈을 벌 수 있거든. 네가 글을 올리는 사람이라 치자 너 같으면 어디에 글을 올리겠냐? 올리면 돈이 되는 AOL아니면 쥐뿔도 주지 않는 야후? 제공하는 정보의 질이 달라. 인터넷 사용자들이 유료사이트에 몰리는 이유지. 돈을 내는 유료회원의 숫자가 늘어나면 어떻게 되겠어? 주가는 휘용~ 날아가는 거야.”
규태의 답변에 마크와 제리가 얼굴을 찡그렸다.
“끄응, 그건 반박할 수 없네.”
미끼가 되는 상품들이 히트를 치면서 사람들은 AOL의 회원으로 가입했다.
“초창기에 성장 모멘텀을 잘 잡았어, 사람들이 회원가입을 해야만 볼 수 있는 내용들도 나쁘지 않고.”
“난 이해할 수가 없어 우리 같은 무료사이트를 두고 유료로 회원가입을 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
그런 제리를 두고 마크와 규태가 얼굴을 보며 음흉하게 웃었다.
“쯔쯔, 너 같은 어린아이는 이해할 수가 없지.”
“흐흐흐, 그런 게 있단다. 너도 봤구나?”
유료사이트에는 빨간딱지가 붙을 자료들이 사이트에 올라온다.
“너희들 얼굴을 보니 그게 뭔지 알겠는데 우리도 올리면 되잖아?”
제리의 말에 규태와 마크가 동시에 외쳤다.
“돈이 안 되잖아!”
“시끄럽기만 하지 돈이 안 돼.”
유료와 무료사이트의 차이였다. 어떻게 해서든지 회원가입만 시키면 돈이 되는 유료사이트와 그런 짓을 해도 별 이득이 없는 무료사이트의 차이였다.
야후와 같은 무료사이트의 단점은 어디에서 수익을 얻어야 하는 가였다.
덕지덕지 배너를 붙였다가 방문자수가 뚝 떨어진 곳도 있고 유료화를 시도하다가 몰락한 곳도 있다.
제리가 투덜거렸다.
“우리도 유료로 가야하는 거 아냐?”
당연한 불만이었다. 비슷한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누구는 돈을 잘 벌고 누구는 손가락만 빨고 있으니까.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가 이겨. 별짓을 다해도 유료서비스는 한계가 분명하니까.”
인터넷을 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자 어둠의 세계 사람들은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시장을 발견한다. 인터넷에 유료 포르노사이트들이 범람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료로 가볍게 즐기던 게임도 유료화가 되면서 유료 사이트의 매력이 사라지게 된다. 굳이 돈을 주고 회원가입을 해도 바깥에서 만들어지는 유료사이트의 흡입력을 따라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돈을 벌건 데? 데이터 센터를 건설하는 거 보니까 들어가는 돈이 엄청나던데 속이 답답하다.”
“버티면 되. 슬슬 생각하는 게 있으니까.”
“그게 뭔데?”
속으로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규태였다.
“그건 비밀이다. 방문자숫자가 늘어나면 준비를 시작해야지. 검색엔진은 잘 준비하고 있어?”
아직까지 검색엔진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서 수작업으로 일일이 처리를 해야 해서 아르바이트를 고용하는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
“다음달, 늦어도 다음 달이면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할거야.”
“다행이네, 나는 너무 늦어지면 회사를 인수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이런 빌어먹을 자식! 내가 이번에도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네 동생이다.”
“너! 나보다 동생 맞잖아! 나보다 나이도 어린놈이 까불기는. 오뉴월 하룻볕이 얼만데! 그리고 당장 지난달에도 나한테 같은 말을 하지 않았었냐? 너희들 말로 따거(大哥)라고 하던가? 한번 불러볼래? 따거”
“따거는 무슨, 치사하고 더럽다. 하여간 이번에는 진짜 다음 달이면 끝나.”
나이를 가지고 하는 이런 대화는 한국인인 규태와 대만출신 제리만이 이해할 수 있는 대화였다. 옆에선 셋중에 가장 나이 어린 마크는 이해하지 못하고 멀뚱하게 눈을 뜨고 바라볼 뿐이었다.
“그럼 다행이고. 나는 어디 가서 인터넷 검색엔진을 만드는 회사를 인수해야 하나 고민했잖아.”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규태의 모습에 제리가 열이 올랐지만 꾹 눌러 참았다. 이번 달까지 검색엔진 작업을 마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건 제리 자신이었으니까.
사실 규태는 그럴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제리가 자신 있게 나섰으니 올해가 가기 전에는 해결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제리의 개발속도는 규태의 예상범위 안쪽이었다. 다만 놀릴 때마다 이렇게 발끈하는 모습을 보이는 제리의 모습 때문에 놀림을 멈출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