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75화 (75/220)

#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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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탈사이트

규태는 자신의 실책을 깨끗하게 인정했다. 미래의 정보를 알고 투자를 하는 것과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과정에 끼어드는 건 엄연하게 달랐다.

인터넷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진화해 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생각해 덤볐지만 섣부른 오판이었다.

규태는 깨끗하게 능력부족을 인정하고 손을 들었다.

그리고 마크 앤드리슨을 개발책임자로 삼고 뒤로 물러났다. 웹브라우저 개발은 크게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다.

마크는 이미 인터넷 웹브라우저에 대한 개념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었다.

규태가 손을 떼고 그가 책임자로 전면에 나서자 거짓말처럼 개발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강현의 회유에 홀라당 넘어가 회사에 입사한 마크가 두 달 만에 가져온 결과물을 보는 규태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이게 최종결과물인가요?”

“어떤 OS를 사용하더라도 돌아가도록 만들었습니다.”

최고의 장점은 모든 프로그램에서 돌아가게 만든 범용성이었다.

문제라면 더럽게 느리다는 것이다. 웹브라우저에 인터넷 주소를 입력하고 나고서 한참이 지나서야 인터넷 사이트가 열리는걸 보면 속이 터졌다.

전화선을 이용한 인터넷 속도는 14.4Kbps에 불과했다. 전용선이라 할 수 있는 ISDN을 사용하면 그나마 속도가 늘어나도 최대 128kbps에 불과했다. 90년대 후반부터 사용하는 ADSL로 가야 10Mbps의 속도가 나온다.

가볍게 마우스만 클릭하면 화려하게 온갖 그래픽으로 장식된 사이트들이 열리는 시대에서 살아온 규태에게 정말 참을 인자를 몇 개나 그리게 만드는 속도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속도는 어떻게 할 수가 없군요.”

“전화선을 사용하는 한계 때문에 속도문제는 극복하기가 힘듭니다.”

이건 프로그램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였다.

“추가적으로 더 시험해보고 나오는 문제만 없다면 무료로 배포하도록 합시다.”

“무료로요?”

“당연히 무료로 배포를 해야지요. 처음부터 이걸 유료로 만들어 팔 생각은 없었습니다.”

규태의 말에 마크 앤드리슨과 앤드류 비나의 표정이 굳어졌다.

규태는 전체 지분가운데 12%의 지분을 직원들에게 스톡옵션으로 배분했다. 마크앤드리슨의 지분은 5% 남짓, 이제 회사가 상장하면 받은 스톡옵션으로 일확천금을 벌이들이겠다며 희희낙락 했을 직원들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넷스케이프를 유로로 판매하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웹브라우저의 명칭을 어떤 걸로 하느냐로 설왕설래했지만 결국 넷스케이프로 정해졌다.

회사의 주주이기도 한 두 사람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다. 만든 제품을 공짜로 풀겠다니 그러면 회사는 어떻게 수익을 거두는가?

“회사는 수입은 어떻게 하고요? 이러면 만년적자를 보는 회사가 될 겁니다? 최소한의 개발비용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규태가 무료로 웹브라우저를 배포하겠다고 발표하자 내부적으로 작은 반발이 일어났지만 이런 반발들을 냉정하게 잠재웠다.

“우리가 해야 하는 제일 첫 번째는 점유율을 올리는 겁니다.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넷스케이프를 이용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첫 번째입니다. 그때까지 유료화는 없습니다.”

직원들의 월급도 줘야하고 사무실이 위치한 팔로알토의 임대료는 조금 비싼가. 그런데도 규태는 인터넷의 규모가 커져서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때까지 아낌없이 돈을 퍼부을 생각이었다.

점유율! 이것이야 말로 규태가 점찍어둔 상대에게 회사를 넘길 때 가장 비싼 값으로 팔아넘길 조건이자 목표였다.

회사의 내부를 정리하고 발표한 넷스케이프는 초반에만 200만의 다운로드를 받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넷스케이프의 역할은 인터넷 세상의 기반을 넓히는 일에 일조를 하는 것에 그칠 뿐이다.

항구가 만들어졌다면 항구를 채울 배를 끌고와야 하는 다음 작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쪽이야 말로 진정 인터넷세상을 이끌어 나갈 선도 기업이었다.

포털 사이트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주는 사이트다. 점포로 따지자면 백화점식으로 늘어놓아서 쉽게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잇게 해준다.

규태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설명하자 직원들도 어렵게 않게 이해했다.

“그냥 사이트네요? 이걸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죠. 문제는 서버가 엄청난 방문자를 감당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리고 안의 내용을 채우는 것도 보통일은 아닐 테고요.”

그의 말처럼 무수히 많은 방문자들을 포탈이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초창기 야후가 예상보다 빠르게 늘어나는 방문자들로 인해 터지는 서버를 감당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했었다.

서버를 늘리는 작업은 막대한 자금이 들어간다. 그리고 이 문제는 규태의 전문분야였다.

소매를 걷어붙인 규태는 서버회사를 설립하고 포탈내부의 내용을 채우는 작업에 착수했다.

***

워싱턴 포스트는 1877년에 창간된 워싱턴에 기반을 둔 전국지로 1961년에 뉴스위크를 자회사로 두었다. 닉슨대통령을 쫒아낸 워터게이트를 최초로 보도한 신문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미국사회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는 신문으로 규태가 찾아온 이유는 인수를 위해서였다.

워싱턴 포스트의 사주 케서린 그래이엄은 노년에도 허리가 꼿꼿하고 안광이 형형했다.

보통 강단을 가진 인물이 아니었다.

“숙모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규태와 같이 온 리처드가 인사를 하자 가벼운 미소를 지은 케서린이었다.

“그래 리처드 오랜만이로구나. 한동안 바빴다지?”

“제가 바쁠 게 뭐가 있었나요. 건강은 어떠십니까?”

“죽지 못해서 산단다. 나이를 먹으니까 성한 곳보다 아프지 않은 곳이 드물어. 지팡이가 없으면 걸음걸이도 힘들 단다.”

“저런! 건강하셔야죠.”

“건강은 괜찮단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니 이젠 네 숙부 곁으로 가는 일만 남은거지.”

걱정하는 리처드의 어깨를 케서린이 가볍게 토닥였다.

남편인 아이작이 죽은 후에 흔들리는 워싱턴 포스트의 경영권을 물려받아서 이만큼 키웠으니 케서린은 이제 자신이 할 일은 다했다 여겼다.

아쉬운 건 자식들이 하나같이 신문경영에 뜻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카 리처드를 통해서 KT란 동양인이 신문의 경영권을 인수하겠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젊은 동양인 부호가 워싱턴 포스트를 인수해서 경영을 잘할지 하는 것이 케서린의 관심이었다.

“신문 편집장이 말을 잘 안 들어. 자네는 어떻게 할 텐가?”

워싱턴 포스트에는 편집장과 사장이 따로 있다. 신문의 논조를 정하는 것은 사주가 아니라 실제로 이 둘이었다.

“어떻게 하긴요. 내버려둬야죠.”

“저런! 그렇게 하면 과연 신문이 자네 뜻대로 움직일까?”

신문사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게 신문의 논조를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길 바라서가 아니던가.

“워싱턴 포스트정도의 신문이라면 자체적으로 기사에 대한 선별을 할 테지요. 터무니없는 기사를 내보낼 리가 있겠습니까? 제가 신문을 인수하려는 것은 세상이 바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 이 늙은이는 물정이 어두워서 인지 자네 말을 이해하기가 힘이 드는구먼.”

신문사의 사주가 세상물정에 어둡다는 말을 하다니 우스운 소리였지만 규태는 케서린의 말장난에 장단을 맞춰 주었다.

“쉽게 말하자면 종이로 찍어내는 신문의 시대는 이제 끝나간다는 소리입니다.”

얼마나 놀랐는지 의자에 앉아있던 케서린의 몸이 저절로 움찔 할 정도였다.

“그게 무슨 소린가? 종이신문의 시대가 끝난다면 자네는 왜 신문사를 사려고 하는 겐가? 그것도 비싼 가격으로?”

규태가 제시한 가격은 모든 워싱턴의 포스트의 자회사를 통틀어 24억 달러에 인수하는 조건이었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건 그래이엄가문에서도 인식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신문사를 매각하라는 제안을 수용하셨겠죠.”

가문회의에도 참석했던 리처드가 옆에 앉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은퇴를 앞둔 케서린이 팔려는 마음을 먹었어도 그래이엄가문에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면 매각작업이 이루어질 리 만무했다.

“가문에서 젊은 아이들은 이제 신문 사업을 사양사업으로 보는 목소리가 높아. 앞으로의 세상은 컴퓨터가 지배하는 세상이 될 거라면서 말이야.”

젊은 아이들이란 말을 하며 못마땅한 듯 혀를 끌끌 차는 케서린이었다.

“관점을 바꿔보면 간단한 일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종이로 만든 신문대신 컴퓨터 화면을 보는 세상이 온다면 그 화면을 워싱턴 포스트로 채우면 될 일 아닙니까.”

“.......”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이었는지 케서린이 말문을 닫았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컴퓨터 화면을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로 덮는다.”

케서린은 대단히 사려 깊고 강단이 있는 여자였다. 대통령의 약점을 파헤친 워터게이트를 취재하고 기사로 올리는 것에 얼마나 많은 압박이 들어왔는지 말로 하자면 한도 없었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급하게 변하는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결코 눈을 돌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워싱턴포스트지를 바꿀 생각인가?”

“디지털화를 시도할 생각입니다. 회사가 관리하는 서버의 숫자를 늘리고 제가 만드는 포털 사이트에서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를 제일 먼저 볼 수 있게 하겠습니다.”

“오호! 자네 말처럼 되기는 하겠구먼! 하지만 과연 그게 돈이 될까?”

신문의 발행부수는 즉각 현금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컴퓨터 화면으로 보는 기사로 돈을 벌어들일 수 있을까?

“처음에야 당연히 돈이 안 되겠지요. 하지만 워싱턴 포스트가 가진 영향력을 유지하면 그것만으로도 돈 이상의 가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전 돈으로 영향력을 사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남들이 보면 규태를 미친 놈 취급할 것이다.

겨우 공짜로 보는 인터넷 포탈에 내용을 채우겠다고 워싱턴 포스트를 막대한 큰돈을 들여서 인수를 하다니 말이다.

하지만 규태의 입장에서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영향력이었다.

워싱턴 포스트의 사장이나 편집장이 아무리 고집이 세다고 한들 사주를 공격하는 이들까지 막아주지 않을 정도로 엉망은 아니다.

미국의 메스미디어 산업은 전체적으로 유대인들의 손에 들어가 있었다. 유명 신문사라면 사주이던지 아니면 사장이던지 편집장 가운데 하나이상은 유대인이었다.

워싱턴 포스트만 해도 한국인이 이스라엘에 부정적이란 이유로 반한 친일적인 논조를 지속하는 신문이었다.

미국 정계에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미국·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AIPAC)의 회원숫자는 650만 명이다. AIPAC힘은 단순하게 정치적인 문제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쳐서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나치가 벌인 대학살극인 홀로코스트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폴란드에서 자행된 유대인 학살 포그롬의 악몽은 미국에서 사는 유대인들에게도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협이었다.

그들이 메스미디어를 장악한 것은 이익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해서였다.

그레이엄가문에서 워싱턴 포스트의 매각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리처드를 통해서 규태성향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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