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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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브라우저 개발
규태의 회사설립을 돕기 위해 타이거벤처에서 파견된 사람은 규태도 잘 아는 강현과 마크 엘레니모였다.
“강 과장은 그동안 많이 배웠습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벤처펀드에 게임사들의 투자제안이 잇달았거든요. 회사들이 캘리포니아에만 있는 게 아니라서 미국전역을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케서린이 일본의 게임기를 사용해보고 충격을 받아서 게임기 개발사보다는 게임사들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렸다. 켈리포니아의 회사들이 투자를 신청하더니 이젠 이름이 높아지면서 요청이 전국으로 번져갔다는 것.
이젠 미국에서 게임을 개발하는 회사를 차리려면 가장 먼저 투자제안을 넣는 곳이란 설명이었다.
“케서린도 강 과장이 일을 잘한다고 칭찬하더군요. 이젠 돌아올 때도 되지 않았나요?”
타이거벤처에서 일하고 있지만 아직 기룡증권 뉴욕지사에서 파견나간 직원이었다.
“앞으로도 조금 더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기회에 아예 회사를 옮기는 문제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강현의 말에 규태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다른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라도 받았나요? “
“아니요. 타이거벤처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정식으로 요청을 드리는 겁니다.”
강 과장의 요청은 규태의 입장에서 보자면 계열사 간의 인사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다행이네요. 유능한 사람을 빼앗기지 않아서 말이에요. 오장우사장님이 인재를 뺏겼다고 아우쉬어 하겠지만 이야기를 해 놓을게요.”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여기 오기 전에 제가 인터넷 벤처투자 디렉터로 인사이동이 있을 거라고 언질을 받았습니다.”
규태가 머리를 흔들었다.
“케서린이 정말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 같네요. 복일모로도 불안해서 강 과장까지 보내다니.”
“이번에 임원들을 모아서 선포를 했습니다. 앞으로 벤처펀드의 주요 투자대상으로 인터넷 기업들로 정하겠다고요.”
“해당하는 회사가 거의....... 아니 아예 없을 텐데요?”
그런 회사가 있다면 당장 규태가 인수해버렸을 것이었다.
“그래서 제가 여기 온 것 아니겠습니까? 축하드립니다. 타이거 벤처펀드 산하 인터넷 벤처펀드의 첫 번째 기업으로 선정되셨습니다.”
“투자를 받지 않겠다고 하면요?”
“케서린 대표가 달려올 겁니다.”
“끄응, 선택의 여지가 없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투자자님.”
“큭! 알겠습니다. 알아서 모시십시오.”
강현과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은 규태가 그제야 한쪽 구석에 멀뚱히 앉아 있는 마크를 보았다.
한 눈에 보아도 엄청난 덩치였다. 막내 녀석이 이를 알면서도 꼼짝도 하지 못하고 당한 것이 이 이해가 되었다.
“마크, 전화로만 이야기하다가 이렇게 정식으로 얼굴을 본 건 처음이죠. 동생 녀석의 일은 고마워요.”
“아닙니다. 생각보다 보수를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후배들도 아주 좋아했습니다.”
“앞으로도 잘부탁해요. 해야 할 일이 많아요.”
***
일리노이대학 공과대학은 미국의 공과 대학 가운데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이름난 명문대학이다.
컴퓨터 공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마크 앤드리슨은 평범한 중산층가정에서 태어나 자라 무난하게 대학에 입학했다.
2학년 때까지만 해도 그저 강의에 들어가서 좋은 학점을 따는 게 목표였다면 3학년이 되니까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아졌다.
기왕이면 졸업하고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컴퓨터에 관련된 기업에 취직을 했으면 싶었지만 또 어떨 때는 아직 배울게 많이 남은 것 같아서 대학원에 진학할까 갈팡질팡하며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마크가 평범한 대학생과 다른 것은 시간이 날 때마다 컴퓨터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작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런 마크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일리노이대 부설 NCSA 연구소였다. 컴퓨터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그가 제일 관심이 많은 인터넷을 편하게 사용할 수도 있었다.
요즘 마크가 제일 관심이 있는 분야는 인터넷이었다.
특히 팀 버너스 리가 만들어 공개한 HTTP는 문자를 기반으로 전송하던 인터넷 서비스들과는 달리 사진과 그래픽, 음성과 동영상을 하이퍼텍스트(Hyper text)라는 편리한 방법으로 전송하고 검색할 수 있게 해준다.
이걸 기반으로 웹 브라우저를 만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작업이었지만 곧바로 커다란 난관에 부딪혀야 했다.
집에서 인터넷을 전화선에 연결해 사용했다가 2,000달러가 넘는 전화요금이 나와서 파산하는 줄 알았다.
“이런! 마크, 오늘도 또 온 거냐?”
“헤헤, 여기가 제일 편해요.”
“대학생이면 처박혀서 컴퓨터나 만지지 말고 여자를 사귀거나 친구들하고 놀아야지. 네가 자꾸 여기 와서 컴퓨터를 만지니까 다른 사람들이 나한테 자꾸 눈치를 준단 말이다.”
에릭 비나는 마크와 친하게 지내는 선배이자 NCSA 연구소의 직원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부설 연구소에 취직한 에릭을 도와서 코딩작업을 해주면서 연구소에서 노는 게 편했는데 주변에서 말이 많아지면서 에릭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잔뜩 기대를 하고 왔다가 시무룩해진 마크의 얼굴을 보며 에릭이 이마를 긁었다.
“너 이번 여름에 인턴을 IBM으로 간다고 했지?”
“예, 마음껏 슈퍼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을까 해서요.”
“거기로 가봐야 마음대로 슈퍼컴퓨터를 사용하지도 못해. 알잖아? 인턴에게 누가 슈퍼컴퓨터를 사용하게 하겠냐?”
“정말 그럴까요?”
한층 더 시무룩해진 마크를 보며 에릭이 자신의 사촌이 들려준 인턴자리를 추천했다.
“차라리 여름에 팔로알토에 가서 인턴을 하면 어떠냐? 내 사촌동생이 스탠포드에 다니는데 거기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턴직원을 뽑는다더라. 너도 거기 가서 인턴을 하면 원하는 대로 컴퓨터를 만질 수 잇을 거다.”
“어떤 회사인데요?”
“나도 정확하게는 모르는데. 엄청난 부자가 설립하는 인터넷회사라고 하더라. 얼마 전에 너하고 얘기했던 엄청난 부자가 나타났다는 소식 말이다.”
평범한 미국인라면 입이 떡 벌어질 많한 소식이었다. 이름 모르는 작은 나라에서 온 젊은 투자자가 세운 회사가 블랙먼데이와 일본의 주식하락에 투자해서 엄청난 자금을 벌었다는 소식.
리만이란 거대 투자은행에 투자해서 기존 경영진들과 분쟁으로 시끄러웠다는 소식은 세상물정에 어두운 마크도 들었을 정도였다.
“그 사람이 왜요? 그사람은 주식에 투자하는 투자자잖아요.”
당시만 해도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 생각하고 넘어갔었다.
“인턴을 뽑는 회사가 그 사람이 세운 회사라더라. 엄청난 부자가 세우는 회사인데 네가 인터넷을 마음대로 하는걸 뭐라고 하겠냐? 이력서 하나 써서 가져오면 동생에게 보낼 테니까.”
“스탠포드 학생들만 뽑는 거 아닌가요?”
“아니 동생이야기로는 능력만 있으면 그냥 뽑을 거라는데. 너도 인터넷이라면 어디 가서 뒤지는 사람이 아니잖아. 보수도 높다니까 한번 지원해봐. IBM 가는 거 보다는 훨씬 나을 거다.”
단순하게 생각해도 돈 많은 부자가 새롭게 시작하는 신생회사라면 여러 가지로 해볼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았다. 에릭의 권유에 못이기는 척 이력서를 써서 제출한 마크는 샌프란시스코 행 왕복비행기표와 면접일정을 통보받았다.
규태는 회사를 설립하고 직원을 채용했다.
정식직원들도 모집을 해서 알바로 채용한 스탠포드 재학생들과 웹브라우저의 개발에 들어갔다. 하지만 나오는 결과물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자신만 믿으라며 잔뜩 큰소리를 쳤던 앤드류 비나도 마찬가지였다.
“이것 참 뭐가 뭔지를 모르겠네.”
큰소리를 치며 회사를 설립하기는 했지만 규태도 웹브라우저에 대해 잘 아는 게 아니었다.
만들어진 웹브라우저를 수도 없이 사용 해봤지만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었다.
그래서 새롭게 개념을 잡는 것에 주력했다. 모집한 직원들과 알바생들은 코딩능력은 뛰어날지 몰라도 인터넷이란 개념에 대해서는 생소했다.
이미 인터넷의 기반은 닦여있었다. 인터넷 통신 프로토콜을 만든 국제인터넷 표준화기구(IETF)에서 만든 TCP/IP가 사실상의 표준이었다. 88년에 연방정부에서 만든 IANA에서는 신청만하면 IP를 부여했다.
다만 회선은 전화선을 이용해서 인터넷을 장기간 사용했다가는 요금폭탄을 맞는다. 일반인이나 학생들이 쉽게 접하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그래서 해답을 가진 것 같은 마크 앤드류의 방문을 규태는 애타게 기다렸었다. 그리고 회사로 면접을 보러 찾아온 마크를 붙잡고 여러 가지를 질문하자 그동안의 의문이 풀렸다.
처음에는 면접이라고 해서 긴장했던 마크였지만 회의실에서 모여서 가볍게 인터넷 이야기를 나누는 수준이라 금방 긴장을 풀었다.
“인터넷이란 게 생소해서 그런지 웹브라우저를 최초로 개발하는 게 어렵 네요.”
규태의 말에 마크가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미 웹 브라우저들은 다수 존재하는데요?”
규태는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게 없으면 어떻게 간편하게 인터넷에 들어가겠어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건 그만큼 쓸 만한 웹브라우저가 나오지 않은 거죠. 다들 텍스트 기반이라서 하나같이 무미건조하고 지루해요. 그래서 제가 생각해낸 게 그래픽 기반의 웹브라우저죠. 하지만 해야 할게 많아요.”
규태가 그제야 손가락을 튕겼다. 어째서 개발해 오는 것마다 마음에 차지 않았는지를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만들어 놓은 웹브라우저가 있나요?”
“여러 가지로 부족한데 대충 프로그램은 짜놓았어요. 제대로 만들려면 시간이 필요해서요. 아직 학생이라 컴퓨터를 제대로 사용하기도 힘들 고요. 컴퓨터로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전화요금이 엄청나거든요.”
전화요금 폭탄을 맞고 하마터면 학교의 등록도 못할 뻔했던 이야기를 하자 규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초창기 인터넷 사용자라면 누구나 하는 고민이자 공포였다.
“만든 프로그램은 어디에 있나요? 한번 봤으면 하는데요.”
“가져오기는 했는데 너무 부족해서.”
망설이는 마크를 채근해서 3.5인치 플로피 디스크에 담아온 프로그램이 동작하는 걸 본 규태가 결정을 내렸다.
“됐습니다. 앤드리슨 회사에 정식으로 입사할 생각 없나요?”
“에엑! 저 인턴으로 지원한 건데요?”
간단하게 인턴으로 지원했던 마크 앤드리슨으로선 깜짝 놀랄 소리였지만 규태는 절대 그를 놓칠 마음이 없었다.
그가 시현한 프로그램은 인터넷 초창기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모자이크의 원형이었다.
“그냥 입사하란 게 아닙니다. 앤드리슨이 웹브라우저를 개발하는 파트장으로 입사하란 소리입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제안이었는지 마크의 반응이 시원치가 않았다.
“학교도 졸업을 해야 하고. 학교를 졸업한 다음에 입사하면......”
그대로 두면 거절하는 대답이 나올까봐 규태가 목소리를 높였다.
“인터넷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내일 뭐가 나올지 모르는 판국에 당신 같은 인재가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재능 낭비입니다. 졸업한 다음에 세상이 바뀌면 그때 가서 후회할겁니까? 시간이 있으니까 잘 생각해 보시고, 되도록 우리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려주세요.”
이미 규태의 옆에서 대화를 듣기만 하던 강현이 마크를 데리고 나갔다.
이미 회사에 절대로 필요한 인재란 신호를 보내주었기에 강현은 마크를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었다.
벤처기업에서 일하기 위해 다니던 학교를 중퇴하거나 휴학하는 일은 비일비재했고 인재 리쿠르트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편이 확률이 높았다.
설령 강현이 설득에 실패한다고 해도 규태는 결코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