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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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시작
91년은 월드와이드 웹(WWW)이 일반에 공개 되면서 거대한 한발을 내민 해였다. 세계의 정보통신망이 연결되는 커다란 사건이었지만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는 방문자들에게는 낯설었다. 이곳을 안내할 안내자인 네스케이프와 야후가 모습을 드러내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규태는 이런 안내자들을 예전보다 빠르게 세상에 내보낼 준비를 시작했다.
대충 일을 마무리는 지은 다음에 나파벨리의 포도밭 집에서 여름까지 머무르려고 했지만 이내 단조로운 생활에 질려버렸다.
자연 속에서 포도가 자라는 모습을 보며 평화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좀이 쑤셔서 산호세의 산타나 로 근처의 호텔을 통째로 빌려서 머물렀다.
서른도 되지 않은 몸은 지루함을 참지 못했다.
산타나 로는 산호세의 고급상점들이 늘어선 거리였다.
아가씨들이 오가는 거리에 앉아서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막혔던 숨통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산호세의 벤처사무실도 들리지 않고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기다리는건 팔로알토의 집이 지어지기를 기다리는것이었다.
공사가 시작한지 반년쯤 되어 저택이 완성되었다.
규태가 머물던 호텔생활을 청산하고 저택에 입주하자 제일먼저 찾아온 사람은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복일모였다.
스탠포드대학의 경제학과에 입학한 복일모는 입학준비로 시들햇던 육체와 정신이 살아난 듯 본래의 활기를 되찾았다.
“여기 진짜 죽이는데요? 넓기도 넓고 프로페서빌의 집과는 많이 달라요.”
프로페서빌은 스탠포드의 교수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가장 뒤쪽은 거주용, 전면에 지어진 건물들은 사무실 용도로 사용하려고 지은 집이니까 다를 수밖에.”
넓은 대지위에 이층으로 지어진 여러 개의 건물들로 이루어진 저택은 집무를 병행하도록 설계되었다.
오래된 나무들로 시야가 가려져서 밖에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본격적으로 시작을 해야지, 네가 할 일이 많다.”
“이젠 본격적으로 시작하시려고요? 본부장님이 여기까지 왔다는 건 역시 인터넷인가요?”
“그래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새로운 땅이 열린 거지. 새로운 대륙이 나타났는데 사람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어. 어떻게 해야겠냐?”
“말뚝 박고 내 땅이라고 표시해야죠.”
양키들이 서부개척시대랍시고 하던 말도 안 되는 무법적인 방법을 떠올리는 복일모를 타박했다.
“너도 여기서 살더니 무식한 거에 물들었냐? “
“다들 그렇게 하지 않나요?”
“말뚝 박으면 누가 알아주기나 하고? 지금은 이제 막 시작한 초초창기야 인터넷이 얼마 전까지 연구목적으로 사용된 건 알지?”
“초기에는 국방과학에 필요한 연구들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했다는 것 정도는 알지요. 그러다가 86년에 미국과학재단이 미국의 연구단체의 슈퍼컴퓨터 사이트에 접속을 제공하고 상용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들도 이합집산을 시작했다던데요.”
나름 공부를 한 모양인지 복일모의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작년부터 상용화의 길이 열렸어. 그런데 이게 안내판이 없어요. 지금도 사이트들은 여기저기서 난립을 하는데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를 몰라. 그럼 안내자가 필요하지 않겠냐? 어디로 가면 여러분이 필요한 정보가 나옵니다! 하고.”
규태의 말에 복일모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겠네요. 나만 해도 필요한 정보를 찾으려면 한참동안이나 헤매야 겨우 하나를 찾을까 말까 하더라고요. 그런 정보들을 안내하는 사이트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죠.”
“바로 그거야.”
복일모의 입에서 규태가 기다리던 정답이 나오자 규태가 소리를 질렀다.
인터넷이 열렸지만 정작 유용한 사이트들은 찾기가 힘들다. 규태가 버럭 고함을 지르자 복일모가 화들짝 놀랐다.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러세요. 깜짝 놀라게.”
“지금 네가 말한 게 정답이라고. 그 사이트를 우리가 만들면 되지 않냐?”
“그런데 그게 돈이 될까요? 사이트를 만드는 것도 그렇고 유지를 하려면 많은 돈이 들어갈 텐데요.”
규태가 복일모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보았다.
“넌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냐?”
“아참 본부장님은 돈만 엄청나게 많으신.......”
“이걸 때려줄 수도 없고. 하여간 네가 할 일은 이렇게 사이트를 만들고 유지할 인재들을 끌어오는 거다.”
“오오! 제가 리쿠르트 담당이 되는 건가요?”
“그래 내가 너를 스탠포드에 넣은 목적이 바로 그거다.”
“그런데요, 헤헤헤······ 저도 한자리 끼어 주실거죠?”
어울리지 않게 간사한 웃음을 웃는 복일모의 머리통을 규태가 후려갈겼다.
“그래 너도 한 몫 끼어주마. 좋은 인재만 긁어와라.”
복일모에게 임무를 맡긴 그 다음날로 케서린 그린이 산호세에서 달려왔다.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달려온 케서린이 규태에게 따져 물었다.
“혼자만 여기서 재미를 본다고 하던데요? 맞나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펄쩍 뛰는 규태를 사냥감을 보는 암사자처럼 노려보던 케서린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든과 내가 자주 연락하는 건 알지요? 이든은 스탠포드의 정보원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이든은 복일모의 영어이름이었다. 그리고 그걸 규태가 어떻게 아는가? 다만 자주 연락을 하고 있다는 것 정도만 알뿐이었다.
“하여간 보스가 미래에 엄청난 돈을 벌 사업들을 혼자서 꿀꺽할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하더군요.”
어이가 없어진 규태가 머리를 긁적였다.
회사를 만들면 당연히 투자를 받을 생각이다. 그 투자자금을 받는 대상은 당연히 타이거 벤처펀드였고.
규태가 이렇게 인터넷 업체를 만들려고 하는 데는 90년대 초반 미국경제의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주식을 해도 재미가 없고 부동산 투자는 미국사람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소니와 미쓰비시, 마츠시타같은 일본자금의 미국투자로 좋지 않은 인식이 박혀 있었다. 큰 보동산 매매에 개입하는 건 최대한 피하고 있는 형국이다.
규태가 크게 뉴욕에서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인터넷 업체의 설립니다. 처음계획처럼 야후의 설립을 기다리고 있기 보다는 아예 직접 회사를 만들고 인큐베이팅 하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인데 케서린이 규태가 자신을 따돌리고 혼자 벤처회사를 만든다는 오해를 하고 달려온 모양이었다.
“내가 설마 케서린을 빼놓고 일을 진행하겠어요. 앞으로 인터넷이란 시장이 엄청나게 커질 테니까. 그걸 미리 선점하자고 생각으로 회사를 만들 준비를 하는 거고. 당연히 타이거 벤처도 나중에는 참가해야지요.”
이런 저런 이유를 설명했지만 케서린 그린은 그런 규태의 해명보다는 다른 쪽으로 관심을 가졌다.
“그런데 보스, 진짜로 인터넷이 그만큼 커질까요? 커진다고 해도 돈을 벌 방법도 없어 보이는데요?”
인터넷 관련기업들이 초창기부터 가지고 잇던 의문부호였다.
그래 인터넷이란 시장이 잘 되고 있고 엄청난 규모로 성장하고 있는 건 알겠는데 어떻게 돈을 벌건 데?
투자자들의 질문에 인터넷 기업들도 여러 가지로 준비를 했지만 정확한 해답은 미래에서 찾아보면 단순했다.
시장점유율을 최대한 높이고 이를 바탕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려면 고통스런 시간을 버텨야 한다.
“초기에는 돈을 벌 생각보다는 점유율을 높여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는 독점적인 제공자가 되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겠어요?”
“역시 돈을 벌려면 독점이 제일이죠. 독점이라? 독점! 후후후, 역시 돈을 벌려면 그게 제일 좋아. 경쟁자들의 씨를 말리고 독점을 한다면 그 다음은 엄청난 수익이 굴러 들어오겠죠. 후후후.”
계산이 빠른 케서린이 규태가 말한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독점을 뇌까리는 케서린을 보는 규태가 등골이 서늘해졌다.
초기 인터넷기업의 재무상황은 턱없이 얄팍했다.
경쟁자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막대한 자금을 뿌릴 수 있는 케서린의 발길을 막아설 사람이 없다.
자신이 잠들어있는 마녀의 마성을 깨운 것이 아닌지를 규태는 잠시 걱정했다.
규태가 떠올린 사업모델은 넷스케이프와 야후였다.
나중에는 인터넷을 시작하려면 당연히 사용해야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넷스케이프는 마이크로 소프트의 익스플로러 끼워 팔기 같은 옹졸한 협잡질로 시장 점유율을 잃고 시장에서 사라지지만 등장은 혁명에 가까웠다.
넷스케이프는 인터넷 웹브라우저를 최초로 개발 히트시킨 기업이다. 넷스케이프를 창업한 마크 앤드리슨은 일리노이대학에 재학하면서 국립슈퍼컴퓨터응용센터(NSCA)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마크 앤드리슨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도중 웹서핑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브라우저를 개발했고 모자이크라는 이름을 붙여 무료로 공개했다.
모자이크는 팀 버너스리가 만든 월드와이드웹(www)을 위해 만들어진 최초의 그래픽 브라우저였으며 인터넷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다. 복잡한 명령어를 몰라도 누구나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때부터 인터넷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걸 국립슈퍼컴퓨터응용센터(NSCA)가 독점하려고 했기 때문에 잘린 마크 앤드리슨이 짐 클라크와 함께 회사를 세웠는데 이곳에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넷스케이프였다.
모자이크가 개발되는 게 93년이다.
모자이크가 만들어지기 전에 규태의 회사가 먼저 만들어서 공개하는 게 목표였다.
***
복일모도 규태에게 임무를 받고 심경이 복잡했다.
규태가 요구하는 능력자를 뽑으려면 역시 공대 쪽으로 가야했는데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복일모가 떠올린 사람은 기숙사에서 그나마 안면이 있던 앤드류 비나였다.
‘그녀석이 전기공학과라고 했었지?’
전기공학과의 강의시간에 맞추어서 찾아간 강의실에서 비나를 발견한 복일모가 아는 척을 했다.
“앤드류 오랜만이야.”
“아! 복, 어쩐 일이야?”
“너 좀 만나려고 왔다. 강의 끝나고 이야기 좀 하자.”
기숙사에 머물 때도 얼굴만 대충 아는 사이였기에 모른다고 하면 어쩌지 하고 고민했지만 얼굴에 철판을 깔고 들이 밀었더니 앤드류도 가볍게 받아주었다.
강의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복일모가 앤드류와 빈 강의실에 마주앉았다.
“그러니까 네 말은 아는 사람이 회사를 만들려고 하는데 인터넷이란 걸 알고 코딩도 잘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지. “
“그래, 바로 그거야.”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회사를 창립하겠다는 소리였다.
“보수는?”
“당연히 최고대우지. 급여도 당연히 최고대우겠지만 능력만 있다면 스톡옵션도 지급할걸. 우리 보스가 쩨쩨한 성격은 아니거든.”
스톡옵션이란 소리에 앤드류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렇다면 잘 찾아왔네. 바로 네 눈앞에 적임자가 있으니까.”
“네가? 너 전기공학과잖아?”
“에헴, 나 원래 코딩전문가야. 고등학교 때부터 날리던 사람이지. 대학도 성적은 조금 떨어지지만 내 경력을 보더니 받아주던걸. 그리고 인터넷이라면 내 사촌이 일리노이에서 대학을 다니는데 몇 번이고 언급해서 익숙해. 그래서 전부터 관심을 가졌는데 네 말대로라면 내가 적임자인 셈이지.”
이건 복일모도 기대하지 못했던 대박이었다.
“주변에 친구들은? 쓸 만한 놈들이 있으면 모아봐. 내가 보스한테 말해서 아르바이트 비용은 최고로 지급할 테니까.”
“그래? 그렇다면 나도 환영이지.”
미국대학의 학비는 엄청나다. 사립대학인 스탠포드의 학비는 제법 산다는 미국가정도 휘청거리게 만들 정도로 비쌌다.
장학금을 받으면 된다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것도 아니고 부잣집 자식이 아니면 대학생은 춥고 배고팠다.
입이 결코 무거운 편이 아닌 앤드류가 친구들을 끌어 모으면서 쓸 만한 알바자리가 있다고 소문이 났는지 복일모에게 자리를 물어보는 학생들이 하나 둘 늘어났다.
나중에는 소문을 들은 경제학과의 동기들도 복일모에게 자리를 청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