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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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디가드 개봉
보디가드는 이전 역사보다 더한 열풍을 만들었다.
허술하고 밀도가 떨어지는 스토리를 보완한 영화전개와 귀를 자극하는 감미로운 주제가는 92년이 되어서도 흥행 열기를 지속했다.
92년의 늦은 봄이 되자 일차적인 흥행결과가 집계 되었다. 결과를 받아든 MGM사장 아이스너는 입이 귀에 걸렸다.
회계를 담당하는 클라크 모리슨이 수익을 확인했다.
“아직 영화가 내려지지 않은 극장이 많지만 지금까지 전 세계 흥행기록이 5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아직 남아있는 비디오 판권이나 부가적인 수입을 생각하면 1억 달러 추가수입이 있을 거라고 예상됩니다.”
MGM에 배분되는 수익은 세금을 제외하고 2억 달러 남짓했다. 당장 현금으로 들어오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동안 실패만 거듭하던 MGM에서 처음으로 메가 히트가 나왔다는 것이다.
3000만 달러를 조금 밑도는 제작비용으로 거둔 엄청난 흥행 성적이었다. 거기에 주제곡을 담아 발매한 휘트니의 앨범도 메가 히트를 기록 6,500만장의 앨범을 파는 돌풍을 일으켰다.
영화와 주제가가 함께 힘을 발휘하며 시너지를 발휘했다. 노래를 듣고 반해서 영화를 보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흔했다.
“휘트니의 앨범에 한발 걸치지 못해서 아쉽군.”
많이 팔아봐야 1,000만장을 예상하고 시작했었다. 가벼운 미풍으로 여겼지만 태풍이 된 격이랄까. 슬쩍 발을 걸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부가수입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깔끔하게 접었다.
“보스가 엄청나게 신경을 쓰고 있지 않습니까. 이정도면 만족할겁니다.”
규태는 MGM의 이사로만 이름을 올려 두었지만 회사의 역학관계를 아는 이들은 다들 보스라고 불렀다.
“어떻게 이 영화를 찍었을까? 대본만 보고 케빈을 찾아갔다고 들었는데 그 대본은 나도 봤는데 영화내용보다 허술했어. 이걸로 영화를 찍는다고 할 때 다들 의아하게 생각했으니까.”
“보스야 오라클 아닙니까? 타이거 펀드사람들은 전부 그렇게 말하던데요. 투자예측이 얼마나 정확한지 나중에 보면 그대로 랍니다.”
그들이 보스라고 부르는 규태는 특이한 행적을 가진 사람이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선택한 영화들이 성공을 거두면 월가뿐만이 아니라 할리우드에서도 오라클이라 부를 것이었다.
“보스가 찍은 다른 작품인 원초적인 본능은 어때? 밀러, 가을에 개봉할 예정이라면서 그러면 내부시사회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디즈니픽쳐스에 있다가 옮겨온 제롬 밀러가 아이스너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
“에로틱 스릴러라고 해서 우습게봤는데 내용이 엄청납니다. 마무리 편집 작업을 보고 있던 캐롤코 담당자도 머리를 흔들었어요. 어떤 등급을 받느냐에 따라서 차이가 있겠지만 R(청불)등급만 받아도 흥행에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 기준에 맞추려고 편집을 손보고 있어요.”
R등급이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다. 17세 미만은 부모와 동행하지 않는 한 관람이 불가했다.
“그렇다면 다행이로군. 보스도 내심 기대를 하고 있던 것 같았는데. 그것만 성공하면 이젠 나도 완전하게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겠지?”
“이번에 미녀와 야수도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하나같이 성공을 거두고 있으니 뒤에서 헐뜯던 놈들도 입을 다물 겁니다.”
“그 놈들이야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마찬가지로 구실만 찾을 거야. 이 바닥에서 잘나가는 사람을 험담하는 건 보통 일이잖나. 내 평판이 올라가면 앞으로 일하기가 쉬워지니까 그 정도면 충분해.”
이제 아이스너의 제작능력을 우습게 볼 할리우드사람은 없었다.
실제로 보디가드의 제작에 다양하게 관여한 규태의 공이 크긴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은 회사의 사장인 아이스너였다.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당연했다. 요즘 할리우드에서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물이 된 아이스너의 얼굴에서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이전에는 우리가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해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사람들도 조금 시선이 변했습니다.”
제롬 밀러의 말이 아이스너에겐 제일 반가운 소리였다.
영화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보여서 제작을 하겠다고 해도 워낙 악명이 높았던 MGM에는 관심을 주지 않던 작가들이 조금씩 대본을 밀어 넣었다.
이번에 개봉할 예정인 원초적 본능까지 흥행에 성공한다면 아이스너는 거물 제작자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게 된다.
이런 자신감은 규태의 사무실에서 보디가드의 결과정산을 위해 모인자리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아이스너의 보고를 묵묵히 듣던 규태가 물었다.
“마지막으로 성과가 나오면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하도록 합시다. 그동안 경영성과가 형편없어서 사기가 많이 떨어졌을 테니까요.”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원초적 본능은 어떻게 진행 되고 있습니까?”
“제작을 모두 끝내고 개봉대기중입니다. 어제 열린 내부시사회에서 엄청난 호평을 받았습니다.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입을 모아서 흥행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제작비의 절반밖에 투자를 하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입니다.”
아이스너가 원초적 본능의 투자지분을 조금 더 확보하지 못한 아쉬움을 드러냈지만 영화를 시작하는 단계부터 발을 걸친 이들이 많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
“이 작품도 최선을 다해서 푸시를 해보세요. 이번 영화도 성공한다면 아이스너 사장님이 원하는 자리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규태의 말은 아이스너가 최고로 듣고 싶어 하는 답변이었다.
“데이비스 사장님은 아쉽지 않나요?”
누가 봐도 이 자리에서 제일 아쉬운 사람은 클라이브 데이비스였다. 휘트니의 새로운 앨범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니 회사를 팔지 않고 손에 쥐고 있었으면 엄청난 성공이 보장되었었다.
“저는 크게 불만이 없습니다. 회사의 지분을 다 판 것도 아니고 일정지분은 챙겨주시지 않았습니까.”
내부사정을 살펴보면 아리스타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여러 명의 대주주들이 저마다 영향력을 발휘하려고 하는 통에 데이비스 사장도 골머리를 썩었었다.
하지만 규태가 아리스타를 인수하면서 대주주들의 지분을 한꺼번에 모두 인수했다.
자신이 가진 지분도 비싼 값에 팔았고 주인은 회사의 경영에 크게 관여 하지 않았다. 경영자로서 이 보다 좋은 환경이 없었다. 거기에 규태의 추가적인 조치들도 제법 효과를 거두었다.
“휘트니는 이제 안정이 됐나요?”
남자친구가 마약소지와 불법무기 소지 혐의로 체포가 되면서 신문을 떠들썩하게 달구었다. 그렇지 않아도 말썽꾸러기로 소문이 났는데 이번 사건은 치명적이었다.
휘트니가 충격을 받을 것에 대비해서 심리 상담사와 변호사를 대기시켰지만 생각보다 담담하게 사태를 받아들였다.
“예전보다는 강해졌습니다. 셀린과 이야기를 많이 하더니 힘을 얻는 것 같습니다.”
가뜩이나 심리치료를 병행하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남자친구의 문제까지 터져서 걱정을 했는데 다행이었다.
“셀린과는 친하게 지내는 모양이로군요.”
“아무래도 서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니까요.”
휘트니는 이미 세계적으로 이름난 디바였지만 셀린 역시 가창력이라면 뒤떨어지지 않은 가수다.
앨범작업을 하면서 서로 교류를 가지더니 제법 친해진 모양이었다.
“그게 휘트니와 셀린의 관계가 거꾸로 입니다.”
다섯 살이나 나이는 많지만 세상물정에 어두운 휘트니가 언니 노릇을 하는 게 아니라 나이는 적어도 똑부러지는 성격에다 적을 만들지 않는 처신이 어릴 때부터 배어있는 셀린이 휘트니를 돌봐주었다.
“보디가드 성공이후로 물밀 듯이 공연요청이 쏟아지는데 그걸 거절하는 게 아쉽기는 합니다.”
하나하나가 엄청난 돈이 들어오는 제안들이다.
“길게 보면 지금 바쁘게 일에 쫓겨 돌아다니는 것보다 지금은 휘트니의 건강을 지키는 게 앞일을 위해서 더 도움이 될 겁니다.”
그냥 내버려 뒀으면 사귀는 남자친구와 결혼하고 가정생활이 요란한 파열음을 내면서 휘트니의 몸과 마음이 망가진다.
휘트니가 중요한 자금줄인 예전의 아리스타였다면 스케줄을 강행했겠지만 지금 주인인 규태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벌어들이는 돈은 푼돈에 불과했다.
건강하게 살면서 앨범을 내도록 하는 게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보다 이익이었다.
“그리고 아리스타도 마찬가지입니다. 앨범의 정산이 끝나면 보너스를 지급하도록 합시다. 짜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파격적인 안을 한번 만들어 보세요.”
규태의 말에 데이비스사장이 미소를 지었다.
***
셀린의 첫 번째 영어앨범인 '유니슨(Unison)‘이 발매되어 100만장의 판매를 달성했다. 첫 번째 싱글이 빌보드 싱글차트 35위까지 올랐고 또 다른 곡인 지금 내 심장은 어디에서 뛰는가(Where Does My Heart Beat Now)가 빌보드 4위까지 오르며 영어권시장에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을 세계에 각인시킨 것은 미녀와 야수의 주제곡이었다. 미녀와 야수가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으면서 셀린의 이름이 사람들의 뇌리에 기억되기 시작했다.
성공적인 안착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규태나 셀린 모두 아쉬움이 남았다.
“남들의 눈에는 첫 번째 앨범판매량이 성공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정도는 만족스럽지 가 않아요.”
“나도 동감입니다만 너무 아쉬워하지는 말아요. 이제 막 시작했으니까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지요. 그걸 의논하려고 찾아왔습니다.”
“다음 계획이라면 어떤 건가요?”
“셀린의 장점은 누가 뭐라고 해도 음색과 노래에 감정을 싣는 힘입니다. 그래서 흥행할 영화의 주제가를 부르는 작업을 한 번 더 하면 어떨까요?”
규태가 생각하는 셀린의 가장 커다란 강점은 뛰어난 호소력이다. 영화의 주제가를 부르기에 알맞은 음색과 목소리를 가졌다.
그녀의 최고 히트작인 타이타닉의 주제가 My Heart Will Go On을 들어보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였다.
“어떤 영화인가요?
“내년에 디즈니에서 개봉할 알라딘이란 작품이 있습니다.”
“그 영화가 미녀와 야수 정도의 성공을 거둘까요?”
미녀와 야수는 전 세계에서 인어공주의 흥행기록을 넘는 2억 5천만 달러가 넘는 박스오피스를 기록했다. 하지만 다음 작품인 알라딘은 그 기록을 가뿐히 깨고 5억 달러에 가까운 수익을 거둔다. 이후에 캐릭터 상품 판매 같은 파생상품의 판매량을 따지자면 더 엄청난 수입을 거두게 된다.
“그 이상일겁니다. 장담하지만 이번에 성공한 보디가드의 흥행정도의 성공을 거둘 겁니다. 휘트니처럼 영화의 주제곡과 함께 몇 곡을 추가로 준비해서 앨범을 내도록 하지요. 그리고 그 다음 앨범도 준비를 해 나갑시다.”
개인적으로 친해지기는 했지만 휘트니의 성공이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 이었다.
규태의 입에서 보디가드와 비슷한 성공이란 말이 나오자 셀린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보디가드의 성공으로 휘트니를 찾는 이들이 더욱 늘었지만 휘트니는 조용히 칩거하면서 심리 상담과 치료를 병행했다.
어느 정도 건강을 추스른 휘트니가 강력하게 희망해서 월드투어의 시작은 뉴욕의 타임스퀘어에서부터였다.
광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을 향해 보디가드의 주제가 I will always loving you를 열창하는 휘트니의 건강해진 얼굴을 바라보며 규태는 미묘한 감상에 휩싸였다.
휘트니를 사랑하는 팬의 한사람으로서 그녀가 이대로 건강하게 탈 없이 나이를 먹고 나서도 가수생활을 이어가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