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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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디가드 개봉
규태의 입장에서 아리스타의 인수는 시작에 불과했다. 영화제작사와 함께 콘텐츠의 양대 산맥이라면 역시 음반사의 소유였다.
살만한 음반사를 둘러보았지만 지금은 음반 산업의 전성기였다. 기다리면 가격은 점차 떨어진다. MP3의 개발로 음반이 팔리지 않는 시절이 오면 저절로 가격이 떨어진다.
비싼 값을 주고 음반사를 사느니 아직 유명하지 않은 음반사제작사들을 모아서 키우는 것도 즐거운 재미였다.
휘트니의 소속사인 아리스타의 인수 작업을 하면서 떠오른 이름이 있었다. 셀린 디온.
원래 캐나다에서 태어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가정에서 자란 셀린은 프랑스에서 먼저 성공해서 유명해진다. 프랑스어 시장의 크기에 한계를 느껴 영어앨범을 발매, 빌보드 차트에 올리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는데 이상하게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급하게 해롤드의 정보팀을 동원해서 알아보니 에픽 레코드와 계약을 눈앞에 뒀다고 들었다.
펄쩍 뛴 규태는 얼른 셀린의 거처를 알아내고는 달려갔다.
규태는 셀린의 매니저인 르네 안젤린과 마주하고 협상을 시작했다.
“셀린이 에픽과 계약했습니까?”
“아직 이요. 하지만 조만간 계약할 예정입니다.”
계약하지 않았다는 소리에 규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달려오는 비행기 안에서 얼마나 노심초사를 했는지 모른다.
“에픽이랑 말고 저희랑 하시죠.”
“그건 곤란합니다. 이미 대략적인 이야기가 끝나서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됩니다.”
“에픽이 어떤 조건을 제시했는지 모르지만 그 이상의 최고의 조건을 보장하겠습니다.”
“.......최고의 조건이라면? 어떤 종류의 조건입니까?”
“원하는 것은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제시하는 계약금부터 저쪽의 조건과는 전적으로 다를 겁니다.”
르네 안젤린도 약속을 잡고서야 규태의 정보를 알아보았다. 눈앞의 상대는 돈 많기로 유명한 월가에서 소문난 부자였다. 그의 입에서 나온 소리를 결코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협상에 들어가서 규태가 내민 조건을 본 르네 안젤린이 입을 떡 벌렸다.
셀린을 위한 자체적인 레코드사의 설립과 안젤린의 사장 취임, 5장의 앨범 취입, 거기에 프랑스어 앨범의 발매는 전적으로 안젤린과 셀린의 입장을 존중하고 계약금으로 2,000만 달러를 지급한다는 조건이었다. 완전히 셀린을 대스타로 대접하는 계약조건이었다.
셀린의 계약에 대한 전권은 눈앞의 매니저인 르네 안젤린이 가지고 있다. 그만큼 르네 안젤린을 셀린이 믿고 따랐다.
규태는 르네를 계속 설득했다.
“이미 셀린은 프랑스어권에선 대스타가 아닙니까? 어설픈 신인처럼 대우한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신생 레코드사라 앨범을 만들고 광고가 부족할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내가 여기저기 방송에도 아는 사람이 많아요. 안되면 CBS에 특별 쇼라도 만들어 줄게요.”
에픽에서 내민 조건도 나쁘지 않았지만 규태가 내민 조건들은 전부가 르네 안젤린의 마음이 쏙 들었다.
점점 열정적으로 미국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셀린의 미래를 그려내는 규태와 대화를 지속하면서 르네 안젤린의 마음은 조금씩 움직였다.
셀린과 함께 만난 자리에서 규태는 적극적으로 그녀의 팬인 것을 어필했다.
그녀가 프랑스에서 발매한 노래들을 언급하자 셀린의 얼굴도 밝아졌다.
프랑스어에 능통한 규태가 프랑스어로 대화를 하기 시작하자 한결 이야기 전개가 부드러워졌다.
미국에 진출하기 위해 영어를 배웠지만 아무래도 셀린은 프랑스어로 이야기 하는 게 편했다.
“그럼 제가 디즈니의 주제가를 부른다는 말인가요?”
“예, 그게 이름을 높이는 가장 빠른 길이니까요.”
이 시기부터 디즈니는 만드는 만화영화마다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하는 기염을 토했다. 주제가를 부를 수만 있다면 당연히 환영이다.
“제가 디즈니의 대주주중 한명입니다.”
“어머나!”
화들짝 놀라는 셀린에게 규태가 쐐기를 박았다.
“이번에 상영할 예정인 작품은 미녀와 야수를 만화영화로 만든 작품인데 주제가를 셀린이 부르면 좋을 것 같네요.”
셀린에겐 그 어떤 조건보다도 강력한 조건이었다.
다잡은 먹이를 눈앞에서 놓친 에픽이 투덜거렸지만 규태는 코웃음을 치며 넘겼다. 이 바닥은 먼저 계약하는 놈이 승자다.
셀린이 계약서류에 사인하는 것을 바라보며 규태는 정말 오랜만에 기분 좋은 만족을 느꼈다.
남들이 보기에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셀린을 영입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말 많고 탈 많은 미국 연예계에서 셀린만큼 탈 없이 조용한 삶을 산 사람도 드물다. 어릴 때부터 가정교육을 잘 받기도 했지만 흔들릴 때마다 잡아주는 정신적인 지주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매니저로 나선 르네 안젤린은 그녀를 어린 시절부터 발탁하고 키워온 장본인이었다. 퀘벡의 음반제작자였던 르네는 셀린의 재능을 알아보고 프랑스로 건너가 앨범을 내고 스타로 키웠다. 프랑스에서 알아주는 스타가 된 그녀가 미국진출을 원하자 다시 미국으로 건너온 것이다.
아리스타 레코드 인수를 마치고 셀린의 새로운 음반사인 디온 레코드의 설립까지 마무리한 규태는 준비한 작업을 시작했다.
휘트니의 심리치료를 위해서 상담사를 고용하고 빡빡하게 밀려있던 스케줄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어차피 휘트니는 보디가드의 성공으로 값이 한 단계 더 오른다.
보다 신경을 쓴 것은 휘트니의 싱글앨범이다.
보디가드의 주제가인 I will always loving you는 전 세계적으로 4,000만장이 넘게 팔린다. 여기에 두 세곡 정도를 미리 준비해서 더욱 많은 앨범을 팔도록 하는 게 주요했다.
그럼 아리스타를 비싸게 인수한 가격은 충분히 뽑는다.
앨범을 준비하는 셀린을 디즈니와 연결해 미녀와 야수의 주제가를 부르는 것까지 처리를 하고 나니 봄이 왔다.
기대했던 것처럼 동생은 무난히 UCLA에 합격을 하고 가족들은 한국으로 돌아갔다. 아쉽기는 했지만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해마다 겨울이면 로스앤젤레스에서 가족들이 모이기로 정했다.
***
이라크전이 끝이 났지만 구멍 뚫린 미국정부의 재정은 바닥이 났다. 이걸 어떻게 메울지를 가지고 설왕설래했지만 규태에겐 전혀 상관없는 일.
오히려 리만의 기업공개(IPO)업무에 구멍이 뚫렸다는 게 더욱 큰일이었다. 리만의 회장인 레온 헤스가 찾아와 돌아가는 정황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를 했다.
“이거 의도적인 거 맞죠?”
기업공개를 하면서 주관사로 나서는 일에 리만은 번번이 물을 먹었다. 주관사로 결정될듯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파기가 된 것이다.
“돌아가는 정황이 그렇습니다. 월가의 회합에서도 따돌림을 당하고 있습니다.”
리만이 월스트리트에서 주류에서 밀려나 아웃사이더가 되었다는 소리였다.
규태가 가소롭다는 생각에 코웃음을 쳤다.
“누가 봐도 유대인 네트워크가 작동한 것 같은데요.
“거기에 일본자금들의 견제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회사의 자금사정은 어떤가요?”
“자금은 일본의 주가하락을 예측한 투자에 성공해서 여유가 있습니다.”
투자은행의 영역이 다양하지만 한곳에만 집중되면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한다. 레온의 걱정을 이해는 하지만 미래를 아는 규태가 존재하는데 굳이 저들에게 무릎을 조아리며 애걸할 필요는 없었다.
저들이 원하는 것은 규태가 위기감을 느끼고 순순히 자신들의 결정에 따르도록 만드는 것이다.
“기업공개 업무는 실리콘 벨리의 타이거 벤처와 협력을 강화하도록 하지요. 어차피 리만도 기술주에 대한 투자에 집중해야 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기술주의 성장에 투자를 할수록 많은 수익을 거둘 테니까요. 기존에 나스닥에 상장된 기술주에도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고 상장예정인 기업들도 지분을 확보하세요.”
“그 정도로 될까요?”
기술주의 성장가능성을 모르는 레온으로서는 당연한 걱정이었다.
“기술주는 해마다 주가가 100%이상 성장합니다. 해가 지날수록 그 성장이 가속되면 가속되지 결코 퇴보하지 않을 겁니다.”
기술주가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는지 아는 규태의 단언에 레온도 슬그머니 마음을 놓았다.
“그렇게 성장만 한다면야.”
“지금처럼 다른 투자은행들이 담합을 하고 온갖 짓을 다해도 기술주에 집중 투자하는 리만의 성장을 다른 투자은행은 따라 오지 못합니다. 석유와, 군수기업의 성장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릴 수밖에 없으니까요. 고객에게 수익을 가져다준다면 리만을 이용하는 고객이 늘어나면 늘어나지 줄어들지 않을 겁니다.”
투자은행의 제일 덕목은 수익이다. 이용하는 고객들이 만족할만한 수익을 거둔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얼굴 가득 근심을 달고 규태를 찾아왔던 레온이 해답을 찾은 얼굴로 돌아갔다.
리만까지 첨단주매수에 적극개입하자 마이크로 소프트의 주가가 빠르게 올라갔다. 그리고 주가가 100달러가 넘자 1대 2의 주식분할이 이루어졌다.
‘이건 원역사보다 빠른데 확실히 매수세가 받혀주니까 주가가 훨훨 나는구먼.’
***
보디가드의 촬영이 끝나고 편집까지 마무리가 되었다. 연락을 받고 MGM의 시사실에 들린 규태는 영화를 보고 박수를 쳤다.
함께 한 루드와 아이스너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영화흥행이 되겠는데? 생각보다 스토리가 잘나왔어, 영상도 나쁘지가 않고 음악도 좋아.”
“영화음악이 아주 좋은데요.”
평가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잔뜩 긴장했던 영화감독 믹 잭슨도 호평이 거듭되자 그제야 안도했다.
“감독님, 수고했어요. 어때요 아이스너 이정도면 밀어줄만하죠?”
배급을 어느 정도나 밀어붙일지는 아이스너의 마음에 달렸다.
“최대한 밀어보지요. 영화관을 몇 개나 잡게 될지 모르겠지만 총력을 기울여야겠습니다.”
아이스너의 입장에선 이번 영화는 커다란 분기점이었다. 그동안 자잘한 영화들이 개봉되었지만 큰 흥행을 맛보지 못했다.
보디가드는 그가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제작에 참여한 첫 번째 작품이다.
아이스너의 확언에 시사회장의 분위기가 더욱 밝아졌다.
자리를 같이 한 아리스타의 사장 클라이브도 어째서 규태가 보디가드의 주제곡을 중심으로 앨범을 준비시켰는지를 깨달았다.
그가 봐도 이번 앨범은 대박이었다.
주제곡인 I will always loving you에 추가로 다섯 곡을 준비한 앨범이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다면 적어도 천만장이상은 팔수 있다는 생각에 그의 얼굴도 덩달아 밝아졌다.
추수감사절에 개봉한 보디가드는 예상대로 파죽지세로 극장점유율을 넓혀갔다. 경쟁 작들도 상당했지만 워낙에 보디가드의 기세가 높아서 미국 어디를 가나 주제곡인 I will always loving you가 흘러나왔다.
빌보드 차트도 단숨에 1위에 올라섰다.
91년의 미국의 겨울은 보디가드가 점령해서 조금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물결은 점점 해외로 번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