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68화 (68/220)

#068

선호작품 등록/취소

알림 등록/취소

가족들의 미국방문

애초에는 조용하게 보내려던 연말이었지만 가족들이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계획이 물 건너갔다. 전용기가 있으니 큰 부담 없이 가족들이 미국에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게 좋았다.

장시간의 비행으로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의 건강이 걱정되었지만 비행기에서 내린 모습을 보니 걱정을 내려 놓을 수 있었다.

공항에서 가족들과 오랜만에 해후한 규태가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큰아들이 보낸 번쩍거리는 자가용비행기를 타고 온 것도 어깨가 으쓱했지만 로스앤젤레스의 벨에어 저택에 도착한 김상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기가 네집이냐? 여기 방이 몇 개냐? 이건 집이 아니라 궁궐이네 궁궐.”

TV에서 보던 대문열고 차를 타고 한참을 지나야 저택이 나오는 정도의 크기는 아니지만 어지간한 저택은 압살하는 크기였다.

“오빠, 여기가 거기야? 그 뭐더라? TV에 로스앤젤레스 고등학생들 나오는 프로그램?”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온 여동생 미려가 호들갑을 떨었다. 머리털 나고 처음 오는 외국인데다가 자가용 비행기까지 타고 왔으니 기분이 하늘로 둥둥 떠다니는 듯 몽롱해 보였다.

“비버리 힐스의 아이들? 그게 벌써 한국에서도 방영을 하나?”

“맞아! 그거. 여기가 거기야? 지나오면서 보니까 주변에 엄청난 저택들밖에 안보이네?”

“그건 밑에 동네. 여긴 고급주거지라서, 여기서 차타고 가면 금방이다.”

“아하! 그렇구나.”

그제야 이해가 됐는지 고개를 끄덕이던 여동생은 저택으로 들어서자 맞이하는 집사의 모습에 다시 눈을 크게 떴다.

각자 방에서 짐을 풀고 집 구경을 한다고 호들갑을 떠는 가족들을 이끌고 집을 한 바퀴 돌고 난 규태가 한숨을 돌렸다.

집이 워낙 커서 한 바퀴 도는 것도 일이었다. 특히 테니스 치는 걸 좋아하는 아버지는 집안에 있는 테니스 코트에 꽂혀서 한참을 머물렀다.

여동생과 어머니는 넓은 거실 창으로 멀리보이는 풍경에, 할머니는 잘꾸며진 정원 옆에 지어진 천장이 유리로 덮인 온실을 좋아하셨다.

식구들이 집을 마음에 들어 하니 규태가 속으로 흐뭇했다. 비싼 돈 주고 산 집이 이제야 제대로 값어치를 한다고 느꼈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를 오가는 규태가 이용하는 저택이래 봐야 침실과 거실, 식당, 일하는 서재정도가 고작이었다.

날이 좋으면 정원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서류를 보는 정도가 전부였다.

저녁식사까지 맛있게 마치고 가족들이 거실에 모여 앉았다.

그동안 궁금한 게 많았는지 다들 규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예 할머니는 오랜만에 보는 장손인 규태의 옆에 앉아 손을 잡고 놓지 않으셨다.

“당최 적응이 안 된다. 네가 이번에 큰 은행을 인수했다면서? 아주 한국은 난리다 난리야. 장관하고 도지사가 나한테 찾아오고, 어이구! 손을 벌리는 놈들은 어떻게나 많은지.”

“나한테도 들러붙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그래도 네 외갓집에 가면 내 어깨가 저절로 으쓱해진다.”

“나도 그래, 친구들이 자꾸 전화해서 오라비를 소개해 달라고 난리야.”

여동생이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래도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는게 다행이었다.

“그러니까 추운 겨울동안은 여기서 지내세요. 할 일 없는 태진 녀석을 가이드로 여기저기 구경도 다니시고요.”

“그래, 여기 날씨도 좋으니 그러면 되겠다. 여기는 겨울인데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다면서 어머니가 지내시기에 좋은 겨울날씨로구나. 태진이도 성적이 잘나왔다면서?”

“네 저한테 주립대는 들어간다고 자랑을 하던데요.”

“네가 고생했다. 그 녀석 언제 사람이 되나 했는데. 그런데 진짜로 네 재산이 방송에 나온 대로 그러게 많은 거냐?”

어지간히도 한국에서 호들갑을 떨어대는 모양이었다.

“저도 한국방송을 못 봐서 정확하게는 말을 드릴 수 없지만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되요.”

“어머머, 세상에!”

비행기를 타고 온 여파로 피곤해선지 말을 많이 하지 않던 모친의 입이 다다닥 열렸다.

“그게 네 재산이 한국 정부예산의 3배라던데! 그게 사실이라면 도대체 얼마나 엄청난 거니!”

“그 정도는 되겠죠. 한국 정부예산이 달러로 따지면 300억 달러 정도 될 테니까요.”

한국경제가 아직 충분히 성장하지 않은 단계라 그 정도는 이번에 인수한 리만의 시총보다도 작았다.

“어이구 그게 나는 얼마인지 상상도 되지 않는구나.”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려는 듯 아버지가 머리를 휘휘 내저었다.

“간단해요. 돈이 아무리 많아도 뭐합니까. 가족들이 건강하고 탈 없이 살면 그뿐이죠. 지금처럼만 살면 되요. 그리고 한국에 재단 만든거 있잖아요.”

“그래 내가 이번에 중학교 하고 고등학교를 만들었지. 설립허가가 나지 않아서 조금 애를 먹었는데 이번에 아주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더구나.”

학교재단을 만드는 일도 이권에 속하는 것이라 허가조건이 까다로웠다. 하지만 규태의 재산이 밝혀진 후로 까다롭게 구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거기에다가 장학재단을 확장했으면 하는데요.”

규태의 제안에 부친도 반색을 했다.

“나쁜 생각은 아니다. 돈을 많이 벌었으면 그만큼 사회에 환원도 해야지.”

“1억 달러 아니다. 그게 한국 돈으로 800억이 조금 넘으니까 아예 1,000억 원 정도로 장학재단을 크게 키워서 그걸로 시작을 해보지요. 학교법인은 아버지가 일하시니까 이건 어머니가 다시 나서시는 게 어떨까요. 요즘 바쁜 일도 없잖아요. “

“내가 무슨······ 집에서 살림만 하던 사람이야. 네가 한국에 만들어 놓고 간거 내가 처음에 운영했지만 크게 할 일도 없고 이젠 손에서 놨다.”

어머니가 손사래를 쳤다.

“재단이 커지면 일을 하는 건 밑에 전문가들을 두면 되요. 어머니가 하는 일은 그 사람들이 일을 잘하는지만 살펴보면 되는 겁니다. 어머니도 아시잖아요. 겉으로는 장학재단이라고 만들어 놓고 뒤에서 딴 짓들 많이 하잖아요.”

심심치 않게 드러나는 게 장학재단이나 복지재단의 불법적인 행동이었다. 규모가 커지면 이를 노리는 이들도 많아질 것이다.

“그래 신문하고 방송에서 보여주는데 진짜 문제가 많더라. 무슨 재단의 돈을 자기 돈이라고 생각을 해서 뒷주머니를 채우는건지. 네가 만드는 장학재단이 그런 꼴이 되는 건 죽어도 못 보지.”

처음에는 내 주제에 무슨 이라며 뒤로 발을 빼던 어머니가 규태의 설득에 분연히 나섰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나서서 감독 좀 해주세요.”

규태의 어머니인 남순자 여사는 숫자에 대한 것이라면 천재에 가까운 분이셨다. 한번 읽은 숫자는 결코 잊어버리지 않았고 나이를 먹은 지금도 어지간한 계산은 전부 암산으로 계산했다. 중학시절에 몸이 좋지 않아서 결석을 밥 먹듯이 했음에도 명문여고에 턱하니 합격한 재원이었다.

조금만 공부하면 재단의 예산을 처리하는걸 크게 어려워할 분이 아니었다. 그때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여동생이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오라비, 나는?”

“넌 아버지 일을 도와드리고 있잖아.”

“거긴 나이 많은 어른들이 많아서 난 좀 그래. 이번 기회에 나도 엄마가 하는 장학재단으로 옮길래.”

하긴, 규태가 여동생의 말에 납득을 해 고개를 끄덕였다. 여동생이 상대하는 사람들은 학교의 교사들이 대부분, 학교라는 게 젊은 사람보다는 나이 먹은 양반들이 더 많은 법이다.

“그래 그러렴. 아버지 괜찮지요.”

딸아이가 함께 일을 하다가 빠지겠다니 아쉬워는 했지만 김정웅도 순순히 딸의 의사를 존중했다.

“미려가 가면 아쉽기는 하지만 지가 편하다면야. 할 수 없지.”

“와아! 만세! 엄마, 그럼 이렇게 하자. 내 생각에는 말이지······.”

여동생이 어머니를 붙잡고 조잘조잘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는 소리를 들으며 가족들이 모두미소를 지었다.

다음날 집으로 찾아온 막냇동생을 보고 서재에서 읽고 있던 서류를 한쪽으로 미룬 규태가 혀를 찼다.

“죽지는 않았구나. 어제같이 가족들이 미국에 오는 날에 맞춰서 재깍 찾아왔어야지. 이제야 기어들어와?”

가족들과 인사를 마치고 형이 일하는 서재로 찾아온 막냇동생 태진이 형에게 투덜거렸다.

“아! 진짜 빨리 말을 했어야지. 여행 갔다가 급하게 돌아왔잖아.”

목을 조이던 시험이 끝나자 그동안 사귄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 태진이었다. 캠핑카를 렌트해서 못 가본 곳을 샅샅이 훑겠다며 나선 길이었다.

갑작스런 가족들의 미국방문 소식에 친구들을 두고 혼자서만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것이다.

태진은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인사도 하고 원서를 집어넣은 대학들까지 설명한 끝에 기운이 빠져버렸다.

“어디어디 넣었냐?”

“진짜 두 번 말해야 하니 정말 힘드네. UC 버클리, UCLA하고 UC샌디에고, 셋중에 UCLA가 진짜 목표야. 경제학과에 넣었는데 긍정적이라던데.”

“네가?”

규태는 깜짝 놀랐다. UCLA는 노벨상을 수상한 인물을 다수 배출한 명문대학이다. 서부지역에서는 스탠포드나 버클리에 버금가는 명성을 지닌 학교였기에 동생의 학업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나를 뭐로 보는 거야? 성적 잘나왔다니까? SAT가 1450이야.”

진짜 기대이상의 성적이 나왔기에 규태가 감탄을 했다. 그래도 그렇지, UCLA는 대도시에 위치해서 지원자가 많기로 유명했다. 경쟁률이 높아서 성적이 좋아도 쉽게 합격을 장담하기 힘들었다.

“경쟁률이 엄청나게 치열할 텐데?”

“그게 내가 타이거 벤처에서 인턴을 했던 경력을 적었거든. 타이거 벤처펀드가 그 바닥에선 제법 유명한가 보더라. 그리고 자기소개서에 가족사항으로 형 이름을 적어 넣었거든. 이게 진짜라고 마크가 그러더라고. 형 동생이라면 그냥 합격이라고 그러던데. 나보고 스탠포드에도 지원하라고 얼마나 꼬시던지,”

“.......”

규태가 할 말을 잃었다. 태진도 쑥쓰러운지 고개를 돌려 딴청을 피웠다.

미국의 대학들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입학생이 얼마나 대학의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느냐였다. 입학성적 만큼이나 중요한 서류가 자기소개서다.

명문 가문출신들이 학업성적이 나쁘지 않으면 명문대학 입학이 어렵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규태의 이름이 유명하지 않았을 때야 동생의 대학입학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이젠 미국사회 여기저기 이름이 널리 퍼진 상태였다.

엄청난 부호의 가족이고 거기에 친동생이라면 대학도 얼씨구나 하고 입학허가를 내줄 것이다.

리만 인수를 위해서 여러 가지 작전을 펼쳤는데 생각하지도 못한 후폭풍이었다. 이것도 동생의 운이라면 운이다.

“그럼 스탠포드에도 지원을 하지 그랬냐?”

“거기 들어갔다가는 공부에 찌들 것 같아서, 스탠포드가 어지간히 사람을 잡는다고 하더라고.”

정말 막냇동생다운 대답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