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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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태 영웅이 되다
「흑막의 세력, 블랙먼데이로 막대한 이익 챙겨」
「누가 블랙먼데이로 돈을 벌었는가?」
「특종! 블랙먼데이 고의사고. 아니면 음모? 막대한 이득을 거둔 자는?」
황색언론에서 시작한 의혹제기는 점차 불꽃을 키워 메이저 언론까지 다루는 주제가 되었다.
블랙먼데이로 재산을 잃고 허드슨 강물의 수온을 체크하는 막바지까지 밀렸던 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
이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자신의 돈과 재산을 강탈해간 자가 누구인지를 신문을 통해 알아내려는 듯 이목을 집중했다.
신문기사의 내용은 블랙먼데이로 천문학적인 부를 획득한 규태를 이 모든 사태를 기획하고 실행한 음모가로 그려냈다.
최초로 기사를 올린 작은 지방지는 초유의 판매량에 올렸고 많은 판매량은 점차 더 큰 일간지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대단한 흑막이 존재해서 블랙먼데이를 일으켰고 막대한 이익을 거두었다는 소설에 가까운 뉴스를 내버려 둔다면 미국을 뒤흔들며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채 규태를 덮칠 것이다.
애초부터 그런 계획으로 시작된 뉴스 질이었으니 말이다.
넋을 놓고 있었다면 꼼짝도 하지 못하고 규태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끝낸 상태.
그동안 호구처럼 여기저기 퍼주며 방송국의 인수합병에 나선 것이 이런 공격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쯔쯔, 이거 참 고전적인 수법이네요. 창의성이 없어요. 창의성이.”
신문 헤드라인을 읽으며 규태가 혀를 찼다.
기사들의 상당수가 겉보기에는 그럴싸한 내용이지만 안의 알맹이는 형편없었다. 그저 막대한 돈을 벌었으니 그놈 잘못이라는 투였다.
하지만 자극적으로 사람들의 분노를 이끌어내는 효과는 충분했다.
“대표님 그렇게 말씀만 하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자칫하면 난리가 납니다.”
타이거 펀드의 홍보담당인 제프리가 진땀을 흘렸다.
처음 기사를 발견하고는 얼마나 놀랐던가? 다급하게 대응책을 마련하려고 달려왔건만 이를 대하는 규태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이런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면 됩니다. 우린 차분하게 리만의 주총이나 준비하면 되요.”
언론을 통해 흔들고 뒤이어서 검찰과 국세청의 순서를 털어대겠다는 수법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다. 이걸 이기려면 여론전에서 밀리면 안 된다.
“예, 전문가요?”
회사에 자신 말고 다른 홍보 전문가가 존재했던가? 의문이 담긴 제프리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규태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있어요. 그런 전문가가, 지금쯤은 시작을 했겠네요. “
CBS의 인수합병이 이루어진 후 열린 첫 번째 회의에서 루드 터너는 열변을 토해냈다.
“일본투자의 성공스토리, 이 얼마나 멋있습니까. 지금까지 일본인들의 자본 침공에 당하기만 한 미국의 투자자가 일본의 주가붕괴를 예측하고 막대한 이익을 거두었다! 정말 듣기만 해도 멋지지 않습니까? 젠장, 말하는 내 가슴이 다 웅장해지네. 당장 이걸 헤드라인으로 올려! 그리고 블랙먼데이로 막대한 이익을 거두었으니 타이거펀드를 어둠의 흑막이라고 하는 삼류신문이 있던데 그런 걸 깡그리 깔아뭉개버릴 기사도 하나 만들어 봐요. 여기는 자본주의의 나라인 미국이야. 정확한 예측으로 막대한 수익을 거두었으니 흑막이란 공산당 같은 발상은 어디에서 나오는 거야? 그것도 한번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리만 말이야 거기 회장 조 클레인이 막대한 투자손해를 보고서도 엄청난 급여를 받아갔다면서 이것도 파봐.”
“예, 대표님.”
루드 터너의 성미를 알고 있는 CNN의 직원들은 군말 없이 루드의 명령을 수행하러 달려갔지만 이제 막 터너의 회사에 인수를 당한 CBS직원들은 입장이 달랐다.
“이건 불공평한 지시입니다.”
감히 자신의 명령에 반기를 든 멀끔하게 생긴 직원을 가상하게 바라본 루드가 물었다.
“그래 자네 이름이 뭐라고?”
“CBS의 뉴스 책임자인 빌리 호일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명령은 너무 일방의 편을 드는 지시입니다. 언론은 정확한 사실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부당한 지시는 따를 수 없습니다.”
“OK, 너 해고야.”
간단하게 뉴스 책임자의 목을 날려버리는 지시에 회의실이 서늘하게 얼어붙었다.
“이건 부당합니다. 고소하겠습니다.”
“부당하긴 뭐가 부당해 내가 주는 월급 받으면서 적의 편을 들겠다는데 내가 가만히 있어야 겠나. 뭐해 저거 쫒아내지 않고. 아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하자면 자네가 나를 고소하던지 말던지 상관없는데 내 눈에 다시 자네가 보이면 그땐 인생 완전히 바닥까지 내려가게 만들어주지. 웨일린 비비치 알지? 자네 아내도 이 이름을 알는지 모르겠어. 이거 말고도 여러 건이 있던데 뉴스 책임자가 주둥아리만 잘 놀리면 되지 밑에 거 함부로 쓰고 다니면 어떻게 하나!”
방송국 책임자자리까지 올라가면서 뿌린 씨가 많았던 빌리였다. 미리 인수할 회사직원들의 비리를 캐보는 건 기본중의 기본.
그렇지 않아도 잘라야할 명단의 상위권에 놓인 놈의 반항을 곱게 넘길 리가 없는 루드였다. 루드의 말에 찍소리도 못하고 경비에게 끌려가는 그를 보며 남은 CBS직원들이 마른 침을 삼킬 때 루드의 말이 이어졌다.
“방송국의 주인이 바뀌었으니 말은 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대대적인 인사가 있을 예정입니다. 이번 일을 하는걸 봐서 인사 결정을 내리도록 하지요. 알겠습니까?”
말을 안 들으면 그대로 잘라버리겠다는 협박이었다. 저절로 대답에 힘이 들어갔다.
“예, 알겠습니다.”
CBS뉴스를 지켜보던 루드의 이마가 팍하고 찌푸려졌다.
“저걸 뉴스라고 내보내는 거야? 조금 더 자극적으로 내용을 꾸며보란 말이야. 내용은 보내 줄 테니까. 시청하는 사람들이 KT가 저절로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고 느끼도록 뉴스를 만들어 보란 말이야.”
밋밋한 내용을 질타하는 루드 터너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뉴스의 내용이 거칠어졌다.
자본주의 나라인 미국에서 투자예측을 잘해서 천문학적인 막대한 돈을 벌었다면 그만큼 뛰어난 위인이 없다. 거기에 미국인들이 눈에 가시로 생각하는 일본투자에 성공해서 또 엄청난 돈을 벌었다 지 않는가.
잘만 꾸미면 현실에 나타난 캡틴 히어로다.
“그리고 조 클레인의 보수문제는 어떻게 됐어?”
“그게 여느 투자은행의 회장들처럼 이백만 달러정도의 보수를 받고 있어서 트집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보수란 게 말이야 그냥 연봉으로 지급되는 거 말고도 여러 가지가 포함되어있지 않나? 스톡옵션 같은 거 말이야?”
“그······. 그렇습니다.”
“부풀려! 이거 저거 다 합쳐서 부풀리란 말이야. 내가 이런 것 까지 일일이 코치를 해줘야해 자네 책상 빼고 싶나?”
“아닙니다.”
“명심하게 타이거 펀드의 KT와 나는 운명공동체야. 적의 편을 들 생각이 눈곱만치라도 있으면 그냥 옷 벗고 나가!”
루드 터너의 고함이 커질수록 방송국이 전하는 내용은 공정하고 과격해졌다.
타이거펀드의 주인인 규태는 천하의 능력 있는 영웅이고 월가의 조 클레인은 무능력한 악당으로 그려졌다.
리만의 존 클레인이 신문을 동원한다고 한들 24시간 뉴스를 방송하는 CNN과 공중파 CBS가 쏟아내는 양을 따라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둘 사이에서 눈치만 살피던 신문들도 전국지인 워싱턴 포스트가 막대한 적자에도 많은 보수를 받아가는 부도덕한 월가의 경영진을 때리면서 한편으로 판세가 기울었다.
좋은 것은 여럿이서 함께 보면 더 즐거움이 커지는 법이다. 다함께 모여서 리만의 주총을 대비한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방송을 지켜보던 규태는 도를 넘는 칭송을 쏟아내는 방송내용에 얼굴이 뜨뜻해졌다.
‘제기랄 내가 이렇게 뛰어난 사람이었던가?’
가난한 작은 나라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단돈 3,000만 달러로 시작한 투자로 1,000억 달러가 넘는 재산을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송 토론자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투자의 신이었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옆에서 방송을 지켜보는 이들도 하나같이 동감하는 눈치인지라 규태가 슬그머니 옆에 앉은 셜리에게 물었다.
“셜리 저건 너무 심한 이야기 아냐? 돈 좀 벌었다고 해도 투자의 신이라니 너무 과장이 심한 것 같아.”
“어머,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정말 대표님 재산이 그 정도나 되나요?”
“그거야 뭐.”
사실은 한참 넘지만 대충 얼버무렸다. 그걸 긍정으로 받아들인 셜리가 감탄을 했다.
“어머머, 대표님 정말 대단하세요.”
수컷은 암컷의 칭찬을 들으면 어깨가 으쓱하기 마련이다. 전혀 이성적인 관심이 느껴지지 않는 셜리의 칭찬에도 규태는 저절로 코가 높아졌다.
“그런데 정말 다저스 말고 양키스를 인수하시지 그러셨습니까? 구단가치를 보면 다저스보다는 양키스가 아니겠습니까?”
앤디 도도반이 잔뜩 실망하는 눈초리를 한 채 규태에게 투덜거렸다. 3억 달러에 다저스를 인수한 실제주인이 규태라는 말이 나오자 양키스의 팬인 앤디가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었다.
회사의 본사가 뉴욕에 있다 보니 직원들 가운데 다저스보다 압도적으로 양키스의 팬이 많았다.
“양키스는 구단주인 스타인브레너가 안팔 것 아니에요. 그걸 생각하면 역시 메츠를 사셨어야죠. 대표님이 메츠의 구단주가 되었으면 엄청난 투자를 했을 텐데, 다저스로 매덕스와 캔 그리피 주니어가 트레이드로 간거 대표님이 하신 거죠? 이 둘만 메츠로 왔어도 당장 우승전력인데 정말 아쉬워요.”
야구에 관심이 많은 메츠 팬인 셜리의 말이었다.
“메츠는 성적부터 올리고 말해. 돈을 돈대로 쓰고 성적은 항상 막장이잖아. 둘이 간다고 우승전력이라고 흥이다.”
“양키스는 스타인브레너부터 처리를 하고 말하지? 진짜 막장구단주의 표본이잖아?”
“자자, 이러지 말고, 이러면 대표님이 얼마나 어색하시겠어.”
말다툼을 벌일 기세인 앤디와 셜리를 말리고 나선 샨이었다. 역시 회사의 임원은 다르군. 이란 규태의 생각도 잠시 후 나온 샨의 말에 무색해졌다.
“야구 구단은 다저스로 사셨으니 프로미식축구 구단인수는 어떻습니까? 역시 미국하면 프로 미식축구죠. 뉴욕 제츠를 인수하시죠.”
“뉴욕 제츠라면 바닥을 기는 안습한 성적이 아주 인상적인 팀이네요. 그것보다야 뉴욕 자이언츠를 인수하시는 게 낫죠. 제츠는 그야말로 막장 팀이잖아요. 뉴욕 메츠하고 둘 다 어쩌면 뉴욕에 연고를 둔 팀이 그 모양인지.”
셜리가 투덜거렸다.
“그러니까 대표님이 인수를 해야지. 그래야 막장에서 벗어나지.”
프로는 돈질을 얼마나 하느냐로 성적이 결정 난다. 투자를 하면서도 성적이 나오지 않는 구단으로 유명한 뉴욕제츠를 인수하기를 바라는 샨의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규태는 미식축구를 좋아하지 않았다.
“미식축구라면 관심이 없어요, 차라리 축구라면 모르겠지만.”
“아! 대표님이 마지막 희망이었는데.”
천지가 무너지는 듯이 낙심하는 제츠 팬, 샨의 모습이 규태가 보기에도 안타까웠지만 돈질도 흥미를 느껴야 하는 법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규태가 최종적으로 회의를 시작했다.
“자자, 사담은 대충 마무리하고 주총준비는 끝났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늘이 두 쪽이 나는 한이 있더라도 조 클레인이 자리를 지키는 일은 없을 겁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샨이 큰소리를 쳤다.
그리고 그 큰소리는 주총에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