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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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먼을 사들이다
젊은 시절부터 할리우드 배우인 제인의 팬이었던 루드가 결국에는 마음을 얻는데 성공한다.
둘이 잘사는 거 같았지만 결국 루드의 바람기를 이기지 못하고 십년 만에 이혼하지만.
잔뜩 들떠서 허공을 달리던 루드도 ABC협상에서 쓴맛을 보아서인지 신중하게 협상을 진행했다.
뉴스에 강점을 가진 ABC와 달리 CBS의 장점은 공중파 중에서 드라마에 강점을 가지고 있어 NCIS, 크리미널 마인드, 마담 세크리터리, 하와이 파이브 오, 빅뱅 이론, 언더커버 보스 같이 유명한 미국 드라마를 방영하고 할 예정이란 것이다.
터너가 주인인 CNN과의 시너지를 생각하면 CBS가 한결 나은 선택이다. 그리고 협상금액도 보다 현실적이었다.
매각의사가 없었던 주주들도 화끈한 터너의 돈질에 이끌려 협상을 시작했기에 90억 달러의 금액을 고수했지만 터너가 주장하는 매입금액은 80억 달러.
그 중간쯤에서 매각 금액이 결정될 것으로 보였다.
경제상황을 보면 침체국면의 마지막 단계에 놓인 미국경제상황을 보면 이것도 오버페이라 할 수 있지만 규태에게 부족한 것은 시간이지 돈이 아니었다.
사실 95년 CBS는 웨스팅하우스에 60억 달러에 인수된다. 매입하는 지분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ABC의 협상금액이 얼마나 시장가를 벗어난 협상이었는지 여실히 말해주는 것이다.
90년 리만의 주가수준은 120달러로 시가총액은 280억 달러다. 리먼 브라더스 홀딩스 주식회사는 1850년에 설립된 다각화된 국제 금융 회사였다. 투자은행, 증권과 채권 판매, 사모투자, 프라이빗 뱅킹(PB;자산관리) 등에 관여하고 있었고 미국 국채 시장의 주 딜러이기도 하다. 세계본사는 미국 뉴욕 시에 자리 잡고 있고, 런던과 도쿄에는 지역 본사가 있었으며, 세계 곳곳에 지사를 두고 있었다.
대주주는 캘리포니아 연기금, 다이뮬러 투자, HT글로벌 등이다.
5%정도의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가 다섯이고 1%~2%의 지분을 가진 주주들도 상당수가 존재했다. 대부분 연기금과 기관투자자들이었다.
앤디 도노반과 셜리 기번은 타이거 펀드의 주식매입 담당자들이다. 이 둘은 언제나 함께 움직여서 앤디와 셜리를 부부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둘 다 미혼으로 흥이 넘쳐흘렀다.
“둘에게 시킬 일이 있어요.”
“보스 이렇게 비밀스럽게 부른걸 보면 엄청난 일인가 보죠?”
보통 공식적인 주식의 매입은 펀드의 경영진이 결정을 내리면 앤디와 셜리가 팀원들과 함께 주식을 시장에서 매입한다.
이렇게 펀드의 실제주인이 둘에게 직접 주식매입 명령을 내리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리만을 먹어야겠어요.”
“어머나! 진짜로요? 이거 나중에 걸리면 골치 아플 텐데요? 거래소에서도 시끄러울 테고요.”
“안 걸리면 되죠. 걸려도 매각명령밖에 내릴게 없을 겁니다.”
“그렇죠. 안 걸리면 되는 거죠.”
평소에도 모험을 즐기는 셜리의 눈이 반짝하고 빛을 발했다. 모험을 즐기는 셜리와 안정적인 투자를 선호하는 앤디, 이 둘의 성향은 뚜렷하게 구별이 되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보수적인 은행과 투자은행의 분위기를 싫어하다 못해 혐오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싫어하는 투자은행의 명단가운데 상위에 랭크된 리만을 엿 먹이는 일이다. 둘이 신바람이 날법했다.
“최대한 긁어모아요.”
“알았어요. 주가는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요 맞아요?”
“아니 건드려도 상관없어요. 이건 막대한 자금을 가진 미친놈이 손해를 감수하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첫 번째 단계니까요.”
흐읍
두 사람이 규태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주식을 매입하는 것은 이익을 얻기 위해서다 하지만 자신들의 보스는 손해를 감수하면서 까지 리만의 주식을 사들이겠다는 소리를 태연하게 내뱉었다.
“진짜로요? 자칫하다간 엄청나게 손해를 볼 수도 있어요?”
“자칫하면 막대한 손실이 나올 겁니다.”
이들의 반응과 상관없이 주먹을 불끈 쥔 규태는 단호했다.
“사들여요. 이번 기회에 뜨거운 맛을 보여줄 사람이 있으니까요.”
이들과는 별도로 해롤드의 팀도 움직였다. 시장에서 돌아다니는 유통주식으로 경영권을 차지하는 건 한계가 분명했다.
대주주들에게 개별적으로 접촉해서 인수협상을 벌여야했다. 또 이런 일에는 이골이 나있을 인물과도 손을 잡았다.
-자네 진짜 단단히 마음을 먹은 모양이로군. 이거 잘못하면 은행법에 걸릴 수도 있다는 거 알지?
“걸려봐야 강제매각 결정이겠죠. 워렌도 여러 번 당해봤잖아요.”
- 끙, ABC건은 유감이야. 내가 너무 비싸게 불렀나 보군.
“다 알면서 왜 그래요. 내가 배후에 있는 자금주인걸 알고 후려친 거잖아요.”
- 하하하, 뭐 다 그런 거지. 급한 건 자네일 테니 말이야.
어물쩍 웃으며 넘어가는 워렌이었다. 하여튼 조금만 방심하면 뒤통수를 칠 위인이었다.
- 하여간 중간 수수료는 매우 세게 부를 거네.
“수수료 걱정 말고 사 모아요. 많이 사서 넘길수록 받아가는 수수료도 많아질 테니까요.”
- 알겠네! 나도 최선을 다해보지.
워렌을 끌어들인 규태는 최종적으로 아껴두었던 병기를 꺼내 들었다.
- 이거 큰판에 뛰어 들레니까 가슴이 떨리는 군요.
바로 마사요시를 이판에 끼워 넣는 것. 일본자금의 미국침공이 계속 되는 시절이었다. 소프트뱅크가 이판에 끼어든다고 의심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천하의 강심장이 이정도 가지고 뭘 죽는 소리를 해요. 필요한 자금은 타이거 저팬에서 지원해 줄 겁니다.
소프트뱅크 사장인 마사요시는 루드 터너에 뒤지지 않는 저돌성을 가지고 있다. 미래에도 첨단 기술주에 막대한 손해를 보면서도 계속 투자를 감행했다.
너무나 공격적으로 투자를 했기에 시장이 불황이면 파산이란 단어가 그의 이름위로 어른거렸다.
IT버블이 꺼지는 2000년에 한번 크게 위기를 겪었고 2008년에도 혼쭐이 났다.
“전문 변호사와 협의를 해서 법을 벗어나지 않게 아시죠.”
중요한 투자였기에 다시 한번 강조했다.
- 당연한 일입니다. 미국에서 한번 뵙지요.
손 마사요시가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린 것은 야후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부터였는데 규태의 개입으로 몇 년 빠르게 미국으로 진출 하는 것이다.
타이거와 버크셔, 소프트뱅크의 세 세력이 시장에서 매입을 시작 하자 리만의 주가가 요동을 쳤다.
처음에는 타사주식에 비해 강세를 보이는 주가흐름이 결코 싫지 않게 받아들였던 리만이었지만 이상하게 상승하는 속도가 늦추어 지지 않자 비상이 걸렸다.
“이게 뭔가? 집중적으로 사들이는 놈들이 있을 거 아냐? 도대체 어떤 놈이야?”
시가를 입에 물고 고함을 지르는 조 클레인의 고함소리만이 요란할 뿐, 임원회의가 열린 회의실 안은 조용했다.
“거래계좌가 수십 개가 넘어서 지금으로선 특정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하나는 확실합니다. 워렌의 버크셔가 이일에 끼어있다는 사실입니다.”
“뭐야? 그럼 워렌 그놈이 회사를 노린다는 건가?”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쪽은 큰 움직임이 없습니다.”
“당장 워렌 이 작자에게 전화를 넣어. 감히 겁도 없이 우리은행을 노려!”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연락을 해도 자리에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그놈들이 확보한 지분이 얼마야?”
“대충 따져봐도 20%는 넘어간 것 같습니다. 기존 대주주들도 상당수가 주식을 팔아치웠다고 합니다.”
분을 이기지 못한 조클레인이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우리지분은 전부 얼마야?”
“우호지분까지 합치면 아직 35%는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추가적인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서 우리도 매입에 나서야 합니다.”
“젠장, 어쩔 수 없지 여유자금이 얼마야?”
“25억 달러정도는 동원할 수 있습니다.”
“그게 최대야?”
“예, 여기저기 투자한 돈이 많아서.”
“그거라도 사들여. 그리고 최대한 의결권을 확보하란 말이야. 그리고 어떤 놈들인지 알아내! 어떤 놈인지 몰라도 그냥 두지 않을 테니까.”
입에 문 시가를 질근질근 씹으며 조 클레인이 복수를 다짐했다.
***
「일본자본의 투자은행 인수, 리먼 일본자금에 넘어가나!」
「140년 전통의 투자은행, 일본 투기자금의 품으로」
「제2의 진주만 기습, 리만의 경영권은 어디로?」
예나 지금이나 언론의 논조는 자극적이다. 이래야 신문이 잘 팔리니까. 가뜩이나 지지부진한 이라크상황으로 새로운 관심거리가 없나 눈을 희번덕거리던 언론에게 이번일은 아주 맛난 먹잇감이었다.
미래의 언론에 비해서는 매운맛이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일본자금이 낄 때마다 붙는 단어가 제2의 진주만이다.
사실 타이거 펀드가 앞에 서고, 워렌이 거들고, 마사요시가 뒤따라 매수를 하는 판국이지만 언론들은 하나같이 일본자금의 투자은행 인수를 헤드라인으로 잡았다.
신문들을 주욱 펼쳐놓고 헤드라인을 읽은 규태가 혀를 찼다.
“이건 또 뭡니까? 글라스-스티걸 법으로 투자를 규제해야한다니? 마사요시가 금융회사를 앞세워서 사들이는 것 아닙니까?”
“마구 던지는 겁니다. 최대한 의혹을 부풀려서 매수세를 죽이겠다는 의도입니다.”
소프트뱅크가 직접 매수를 하면 금산분리법에 걸린다. 일본의 은행하나를 끼어서 투자를 하고 있는데 이걸 걸고넘어진 것이다.
“자꾸 이렇게 의심을 불어넣어줘야 연준에서 나서기 편하니까요.”
상업은행의 지분 투자는 철저하게 규제를 받지만 투자은행에 대해서는 연준도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투자은행이 잘못 되도 연준이 책임을 지지 않으니까. 하지만 지분 인수에 불법이 끼어있다면 말이 달라진다.
보나마나 궁지에 몰린 리만의 경영진이 사주한 신문기사를 보며 규태가 코웃음을 쳤다.
“구석으로 몰리긴 몰렸나 봅니다. 이런 기사까지 내는걸 보면 말입니다.”
“손사장이 경영참여를 목적으로 지분을 인수하는 거라고 밝히지 않았습니까.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지요.”
“쯔쯔, 그러게 경영을 잘했으면 이런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지난 년도에 적자가 뭡니까. 적자가. 다른 투자은행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흑자를 보였는데 말이죠.”
일본투자를 했다가 막대한 자금이 물려서 고전을 거듭하던 리만이었다. 걸프전의 투자로 상당한 흑자를 거두었지만 일본투자의 실패를 온전히 커버하지는 못했다.
다른 투자은행들이 막대한 이익을 낸 것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을 거두었으니 경영진 교체에 대한 의견이 힘을 받는 것이 당연했다.
당사자인 조 클레인이 들었으면 입에 거품을 물고 규태의 멱살을 잡으려고 할 것이었다.
규태의 일본투자로 인해 리만이 막대한 손해를 보았으니까. 리만의 손해만큼 규태는 이익을 보았다.
“능력이 없으면 물러나야죠. 이게 이 바닥의 법칙입니다.”
“주주총회를 열어서 몰아냅시다. 32%가 넘게 매수했고 8%의 의결권까지 넘겨받았으니 총회에서 나올 결론은 뻔할 겁니다. 능력 없는 자는 이 바닥을 떠야죠.”
“그래 어디야?”
“주주총회를 여는 주세력이 타이거 펀드입니다. 버크셔나 일본자금은 그저 곁다리로 동원된 세력입니다.”
보고를 받는 조 클레인의 눈빛이 살벌하게 변했다. 당장 달려가 총으로 김규태라는 개자식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고 싶은 욕망을 억지로 참으며 조 클레인이 눈빛을 번뜩였다.
“준비한 거 날려! 이 개자식을 반드시 내가 죽여 버리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