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63화 (63/220)

#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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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와 손잡다

터너의 손아귀가 힘이 보통이 아닌지라 닿은 어깨가 저절로 움찔거렸다.

지금까지 두 번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혼자 사는 루드 터너지만 여자와 사귀는 걸 중단한 게 아니다.

“남자가 여자를 만나서 그거 생각이 안 나면 죽을 때가 됐다고 봐야지.”

규태의 폐부를 찌르는 한마디였다.

“그럴 수도 있죠.”

“나와 함께 같이 다니세. 한 여자하고 사랑하기엔 이 세상엔 좋은 여자가 너무 많아.”

“정중하게 사양하겠습니다. 할 일이 많거든요.”

“그게 문제야 빌어먹을! 먼저 일을 해야지.”

규태는 이제야 여자 좋아하는 망나니에 입 거친 사내가 친숙하고 편한 이유를 알았다.

루드 터너의 모습이 딱 전생의 규태의 모습과 판박이였던 것이다.

이 일에 미치고 놀기 좋아하는 입 거친 사내는 타임워너 회장인 제라드 레빈의 혓바닥 놀림에 넘어가서 자신의 회사인 TBS를 타임워너에 합병시키고 부회장자리에 올랐지만 결국 정치놀음에 밀려난다.

이제 규태와 손을 잡았으니 그런 일을 일어나지 않겠지만.

규태는 터너와 합작으로 터너 투자를 만들어서 그중 절반의 지분을 가져왔다. 그리고 회사에 250억의 자금을 지원했다. 5년 후에 추가지분 20%를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함께 가져왔다.

투자금은 디즈니 그리고 3개 공중파중의 하나를 잡아먹기에 충분한 금액이었다.

터너가 제일 먼저 노린 회사는 디즈니도 방송국도 아닌 전혀 다른 회사였다.

“MGM이 휘청거리는 모양이야. 하긴 쥐뿔도 모르는 놈이 회사를 사들여서 자기 멋대로 경영하고 있으니 회사에 망조가 안 들면 다행이지. 만드는 영화마다 쪽박을 차서 재정이 엉망이 모양이더군. 어때 군침이 돌지 않나?”

터너가 말한 쥐뿔도 모르는 놈이란 건 MGM의 주식을 80%넘게 소유한 커코리안을 말하는 것이다.

터너는 이미 86년에 MGM의 주식을 15억에 인수해 대주주가 되었지만 자금조달의 실패로 다시 커코리안에게 회사를 넘겨야 했었다.

기업사냥꾼으로 유명한 커코리안은 영화제작에 큰 뜻이 없었다. 그저 라스베이거스에 자신이 소유한 카지노 호텔의 경영에 집중을 하고 있어서 MGM 산하의 영화 제작진이 자금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MGM의 필름 라이브러리는 어떤가요? 재정이 좋지 않다면 이쪽부터 매각 되지 않습니까?”

“아직은 괜찮아. 회사에서 자구책으로 부동산을 매매하려고 하지만 영화사에서 라이브러리는 필사적으로 지키는 모습을 보여서 말이야.”

다른 무엇보다 라이브러리가 핵심이었다. 미래에 콘텐츠가 각광을 받는 시기가 도래하면 MGM이 보유하고 있는 영화들의 판권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터너가 처음 MGM을 노린 것도 이 판권을 가지기 위해서였다. 자금조달의 실패로 피눈물을 흘리면서 주식을 다시 넘기기는 했지만 터너의 회사인 TNT(Turner Network Television)에서 TV방영권을 넘겨받아 MGM의 고전영화들을 방영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벤허와 같은 수많은 명작들이 MGM에서 제작되었고 TNT를 통해 상영되면서 추억에 잠긴 많은 케이블 가입자를 유치했다.

규태라는 물주를 만나서 실탄을 충분하게 장전했으니 다시 MGM인수에 뛰어 들겠다는 소리.

“디즈니는요? 그게 핵심입니다.”

“물주가 확실하게 버티고 있는데 그것하나 못 잡아먹겠는가. 나를 믿으라니까.”

가슴을 탕탕 치며 큰소리를 내뱉는 터너가 어째 조금은 미덥지 못했지만 하여간 높은 전투력을 기대할밖에.

큰소리를 치고 일에 몰두하기 시작한 터너의 행동은 저돌적이고 확실히 빨랐다.

불도저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전광석화 같이 말 안 듣는 커코리안을 어르고 달래서 그가 보유한 MGM의 지분을 20억 달러에 사왔고 디즈니의 대주주들도 현금다발로 후려패서 지분을 40%넘게 확보했다.

공중파 인수협상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지만 역시 공중파는 만만치가 않았다.

먼저 CBS는 이당시만 해도 잘나가는 GE의 소유이기에 당연히 매각할 의사가 전혀 없었고 NBC는 주인이 바뀐 지 몇 해 되지 않아서 협상이 제대로 진전되지 못했다.

그나마 워렌이 대주주로 있는 ABC의 인수가능성이 높았는데 역시 가격이 문제였다. 150억을 맥시멈으로 생각하고 협상에 들어갔지만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젠장 200억 달러라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야. 시장가치가 100억도 안되는데 나를 뭘로 보고. 86년에 NBC가 35억 달러에 거래되었는데 몇 년이 지났다고 그것보다 6배의 가격을 달라니 말이 되는 거야!”

매도자가 원하는 가격이 시장가격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게 문제였다. 협상팀을 이끌고 뉴욕으로 달려갔다가 협상장을 벗어난 터너가 분통을 터트렸다.

“ABC와 TBS의 영역이 겹쳐서가 아닐까요? 뉴스에서 경쟁자잖아요.”

CNN이 뜨기 전까지 ABC의 뉴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높은 경쟁력을 가졌다. 유명한 월터 크롱카이트, 피터 제닝스, 바버라 월터스가 모두 ABC의 뉴스앵커들이었다.

터너도 인정을 했다.

“흠, 하긴 ABC와 내가 빈말로도 사이가 좋다고는 못하지.”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루드가 방송국의 주인이 되는 것을 꺼림칙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다는 소리였다. 자신들의 자리를 지킨다는 보장이 없으니 어떻게 해서든지 인수협상에 방해를 하는 모양이다.

이후로도 협상은 좀처럼 진척이 되지 않고 가격을 두고 격론을 거듭했다.

먼저 협상에 진짜로 나설 마음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했기에 규태는 워렌과 오랜만에 전화로 연락을 했다.

- 워렌 지난번에 보고 오랜만에 전화를 하네요. 아직도 제 투자제안은 생각중인가요?

- 그게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 의견이 많아서 시간이 걸리고 있네. 의결권없는 B주식의 발행여부는 조만간 연락을 하겠네. 그래 어쩐 일인가? 단순히 그것 때문에 전화를 건 것 같지는 않고? “

- ABC방송국 말인데요? 진짜로 팔 생각은 있는 겁니까? “

- 이런 자네가 뒤에 있는 물주인가? 어쩐지 터너가 물불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게 대단한 자금줄을 등에 업고 있는 것 같았는데 자네라면 그럴 수 있지.

- 그것만이 아니라 워싱턴 포스트도 인수할 마음이 있어요.

- 허참! 자네 대단히 공격적으로 나서는군. 워싱턴 포스트는 나에게 이야기 하지 말고 리처드에게 말을 하는 게 빠를걸세. 그쪽 집안에서 하는 사업이니까. 서두르는 이유라도 있나?

-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아서요. 미리 미디어에 지분을 확보해놔야 싸울 때 유리할 것 같거든요.

며칠 전부터 등골을 싸하게 찌르는 경고음이 들려왔다. 이런 경우 어디선가 규태를 노리는 인물이 있다는 소리였다. 전생에서도 이런 경험을 무시했다가 큰 코를 다친 적이 있기에 규태는 절대로 무시하지 않았다.

- 내가 볼 때 자네 감이 나쁘지 않은 것 같네.

규태는 워렌이 무엇인가 정보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 워렌, 어디선가 뭐 들은 말이 있나보죠? 있다면 말 해주세요.

- 리만의 회장 말일세. 조 클레인, 그 작자가 단단히 자네를 벼르는 모양이더군.

- 어쩐지 꿈자리가 뒤숭숭하다 했어요. 지난번 휘두른 펀치는 가벼운 잽이었나 보군요.

- 월가에서도 알아주는 욕심이 많은 작자이니 어지간히 자네가 거슬렸나 보지.

규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신참자에 대한 견제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더니 정말로 우습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를 악물었다.

- 알았어요. 내가 알아서 처리를 할게요.

- 이번에는 뒤로 물러나지 않을 모양이로군. 잘해보게.

- 이 바닥에서 계속 약한 모습을 보이면 우습게 보일 테죠. 하여간 ABC를 팔 마음은 있는 거죠? “

- 당연하지 하지만 가격이 문제겠지.

- 지금 그쪽에서 요구하는 가격은 너무 터무니가 없는 가격이라고요.

- 가격이란 수요가 있으면 올라가는 법이지.

어쩐지 너무 튕기는 게 이상했는데 매수자가 추가로 나타난 모양이었다.

- 따로 주식을 매입하겠다는 사람이 나섰나 보군요. 하지만 그쪽도 지금가격이라면 손을 들 걸요.

- 그건 모르는 일이지, 하여간 건투를 비네.

직설적이고 거침없이 속마음을 말하는 루드를 상대하다가 속에 구렁이를 수십 마리를 담은 워렌을 상대하니 찜찜했다.

빌어먹을 노인네 같으니! 전화통화를 마친 규태가 투덜거렸다. 어디서 팝콘이나 먹으면서 둘이 사우는 모양을 구경하는 속셈인 것 같은데 애당초 규태는 조 클레인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ABC와의 협상이 가격차이로 교착에 빠지자 터너는 이번에는 NBC쪽으로 밀어붙여서 협상자리를 만들었다.

지칠 줄 모르는 루드의 모습에 의아한 규태가 루드의 심복인 피터 그루먼에게 물었다. 그가 들었던 말과는 사뭇 다른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루드가 웬일로 미친 듯이 일에 열중하네요? 평소에도 저런 가요? 듣기와는 전혀 다른데요?”

“일에 꽂히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몰두하는 편이긴 하지요.”

보스가 저러면 밑에 직원들을 미칠 것이다. 어쩐지 루드 부하들의 절규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피터의 얼굴도 정상은 아니었다.

“계속 저런다고요?”

“하지만 추진하는 일이 마무리가 되면 다릅니다.”

“다르다니요?”

“사라집니다. “

“네?”

“진짜로 사라지십니다. 반년정도 어딘가에 연락도 없이 틀어박혀서 시간을 보내다가 훌쩍 돌아오십니다.”

어딘지 해탈한 듯한 경영이사 그루먼의 말에 규태가 머리를 내저었다.

“당연히 혼자가지는 않겠지요. 누구랑 같이 갑니까?

“흠흠, 그거야......“

시선을 돌려 천장을 보는 그의 모습에 말을 하지 않아도 뒷말을 알 것 같았다.

“돌아와서는 뭐라고 하지 않나요?”

“......”

대답을 하지 못하는 피터 그루먼이었다.

“엄청 화를 내나 보군요.”

그런 상사들이 있다. 말없이 사라졌다가 돌아 와서는 그동안 추진한 일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상사.

루드가 전형적으로 그런 상사인 모양이었다.

“그러면서도 회사는 잘 돌아가는군요. 요즘 CNN이 아주 잘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성과가 나면 보상은 후하게 지급합니다. 괴롭히긴 하지만 성과를 독차지하는 상사는 아니란 거죠.”

어쩐지 TBS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루드와 동업관계가 되자 밑의 부하들이 엄청나게 좋아하는 기색을 보여서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앞으로 루드가 증발하면 나한테 연락하세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피터 그루만이 기다렸다는 듯이 반색을 했다. 규태의 승인을 받고 처리한 일에까지 딴지를 걸지 못할 것이었다.

“할 수 없잖아요. 나이 먹은 성인을 도망치지 못하게 감금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번 협상을 마치면 루드가 또 사라질 것이라 짐작하는 그루먼이지만 규태는 그 상대까지 알고 있었다.

‘지난번에도 루드가 제인을 쫒아 다녀서 결국 결혼에 골인했었지. 이번에도 마찬가지겟군.’

젊은 시절부터 할리우드 배우인 제인의 팬이었던 루드가 결국에는 마음을 얻는데 성공한다.

둘이 잘사는 거 같았지만 결국 루드의 바람기를 이기지 못하고 십년 만에 이혼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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