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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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본시장에 투자하다
미국의회의 대일 강경론자인 제프 그레이어 상원의원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위원회는 만들어진지 이백년이 넘는 오래된 모임이다.
정계와 재계에서 대를 이어가며 참석하는 이들도 있었다.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서 오늘처럼 많은 인원이 다함께 모이는 일은 드물었다. 그만큼 오늘의 의논해야 하는 안건은 큰 안건이었다.
“이라크의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후세인은 쿠웨이트를 침공해도 미국이 중립을 지킬 거라 여기고 있네.”
“전쟁이 벌어지는 시기는?”
“여름, 지금도 준비를 하고 있지만 속도가 나지 않아. 빌어먹을 이라크 놈들, 돈은 거지처럼 처먹으면서도 움직임은 굼벵이처럼 느리기만 하단 말이야.”
입에 물고 있던 시거를 뻑뻑 피워대며 조 클레인이 신경질을 내며 이마를 찌푸렸다.
일본에서 본 손해를 벌충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전쟁이 벌어져야 했다, 이미 원유가 상승에 대비해서 잔뜩 투자를 해두었는데 한없이 늘어진다면 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즐겨피우는 쿠바산 고급 여송연의 맛이 썼다.
“서두르지 말게, 어차피 전쟁은 벌어지니까. 차분하게 하나씩 일을 처리해나가면 돼."
메릴린치의 회장 대니 매닝의 말에 조 클레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바보같은 소리하지마! 하루하루가 돈이야! 하루가 늦어 질수록 얼마나 많은 손해가 생기는줄 알아?"
"바보라니? 세상사람들이 아는 바보는 자네가 아닌가?"
"정말 이 자식이!"
당장 멱살이라도 잡을것 처럼 으르렁거리는 조 클레인을 보며 데니 메닝이 코웃음을 날렸다.
"정말 생긴것 처럼 미련하고 우둔하기 짝이 없군. 수틀리면 주먹을 날리려고 덤벼드는것 하며 말이야."
"너 정말 죽고싶냐!"
두 사람의 사이는 세상사람들이 다아는 것처럼 결코 좋지 않앗다.
덩치가 크고 사나운 얼굴을 한 조 클레인과 빼빼 말랐지만 만사가 시니컬한 대니 매닝은 태생적으로 맞지가 않았다.
“네놈은 일본에서 손해를 보지 않았으니 그렇게 태평한 거냐! 내가 평생을 보낸 월가에 한낱 유색인종이 끼어 드는 건 용서할 수가 없어. 그리고 지난번 일로 끝날거라고 생각하지말아,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네가 보호하는 그놈에게 제대로 한방을 먹여줄테니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서라도 그놈을 박살내 주지.”
명문가의 후예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조 클레인의 말에 대니 매닝이 비웃음을 날렸다.
“제대로 하지 못하면 올해가 자네 월가경력의 마지막이 될 확률이 높지만 말이지.”
“그게 무슨 개소리야!”
“개소리일지 어떨지는 결과가 나와보면 알겠지.”
“네놈이 일본에서 제법 성과가 나왔다고 기세가 등등한데 그게 얼마나 가는지 두고 보겠다.”
“어리석은 놈. 가문의 힘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는 놈이 큰소리만 치면 단줄 아는군.”
스스로의 힘으로 메릴린치의 꼭대기까지 올라간 대니 메닝에게 명문가 출신으로 가문의 후광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조 클레인은 경멸의 대상이었다.
당장 싸움이라도 벌어질것 처럼 분위기가 격해지자 평소처럼 제프 그레이어가 나서서 둘 사이를 중재햇다.
“자자, 그만들 하게 어린아이도 아니고. 지금 우리에게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은가.”
상원 예산위원장인 제프의 말을 허투루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격해졌던 분위기가 단숨에 차분해 지면서 다시 회의를 시작했다.
“석유업체에서 요구한 금액은 15억 달러의 투자금이네. 이걸 어떻게 조달할지 하는거야.”
“보잉쪽은 5억달러를 빌려달라고 하는군.”
"엑슨쪽은 20억 달러를 요구했네."
“대가는 뭐라고 하던가?”
“쿠웨이트의 유전 지분을 15% 나누어준다는군.”
“너무 적어! 그정도로 몇이서 나누어야 하는데.”
자리에 모인 이들마다 저마다 탐스러운 살점이 듬뿍 달린 뼈다귀를 노리는 맹수처럼 이권을 탐했다.
***
타이거펀드는 45층짜리 건물을 인수해서 사무실을 이전했다. 마천루가 즐비한 뉴욕이지만 이정도 건물은 흔치가 않아서 제법 사람들의 입에서 회사이름이 오르내렸다.
전부 7층을 사용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로 복작거리던 회사의 근무환경이 쾌적해졌다.
타이거 펀드와 모회사인 타이거 홀딩스, 타이거 스포츠가 전부 같은 건물을 사용하게 되면서 규태도 한결 근무하기가 편해졌다.
43층에 위치한 규태의 집무실에서 창밖을 내려다보면 개미처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초여름의 햇살이 뜨겁게 집무실을 비추었다. 이른 더위에도 집무실 안은 서늘해 쾌적하기만 했다. 집무실과 붙어있는 회의실에 해롤드 피트만과 리처드 그래이엄, 규태가 마주앉았다.
“투자은행들이 아주 미쳐 날뛰는군.”
숨긴다고 해도 완벽하게 가리기는 힘들다. 자금이 빠르게 이동하는 흔적이 여기저기 드러났다.
“해롤드, 개전일이 언제쯤일까요?”
“이라크군의 준비사항으로 보면 늦어도 9월, 빠르면 7월말입니다.”
규태는 가만히 눈을 감고 상황을 시뮬레이션 해보았다. 지난 생에서는 8월2일 이라크군이 전격적으로 국경을 넘어 쿠웨이트로 침공해 들어갔다. 이번에도 비슷한 시기가 될 것 같았다.
리처드가 긴 한숨을 쉬었다.
“여기저기에서 연락을 받았네. 이번에 우리는 빠지라고 말이야. 주변에서 가하는 압박도 압박이지만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
좀처럼 앓는 소리를 하지 않는 리처드의 반응에 규태가 이마를 찌푸렸다.
“갑자기 왜 그렇게 약한 소리를 하세요.”
“자네 우리 펀드의 자산이 얼만 줄 아나? 부채를 제외하고 말이야.”
규태는 이마를 찌푸렸다.
“1,800억 정도 되지요. 지난번 일본에서 거둔 투자수익 탓에 많이 늘었죠.”
“바로 그게 문제야. 우리 덩치가 단기간에 너무 커졌어, 어찌 보면 월가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게 당연해. 월가의 입김이 큰 재무부는 물론이고 우리에게 호감을 표시하던 상무부에서도 우리가 이번 투자에서 빠졌으면 하더군. 심지어는 펜타곤의 친구들도 전화를 해대더군. 끼어들지 말라는 신호지 이것을 무시하면 어떻게 되겠나. 잘못하다가는 미국정부와 월가, 심지어는 군수업체에 석유 업체들까지 힘을 합쳐서 우릴 공적으로 삼아서 몰아붙일걸. 그나마 놈들이 함부로 덤벼들지 못하는 건 펀드에 투자한 친구들도 만만치 않은 힘을 가지고 있는 덕분일세.”
리처드가 그동안 얼마나 주변에서 많은 압박을 받았는지 머리를 흔들었다.
“흐음.”
규태는 이전의 생에서 훨씬 커다란 금액을 만지면서 살아왔기에 미처 체감하지 못했지만 90년 미국에서 제일 규모가 큰 은행인 시티은행의 자산총액이 2,500억 달러였다.
타이거 펀드의 규모는 일개 사모펀드에서 운영하는 자산금액치고는 괴랄 한 액수였다. 규태개인재산만 해도 드러나지 않게 분산되어있어서 그렇지 세계제일의 부자를 능가했다.
거침없이 투자를 통해 자산을 늘리는 타이거 펀드를 보며 로이드가문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가 눈에 보였다.
규태는 쓴 입맛을 다셨다.
아깝다. 더럽게 아까 왔다.
막대한 돈을 벌 기회를 눈앞에 두고도 멀뚱하게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하다니!
이라크 군대의 동향과 펜타곤의 움직임을 살피느라 막대한 자금이 소모되었다. 이대로 순순히 물러나야만 하는 건가?
하지만 리처드의 말처럼 저들의 경고를 무시하자니 후환이 두려웠다. 미국을 암중에서 지배한다는 세 곳의 합공을 받으면 누구도 살아남지를 못한다.
혼자 끙끙 앓으며 어떻게 할지를 이리저리 고민하던 규태가 손을 튕겼다.
“일본시장의 우회투자는 어떤가요? 최근 들어 일본 주식시장이 많이 살아나지 않았나요?”
“일본시장이라? 나쁘지 않은 생각인 것 같은데? 도쿄의 주식시장이 다시 살아나서 니케이 지수가 30,000엔 부근까지 올라왔다는군.”
1월초부터 시작해서 4월까지 박살이 났던 니케이 지수가 다시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해서 7월이면 33,000엔까지 오른다. 그리고 살아나는 듯 했던 일본의 주식시장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함께 다시 한 번 폭락한다.
일본증시에서 니케이 지수를 끌어올린 주세력은 생명보험과 은행이었다.
“보나마나 일본 정부의 입김을 받은 기관들이 투자를 해서 끌어올린 걸 테지요.”
주식투자로 큰 손해를 보았다고 해도 부동산의 불황이 시작되기 전이라 아직 일본의 금융기관들은 체력이 남아 있었다.
이들도 남은 여유자금을 총동원해서 주식시장의 반등을 만들어 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으로 인해 유가 폭등이란 날벼락이 일본 산업 전체를 덮치면서 제대로 카운터를 맞은 것.
이때 수많은 일본의 생보사와 은행들이 손해를 감당하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된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규태는 슬그머니 주먹을 쥐었다. 별 탈 없이 전쟁이 벌어지는 정보를 이용해서 막대한 돈을 벌 기회가 있었다.
규태의 의견에 리처드도 전적으로 동감을 표했다.
“유가가 폭등하면 해외수입에 의존하는 일본경제는 직격탄을 맞겠군. 나쁘지 않아, 아니 정말 좋은 생각이네.”
미안하다 이번에도 너희들의 시체를 넘어서 막대한 이익을 거두어주마.
해마다 막대한 대일무적적자를 기록하는 한국인으로서 기쁜 일이다.
규태는 잠시 피눈물을 흘리게 될 일본의 기관과 개미들에게 애도를 표했다.
기룡증권 뉴욕지사는 타이거펀드가 이전해 왔어도 이전 건물을 계속 건물을 사용했다. 한국에서 돌아온 오장우 사장과 규태가 오랜만에 자리를 마주했다.
“한국에서 투자는 잘되고 있겠죠?”
“애초에 두 종목이외에는 매수를 하지 못하게 막아두지 않았습니까? 자금여력이 있을 때마다 매입을 하고 있습니다. 수익도 나쁘지 않고요.”
규태가 상품 매입을 허용한 두 종목은 삼성전자와 이동통신이었다. 그것도 오로지 매입만 하게하고 매도는 막아버렸다. 꾸준하게 오르는 두 종목의 투자로 증시는 침체에 빠졌지만 기룡증권은 막대한 수익을 거두는 중이었다.
“당분간 증시는 계속 침체국면일겁니다. 마땅하게 투자할 종목이 나오지를 않네요.”
저PER나 자산주가 자본시장 개방이후에 각광을 받지만 이들 종목은 거래량이 적다.
“기운이 나질 않습니다. 타이거 펀드는 뭐만 했다하면 100억, 200억인데 기룡증권은 침만 흘리고 지켜봐야만 하니 말입니다.”
그동안 기룡증권이 일본 투자에서 빠진 것 때문에 속이 상했었다. 하지만 한국회사인 기룡증권이 일본증시의 폭락을 이용해서 막대한 수익을 거두었다면 일본정부는 물론이고 한국정부도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을 것이기에 이해하고 넘어갔다.
투덜거리는 오장우를 달래며 규태가 본론을 꺼냈다.
보안 때문에 지금까지는 듣지 못했던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소식을 미리 들은 오장우가 눈을 번뜩였다.
“기룡증권은 이번 기회에 원유시장에 유가상승으로 배팅을 하시죠.”
“그래도 될까요?”
“기룡증권과 타이거 펀드가 한 몸이란 걸 아는 사람은 적으니까요. 안다고 해도 이것까지 시비를 걸지 못할 겁니다. 뉴욕지사에 투자자금의 여유가 얼마나 남아있습니까?”
이리저리 곰곰이 생각하던 오장우가 계산을 끝내고 대답했다.
“1억 달러만 투자를 하겠습니다.”
“1억 달러라? 그정도면 될 것 같네요. 너무 과하면 문제가 생길만하지만 그 정도라면야. 이번 투자를 마치고 나면 기룡증권의 자산도 엄청나게 늘어날 겁니다.”
“정말 그럴까요?“
“시장의 크기만 보면 석유선물이 증권시장보다 규모가 큰데다가 유가상승이 만만치 않게 클 겁니다.”
“유가가 얼마나 오를 거라고 예상하십니까?”
“지금 유가가 13달러 수준인데 40달러까지는 올라갈 겁니다.”
꿀꺽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지금보다 3배정도 유가상승이 있다는 소리였다.
CME 원유선물시장의 레버리지는 최대 12배였다. 단순하게 생각해도 30배의 투자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소리였다.
“조용히 소리 나지 않게 아시죠? 우리를 주시하는 시선들이 많아요.”
“알겠습니다. 조용하게 처리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