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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금융재벌-57화 (57/220)

#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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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 누구인지를 알아내다

뉴욕 집으로 돌아온 뒤에 규태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너무나 쉽게 물러난 것이 아닐까?

침대에 누워 생각할수록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빌어먹을! 당장이라도 적을 알아내고 일을 벌이고 싶었다.

규태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거실을 서성였다. 밤이 깊어 어둠에 잠긴 센트럴 파크가 을씨년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회귀한 이후로 지금까지 너무나 어렵지 않게 달려왔다. 큰 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알고 그 결과가 어떻게 흐르는지도 안다. 지난 생과 크게 다르지 않게 세상은 움직였다.

큰 위기도 없었고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도 없었다.

속이 활활 불타올랐지만 위스키를 한잔 마시자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규태는 지금까지 어울리지 않게 들떠서 세상을 쉽게 보았다.

규태의 적은 시장 그 자체였다.

세상의 수많은 자금들이 눈이 시뻘게져 이익을 찾아 헤맨다. 그 자금의 출처가 블랙머니 이건부자들의 자금을 모아 만든 사모펀드이건 거미줄처럼 이리저리 복잡하게 얽힌 이익의 충돌은 필연적이다.

규태가 이익을 본만큼 손해를 보는 자들도 존재한다. 규태는 심각하게 일본시장에서 누가 가장 큰 손해를 보았을까를 고민했다. 그리고 이내 답을 찾았다.

해롤드 피트만은 규태가 정보파트의 강화를 위해 영입한 전직 CIA출신의 정보 분석전문가였다. 소련과의 냉전이 끝나가면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던 CIA도 예전과 같은 힘을 쓰지 못하고 구조조정의 여파에 시달렸다.

규태는 해롤드 말고도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막대한 보수로 약속해 영입했다.

“들어온 정보는 정확한가요?”

“상당한 자금을 들여서 여러 차례 교차로 확인했습니다. 일본주가 폭락으로 리만과 골드만의 손실이 컸다고 합니다.”

리만 브라더스과 골드만삭스라?

규태가 알기로도 일본에 대한 투자를 가장 열정적으로 하던 투자은행들이다. 1988년까지 그들이 일본의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한 자금이 공식적으로만 400억 달러가 넘었다.

일본주식이 흔들리면서 큰 타격을 받았으니 시장을 흔든 규태를 못마땅하게 여길 동기는 충분했다.

“앞으로 부동산까지 흔들릴 텐데 두 회사가 정신을 못 차리겠군요.”

시니컬한 규태의 반응에 해롤드 프리먼이 책상위로 손을 모았다.

“보스는 그렇게 판단하고 계신 겁니까? 일본의 부동산시장은 지금도 계속 활황이지 않습니까?”

“그게 정상일 리가 없지 않나요. 어느 누가 봐도 지금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말도 안 되는 비정상이지 않습니까?”

“하긴 도쿄를 팔면 미국전체를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게 정상은 아니지요.”

그런 말들은 누구보다 태어난 나라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일반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구석이 있었다. CIA출신으로 누구보다 자신의 조국을 위한 헌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해롤드였다.

“저금리에 은행대출을 이용한 갭투자로 거품이 잔뜩 낀 일본부동산은 조만간 나락에 빠질 겁니다.”

규태가 확인한 여러 지표상으로 부동산 가격상승이 둔화되고 있다는 보고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리만의 회장이 조 클레인이던가요? 일본에서 본 막대한 손해 때문에 그 작자 속이 뒤집혔겠군요. 골드만의 에단 존스도 마찬가지고요.”

리만의 회장 조 클레인이나 골드만의 에단 존스, 둘 다 월가에서 제법 잘났다고 목에 힘을 주고 있어도 은행의 오너가 아니라 월급쟁이들이다.

이대로 가면 일본 투자실패의 책임을 지고 자리를 보전하기 어렵다. 애꿎은 규태가 화풀이 대상이 되어 엄한 유탄을 맞은 셈이다.

아니 어떻게 생각해보면 지금은 몸을 낮추어야 하는 시기다. 외국출신 투자자가 미국에서 대형투자자로 성공하는 사례는 조지 소로스처럼 젊은 시절 미국으로 이주한 백인들을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규태처럼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투자자가 월가에서 자리를 차지하려면 인내가 필요했다.

이전 생에서는 나이를 먹어 투자자로 성공하는 바람에 크게 느끼지 못했던 출신의 벽이 이번 생에는 이른 성공으로 빠르게 다가온 것이다.

“이번 일의 배후로 둘이 함께 움직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료실의 데이비드도 같은 의견을 냈습니다.”

자료실의 데이비드는 재무성 비밀조사국출신의 전문가였다.

“둘이 어떻게 해서든 대가를 치르게 해야겠습니다. 얻어맞고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요.”

해롤드와 미팅을 마친 규태는 리처드의 집무실로 찾아갔다. 비밀스런 모임이라면 월가의 이방인인 규태보다는 리처드가 훤했다.

보고있던 서류를 한쪽으로 밀어둔 리처드가 안경을 벗고 뻑뻑한 눈을 주물렀다.

“위원회나 장미정원 말인가? 자네 입에서 프리메이슨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게 다행이로군. 외부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그냥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가볍게 의견을 조율하는 모임정도로 알고 있네.”

“리처드가 생각하는 가벼운 의견을 나누는 모임의 기준이 대체 뭡니까? 그곳들이 아무나 받아주는 곳이 아니지 않습니까?”

월가의 이방인과 월가의 명문출신과는 생각하는 갭이 있었다.

리처드와 같은 이들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숨을 쉬듯이 자연스럽게 참석하는 모임이지만 외부의 시선으로 볼 때는 그들이 모두 비밀결사들이다. 규태가 그들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태생적으로 불가능했다.

“하긴 로이드가문이 월가의 뒤에서 지배자로 군림하지만 이젠 허울뿐이네. 그들을 대변하던 모건가문의 위세도 이젠 예전 같지가 않고. 위원회와 같은 모임들을 통해서 간접적인 지배를 한다고 봐야겠지.”

리처드는 월가의 명문이라 할 수 있는 그레이엄가문 출신이다. 월가의 힘의 흐름에 대해서는 정통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움직인 쪽은 위원회가 아닐까 합니다.”

규태는 전생에 우연하게도 재무성산하의 비밀감찰국에서 조사한 보고서를 읽을 기회가 있었다.

그 보고서에는 수없이 많은 비밀결사라고 하기에는 공개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미국전체에서 힘을 좀 쓴다하는 수천 개 가문의 부가 모여드는 월가를 움직이는 인물들의 모임, 그중에서도 가장 큰 힘을 발휘하던 모임이 위원회였다.

“위원회가 의심이 된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이번 움직임을 주도한 것은 그곳일 가능성이 높아. 자네 말처럼 리만과 골드만이 일본에서 막대한 손해를 보았고 그 일에 우리가 주도해서 손해를 봤다고 느꼈다면 이번일은 생각처럼 단순하게 끝나지 않을 수도 있네. 리만의 조 클레인은 과격하거든. 그 작자는 자신이 손해를 봤다 싶으면 총을 빼드는 걸 마다하지 않을 작자야.”

조 클레인은 월가에서도 독불장군식의 경영으로 이름이 높았다.

“제아무리 악당 같은 조 클레인이라도 우리 쪽을 계속 공격을 하기는 부담스러울겁니다. 그 작자 앞에는 더 큰일이 앞에 놓여 있을 테니까요. 게다가 의견이 쉽게 합쳐지는 곳이 아니지 않습니까?”

규태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 리처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마다 생각하는 게 다르니까.”

“이번일로 베어스턴스나 메릴린치는 이익을 봤다는군요. 두 투자은행들은 일본진출에 소극적이었으니까요. 저희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 것으로 압니다.”

“두 투자은행은 일본보다는 유럽시장에 투자하는 비중이 높지. 거기에 일본시장을 불안하게 보기도 하고.”

“그러니까 제 생각에는 리만과 골드만이 손해를 벌충하려고 다급하게 움직일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어디로? 이라크?”

“일본에서 손해를 많이 봤으니 메꾸려면 큰 일이 벌어져야 하는데 규모가 큰 곳은 그곳밖에는 없지 않습니까? 중동에서 전쟁이 벌어질걸 안다면 그 둘이 어떻게 움직일까요?”

“군수업체의 주식과 원유를 함께 사들이겠지. 원유시장은 흘러가는 자금의 규모가 주식시장보다 크니까. 막대한 이익을 거둘 찬스라고 판단하겠군.”

대화를 나누던 규태는 무언가를 떠올렸다.

“만약에 급격하던 상승하던 원유가격이 급락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원유가격이 급락한다고? 어떤 이유로?”

“제 예상으로는 전쟁이 벌어진다면 급격하게 오르던 원유가가 미국의 전쟁개입이 확정되는 순간에 급격하게 떨어진다면 요?”

“유가상승에 배팅했던 자들은 큰 타격을 입겠군.”

“미 정부에서는 유가상승을 마냥 방치하기 어려울 겁니다. 유가가 급등해서 석유파동이라도 일어나면 산업계에 미치는 여파가 상상을 초월 할 테니까요.”

전생에서도 미국정부는 정부가 가지고 있던 비축유를 시장에 방출하면서 까지 급등하는 유가를 잡았다.

“흠, 타당한 판단이야. 그리고 자네가 말한 것을 확인해보려고 레이시온쪽은 조사해보니 사실이야. 가동률이 60%까지 떨어졌던 공장들이 풀로 가동되고 있더군. 베데스타지역의 록히드마틴 공장들도 마찬가지고. 큰 전쟁이 벌어질 것에 대비해서 생산량을 늘리는 중이란 소리지.”

“이라크 쿠웨이트 국경지대로 이라크 군 병력이 집결하고 있답니다. 외부에 알려진 것처럼 군사력을 과시하는 정도의 움직임이라고 보기에는 이라크 군의 동향이 심상치가 않답니다.”

“전쟁을 대비한다는 거로군. 재정상태가 좋지 못한 이라크가 어디에서 재원을 마련했는지를 모르겠군.”

현대전은 막대한 물자를 소모하고 이에 따라 엄청난 자금이 소모된다.

규태가 코웃음을 쳤다.

“말해서 뭐하겠습니까. 석유업계와 월가에서 나서겠지요.”

규태의 말에 리처드가 탄식을 했다.

“말 그대로 죽음의 상인이로군. 자금을 대주고는 전쟁을 부추기고 뒤로 따로 응징할 준비를 한다는 말인가!”

전쟁처럼 큰 이해관계가 얽혔으니 군수산업체와 월스트리트가 힘을 합치는 것은 당연했다.

거기에 낮은 원유가격으로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석유업계까지 끼어들면 이미 전쟁은 확정적이라고 봐야했다.

“우리도 유가상승으로 배팅을 해야겠군.”

“하지만 미국의 개입이 확인되는 순간에는 반대로 가야겠죠. 정부에서 월가로 구체적인 정보를 흘릴까요?”

“아닐걸 그렇게 가지 월가의 사정을 봐줄 사람들이 아니야. 업계 세 곳의 이해가 언제나 같은 건 아니거든.”

“기회를 잘 노려야겠군요.”

규태가 미소를 지었다. 말로는 참겠다고 했지만 자신을 한 대 때린 상대를 그냥 내버려둘 규태가 아니었다.

“자네 정말!”

“기대가 됩니다. 기대가.”

규태의 미소를 보며 속내를 짐작한 리처드가 못 말리겠다는 표정을 한 채 머리를 흔들었지만 그역시 월가 출신의 맹수였다. 적이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린다면 가차 없이 숨통을 끊으려 달려들 것이었다.

***

롱아일랜드는 대공황시기 이전에 지어진 오래된 저택들이 즐비했다. 그중의 하나는 조 클레인이 조부 벨 클레인에게서 물려받은 대저택이었다. 벨 클레인은 방직공장을 소유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철도왕 벤더필드와 동업을 하기도 한 미국 재계의 유명 인사였다.

위원회의 모임이 자주 열리는 곳이기도 했다.

질 좋은 위스키가 한잔 들어가자 에단 존스의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어떤가? 말을 제법 알아듣는 것 같지 않은가? 몸을 바싹 낮추는 걸 보면 주제를 아는 것 같기는해.”

“흥, 그 원숭이 놈 하나 때문에 손해 본 금액이 얼만 줄이나 아나.”

슬쩍 일본시장의 손실을 규태의 탓으로 돌리려던 조 클레인이 이마를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어차피 일본은 이제 한번 손을 봐줘야해, 그동안은 소련 때문에 봐주고 있었지만 너무 커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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