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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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의 계절
슈퍼 301조를 내세워 대일 무역수지 개선을 노리는 미국 행정부의 관리들은 리처드에게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해 주었다. 송금을 막는 일본정부에 압박을 넣어서 해외송금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 것이다.
“일도 대충 끝이 났으니 빨리 미국으로 돌아가야지. 이젠 일본이라면 지긋지긋하네. 세상에 바깥보다 추운 집안을 상상해 본적이 없어.”
추운 겨울을 일본에서 지낸 리처드가 학을 뗐다. 도쿄의 겨울은 뉴욕보다는 춥지않은 기온이지만 일본의 주택은 단열이 제대로 되지 않아 엄청나게 추웠다.
머물던 호텔에서 나와 고급주택에서 잠깐동안 머물렀던 리처드가 진심으로 고개를 내저을정도였다.
미국의 난방도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일본 만큼은 아니었다.
“그러기에 내가 뭐라고 했어요. 일본 집에서 겨울을 보낼 생각을 하다니 정말 용감하던데요.”
버티다가 심한 감기에 걸려서 결국 따듯한 호텔에서 겨울을 넘긴 리처드였다.
미국에서는 일본의 문화에 동경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리처드도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일본문화에 빠진 미국인들 중의 한명이었다.
“빌어먹을 겉보기에는 그럴 듯 했단 말이네. 지어진지 삼백년이 넘었다는 고색창연한 겉모습만 보고 넘어가는게 아니었는데.”
규태도 놀랄 정도로 화려하게 꾸며진 일본의 고택을 매수해서 살다가 일주일도 안돼서 다시 예전에 머물던 호텔로 돌아왔다.
“여기에서 할 일은 전부 끝났으니 이젠 돌아가야죠. 다저스의 상황도 좋지 않은 것 같던데요.”
“흥! 에이스가 쓰러졌는데 분위기가 좋을 수 없지.”
그나마 버텨주던 에이스 허샤이저가 어깨부상을 당하면서 다저스의 시즌전망은 더욱 암울해졌다.
구단주인 피터 오말리가 구단에 대한 애정때문인지 지금까지 버텼지만 여기저기서 압박을 받았다. 아예 규태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트에 매수의사를 보이면서 다저스를 포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지난 시즌에 3위를 했고 이번시즌 초반에도 성적이 바닥을 기면 손을 들겠지. 그래도 버틴다면 자이언츠를 인수하면 그뿐이야.”
다저스의 인수를 가장 바랄 리처드마저도 시니컬한 반응을 보일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었다.
다저스와 같은 빅마켓을 가진 구단은 포스트시즌에 가지 못하면 팬들로부터 질타와 압박을 받는다.
“자이언츠가 인수가격도 싸고 매입도 손쉬울 것 같지만 아무래도 난 다저스가 좋아요.”
“다저스의 팬도 아니면서 어울리지 않게 고집은, 망가진 다저스를 인수해서도 성적을 올리려면 머리아플 것 같은데 어쩔 계획인가?”
“구단을 인수 하게 되면 대형 FA를 노릴 생각이에요. ‘
“대형 FA라면 누구를 노리는 건가?”
“매덕스가 시장이 나오지 않습니까. 투수진이 무너졌으니 보강을 해야죠. 타자로는 캔 그리피주니어를 노리고 있습니다.”
다저스의 상황은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홈런을 대려줄 대형타자들은 노쇠했고 투수진은 붕괴한 상태였다.
리처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매덕스야 FA로 나올테니 돈질을 하면된다지만 캔 그리피 주니어를? 프랜차이즈 스타인 그를 시애틀에서 놓아줄까? 아직 FA가 되려면 멀었잖아?
“시애틀 구단주가 재정상황이 좋지 못하니까 그쪽으로 풀어봐야죠.”
“가능하기만 하다면 캔 그리피 주니어라면 평판도 나쁘지 않으니 좋은 선택이야. 빅스타를 영입하니 팬들도 당분간은 성적에 연연하지 않을테니, 리빌딩을 한다고 해도 구단인기가 떨어지지는 않겠지.”
규태가 다저스를 인수한다고 해도 급하게 성적을 올릴 방법이 없다. 유망주를 퍼주는 트레이드를 할 마음도 없었고.
“그나저나 왜 정보국출신가운데 중동전문가를 찾는 건가?”
“중동전문가라기 보다는 이라크 전문가죠.”
규태는 조용하게 중동, 그것도 이라크의 전문가를 찾았다. 중동의 석유는 정보국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특히 이란 이라크전쟁이 끝난 것은 88년,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란의 혁명이후로 호메이니는 미국의 주적이었다.
이란과 전통적으로 경쟁하는 이라크의 후세인을 부추겨서 전쟁을 일으킨 것은 미국의 CIA이었다.
“이라크 전문가라면 구하는 게 어렵지 않지. 이유가 뭔가?”
“후세인이 받는 압박이 심하거든요.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눈에 가시 같은 쿠웨이트가 주제도 모르고 깝죽거리고 있으니 얼마나 얄밉겠어요. 후세인은 전쟁을 하고 싶어서 미칠걸요.”
이란 이라크전쟁은 장장 8년이 넘게 벌어진 전쟁으로 사망자 수만 공식적으로 백만이 넘었다. 두 나라 이득 없이 끝난 장기전으로 이라크의 재정은 너덜너덜해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펙에서 감산을 합의해 유가를 올릴 시도를 했지만 번번이 쿠웨이트의 반대로 성공하지 못했다. 이라크로선 쿠웨이트라면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반대하면 두 나라의 전쟁은 이뤄질 수가 없네.”
전쟁이 벌어지면 쿠웨이트는 이라크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다만 이라크로선 미국의 눈치를 보지않을수 없었다. 이라크는 미국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금도 국경지역에 군대를 보내서 으름장만 놓고 있지만 누구도 진짜 전쟁이 벌어질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후세인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낸 다면요? 전쟁을 벌여도 미국은 개입할 마음이 없다고 신호를 보낸다면 그래도 후세인이 참을까요?”
“잘못된 신호라고? 누가 후세인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낸단 말인가?”
“방위산업체를 등에 업은 중앙정보국이겠죠.”
“흠! 자네 말은 후세인에게 전쟁을 부추기고 결국에는 미국이 끼어든다는 말이로군.”
리처드가 여러생각으로 복잡한 머리를 짚었다. 확실히 일리가 있는 소리였다. 그만큼 미국의 방위산업체는 전쟁에 굶주려 있다.
이란 이라크 전쟁이 끝이 나면서 이라크에 막대한 무기를 수출하던 방위산업체들은 수요자를 잃었다. 이대로 간다면 파산하는 업체가 속출할 판이다.
부도덕하다고 욕을 할 수 있지만 그들의 생존은 전쟁 없이는 불가능했다.
“방위산업체에서는 생존의 문제일 테니 필사적으로 달려들 겁니다.”
“알겠네, 나도 알아보지. 제법 쓸 만한 사람이 나올 걸세.”
***
도쿄에서 일을 마무리하고 이시가와에게 남은 일을 맡긴 두 사람은 공항에 세워놓은 비행기에 올랐다.
그들이 타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자가용비행기는 걸프스트림 G4였다. 걸프스트림 기종은 나중에도 부자들이 자가용으로 즐겨 타는 기종이다.
비행기에 올라 요모조모를 살핀 규태가 물었다.
“이거 주문하면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서 적어도 2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
“요즘 개인용 비행기의 최대수요처가 어딘 줄 아는가?”
“······.일본이겠네요.”
자고 일어나면 미친 듯이 오르는 주가와 부동산 가격 때문에 돈을 번 일본부자들이 제일 먼저 사들이는 것은 자가용비행기와 메가 요트의 매입이다.
“일본 주식시장이 박살이 나면서 주문한 자가용비행기를 제때 가져가지 못하는 이들도 늘어났네. 그걸 집어 온 거네.”
만들어서 인도하려고 했더니만 상대가 파산해버려서 인도를 하지 못하는 비행기가 늘어나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들이 타고 있는 비행기는 나중에는 경기의 지표로 사용하는 G4 지수라는 말이 만들어질 정도로 스테디셀러였다.
타이거우즈나 마이클 조던 같은 스포츠스타들도 어김없이 자가용 비행기로 G4를 애용했다.
규태는 보잉 747을 50인용으로 개조한 비행기를 타고 다녔지만. 걸프스트림 G4는 항속거리가 짧아서 도쿄에서 뉴욕까지 가려면 중간에 한번 기착지에 들러 줘야했다.
“편하긴 하지만 조금은 좁네요.”
“다음비행기는 더 큰걸 사야하나.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했는데.”
“리처드 생각보다 통이 작네요. 다음 비행기는 보잉 747을 개조하죠.”
“그렇게 큰 비행기가 필요할까? 가격도 만만치 않게 비쌀텐데?”
“타보면 압니다. 너무 편해요. 가격은 3억 달러가 조금 넘을걸요.”
잠시 머릿속으로 보잉747의 가격이 얼마인지를 떠올린 규태였다.
“생각보다 얼마하지 않는구만, 편하다면 주문을 해야지.
리처드가 생각하기에 보잉 747을 사서 업무용으로 개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판단인거 같았다. 돈이야 이미 넘치도록 있었다.
일본 투자로 벌어들인 펀드의 투자수익만 1,250억이 넘는다. 보잉 747정도의 가격정도는 가볍게 지불할 능력이 된다.
문제는 주문한 뒤 인도받을 때까지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지만 일단 타고 다닐 비행기를 하나 구입했으니 기다릴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고 보니 다저스의 인수가격이 비행기 한 대 값도 못하네요.”
“그건 그렇군. “
“돌아가면 빨리 다저스의 인수문제를 해결을 하죠. 가격을 조금 올려서 제안해야겠네요.”
뉴욕으로 돌아온 규태는 서둘러 다저스인수에 대비한 여러 가지일들을 진행했다.
현금으로 선수를 사는 것은 규정상 불법이다. 하지만 우회적으로 구단주의 재정을 돕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1977년에 구단이 만들어진 시애틀은 거리상의 문제로 선수들이 기피하는 구단이다. 서부지역에서도 홀로 떨어진 탓에 엄청난 비행시간을 자랑해서 시애틀에서 플로리다까지 가는 비행시간은 비행시간 6시간에 시차 3시간을 더한다.
시합을 하러 다니려면 긴 비행시간 때문에 피로도도 높다. 거기에 창단이후로 우승한번 하지 못한 전력탓인지 구단의 인기도 낮았다.
80년 구단을 사들인 구단주인 조지 아지로스는 투자는 하지 않고 이익만 챙기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선수들의 연봉을 깎기 위해서 협상전문가를 고용했으며 시에 돈을 지급하지 않으면 연고지를 이전하겠다는 협박을 서슴지 않고 해댔다.
오죽 막장으로 운영을 했으면 닌텐도 아메리카가 인수해서 일본인이 구단주가 된다.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조지와 은밀하게 접촉을 시도했다.
캔 그리피 주니어의 트레이드는 그렇게 진행이 되었다. 거기에 매덕스의 에이전트와도 접촉을 해서 미리 교감을 나누었다.
규태는 다저스의 구단주인 피터 오말리에게 최종통보를 했다. 구단 매입가를 3억 달러로 올리고 보름 내에 답변을 주지 않으면 포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가뜩이나 막대한 매입가에 마음이 흔들리던 피터 오말리는 시즌 초반부터 예상처럼 바닥을 기는 다저스의 성적에 넌덜머리를 내던 차에 최후통첩을 받자 결정을 내렸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구단의 매각은 LA 다저스 팬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과연 누가 새로운 주인이 되는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는 가운데 지역신문들은 새롭게 구단주의 자리에 오를 예정인 리처드 그레이엄에 대한 정보를 캐는 것에 혈안이 되었다.
리처드 그래이엄은 월스트리트에선 제법 이름이 높지만 스포츠에서는 신출내기였지만 일본투자성공까지 파고들었다.
「 LA 다저스의 새로운 주인 - 일본투자로 엄청난 돈을 번 투자전문가」
「바닥을 기는 다저스, 새로운 피를 수혈」
여러 제목으로 쏟아지는 신문기사들마다 거대투자은행 웰스파고의 전직대표이자 현 타이거펀드의 사장인 리처드 그래이엄이 얼마나 성공한 투자자인지를 마르고 닳도록 칭송해댔다.
좀처럼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다저스의 전력에 불만을 가지고 있어서 엄청난 돈을 가진 리처드가 과감한 투자로 다시 다저스의 위상을 세워주기를 바랐다.
메이저리그엔 투자는 하지 않고 돈만 노리는 막장 구단주들도 많았다. 팬들도 엄청난 재산을 가진 구단주가 싫을 리가 없었다.
이런 반응을 보면서 리처드는 혀를 찼다.
“하나같이 성급하기는, 아직 구단주회의의 승인도 나지도 않았는데.”
메이저리그의 구단주가 되려면 구단주회의 2/3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절차가 끝나야 최종적으로 매입 작업이 끝나게 된다.
“리처드는 구단주회의에서 승인하지 않을 것 같나요?”
“아니, 그럴 리가 없지.”
구단주들도 부자가 새롭게 구단을 사서 들어온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구단주 가운데 절반은 리처드와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