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52화 (5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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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버블붕괴

연말이 되자 포지션 구축을 마친 규태는 집에서 온 연락을 받고 서둘러 한국으로 향했다.

김포공항에 도착해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피부를 파고드는 한기에 몸이 저절로 움츠려졌다.

시베리아 한파가 덮쳤다더니 도쿄에 비하자면 엄청 추운 날씨였다. 그렇지만 규태는 급한 마음에 서둘러 대전으로 달려갔다.

전화로 할머니의 몸이 불편하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잔뜩 걱정을 했지만 환한 얼굴로 맞아주는 할머니를 본 순간 걱정이 사그라들며 어머니에게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저 왔습니다.”

“아이고! 우리 장손 왔구나. 어서 오너라.”

“몸이 좋지 않으시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몸은 괜찮으세요?”

“가벼운 감기야, 어미가 뭘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 지.”

가볍게 할머니를 안아드린 규태가 어머니를 보았다. 멋쩍은 얼굴을 한 어머니가 이내 규태를 타박했다.

“네가 하도 안 들어오니까 내가 이런 거 아냐. 결혼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을 테니까. 자주 들어와.”

“그래, 나도 우리 큰 손주 얼굴 잊어버리겠다.”

할머니 말씀에 규태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소중하다고 생각했으면서도 결혼이야기를 듣기 싫다는 핑계로 밖으로만 나돌았으나 말이다.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방학을 맞은 동생들도 집에 있었다.

“오라비, 오랜만이야. 미국은 좋아? 선물은? 내 선물 사왔지?”

”너 이 오라버니를 오랜만에 본다면서 하는 거라곤 선물 타령이냐. “

“나 이번에 졸업하잖아. 졸업선물은 안줄 거야.”

벌써 그렇게 흘렀나? 규태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여동생이 대학에 들어간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을 할 때가 되었다니 세월이 빨랐다.

“알았다. 가기 전에 알아서 챙겨주마. 그런데 졸업한 다음에는 뭘 할 거냐?”

“아빠랑 같이 일할거야. 아빠가 이번에 학교법인하나 설립하잖아. 거기에 일할 사람이 필요하데.”

아쉽기는 해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규태가 옆에서 멀뚱하게 바라보는 막내에게 물었다.

“너는?”

“이번에 미국대학으로 들어가려고 준비 중이야.”

“이번에 산업대학 들어갔다면서? 학교는 그만두고?”

재수를 해서도 성적이 나오지 않아서 점수에 맞추어 들어갔다. 어머니가 막내 때문에 골머리를 썩었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내내 놀았으니 점수가 나올 리가 없었다. 그나마 4년제에 들어간 게 다행이었다.

“형, 그래서 말인데. 나 미국으로 가면 안 될까?”

“유학 말이냐?”

“형도 미국에서 지내잖아. 형이 있는 뉴욕으로 학교를 가면 좋을 것 같은데.”

“TOEFL은? SAT 시험은 준비했냐?”

그게 뭐냐는 식으로 멀뚱하게 자신을 보는 남동생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이걸 어떻게 사람을 만들지? 규태는 속으로 머리를 굴렸다.

“이런 멍청한 자식,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면서 미국대학에 들어간다고?”

“그게 왜 필요해. 미국대학에는 기부입학이란 것도 있다면서.”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너를?”

어림도 없다는 듯 규태가 코웃음을 치자 여동생이 나섰다.

“이런 바부팅이, 내가 그랬지 오라비가 절대 안 해준다고. 미국으로 대학교 가려면 공부를 해! 맨날 친구들하고 술만 퍼마시고 다니지 말고.”

여동생이 답답하다는 얼굴로 끼어들었지만 규태는 동생을 미국으로 데리고 오는걸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이 먹어서 공부를 새로 했지만 그래도 외국대학을 졸업은 했었다.

“흐음, 그래! 내가 미국에 데리고 가마.”

동생을 산호세로 데려가서 복일모와 붙여놓을 생각이었다. 두 놈을 붙여놓으면 나쁘지 않은 결과가 나올 것 같았다. 적당히 먹고 살만한 집의 막내로 태어나서 큰 어려움 없이 자랐다. 거기에 형이 준 재벌급의 큰돈까지 벌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다보니 지금 동생에게 부족한건 절실함이다.

저녁시간에 급하게 귀가한 아버지는 규태를 보고는 반가워하면서도 한소리를 했다.

“아이고 우리 큰아들 아예 얼굴 잊어버리겠다. 남자 놈이라 그런지 외국 나가서도 전화 한통화도 안하고. 도대체 너는 누구 닮아서 그러냐?”

“아버지요. 매일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전 아버지 꼭 빼닮았다는데요. 매일 늦게 들어오면서 전화한통 없다고요.”

규태의 반격에 할 말을 잃은 아버지 김상웅씨가 말을 돌렸다.

“흠흠, 남자가 바깥일을 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런데 이번에 길게 머물다 갈 거냐?”

“이뇨, 일본에서 하는 일이 있는데 할머니 몸이 안 좋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는데 멀쩡하시던데요.”

“하여간 여편네 그놈의 호들갑은. “

아버지는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끌끌 찼다. 규태가 밖으로 나간다음 상당히 가장의 권위를 회복한 모습이었다.

“학교법인 새로 만드신다면서요? 준비는 잘 돼가세요?”

“그래, 내가 학교 만든다고 돈을 좀 찾았다. 네 엄마하고 동생도 보태기로 했다.”

그렇지 않아도 가족펀드에서 30억이 넘는 돈이 빠져나간걸 확인했다.

“이야기는 전해 들었어요. 작은아버지 사업은 잘된대요?”

“그놈 대박 맞았다. 아니 회사인수 도장 찍고 돌아서자마자 신도시 이야기가 나오는 바람에 땅값이 미친 듯이 뛰지 뭐냐. 하필 신도시 예정지 부근에 회사 땅이 많더구나.”

“와아! 미수금은요?”

“그것도 소송까지 가지 않고 협의했다. 황이사가 왔다갔다 몇 번하더니 순순히 미수금을 내놓더라는 구나.”

역시 황규철의 실력은 녹슬지 않았다.

“다행이네요.”

“건설 사업이야 자금만 원활하게 돌아가면 어려울 게 없지. 회사가 잘 돌아가니 걱정할 것 없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부자는 가족과 오랜만에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가족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과일을 먹으며 그동안 미뤄뒀던 이야기들을 한둘 꺼내들었다. 이야기 끝에 규태가 막내를 미국으로 데려가겠다고 하자 어머니가 반색을 했다. 그동안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어지간히 속을 썩였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얘가 미국에서 대학을 들어갈 수 있을까?”

여동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허파에 바람만 들어서 대학 들어갔다고 놀자판을 벌이기 일쑤인 놈이었다.

“그건 나도 걱정이다. 가뜩이나 미국은 마약문제도 있고 총기 소지도 자유롭다지 않니. 네가 일이 바빠서 동생을 제대로 돌봐줄 수나 있을지 모르고.”

막내에게 좀처럼 믿음이 가지 않는지 어머니도 반신반의했다.

“걱정하지마세요, 그곳으로 가면 스페셜리스트가 있어요. 일모 그놈을 가르치는 곳에 맞기면 아주 잘해 줄 겁니다.”

복일모의 사정은 어머니도 대충은 알고 있었다.

“어머나 그래? 일모는 미국에서 잘 적응했고?”

“이번에 대학에 들어갈 겁니다. 스탠포드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어요.”

“어머머! 거기면 대단한 명문이잖니! 그럼 우리 막내도 거기에 들어갈 수 있을까?”

잔뜩 기대에 찬 모친을 실망시키기는 그랬지만 규태는 직설적으로 말했다.

“이놈이 공부를 제대로 하는 놈이에요? 억지로 거기 들어가 봐야 졸업도 못해요.”

“형, 나를 뭐로 보고 그래. 내가 중2까지는 전교 10등 안에 들었다고.”

“그래 그다음에는? 중2병 같이 이상한 물이 들어서는.”

모친의 말로는 중3때 나쁜 친구를 잘못사귀어서 그렀다지만 규태가 볼 때는 나쁜 친구가 바로 동생이었다. 서른이 넘어서 정신을 차리기는 하지만 하여튼 그랬다.

공부하는 습관이 잘못되고 끈기가 없어서 그렇지 머리는 좋은 놈이니까 박박 굴리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규태가 구르는 게 아니니까.

슬며시 미소를 짓는 규태를 보며 무엇인가를 눈치 챈 듯 태진이 불안한 얼굴이 되었지만 가족의 고민거리인 막내아들을 형이 데리고 있겠다니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생각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이 밝아졌다.

오랜만에 들린 창투사 사무실은 여전했다. 직원들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조금 본사건물이 북적인다는 느낌을 받긴했지만 아직은 다른 곳으로 이전할 계획은 없엇다.

구봉만 사장과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규태와 복일모가 미국으로 떠난 다음 텅 비어있던 사무실이 주인을 찾아 모처럼 온기가 돌았다.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모니터를 켜자 기다렸다는 듯이 구봉만과 황규철이 안으로 들어왔다.

“본부장님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지요.”

반가운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전 황이사가 공항에서 기다리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조금 복잡한 일이 생겨서 말입니다. 그동안 본부장님을 찾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한국에 들어오셨다는 것을 알고는 움직임을 보이기에 정보를 수집하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규태는 이마를 찌푸렸다.

“이미 각오하고 있어요. 이번 정권도 욕심 많은 놈이 있나보지요.”

“너무 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본부장님의 재산이 얼마인지를 정확하게는 모르니까요. 그저 투자를 맡기기 위해서인 거 같습니다.”

“겨우 그거요?”

난리를 피웠다는 말인가? 조금은 어이가 없었다.

“한국 안기부를 너무 유능하게 보시는 것 같습니다. 선배가 안에서 본부장님의 정보를 막아서 정확하게 구체적인 사항은 모릅니다.”

규태는 슬며시 맥이 풀렸다.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상대는 규태의 정보를 제대로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국시민권을 받는 걸 서두르지 않았을 것이다. 시민권을 받는 바람에 한국의 재산을 명의 변경해야 하는 골치 아픈 작업을 진행해야 했다.

“털어서 건수를 잡고 한몫 챙기려다가 미국대사관의 경고를 받고는 화들짝 물러났습니다.”

“이번 정권도 기업들에게 수금을 하나 보죠?”

“전하고 똑 같습니다. 7년에서 5년으로 대통령임기가 줄어들면서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고 할까요. 챙겨주고 잇지만 그것보다는 본부장님의 투자능력이 탐이 났나 봅니다. 한참 시끄럽게 굴다가 꼬리를 내렸으니 한동안은 잠잠 할 겁니다.”

한심스런 일이지만 그러려니 했다. 그동안 관행처럼 해오던 일이 사라지려면 세월이 필요했다.

“회사에는 큰 문제가 없지요?”

옆에 가만히 앉아있던 구봉만이 얼른 끼어들었다.

“이번에 창투사 자본금이 1,000억을 넘었습니다. 창투펀드에 유치한 금액도 2,600억을 넘었고요.”

“수고 하셨습니다. 구사장님께서 그걸 자랑하시려고 제방에 들어오셨군요.”

“마음이 급해서 말입니다. 자랑을 하고 싶어서 입이 간지러웠습니다.”

“회사가 아주 잘 돌아가니 결산이 끝나면 상여금을 지급해야겠네요.”

규태의 입에서 상여금이라는 말이 나오자 구봉만의 얼굴이 밝아졌다.

“준비하겠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할까요?”

“500% 지급으로 하죠.”

황규철의 얼굴도 덩달아 좋아졌다. 어디서나 월급쟁이에게 추가적으로 들어오는 돈은 큰 힘이 된다.

규태가 황규철에게 다시 물었다.

“문제가 있는 곳이 있습니까?”

“창투사나 증권사 모두 큰 문제는 없습니다. 창투사 주변으로 투자하겠다고 얼씬거리는 이들이 있지는 하지만 지난번에 한번 투자를 받아주어서 압력이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

“듣기로는 구사장님이 고생을 많이 하신 것 같더라고요.”

구봉만이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말도 마십시오. 투자하겠다고 밀려온 사람들만 해도 회사 앞에 엄청난 줄을 만들었습니다. 놀란 경찰이 뛰어왔을 정도였으니까요.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습니다.”

“경호회사는 잘 운영됩니까?”

“예, 이제 자리를 잡았습니다. 주사장님도 자금에 구애 받지 않고 직원들을 대거 뽑아대니 쌓였던 분이 풀린 것 같으십니다.”

“다행이네요. 앞으로도 전문가들을 영입하는 것은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자금이 모자라면 추가로 증자를 한다고 하세요.”

“예, 주사장님께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저희 팀 인원도 많이 늘었습니다. 한번 식사나 같이 하시지요.”

황규철의 팀도 인원이 크게 늘어나서 스물이 넘었다.

“그래야죠.”

황규철 팀은 규태가 투자한 회사들의 감사를 도맡아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팀이다.

“미성증권의 곽사장이 만나고 싶어 합니다. 여러 번 연락이 왔습니다. 나중에는 애걸을 하더군요.”

“저한테도 어지간히 전화를 해댑니다.”

도청문제로 찍힌 다음부터 곽병호사장은 규태의 철저한 외면을 받았다.

“두 분을 어지간히 귀찮게 했나보네요. 그런데 굳이 제가 만날 필요가 있나요?”

“미성증권에 가지고 있는 본부장님의 개인 지분을 일부 넘겨달라고 부탁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럴 순 없지요. 골머리 좀 썩어보라고 일부러 창투 투자지분을 K생명에 판 건데요. 넘겨도 전부를 넘기지 일부를 넘기지는 않을 겁니다.”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K생명에서도 지분을 넘겨받기를 원하는데요.”

“글쎄요, 아직은 정해진바 없습니다. 시간을 두고  기다려보죠.”

괘씸하기는 하지만 경영권을 박탈할 정도는 아니었다. 시간만 질질 끌면서 애를 태우다가 곽병호에게 지분을 넘길 생각이었다. 물론 시가보다 비싼 가격으로.

구봉만이 생각할수록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얼굴로 투덜거렸다.

“그 사람은 좀 더 고생을 해봐야 합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도 아니고.”

“그럴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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