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47화 (47/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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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달러에 투자하다.

주식이 오르고 내리는 것은 여러 가지변수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중의 유동성이다.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막대한 자금이 들어갔다. 잔치가 끝나면 돈이 부족해지기 마련, 거기에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금까지 메말라 가는데 주식가격이 오르기를 바란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다.

“걱정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정부가 정신을 차리고 정책을 잘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정부도 3년 정도 고생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자본시장을 개방하겠지요. 내부에 자금이 부족하니 외부에서 자금을 끌어들여야 하니 말입니다. 그때가 돼야 주식시장이 다시 오르기 시작할겁니다.”

“지금도 어려운데 계속 주식이 빠진다면 앞으로 지점의 영업사원들이 고생을 하겠네요. 보나마나 지점에선 난리도 아닐 텐데요.”

영업사원들은 실적이 부진하면 강한 압박을 받는다. 압박을 받다보면 저절로 무리를 하게 된다.

“어쩌겠습니까. 시장이 좋지 않은데 방법이 없지요.”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양반이다. 견디다 못해서 목숨을 끊는 최악의 선택을 하는 직원들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사건사고와 소송으로 만신창이가 되는 직원들도 부지기수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해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썩어 들어가는 게 증권사 영업직원이다.

“그나마 우리 회사는 영업실적을 가지고 직원들을 괴롭히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조금은 나을 겁니다.”

“그게 당연한 겁니다. 정작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을 지지 못하고 아래로 책임을 떠미니까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증시가 침체를 보이면 당연히 회사는 영업 강도를 낮추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증권사는 영업실적이 부진하면 실적을 독촉한다. 증권사의 수입 대부분이 주식 중개수수료에서 나오는 구조라 영업실적이 부진하면 증권사는 적자를 기록한다.

“아직 증시의 주식 거래량이 많아서 올해에 증권회사들이 적자를 기록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침체가 계속된다면 몰라도요.”

“그게 다 증권사 직원들 갈아 넣어서 만든 결과입니다. 기룡증권은 상장이 안된 비상장사 아닙니까. 주식지분도 오사장님하고 나하고 둘이 거의 전부를 가지고 있으니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는 구조라 더욱 더 문제가 안 생기게 해야죠.”

고통스런 조정기간이 끝나면 또다시 성장의 시기가 찾아온다.

언제나 힘든 시절을 버티면서 살아남은 자들이 달콤한 과실을 독식하는 법이다.

***

LA의 저택에서 다저스 구단의 지분투자를 마무리하고 이사진의 한자리까지 차지한 규태는 신바람이 나서 랜디 존슨의 트레이드를 강행했다. 몬트리올에서도 랜디의 장래를 불투명하게 보는지 트레이드에 긍정적이었다.

다저스에서 몬트리올에 줄 선수를 협상하느라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조만간 결정이 날 듯했다.

랜디의 고질적인 제구력 불안 때문에 구단 프론트에선 트레이드를 떨떠름하게 생각했지만 규태가 앞장서 구단주를 통해서 강하게 밀어붙였다.

3년 안에 랜디를 다저스의 에이스로 만들겠다는 호언장담과 만약 그렇지 못하면 이자 없이 2천만 달러를 10년간 다저스에 빌려주겠다는 규태의 약속까지 받아냈으니 구단주인 피터의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이 하나도 없는 트레이드였다.

랜디가 성공한다면 다저스는 현 에이스인 허샤이저 이후를 책임질 좌완 에이스를 얻는 셈이고 실패한다면 공짜로 막대한 거금을 장기간 빌려 쓸 수 있게 되니 말이다.

규태가 이렇게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랜디존슨과 92년에 입단할 페드로 마르티네스까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강의 원투 펀치를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이 둘이 화려한 전성기를 함께 열어간다면 나중에 인수해야 할 다저스 구단의 가격도 오르겠지만 그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잔뜩 들떠있던 규태는 타이거 펀드의 중국담당자 해롤드 버몬트의 갑작스런 전화를 받고 차갑게 얼어붙었다.

잠깐 잊고 있었지만 89년은 후대에 비극적인 사건으로 기억되는 천안문사태가 벌어지는 해였다.

“전 총서기 호요방이 자택 연금 중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입니다. 그를 추모하면서 학생들이 모여 들면서 단식을 벌이고 있고 이들을 진압해야 한다는 강경기류가 중국정부내부에서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해롤드가 선을 대고 있는 베이징의 주미대사관에서 흘러나온 소식이었다. 주한 미국대사 제임스 릴리의 추천으로 펀드에 들어온 해롤드 버몬트는 오랜 시간동안 CIA에서 릴리와 함께 중국을 담당해온 전문가였다.

워낙 비밀스럽게 일을 진행하는 중국공산당의 전통에 따라 호요방의 죽음과 그를 추종하는 학생들의 단식투쟁이 외부로 공표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개혁과 개방을 주장하는 학생들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이들을 강경 진압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산당 내부에서 점점 대세가 되어 간다는 소리였다.

“진압에 나서는데 얼마나 걸릴 거 같습니까?”

“공산당 내부의 조자양 총서기같이 온건파의 목소리도 만만치가 않아서 의견을 조율하는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공산당의 내부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어림잡아서 한 달이 지나면 강경진압에 나설 걸로 보입니다.”

외부적으로 개혁개방을 주창하는 등소평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철저하게 공산당의 지도만을 인정하는 입장이었다. 공산당의 통제를 벗어나는 정치적인 움직임은 극도로 경계하고 탄압했다.

이에 반대한 자신의 측근, 총서기 호요방을 연금하고 축출하며 강경진압 의지를 천명했다. 하지만 호요방의 뒤를 이어 총서기에 오른 인물이 조자양도 온건파였다.

“해롤드는 중국정부가 강경진압을 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겁니까?”

“공산당이 학생들의 의견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제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사람의 목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중국공산당이 자신들의 반대세력을 용납할 리가 없습니다.”

중국내부사정에 정통한 해롤드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해롤드의 의견과는 별개로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를 아는 규태다. 벌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 일어난다. 이건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있을게 아니었다.

도도하게 흘러가는 역사의 흐름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 규태는 잠시 전율을 느꼈다.

해롤드와 전화통화를 마친 규태는 외환환율을 점검했다. 천안문 사태가 벌어지면 당연히 외환환율도 춤을 출 것이었다.

이때 중국의 위안화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화폐가 아니었기에 투자의 대상에서 제외했고 남은 것은 엔화였다.

1988년 11월에 1달러에 121엔까지 내려왔던 엔 달러 환율이 어느 사이 138엔까지 올라와 있었다.

규태는 혀를 끌끌 찼다.

원화환율은 1달러에 665원, 87년에 870원이었던 원화가 이렇게 강세를 보이니 엔화 약세와 맞물려 한국기업의 수출이 엉망이 되는 것이 당연했다.

한참동안 고민에 빠져 심각하게 머리를 쥐어짜며 환율의 움직임을 예측하던 규태가 전화기를 붙잡았다.

“리처드, 중국 이야기 들었죠?”

“정치상황이 심각하다는 보고는 받았네만 그게 어떤 영향이 있을까? 우린 중국에 투자하지 않는 회사가 아니지 않는가? 거기에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도 중국과는 크게 연관이 없네만.”

리처드의 입장은 중국의 혼란은 말 그대로 강 건너 불구경이다.

“아니죠. 일본 엔화가 지금 달러화에 약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런 추세가 계속 된다는 소리지요. 그럼 우리는 어디에 투자를 해야 할까요?”

“흠, 일본의 엔화가 계속 약세를 보일 것 같다고?”

“중국의 정치상황이 불분명해지면 달러화 수요가 늘어납니다. 요즘 부시행정부가 경상수지적가를 개선하고 있다는 소식도 있고요. 당분간 달러화가 강세로 흐를 여지가 충분하지 않습니까?”

“달러화 강세라고? 내가 다시 전화하겠네.”

규태와의 통화에서 짙은 돈 냄새를 맡은 리처드가 전화를 끊었다.

하루가 지나지 않아서 리처드가 LA로 날아왔다. 만나자 마자 집에 틀어박혀 있는 규태를 타박했다.

“젊은 대주주가 움직이지 않으니 늙은 내가 올 수밖에, LA에 틀어박혀 있지 말고 뉴욕에도 자주 들리라고.”

“다저스 지분인수하고 선수 트레이드에 관여하느라고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그리고 비행기를 자주 타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요. 이번 투자에 성공하면 전용기를 사는 것을 고려해 보죠.”

과거 비행기사고를 두 번이나 당한 기억 때문인지 전용기가 아니면 비행기 타기가 꺼려졌다.

“그래 자네가 큰 전용기를 사게 투자에 성공하면 좋겠구만. 현재 외환시장에선 엔 달러환율이 1달러에 140엔 선에서 크게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야. 이게 한번은 크게 올라갈 것 같다는 이야기지?”

“단기적으로 약세를 계속 보이면서 160선까지는 올라갈 것 같습니다. 장기적으로 미 정부의 압력으로 다시 강세를 보이겠지만요.”

“플라자합의를 통해서 억지로 달러화를 약세로 만들었는데 이걸 한꺼번에 뒤집기는 힘들겠지. 미 정부 입장에서도 쌓여가는 경상수지적자를 어떻게 해서든지 줄여야 하니까?”

“지금 엔 달러 환율이 120엔에서 140엔으로 단기 반등했지만 주춤하는 건 여러 변수들 때문이지요. 6월에 한번 크게 움직일 겁니다. 회사에서 동원할 자금이 얼마나 있습니까?”

“회사의 여유자금은 50억 달러 안팎이네, 은행대출을 받으면 150억 달러까지는 투자가 가능하지.”

“투자금액이 너무 작은데요? 제가 개인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전부 30억 달러 정도입니다. 이것까지 더해서 투자를 해보시지요.”

부동산 투자를 위해서 가지고 있는 자금과 현금으로 가지고 있던 자금까지 탈탈 턴 자금이었다.

리처드가 앓는 소리를 내었다.

“끄응, 모자라긴 한데 최대한 쥐어짜서 200억을 만들어 보겠네.”

외부에서 투자를 받으면 간단하겠지만 리처드는 타이거펀드를 지극히 폐쇄적으로 운영했다. 최대 투자자인 규태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서였다.

빠르게 자금을 만든 리처드는 외환거래전문가를 스카우트하고 투자에 나섰다.

신참자의 대규모 투자는 시장의 주목을 받기 마련이다.

“타이거 펀드? 이게 뭐하는 놈들이야? 달러를 엄청나게 사들이고 엔을 팔고 있잖아?”

“나도 정확하게는 몰라,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스닥에 상장된 기술주에 투자하는 사모펀드 놈들이라고 하던데?”

“엔화에 영향을 미칠 사건이 없나 살펴봐! 큰 이슈도 없이 이렇게 대규모로 돈을 때려 박는 미친놈들이 나왔단 말이야?”

“일본 놈들은 언제나 똑같아. 정치가 개판이고 혼란스럽지만, 웃기게도 경제는 잘 돌아가지.”

“빌어먹을 뭐라도 좋으니까 찾아보라고. 이놈들이 머리에 총 맞은 게 아니라면 뭔가가 있을 거야. “

외환딜러들 사이에서 설왕설래 이야기가 돌고 1달러에 140엔 선에서 지지부진하던 엔화가 계속 약세를 보이는 추세가 계속되는지 일본의 상황을 예의주시했지만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6월이 되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중국의 정치상황은 외환시장을 패닉에 빠트렸다. 중국의 강제진압을 속보로 전하는 CNN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개혁을 외치는 대학생들을 군인들이 진압하는 광경을 그대로 보았다.

“오 마이 갓! 저런 미친놈들 사람을 탱크로 밀었어!”

“빌어먹을 엔화가 미친 듯이 움직이고 있잖아! 1달러에 150엔이 넘었어! 이러다간 160도 넘겠어!”

잔혹한 중국 상황은 극동의 불안정성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미친 듯이 달러와 수요가 폭증하면서 달러화 강세, 엔화 약세가 계속되었다.

뉴욕 회사사무실의 딜링룸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외환시장에서 치솟는 달러화 강세를 지켜보는 규태와 리처드였다.

“1달러에 160엔이 넘어가면 달러화 매도, 엔 매수를 시작한다. 잊지 말고 반대포지션이야!”

매수와 매도가 팽팽하게 부딪히면서도 뉴욕외환시장에서 꾸준히 엔 달러환율이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던 담당자들은 엔 달러 환율이 1달러에 160엔이 넘자 전화기를 붙잡고 가지고 있던 포지션을 빠르게 정리해나가고 거래가 체결되자마자 반대포지션을 잡았다.

“됐어!”

“엄청나게 벌었어!”

가지고 있던 포지션을 정리하고 반대 포지션을 잡는 것을 마무리를 끝내자 딜링룸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162엔에서 최고점을 찍은 엔 달러 환율도 아래로 하향하면서 다시 달러화 약세를 보였다.

정리한 수익금을 집계한 리처드와 규태가 환한 얼굴로 악수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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