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46화 (46/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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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디스크에 투자하다

“랜디존슨이라고 들어봤나? 몬트리올에 있는 투수라고 하던데.”

영문 모르고 불려온 다저스 수석 스카우터인 빌리 크레이그는 길게 자란 턱수염을 긁었다.

”몬트리올에 있는 랜디라? 키가 2미터가 넘어가는 장신에 100마일의 공을 던지는 강속구투수입니다만 제구력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 투수입니다. 작년에 잠깐 메이저리그에 올라왔다가 다시 마이너로 내려갔습니다. 갑자기 랜디 존슨에 대해 물어보시는 이유가 있나요? “

“조금 전 구단에 투자하겠다는 투자자가 다녀갔는데 나에게 랜디 존슨을 추천하더군.”

“랜디 존슨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리포트를 찾아보면 있을 겁니다만 그다지 마음에 드는 추천은 아닌데요. 제구력이 고질적으로 좋지 않아서 당장 써먹을 만한 투수는 아닙니다.”

“어째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건 앞날을 내다본 선수수급이야. 솔직히 팀 에이스 오렐 허샤이저가 이렇게 불운한 시즌을 보내는 것도 선수수급이 꼬여서 아닌가. 작년에는 우승을 위해서 무리를 했다지만 올해도 무리할 수는 없네. 큰돈이 들어가는 빅 샤이닝을 포기한다면 미래를 봐야지.”

”아직 시즌초반이라 우승을 포기하기에는 이르지 않습니까. 투수진은 오렐 허샤이저와 발렌수엘라면 충분합니다. 지금 우리가 보강해야 될 건 타격진입니다. 타선 보강에 전력을 기울여야지 성공확률이 낮은 마이너리그의 투수에 관심을 둘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자네 내말을 못 알아 들은 건가! 아니면 못 알아 들은 척 하는 건가? 나도 당장 써먹을 투수로 영입하자는 소리가 아니지 않나? 당장 스카우터를 파견해서 랜디를 살펴보게, 쓸 만하다면 당연히 트레이드로 데려와야지. 클레어 단장에게도 말해 두겠네.”

구단주가 이렇게 까지 말하는데 듣지 않겠다고 버팅 겼다간 구단에 자기자리가 사라질 것이다.

“알겠습니다. 몬트리올에 스카우터를 파견해서 랜디를 살펴보기는 하겠습니다.”

피터 오말리는 빌리가 방을 나가자 열이 오른 이마를 짚었다. 수석 스카우터인 빌리 크레이그는 유능하기는 하지만 고집이 세다.

양키스의 구단주인 스타인브레너처럼 독재자로 군림하면서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잘라버리는 식의 운영을 피터 오말리는 경멸했다.

프런트 직원들에게 명령을 내리기 보다는 대화를 통해서 구단을 운영하는 것이 피터 오말리의 방식이었다.

오말리가문이라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던 뉴욕출신 투자은행가인 리처드 그레이엄의 추천으로 만난 규태는 젊고 야구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다.

단순히 돈을 벌 목적으로 야구단에 투자하겠다고 덤비는 뜨내기는 아니었다.

추천인이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전해준 보유하고 있는 자산규모도 엄청난 것이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돈 많고 젊은 동양인이 투자자가 되어 다저스의 이사진에 들어온다면 점점 나이들고 힘이 떨어지는 자신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 같았다.

자신의 사무실에서 심사숙고하던 피터 오말리는 측근들을 모았다.

***

타이거 부동산투자회사는 직원의 숫자가 다섯 명에 불과했다. 매입한 건물은 관리전문 업체에 위탁해 맡기고 오로지 상업용 건물의 매입에만 신경을 쓰는 탓이다.

회사를 설립한 후에 10억 달러를 들여 뉴욕과 LA의 1억 달러 미만의 상업용 건물을 매입해 나갔다. 일본계 자금처럼 공격적으로 대형건물 매입에 주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조심스런 투자였다.

샌프란시스코의 투자도 염두에 두었지만 89년의 대지진을 떠올리고는 일단 뒤로 미뤘다. 10월에 샌프란시스코와 인근지역을 진도 7의 강진이 덮치게 된다.

샌프란시스코는 지진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곳이다. 원래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큰 도시였던 샌프란시스코가 LA에 밀려 두 번 도시가 된 것도 1906년의 대지진으로 수천 명이 죽고 도시가 반파당하는 지진 때문이었다.

샌안드레아스 단층이 도시 위를 지나가면서 잦은 지진이 발생한다. 2014년에도 샌프란시스코 북쪽 나파벨리에 6.0의 지진이 덮쳐서 와이너리가 큰 타격을 입는다.

연락을 받고 뉴욕에서 달려온 오선한과장이 중개업체 직원과 찾아왔다.

“나파벨리와 주변에 있는 와이너리의 숫자가 800개가 넘는다는군요. 중개업체에 매물로 나온 와이너리도 숫자가 상당합니다. 덩치에 따라서 싼 건 100만 불에도 구입할 수 있고 비싼 건 1천만 달러를 훌쩍 넘어갑니다.”

“오선한과장이 마땅한 매물이 나온 걸 찾아서 매입해주세요.”

“특별히 사고 싶은 와이너리는 없습니까?”

“원하는 와이너리는 없어요. 와이너리에서 생산한 포도주를 지인들에게 선물할 정도만 되면 되겠지요.”

와이너리마다 심은 포도의 품종이 각양각색이었다. 포도의 종류에 따라 생산하는 와인의 종류가 달라진다. 중개업체 직원과 사흘에 걸쳐서 여러 와이너리를 둘러본 오선한과장이 결과를 보고했다.

“와이너리 매입에는 조금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떤 종류의 포도를 재배하는지 산출되는 포도주의 품질과 평판같이 와이너리 매입은 여러 가지로 다른 매물들보다는 따져야 할 게 많습니다. 지금 나온 매물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매물이 하나있는데 덩치가 커서 그런지 가격이 조금 비쌉니다. 520만을 달라고 하더군요.”

“가격네고를 해서 500만에 매입하면 적당할 것 같네요.”

“대표님이 직접 포도 농사를 지을 것도 아니라면 사람을 고용해서 관리를 할 테니 적당한 크기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크레이튼이 추천하고 싶은 와이너리가 있답니다.”

크레이튼은 부동산 중개회사의 직원이다.

“꼭 나파벨리를 고집하지 않는다면 비슷한 크기의 더 좋은 매물이 있습니다. 소노마 북쪽에 있는 와이너리인데 몇 년간 포도작황이 좋지 못해서 적자를 견디다 못해서 매물로 나왔습니다.”

“소노마면 백포도주를 주로 생산하지 않나요?”

“소노마 카운티의 대표 포도품종은 백포도주용인 샤도네이지만 적포도주용인 카버네 소비뇽과 피노누아도 많이 재배됩니다. 매물로 나온 농장에 심은 포도는 피노누아 품종입니다. 아시겠지만 피노누아는 프랑스 브르고뉴 지방에서 많이 재배하는 품종으로 과일향이 진하고 섬세하고 강합니다.”

규태는 두 사람과 함께 나파벨리와 소노마의 와이너리 두 곳을 둘러보았다. 그중에 규태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크레이튼이 추천한 소노마의 와이너리였다.

넓은 포도밭의 한가운데 지어진 남유럽풍의 건물부터 규태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주인이 거주하는 건물 옆으로 와인을 제조하는 설비와 생산한 포도주를 저장하는 지하저장고가 자리했다.

무성하게 잎이 달린 포도나무들이 나지막한 언덕을 따라 줄지어 서있는 풍경도 마음에 쏙 들었다.

규태가 결정을 내리자 오선호과장이 나서서 가격 협상을 벌였다.

단기간의 일정으로 찾아온 샌프란시스코였지만 갑작스럽게 일정이 바꾼 것은 와이너리의 매입과 피터 오말리가 요청한 다저스 지분 11%의 인수협상 때문이다.

전혀 기대하지 않고 침만 발라놓는다는 생각으로 던진 낚시에 구단주 피터 오말리가 덥석 응했기에 규태도 깜짝 놀랐다.

거기에다 케서린이 자신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들고 온 벤처 투자건도 하나 더 있었다. 작년에 설립한 선디스크의 투자요청 건이었다.

선디스크는 잭 위안, 엘리 하라이, 산자이 메로트라가 창업한 플래시 메모리 전문회사로 나중에 이름을 샌 디스크로 바꾼다.

선디스크는 시장에 진입할 제품개발에는 성공했지만 생산 공장을 지을 돈이 부족해서 벤처투자사의 투자를 받으려 했다.

벤처사의 회의실에서 공동창업자들과 벤처직원들의 미팅에 끼어 든 규태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속으로 혀를 찼다.

창업자 세 사람 모두가 벤처기업 특유의 기술만능주의에 빠진 창업자들이었다. 회사에 투자를 받는 것만 생각할 뿐 지분의 방어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보유한 플래시 메모리특허만으로 해마다 5억 달러를 넘게 받던 기업이 어째서 170억이라는 헐값에 팔렸는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마이크로프로즈나 샌 디스크나 모두 창업자들이 지분관리에 실패했다. 마이크로프로즈의 시드 마이어는 뛰어난 게임을 만들고도 회사를 나와야 했고 샌 디스크의 창업주들 역시 개인지분이 적어서 투자자들이 회사를 매각하는 결정을 막지 못한 것이다.

“선디스크에서 원하는 투자금액이 2천만에 지분 30%에요.”

“회사에 남은 투자금액이 얼마나 되죠?”

“3억 달러요. 정확하게는 2억 7900만 달러요.”

케서린이 규태의 눈치를 살폈다. 꽤 큰 투자 금액들이 집행되다보니 초기자금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벤처기업투자는 장기간을 필요로 한다. 초반부터 너무 많은 투자를 해서 조만간 자금이 바닥나게 생긴 것이다. 이미 투자를 약속한 벤처들까지 포함하면 자금이 빠듯했다.

나쁘지는 않았다. 케서린이 투자를 한 회사들의 절반은 규태도 이름은 들어본 회사들이다. 열 개중의 하나가 아니라 열 개중의 다섯은 성공한 다는 소리.

벤처기업 투자의 위험성을 생각하면 미친 성공확률이다. 과연 미래에 실리콘벨리의 암사자라 불릴 능력을 지금부터 보여주는 케서린이었다.

“자금이 바닥나면 추가로 투자를 하겠습니다. 이번에도 10억 달러를 투자하지요. 하지만 추가적인 투자는 더 이상 없습니다.”

“정말이요? 와아! 자금이 부족하면 벤처펀드자금을 모집해야 하는가 고민했는데 정말 다행이네요.”

규태의 개인자금을 투자하면 간섭이 거의 없지만 외부자금을 받아들이면 상황이 달라진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더 이상은 안돼요.”

규태는 케서린에게 몇 번이고 다짐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투자자금이 들어가면 자금조달이 어렵다. 추가로 투자하는 10억 달러도 부동산에 투자할 자금으로 남겨둔 자금이다.

***

규태는 LA에 장기간 머물게 되자 호텔에 장기간 머물기 보다 벨에어 지역에 개인저택을 구입했다. 큰집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보안과 경호를 위해 저택을 구입했다.

새로 구입한 대저택을 둘러보는 오선한과장이 탄성을 내뱉었다.

“정말 크고 화려한 집이네요. 방만 열두 개가 넘는다니, 매입가가 450만 달러라면서요?”

“집을 고치는 비용도 최소한 200만 달러가 넘어요. 다저스지분인수에 1,200만이 들어갔는데 집하나 사는데 세금까지 700만이나 들어가다니.”

“들고 있으면 올라가겠지요. 벨에어라면 LA에서도 알아주는 부촌이지 않습니까. 지금은 경기침체 때문에 비싼 가격도 아니라고 하던데요?”

“가격이야 올라가겠지만 체질적으로 큰집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요.”

“경호 때문에 어쩔 수 없다지 않습니까? 역시 대표님을 따라다니다 보니까 이런 집에서도 살아보네요.”

탐탁치 않아하는 규태에 비해 대저택에서 살게 된 오선한과장은 싱글벙글했다.

“비버리 힐스쪽의 건물을 매입한다고요?”

“마침 그쪽에 상업용 빌딩이 매물로 나와서요. 가격은 대충 8,000만 달러 선에서 절충이 될 것 같습니다.”

“그걸로 부동산 매입은 마무리가 되겠군요.”

“건물을 관리하는 것도 보통일이 아닙니다. LA에도 지사를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필요하다면 만들어야죠.”

“LA에 사들인 상업용 건물만 열 한 개고 뉴욕에도 8개입니다. 나파벨리의 와이너리와 뉴욕 롱아일랜드의 저택까지, 잔금을 지불하고 나면 이제는 남은 투자자금도 없습니다.”

“사실 미국에서 부동산 투자를 하자면 10억 달러가 많은 돈은 아니죠.”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나마 부동산 경기가 침체라서 이정도이지 고층 대형건물 가격은 상상을 초월하더군요. 한국최고부자라고 해봐야 1조를 들고 있는 사람도 별로 없을 텐데 말입니다.”

“삼성전자의 시총이 이제 2조가 된 것 같은데요. 여기 올 때 오사장님이 별말 안하시던가요?”

오선한이 서류를 보며 차분하게 기룡증권의 투자내역을 보고했다.

“그렇지 않아도 오사장님께서 제게 서류를 하나 주셨습니다. 어디보자 기룡증권에서 920억으로 4.8%의 삼성전자주식을 매입했습니다.”

주식의 투자지분이 5%를 넘어가면 투자목적을 공시해야 하는 골치 아픈 일이 생긴다.

모든 주식을 처분하고 채권을 운영하는 기룡증권에서 매입하는 주식은 삼성전자 하나였다. 구봉만이 전화를 통해 결과를 보고한 KT창투도 마찬가지. 창투펀드의 자금을 단기로 굴리고 자본금으로 삼성전자의 주식을 2백만 주 매입했다. 총 매입금액은 560억, 증권 투자수익으로 800억으로 늘어난 자본금의 대부분을 삼성전자 한 종목에 투자했다.

창투펀드의 자금도 1300억으로 크게 늘었다. 추가적인 자금 모집은 하지 않고 폐쇄적으로 운영했지만 폭포처럼 쏟아지는 원성과 압박으로 어쩔 수 없이 5백억의 자금을 추가로 받아들여야만했다.

“지금도 한국주식시장은 하락세이지 않나요?”

미국에 장기간 머물다보니 한국주식시장의 정보에는 어두웠다.

“종합주가지수가 많이 빠졌습니다. 1,000을 넘었던 게 800선까지 내려앉았지만 아직까지는 다들 일시적인 조정으로 보는 모양입니다.”

“일시적으로 반등이 나오기는 하겠지만 경기가 이미 정점을 지났으니 주식시장도 하락세가 이어질 겁니다. 수출이 줄어들어서 올해 무역수지 흑자규모도 대폭 줄어들 겁니다.”

무역수지가 88년 89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하고는 드라마틱하게 줄어들어서 89년에는 9억 달러 흑자로 대폭 줄어든다. 이후 한 번도 흑자를 보이지 못하고 97년까지 적자를 보인다. 특히 IMF가 발생한 97년의 전해인 96년에는 206억 달러라는 엄청난 적자를 기록한다.

외환보유고가 300억이 조금 넘는 나라에서 한해에 기록한 무역수지적자가 200억 달러가 넘었으니 경제가 무사하기를 바랐던 게 이상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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