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45화 (45/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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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파벨리

“장난 아니면요? 내가 진심이라면 어쩔 건가요?”

“다혈질 여자는 사양입니다.”

규태는 케서린과 심각한 관계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케서린과 같이 불꽃같은 성격의 여자는 불이 붙을 때는 화산처럼 뜨겁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차가와진다. 가벼운 연애상대라면 몰라도 결혼상대는 아니었다.

둘이 사귀었다간 나중에 앙금이 남을 수밖에 없다. 같은 회사에 있는 사람과 사귀다가 잘못되면 서로 얼굴 보기가 어려워진다. 쿨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서로 상처를 입는 것이 뻔한데 지옥문을 열 필요는 없었다.

규태에게 가볍게 거절당한 케서린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렇게 가볍게 거절당한 것도 오랜만이네. 일이야기나 하죠. 투자를 요청한 회사가운데 세 개가 마음에 들어요. 하나는 게임을 만드는 회사이고 둘은 컴퓨터를 제조하는 회사인데 그중에 하나는 애플 제품을 호환기종을 만들어 팔겠다는 회사예요. 경영자가 마이클 강이란 한국인이던데요?”

“애플이 라이선스를 허락했다고요? 정말 특이한 일이네.”

외부에 널리 알려진 것처럼 극도로 폐쇄적인 애플의 경영철학이다. 좀처럼 외부에 라이선스를 넘기지 않았다.

“잡스가 회사를 쫓겨나서 그런지 APPLE 2 까지는 외부라이센스를 허락했더라고요.”

“한국인이 경영자라면 성공한다면 좋겠네요.”

정말 마음이 그랬다. 실리콘벨리에도 꽤 많은 한국인들이 회사를 만들고 성공을 꿈꾸었다.

“그리고 게임을 만드는 회사는 마이크로프로즈란 회사인데 이건 투자를 해야 할지 고민이에요. 능력은 있어 보이는데 개발자가 너무 고집이 세서.”

“마이크로프로즈라?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은데. 이전에 만든 게임이름이 뭐라고 합니까?”

“F5이글이라는 게임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요즘에는 철도회사를 경영하는 게임을 개발 중이라더군요. ‘

“철도경영게임이라? 그 개발자 이름이 뭐던가요?”

“시드 마이어요. 전에는 백화점의 판매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젠장!

규태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이건 황금이 제 발로 걸어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문명하셨습니다. 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공전의 히트를 쳤던 문명이란 게임의 제작사가 마이크로프로즈였다.

그러고 보면 철도경영게임이란 것이 레일로드 타이쿤이다. 상업적으로 커다란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제법 판 게임이다.

문제라면 마이크로프로즈가 시드마이어와 빌 스틸리의 공동창업회사인데 경영에 문제가 있었다.

시드 마이어가 개발을 빌 스틸리가 경영을 담당했지만 자금관리에서 허점이 드러났다.

“거기 투자합시다. 단 자금의 집행은 우리가 맡겠다고 하고요.”

“성공에 대한 감이 오나요?”

내기에 진 다음에 케서린도 규태에 대해서 강현을 달달 볶아서 알아보았다. 투자에 대해서는 절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단 소리에 케서린은 규태를 동양에서 온 샤먼쯤으로 여겼다.

“예, 감이 옵니다. 이 회사 대박날 것 같아요. 철도 경영게임이란 것 한번 신경 써서 알아봐요.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흐음.”

케서린이 턱을 고인 채 마이크로프로즈와 관련된 서류를 넘겼다.

“재무구조가 엉망이네요. 이런 경우는 아주 흔하죠. 개발자가 중심인 회사라 그런지 들어오는 돈은 생각하지도 않고 무턱대고 개발에만 전력을 쏟아부었네요.”

“그러니까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겠죠. 돈을 잘 버는 회사라면 이곳에 올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참 그러니까 힘이 들어요. 서류가 완벽하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사장이 뛰어나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니까. 정말 이 바닥은 어떻게 될지를 모른다니까요.”

케서린이 가볍게 불평을 토로했다.

“벤처투자라는게 언제나 그렇죠. 그래도 케서린의 능력을 믿어요.”

“네네, 제 능력을 보여줘야죠. 그게 내 할 일이니까요.”

***

샌프란시스코 북쪽의 나파벨리주변으로 와이너리들이 줄지어 있다. 나중에는 나파벨리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명성이 세계적으로 높아지면서 와이너리들을 도는 투어가 많아지지만 이시절만 해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그저 그런 와이너리들이라 찾는 사람이 없었다.

차를 한 대 빌려서 와인투어를 하려는 규태를 복일모가 기를 쓰고 따라붙었다.

“본부장님, 돈도 많으면서 나파벨리에 들려서 하는 게 와이너리 구경입니까? 조금 더 화끈한거 없습니까? 요트를 빌려서 낚시를 한다거나 아니면 여자들을 불러서 화끈한 파티를 벌인다던가 하는거 말입니다.”

“너는 남아서 공부나 하지 왜 여기까지 쫓아와서 불평이냐?”

“주말인데 좋은 곳에 간다니까 좋아와 봤죠. 저는 진짜 좋은곳에 가는줄 알았는데.”

조금 친해지니 붙임성 많은 성격답게 복일모는 규태에게 친동생처럼 굴었다.

“여기가 좋은 곳이지 얼마나 좋으냐. 적당한 일조량과 온도, 정말 포도주를 만들 기엔 적당한 장소야.”

보르도와 부르고뉴처럼 와인용 포도를 재배하기엔 최적의 기후였다.

“본부장님 정도 부자라면 당연히 비싼 프랑스 와인을 마셔야죠. 이런 시골구석의 와이너리를 찾아오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운전을 하면서도 복일모는 툴툴거렸다.

“여기 와인도 품질이 좋아. 매물이 있으면 여기 와이너리를 사야겠다.”

이전에도 나파벨리에 와이너리를 보유했지만 중개를 통해 매입했기에 커다란 애착이 없었다. 차라리 보르도의 샤토 쪽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었다. 오래되고 낡은 샤토를 이리저리 꾸미며 많은 애착을 가졌었다.

“일본 놈들이 프랑스 샤토를 엄청나게 구입한다는데 그쪽에 사시는 건 어때요?”

“여기 포도주를 무시하는 거냐? 미국산 와인을 무시하는 거냐고.”

“미국에서 만든 포도주를 누가 마신다고 그래요. 주변에 부자들 보니까 전부 프랑스 와인만 찾던데요.”

“그것 참. 여기 와인도 품질이 높아.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도 없고.”

나중에 프랑스 와인대회에서 나파벨리의 와인들이 대거 상을 휩쓸면서 명성이 높아지지만 아직 사람들의 인식에 미국산 와인은 저급품이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봄을 맞아 활력이 도는 포도 농장들을 돌아보며 규태는 오랜만에 마음이 편해졌다.

이리저리 인맥을 동원한 끝에 규태는 피터 오말리와 LA의 구단주 사무실로 찾아갔다.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마주했다.

“여기저기 전화가 오더군요. 재무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야구를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월드시리즈에서 다저스는 환상적이었어요. 호세 칸세코와 맥과이어 같은 강타선이 즐비한 애슬레틱스가 그렇게 무너질 줄 누가 예상이나 했습니까.”

“운도 좋았고, 모든 것을 쏟아부은 보람이 있었습니다.”

월드 시리즈를 재패하고 우승했던 작년 일을 추억하면서 피터의 얼굴이 밝아졌다.

“올해는 정말 힘이 들것 같네요. 시작부터 부상자도 많고 정말 운이 따라 주지 못해 걱정입니다.”

“시즌 후에 페르난도 발렌수엘라를 잡을 수 있겠습니까?”

계약이 만료되는 발렌수엘라를 잡아둘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다저스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최대의 관심사였다.

1987년 아쉬운 성적을 거둔 뒤 88년의 우승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은 다저스였다.

88년 우승의 후유증인지 89년 시즌에는 타격이 물타선이 되는 바람에 초반부터 다저스의 시작이 좋지 못했다.

야구를 사랑하는 점잖은 신사인 피터는 아버지가 물려준 가업을 사랑했지만 조금씩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메이저리그의 팀들이 소모하는 비용이 해마다 큰 폭으로 늘어났다. 특히 선수들에게 지급하는 연봉은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다저스도 해마다 우승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다보니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가 않았다.

피터가 선뜻 동양인으로 보이는 젊은 투자자와 자리를 함께 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시장이 커지면서 수입도 늘어났지만 들어가는 돈을 더 크게 늘어났다. 우승이 아니면 만족하지 못하는 팬들을 만족시키려고 무리를 한 셈이었다.

“계속 협상을 하고는 있습니다만 금액이나 기간이 문제에요. 잘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해마다 치솟는 선수들의 연봉을 감당하기가 버겁겠군요.”

피터 오말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메이저리그 구단의 수입은 크게 세 가지, 입장료와 음식료, 기념품 판매 수익 그리고 TV중계권 수입이다. 가장 큰 부분은 역시 40%를 차지하는 입장료수입이다.

입장료수입을 좌우하는 것은 팀의 성적, 우승을 요구하는 팬들의 성화에 비싼 값을 치르고 FA선수를 데려왔다. 전통의 강자라면 비슷한 처지였다.

“아직은 버틸 만 합니다만 앞으로의 일은 모르겠군요. 하지만 저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이 팀을 사랑합니다.”

공격적으로 팀을 운영하는 양키스의 스타인브레너가문과 달리 다저스를 운영하는 오말리가문은 보수적인 입장이다.

규태도 당장 다저스의 운영에 끼어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다만 나중에 아깝게 여겼던 일 하나를 해결할 참이었다.

“저도 투자를 하고 경영에 참가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을 만나고 투자를 하고 싶어 한다니 당연히 다저스의 경영에 참가하고 싶어 할 줄 알았는데 의사가 없다니?

“그럼 날 만나고 싶어 한 이유가 뭡니까?”

“나중에 생각이 바뀌어서 구단을 매각할 대상자를 찾는다면 제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고 두 번째는 선수를 추천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저스에 필요한 선수는 이미 다 있습니다.”

피터 오말리의 표정이 바뀌었다. 유능한 선수라면 지금 다저스에 많이 있다. 트레이드와 FA영입으로 선수풀이 가득 찼다. 들어가는 돈만큼 효율이 나오지 않아서 고민이지만.

“아직은 알려지지 않은 미완의 선수입니다. 지금 마이너에 있으니 큰돈을 들일 필요도 없습니다.”

그렀다면야, 굳었던 피터 오말리의 표정이 풀렸다.

“마이너 선수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그게 누굽니까?”

“몬트리올에 있는 랜디 존슨입니다. 키가 2미터가 넘는 강속구 투수로 100마일이 넘는 공을 던집니다.”

“그 정도 강속구 투수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만 제가 알지 못하는 걸로 봐서는 문제가 있는 선수로군요.”

“강속구 투수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약점이지요. 제구력이 형편없습니다.”

“제구력이 떨어지는 강속구 투수라? 복권이나 마찬가지로군요.”

“제구력만 잡으면 명전은 예약확정일겁니다. 부상도 잘 당하지 않는 몸이거든요.”

피터 오말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다저스에는 수많은 스카우터들이 있다. 랜드 존슨을 그들이 잡아내지 않았다면 제구를 잡기 힘들다고 판단했다는 소리다.

하지만 이 젊은 투자자는 초면에 대뜸 큰소리를 쳤다. 평범한 사람이 하는 소리였다면 사기꾼으로 의심을 하거나 랜디와 연관된 에이전트라고 의심했을 것이지만 피터도 이미 사전에 투자하겠다며 찾아온 사람에 대한 조사를 해두었다.

상대는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어도 월가와 실리콘 벨리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는 아시아의 젊은 거부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끝에 규태가 돌아가자 피터 오말리는 담당자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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