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40화 (4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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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서린 그린

“브라보!”

가격불문하고 사들인 오라클의 주가가 고공행진을 계속하자 규태는 사무실에서 작은 축배를 들었다.

“이번 투자는 대성공입니다.”

시장에서 공격적으로 매수한 끝에 17.5$에 사들인 주가가 30$를 넘어갔다. 시가총액이 12억 달러밖에는 되지 못해서 25%의 주식을 매집했지만 매입 총금액이 3억 달러였다.

“이정도 투자성공에 만족할 순 없지요. 계속 사들이세요.”

30달러가 넘어가면서 시장에는 이익을 실현하려는 매물이 쏟아졌다. 하지만 규태는 이 정도에서 팔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최소한 40%까지 매집해 들어가서 장기보유 하는 것이 목표였다.

“케서린에게 전화를 하세요. 내가 그러더라고 약속을 지키라고.”

이번에 과장으로 진급해서 샌프란시스코에 만들어질 벤처캐피탈로 옮겨갈 강현이었다.

“케서린이 뒤로 빼지 않을 겁니다. 그녀를 아는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주 화끈한 성격이라고 하더군요. 어지간한 남자는 가볍게 멱살을 쥐고 집어던질 정도로 힘도 세다고 합니다.”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 벤처기업의 경영자와 다투면서 패대기를 쳐버린 사건은 꽤 알려진 사실이다.

“오린 컴퍼니였나? 벤처 투자금 받아서 미친 듯이 놀러 다니다가 케서린이 박살낸 이야기는 이미 들었네요. 한국이나 미국이나 정신 못 차리는 놈들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가진 기술이나 비전이 마음에 들어 투자를 했다가 쪽박을 차는 일은 미국에서도 비일비재했다.

벤처 투자금을 받아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차 바꾸고 요트 사는 놈들도 한둘이 아니다. 물론 그런 경영자를 가진 회사치고 성공한 회사가 드물다.

벤처캐피탈도 조심해서 거르고 거르지만 열 개의 회사에 투자하면 하나도 성공하기 힘들다. 그중 하나가 성공하면 모든 손실을 커버하고도 남는 이익을 가져다주지만.

“한국사정은 어때요?”

“88올림픽이 4위로 끝나고 조용해졌습니다.”

한국이 거둔 기대이상의 성적이었다.

“외화내빈이라고 화려한 축제가 끝났으니 후유증이 몰려오겠죠. 온 나라의 힘이 그곳에 쏠렸는데 끝이 났으니 몇 년은 힘든 시기를 보낼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증시가 조정에 들어가서 시들합니다. 부동산도 거래가 뜸한 것 같고요.”

그 말에 문득 한국에 있을 후배들이 생각났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군대에 입대한 녀석들이었다. 부동산 사무실은 조애리가 혼자 건사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조애리에게 불황을 예고 해두었기에 대비를 하고 있을 테지만.

“그렇지 않아도 한국에서 대표님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너무 갑작스럽게 미국행을 한 게 아닌가 하는 불만도 있고요. 은밀하게 대표님의 귀국을 종용하는 연락도 받았습니다.”

“돌아가 봐야 좋은 일이 있겠어요. 무시하세요.”

제대를 하자마자 서둘러 미국행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이유 없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한국에 남아있었으면 골치 아픈 일이 시달릴 것 같은 예감에 비행기 표를 미리 예매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무래도 예감이 맞아 떨어진 것 같았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가난한 외국인이 막대한 돈을 번 부자로 만들어준 육감에 가까운 예감 능력이었다.

이유 없이 불안하다던가 하면 꼭 무슨 일이 일어났다.

***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나 간편한 운동복차림으로 공원을 달릴 준비를 하던 규태는 긴급한 일이 있다며 달려온 오장우에게 잠이 확 깰 소식을 들었다.

“KF창투사와 기룡증권사에 세무조사가 들어왔다고요?”

“준비할 사이도 없이 전격적으로 들어왔답니다.”

세무조사란 손봐줄 필요가 있는 기업에 대한 협박이었다. 규태가 코웃음을 쳤다.

“그동안 한국에 들어오란 말을 듣지 않은 보복인 모양이로군요.”

“새롭게 대통령이 바뀌었으니 돈줄이 필요하겠지요.”

“전임도 돈 욕심이 많더니 후임도 만만치가 않네요. 시간이 지나면 여러 죄목을 붙여서 검찰조사도 들어오겠네요.”

불안감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한때 한국에서 제일가는 기업이었던 동명목재는 5공이 들어서면서 전격적으로 해체되었다. 부실기업정리란 명분을 가져다 붙였지만 사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말도 되지 않는 소리. 얼마 전에는 국제상사가 강제로 해체되지 않았던가.

“리처드를 통해서 한국정부에 경고를 하겠습니다.”

미국정부에 포진한 리처드의 인맥을 통해 힘을 보여주면 한국정부도 섣불리 대하지 못한다.

규태가 가만히 있으면 알기를 우습게 여길 것이었다. 한국에 규태가 남아있었다면 여론을 조작해서 규태를 천하의 나쁜 놈으로 만들고 재산을 꿀꺽하려 했을 것이다.

이러니 위험신호가 계속해서 규태를 자극한 것이다.

“어떤 놈이지 몰라도 사람을 잘못 봤네요.”

규태가 이를 악물었다. 이제까지 자신에게 적대감을 표출한 상대를 그대로 내버려 둔적이 없는 사람이다.

리처드와 연락을 하고 비공식적으로 미국정부에서 항의를 전달하자 거짓말처럼 회사에 쏟아지던 압박이 사라졌다.

리처드가 통한 미정부인사는 바로 주한미국대사였다. 어린 시절을 중국에서 태어나 자라 미국정부에서 중국통으로 알려진 릴리는 한국대사로 오기 전에 대만대사를 지낸 사람이다.

“제임스 릴리하고  리처드가 친분이 있는지는 몰랐네요.”

“제임스 릴리가 정보부(CIA) 출신입니다. 리처드가 월가에서 일할 때 접촉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릴리는 부시부통령과 연결 고리가 있습니다.”

부시부통령은 CIA국장 출신이다. 정보국에서 고위직을 지낸 릴리와 당연히 친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 미국에서 가장 큰 이슈는 다가온 대통령선거였다.

“그나저나 공화당은 조지부시로 결정이 났지요?”

“다른 후보가 나올 가능성이 없습니다. 민주당은 듀카키스쪽이 앞서나가고 있습니다.”

“리처드는 어떻게 보던가요?”

“레이건이 8년 동안이나 집권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경우는 대개 다른 당에서 대통령이 나오는 게 일반적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아닐걸요. 레이건의 인기가 워낙 높아서 부시가 그 후광을 제대로 받을 겁니다.”

규태는 이미 조지 부시가 대통령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을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아직은 민주당의 듀카키스도 만만치 않은 지지도를 보였다.

1차 TV토론이후 여론조사결과는 후보 둘이 서로 팽팽한 접전으로 나왔다.

“부시 자체로는 큰 매력이 없는 후보지만 듀카키스도 만만치 않게 인기가 없죠.”

뉴욕과 캘리포니아의 부동산 매입을 담당하는 오선한 과장이 규태에게 하소연을 했다.

“부동산 매입에는 일본기업의 경쟁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나온 큰 매물을 거의 싹 거두어가는 수준입니다.”

제2의 진주만 공격이라고 언론이 과격하게 표현할 만큼 대대적인 뉴욕 주의 대형건물을 일본기업들이 싹쓸이 수준으로 거두어 들였다.

미쓰비시가 록펠러센터를 매입했고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도 일본인이 합작으로 매입했다.

“따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한번 매입하면 장기간 보유할 생각입니다. 그들이야 우리처럼 장기로 보는 것이 아니니 빌딩가격이 떨어지면 언제라도 털고 나가려고 할 겁니다.”

이당시 일본기업의 위압이 어느 정도였나 하면 1988년 세계 50대 기업에 33개가 일본기업이었다. 세계1위의 기업이 NTT, 세계 10대 기업 중 7개가 일본기업이었고 일본 제일의 부자가 세계제일의 부자인 세상이었다.

미래에 일본기업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란 공포가 미국인들을 사로잡았다.

“과연 일본기업이 부동산을 매각할까요?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살수 있다는 판국인데요.”

“일본기업의 부동산 투자는 이제 마무리 단계입니다. 지금 일본의 기준금리가 2%인데 그걸 계속 유지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기준금리는 올리는 순간, 거품이 터지고 일본경제도 침체로 빠져들 겁니다.”

미국에 집중투자하고 일본에 투자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래도 일본시장을 두고 보기는 아깝지 않습니까? 미국을 통해 투자를 하면 제약도 거의 없고요.”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을 두고만 봐야하는 오선한이 아쉽다는 말을 했다.

“일본이 5년을 버틸 수 있다면 투자하는 게 맞겠지만 그쪽은 쳐다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페레스트로이카로 소련의 위협이 현저하게 낮아지고 있는데 언제까지 미국이 일본을 봐줄 거란 생각이 들지 않네요.”

확실히 동서냉전의 세상이 종막을 고하고 있었다. 1987년 미소양국의 중거리핵무기 감축협약으로 긴장이 완화되면서 훈풍이 불고 있다.

언제 핵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공포가 상당히 가라앉은 것이다.

“하긴 핵벙커를 전문으로 만드는 회사들이 어렵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핵벙커를 갖춘 집을 구매하는 게 미국에서 돈 많은 사람들의 유행이었다. 그만큼 핵전쟁이 언제라도 벌어질 수 있다는 공포심리가 미국사회에 만연했었다.

“무역수지적자를 축소하는 작업이 이젠 냉전보다 우위로 올라설 겁니다.”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의 쌍둥이 적자를 해결해야 한다는 요구가 점점 수면위로 올라왔다. 막대한 국채를 발행해서 적자를 보전하는 것도 한계에 부딪혔다.

플라자 합의를 통해서 일본과 독일의 통화를 평가절상 시키는 작업을 했지만 역부족. 일본과 독일이 수입하는 미국제품의 양이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케서린은 쉽게 승복하지 않았다. 뉴욕사무실로 달려온 케서린이 규태에게 구구절절 사정을 했다.

“약속을 무르면 안 될까요? 이전부터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다고요.”

“약속은 약속입니다. 하지만 해보고 싶었다는 게 뭡니까?”

“내 이름을 딴 벤처펀드요. 이제 3년만 더 회사에서 일하고 독립할 생각이었다고요.”

케서린의 말에 규태는 기억하지 못했던 사실을 떠올렸다. 젊은 케서린 그린의 흑역사였다.

“그거 실패합니다. 아타리 쇼크로 멸망한 비디오게임기 사업에 대규모로 투자한다고 해도 이미 일본에 더 좋은 게 나왔어요.”

아타리는 퐁이란 게임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그 뒤로 스페이스 인베이더와 팩맨으로 비디오게임시장을 평정했다. 이후로 야심만만하게 출시한 ET란 신규게임을 출시한 이후로 폭삭 주저앉았다. 이게 얼마나 극적이었냐 하면 한때 30억의 매출을 자랑하던 비디오 게임시장이 2년 만에 1억 달러로 몰락한다.

그이후로 비디오 게임기시장은 그대로 저무는 것처럼 보였다. 케서린은 이 비디오 게임기시장을 살릴 회사들을 집중적으로 후원하는 벤처펀드를 만들 계획이었던 것이다.

젊은 시절 케서린의 피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무슨 소리를, 아타리 말고도 미국에서 이젠 새로운 비디오게임이 나올 때가 됐다고요. 일본의 게임기라니! 그 싸구려 제품을 누가 산다고!”

규태의 말은 아타리 게임에 열광했던 케서린으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소리였다.

“누가 좋아하기는요? 미국인들이 좋아하지요. 케서린은 미국에서 만든 게임 말고 닌텐도에서 만든 마리오 게임을 해본 적이 있나요?”

“...... 해본 적 없어요. 미국에 나오는 일본 비디오게임은 아직 없어서.”

“한번 해보시길 추천합니다. 닌텐도에서 만든 마리오시리즈는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미국에서도 먹힐 겁니다. 지금 게임기시장에 투자를 해봐야 일본 비디오 게임기가 들어오면 손해만 보고 철수할 겁니다.”

젊은 시절 케서린 그린의 대실패를 막아주려고 규태는 점잖게 충고했다. 하지만 피 끓는 케서린이 순순히 규태의 말을 믿을 리가 없었다.

당장 일본행 비행기 표를 끊은 케서린이 도쿄로 달려갔다.

말하면 그냥 좀 믿지

규태는 못 말리는 망아지같이 날뛰는 케서린의 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대학시절부터 아타리 게임에 미쳐서 간신히 대학을 졸업했다는 케서린이다.

벤처 투자업에 발을 들여놓은 것도 해보고 싶은 게임을 제일먼저 마음껏 할 수 있는 장점 때문이었으니 그녀를 탓하기도 뭐했다.

일본에서 일주일을 머물며 게임기 시장을 돌아본 케서린이 미국으로 돌아왔다.

일본에 있는 일주일 내내 잠도 자지 않고 게임만 했는지 눈동자가 시뻘겠다. 코가 쑥 빠진 케서린을 보며 드디어 미처 날뛰는 망아지의 고삐를 잡았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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