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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크셔 헤서웨이
이런 종류의 논쟁은 언제나 있는 일이다. 첨단주와 굴뚝주의 투자에 대한 의견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세분된다.
굴뚝주에만 투자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워렌 버핏이고 반대편은 규태가 투자한 회사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다.
규태는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리처드는 어떤 입장인가요?”
“나서지 않고 직원들의 말을 듣는 입장입니다.”
“잘하고 있네요. 아직 직원들과 자리를 한 적이 없어서 제 뜻이 분명하게 전해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저는 기존의 전통주에 투자할 마음이 없습니다. 회사가 따로 고객들에게 투자금을 받는 입장이라면 모를까. 지금처럼 회사의 자산으로만 투자를 한다면 앞으로도 계속 첨단주의 투자에 집중할 겁니다. 하지만 사고 싶은 회사주식이 하나 있네요.”
“그게 어딥니까?”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라고 이상한 회사가 하나있어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로군요. 뭘하는 회사입니까?”
“보험회사라고 할까요? 유명하지는 않아도 회사의 재무구조가 안정적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 아주 재미있는 사람입니다.”
나중에는 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게 되지만 이때만 해도 워렌 버핏은 괴짜나 이단아에 가까운 이미지였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되어있고, 주가가? 어이쿠! 꽤 높네요.”
오장우가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확인한 버크셔의 주가는 주당 3,850 달러, 주당 가격이 상상외로 높았다.
“거래량도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어제 거래량이 4000주가 조금 넘게 거래 되었군요.”
“주식을 장기보유를 하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그만큼 매력이 있다는 소리지요.”
“시간이 많이 걸리겠네요. 사주와 협의를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거래량이 적은 회사의 주식을 매입하려면 회사의 주인과 담판을 벌이던가 아니면 시장에서 꾸준히 사들이는 방법밖에는 없다.
“이빨도 안 들어갈 겁니다. 한번 시작해보죠. 회사의 주인한테서 연락이 오는지 안 오는지를 확인해 보고 싶네요.”
워렌이라?
규태는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오마하에 처박혀서 한 발짝도 외부로 나서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괴짜였다.
주식시장에 상장을 한 것도 일 년에 단 하루밖에 투자자들의 입금과 출금을 해주지 않는 탓에 자자한 원성을 가라앉히기 위한 것이었다.
앞으로 규태가 운영할 회사의 모델이 바로 버크셔 해서웨이다.
좋은 건 베껴야지.
규태가 뉴욕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뉴욕사무실의 규모는 제법 커져서 한국인 직원이 다섯이고 함께 일하는 사람이 셋이었다. 한층만 사용하다가 이젠 건물전체를 사용했다. 그래도 추가적으로 직원을 뽑게 되면 공간이 부족했다.
규태가 찾아왔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온 리처드 그래이엄이었다.
“얼굴보기가 이렇게 어려 워서야 만나서 반갑네.”
“정말로 반갑습니다.”
아직 짧은 머리카락을 보며 리처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군인이었다고 들었네. 나도 월남전에 직접 참전은 안했어도 주방위군으로 군복무를 했었지.”
“한국인이라면 군대가 의무니까요. 저도 리처드가 했던 주방위군하고 비슷하게 지냈다고 보시면 됩니다.”
리처드가 생각하는 군대와 규태의 생활이 상당히 거리가 멀 것 같았지만 여하튼 첫인사를 가볍게 끝낸 리처드가 마음에 담아두었던 본론을 꺼냈다.
“블랙 먼데이는 어떻게 예측을 한 건가?”
“시장의 불균형성이 눈에 보였습니다. 저도 프로그램매매를 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아직 제대로 된 프로그램매매를 하려면 기술적인 발전이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미국경제의 불안정성도 눈에 들어왔고요.”
직접 경험하고 되돌아오면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이유를 가져다 붙여 설명을 하는 수밖에 없다.
“미국경제의 불안정성이라? 하긴 미국경제가 아직은 어렵기는 하지.”
미소간의 군비경쟁을 견디지 못한 소련의 페로스트로이카가 시작되었지만 미국경제도 골병이 들기는 마찬가지다.
그 틈을 파고드는 일본과 독일의 성장이 당하는 미국의 입장에선 무척이나 얄미운 노릇.
일본의 자동차와 독일의 기계설비가 홍수처럼 쏟아져 미국시장을 잠식했다. 플라자 합의를 통해 무역역조를 극복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한번 뒤떨어진 산업경쟁력은 쉽게 회복이 어렵기만 했다.
뉴욕만 해도 거리를 배회하는 홈리스(homeless)와 마약, 강력사건이 끊이지 않는 치안의 부재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것을 상징하는 장소가 타임스퀘어였다. 뉴욕의 중심가가 언젠가부터 대낮에도 배회하는 마약중독자들 때문에 뉴욕시민들이 기피하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미국정부가 원하는 대로 제조업을 되살리는 건 어려울 겁니다. 인건비의 격차도 격차지만 산업생산성도 일본과 독일, 두 나라에 비해 미국이 뒤처지는 형편이니까요.”
“그럼 앞으로 미국경제가 어떻게 된다고 생각하는가?”
“제조업이 미국경제의 전부는 아니지 않습니까. 미국이 강한 군수산업이나 금융업과 같은 분야가 나오겠죠. 지금 한참 산업의 규모가 커지는 컴퓨터산업만 해도 미국이 세계에서 제일 강한 부분이 아닙니까. 또 마이크로 소프트나 애플 같은 회사들도 앞으로 지속적으로 꾸준히 성장할겁니다.”
“자넨 앞으로도 주식시장에서 기술주의 상승이 이어질 거라고 보는 군.”
“디트로이트로 대표되는 미국의 제조업은 경쟁력이 뒤떨어지면서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 폐허를 뚫고 나오는 새싹이 마이크로 소프트와 같은 기술주라고 생각합니다.”
“미래예측이 그렇다면 앞으로도 회사는 중점적으로 첨단주에 투자를 계속해야겠군.”
“그렇죠, 어차피 미래는 첨단 기술주의 시대입니다. 석유기업이나 자동차, 전자주 같은 전통적인 산업에 투자해서 큰돈을 벌수가 없어요. 이쪽도 성장은 하겠지만 속도는 느릴 겁니다.”
리처드와 대화하는 규태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커졌다.
“지금까지 미국을 지탱해온 GM, 포드, US스틸과 같은 주식의 전망을 어둡게 보는 거로군.”
리처드는 가만히 눈을 감고 숨을 깊게 쉬었다. 리처드의 나이대 미국인들은 미국경제가 세계를 지배하는 시절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아온 세대다. 이들에게 미국제조업의 쇠퇴가 시작되었고 멈출 수 없다는 말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실이다.
“어쩌겠습니까. 세상일이란 게 성장하는 시절이 있다면 쇠퇴하는 시절도 찾아오는 법인걸요.”
미국경제는 해마다 쌓이는 막대한 무역적자로 고심을 하며 해법을 찾으려 들었지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지난번에 벌어들인 돈의 규모가 너무 무지막지하게 크다는 사실은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블랙 먼데이때 규태가 벌어들인 돈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재무부와 국세청(IRS)에서 나를 찾아왔었네. 투자수익에 대해서 불법적인 수단이 동원되지 않았나 하는 조사였지.”
“큰 문제는 없었지요?”
“자금출처에 대한 조사가 조금 있었지만 큰 문제가 될 여지는 없었네. 시장이 폭락해서 돈을 번것이지만 시세를 조정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다만 풋옵션투자로 막대한 자금을 벌었다는 사실만 확인한 거지.”
“추가적인 조사없이 지나갔으니 다행입니다.”
“조사관이 돌아가면서 자네의 시민권취득에 대해서 묻더군.”
규태가 코를 찡긋했다. 혹시나 싶었지만 역시나였다. 여러 기관에서 돈의 진짜 주인인 규태의 신분을 탈탈 털어대고 있을 것이었다.
“역시나 알아차린 모양이로군요.”
“내가 앞에 나서 있다고 진짜 돈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를 정도로 재무부사람들이 무능하지는 않네. 게다가 그 돈이 해외로 빠져나간 것도 아니고.”
“돈을 해외로 빼려고 했으면 제재가 들어왔을 거란 말이로군요.”
“미국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미국정부는 손해 보는걸 싫어하지.”
글로벌이 진행되는 시대라면 모를까 아직까지는 금융자본의 이동에 장벽이 많았다.
당연히 자금을 미국 밖으로 뺄 생각이 전혀 없는 규태였다. 투자를 하려는 기업들은 전부 미국에 있었다.
“문제가 없었으니 다행입니다. 솔직히 조금은 걱정을 했거든요.”
“미국은 자유민주주의국가네.”
“그게 언제나 완전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자네가 누구에게서 어떤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지만 미국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개인의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 일이네.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내 모든 힘을 다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걸세.”
단호한 리처드의 말이었다. 리처드에게 원하는 답을 얻은 규태도 만족스러웠다. 굳이 리처드를 앞에 내세운 것은 유무형의 압박에 대한 방패막이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규태가 담아두었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워렌을 아십니까?”
“워렌? 어떤 워렌을 말하는 건가?”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인인 워렌 버핏 말입니다.”
“그 사람을 어떻게 자네가 아나? 월가에서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내 조부님과 함께 일하던 사람이었지.”
“뛰어난 투자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괴짜지만 뛰어나지. 월가에 이름은 크게 알려지지 않았어도 해마다 막대한 이익을 거두는 뛰어난 투자자니까. 지난번 블랙먼데이에도 큰 손실을 보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네.”
“버크셔의 주식을 사 모을까 합니다. 뛰어난 투자자를 알면서도 투자하지 않으면 바보나 마찬가지니까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던 리처드가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응? 하하하, 워렌이 씩씩거리면서 찾아오겠는데. 오마하에 처박혀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친구인데 말이야. 그 친구가 머리도 좋고 다 좋은데 너드같아서 밖으로 돌아다니는걸 엄청나게 싫어해. 이젠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은 고쳐졌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움직이길 싫어합니까?”
“나도 월가에서 일하면서 얼굴본지가 꽤 됐어. 투자할 기업에 가끔 찾아가는 모양이지만 워낙 소리 소문 없이 움직이는 친구라서 말이야. 회사의 초창기에는 워렌이 하도 비밀스럽게 투자하고 움직이니까 사람들이 워렌을 폰지사기꾼으로 오해하기도 했었지.”
“투자를 하면 여기로 찾아올까요?”
“나도 모르지. 하지만 워렌의 성격으로 보면 자기회사의 주식을 대량으로 투자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궁금증을 참지 못할걸.”
그 후로도 한참동안 리처드는 규태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두 시간이 넘게 리처드에게 잡혀 있다가 겨우 풀려난 규태였다.
리처드가 돌아간 다음 규태는 회사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조만간 사무실을 첼시지역에 구입한 빌딩으로 이전할 계획이었다.
규태의 방에서 직원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마음을 터놓고 앞으로의 투자전략을 의논하는 자리였다.
직원들은 거침없이 그동안의 불만을 쏟아냈다.
“델과 마이크로소프트의 매입을 앞으로도 계속합니까? 델, 마이크로소프트와 시스코 시스템즈 같은 기술주가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조금 불안하지 않습니까? 아직 회사의 규모가 작아서 매입하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엑슨이나 세브론, IBM같은 주식을 같이 매수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시장의 전반적인 상황을 보면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대신에 국채를 사는, 보수적으로 운영하는 투자도 나쁘지 않습니다. 블랙먼데이의 충격이 아직 시장에 남아있습니다.”
블랙먼데이라는 대공황에 버금가는 역대급 폭락을 경험한 투자자들의 심리가 완전하게 돌아온 것은 아니라는 소리.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이 모두 한꺼번에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언제라도 다시 폭락이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이 시장을 잠식했고 이를 불식시키려는 정부의 시도가 잇달아 발표되었지만 투자심리를 안정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월가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주가가 급등하는 컴퓨터관련주를 불안하게 보는 시선이 다수였다. 전통적인 대형주의 주가가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기술주들은 독야청청 상승세를 보였고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거품론이 비등하게 펼쳐졌다. 거기에 아직까지 회사의 규모도 작아서 기술주 중에 제일 덩치가 큰 마이크로소프트의 시가총액이 48억 달러 수준에 불과했다.
원하는 양을 시장에서 매입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앞으로도 컴퓨터시장은 엄청난 성장세를 보일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 투자를 해야 하겠습니까? 기술주에 대한 투자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시장에 거래되는 양이 적다면 기존에 주식을 가지고 있는 주주들과 협의를 통해서라도 구입을 계속하십시오. 내가 기술주에 투자하려고 정해둔 금액까지는 가격불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지급하는 보너스도 얼마나 기술주 주식을 사들이냐에 따라 책정하겠습니다.”
규태는 직원들을 독려했다. 사두기만 하면 부침이 있겠지만 손에 쥐고만 있어도 돈을 버는 주식들이다.
마이크로소프트만 해도 86년 3월에 27달러로 시작해서 해마다 주식분할을 계속한다. 95년에는 350억 달러, 2,000년 닷컴주의 버블붕괴 전까지 3,000억이 넘는 시가총액을 자랑하는 회사로 성장한다.
애플과 오라클, 시스코 시스템스도 마찬가지.
지금부터 꾸준하게 주식을 매입해서 2,000년까지 쥐고 있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