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37화 (37/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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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집해제

코앞으로 다가온 올림픽에 온 국민들의 시선이 집중됐고 온통 텔레비전에서 떠들어 대는 소리는 그에 관련된 이야기뿐이었다.

집에서 쏟아지는 결혼에 대한 압박을 피해 규태는 창투사의 사무실에서 시간을 주로 보냈다.

혼자 밥을 먹기가 그래서 복일모를 꼬시려하니 불퉁한 대답이 들려왔다.

“아! 오늘도 집에 안 들어가십니까?”

“들어가면 뭐해, 집에 들어가 봐야 장가가란 소리밖에 안 나오는데. 차라리 이렇게 밖에서 지내는 게 편하다.”

“배가 불러서 터진 소리를 하십니다. 집으로 들어오는 중매가 보통집안이 아니라면서요. 지난번에는 미스코리아하고 중매가 들어왔다면서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본부장님 모친께서 연락을 주셨단 말입니다. 약속장소에서 그대로 도망치셨다면서요. 아주 저를 붙잡고 길게 한탄을 하시던데요.”

규태에게 말도 없이 선을 보게 만들려는 모친의 시도를 알아차리고는 필사의 탈출을 했다.

“아이고! 이젠 태연하게 주변에 그런 소리를 하시는구먼.”

“어머님도 얼마나 답답하면 그러시겠습니까? 그냥 딱 눈감고 장가가시면 되잖습니까. 맞선상대 분이 신문에 나온 사진보니까 엄청난 미인이시던데. 대학도 배꽃여대 나오셨던데. 전 부럽습니다.”

규태가 코웃음을 쳤다. 이놈이 모친에게 어떤 사주를 받았는지 몰라도 규태에겐 이빨도 들어가지 않았다.

“훠이, 그렇게 좋으면 너나 가라!”

“전 아직 너무 어려서 집에서 그런 말도 안합니다. 그거 인생의 무덤이라면서요.”

사실 규태의 영향을 직격으로 받은 복일모다. 집에서 자리를 잡았으니 결혼하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슬슬 자리를 피했다.

“제기랄 너랑 나랑 나이차이가 몇이나 된다고. 하여간 이놈이 기어오르기는.”

“오뉴월 하룻볕이 어딥니까. 그나저나 본부장님.”

“또 왜!”

“제대하시면 미국 가신다면서요?”

“그런데?”

“저도 같이 가는 겁니까? “

“너? 너야 당연히 따라와야지. 내 충실한 직속부하 아니냐.”

“여기는 누가 지키고요?”

“한국의 일은 기룡증권사에서 처리하면 되지. 여기 창투사도 당분간 상장주식에 투자할 계획이 없으니까 네가 따로 할 일이 없잖아.”

규태가 고개를 갸웃했다.

소집해제후에 미국으로 가서 새로 회사를 차릴 생각이었다. 복일모의 합류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복일모와 정이 들기도 했지만 일처리가 보통 빠릿빠릿한 게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복일모는 머리가 비상한 놈이었다. 이런 인재를 마냥 놀게 내버려 두는 건 곤란한 일이다.

대학에서 배우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니 더 중요한 게 회사에서 업무를 하면서 배우는 일이다.

“저 영어도 못하는데요.”

“영어야 배우면 되지. 네가 집안 사정 때문에 대학은 못 갔지만 머리는 좋잖아?”

복일모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 주어진 자료를 외우는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규태도 기억하지 못하는 작은 투자들을 척척 처리했다. 집안의 사정이 웬만했으면 명문대학은 거뜬히 들어갈 놈이었다.

번개처럼 규태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기룡증권사의 미국지사는 뉴욕에 만들었지만 새롭게 만들려는 벤처캐피탈은 샌프란시스코에 만들 예정이었다.

IT창업자가 쏟아져 나올 스탠포드대학과의 연계를 해줄 믿을 만한 사람을 구하려 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아예 복일모를 스탠포드에 집어 넣어버리면 그뿐이다.

거기서 만나야할 사람이 있었다. 야후를 창업한 제리의 패거리를 만나서 친분을 쌓을 수만 있다면 베스트다.

“일모야, 대학갈 생각 없냐?”

“대학이요?”

“그래 미국에서 대학갈 생각 없냐고. 생각만 있다면 보내주마.”

대학에 들어가려면 죽을 똥을 싸겠지만.

나이 먹어서 스탠포드 경영석사(MBA)에 들어갔던 규태는 졸업하느라 죽을 고생을 했었다. 이젠 다시 대학이라면 들어갈 마음이 전혀 없는 규태다.

복일모를 박박 굴려서 스텐포드에 집어넣으면 고생은 복일모의 몫.

전직 스탠포드 졸업생인 규태의 눈에 비친 복일모는 충분히 이를 해처나갈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아니면 말고.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서울사무소에 머무는 황규철과 통화를 했다.

- 일모를 스탠포드에 입학시킨다고요! “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황규철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 녀석 머리가 좋잖아요. 고등학교 성적도 좋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 제 기억으로는 일모가 졸업한 고등학교에서 서울대에 보낸다고 기대가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홀어머니가 몸이 아파서 병원비 마련을 위해서 취직을 선택했지만요.

“일모어머니가 아프셨나요? 이젠 다 나으셨잖습니까? 지난번에도 인사를 드렸는데요.”

- 예, 다행스럽게 도요. 하긴 그 녀석 그냥 본 학력고사성적이 329점이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 정도 점수라면 서울대 법대도 들어갈 성적이었네요. 어쩐지 일을 시켜놓으면 머리가 잘 돌아 가더라니.”

- 일모가 천재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준 천재라는 말이 있다면 그 정도는 될 겁니다.”

“황이사님이 입학프로세스를 알아봐 주세요. 쓸 만한 인재가 굴러 들어올 때도 있지만 기왕에 회사에 있는 사람을 인재로 만드는 일도 나쁘지 않아요.”

장수를 잡으려면 말을 쏘라고 했다. 복일모가 규태의 제안을 받고도 머뭇거리자 서둘러 집으로 찾아갔다.

복일모와 모친은 선화동에 낡은 단독주택을 전세로 얻어 살고 있었다. 내년에 새로 짓는 아파트를 분양받아서 입주할 예정이었다.

규태와 이미 안면이 있기에 반갑게 맞아주는 복일모의 모친이 내온 커피를 앞에 두고 규태가 대학진학문제를 꺼내자 복일모의 모친이 손뼉을 치며 반색했다.

“일모가 미국 대학으로 입학한다고요? 어머나!”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해봤는데 일모정도의 인재는 회사차원에서 키워야 한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정말 고마우신 말씀이에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본부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일모아버지가 사고로 죽은 다음에 젊은 나이에 일모하나만 보고 안 해 본 일없이 살았습니다. 대학을 보내야 했는데 제 몸뚱이가 말썽을 일으켜서 그녀석이 대학교도 가지 못했는데. 본부장님께서 말씀을 해주시니 제 가슴에 담긴 한이 조금은 풀어지는 것 같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복일모의 모친이 몇 번이고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일모가 어머님이 혼자 남는 것을 걱정하는 지 망설이고 있어서요.”

“이 녀석이! 정말......”

이를 악무는 복일모의 모친이었다.

“회사에서 비용을 처리해 줄 테니 비용 걱정도 없습니다. 월급도 따로 나갈 거고요. 어머님께서 일모를 잘 설득을 해주세요.”

“당연하지요! 제가 알아서 일모의 마음을 돌려놓을게요. 일모를 대학에 보내지 못한 것이 얼마나 제 가슴에 맺혔는데요. 정말 고맙습니다.”

복일모의 문제는 그것으로 해결이 되었다. 다음날 어쩐지 등짝을 주무르며 나타난 복일모의 얼굴이 퀭했지만 말이다.

시간이 느리다 못해 굼벵이처럼 천천히 기어갔다. 여름이 시작되었을 때 규태는 비전의 신공을 펼쳤다.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모아두었던 휴가를 한꺼번에 신청했다.

그 당시 1주일의 말년휴가가 일반적이었던 터라 3주에 가까운 휴가가 쉽게 허락될 리가 만무했다.

수많은 손바닥 비비기 신공과 양주신공으로 인사계와 대대장을 설득하는데 성공하며 결국 소집해제를 남겨둔 마지막달을 휴가로 채웠다.

3주의 휴가를 끝내고는 곧바로 대대장에게 신고하고 부대를 벗어났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집해제가 된 것이다.

***

소집해제를 한 규태는 사흘 동안 한국의 일을 마무리하고 곧바로 오장우와 함께 뉴욕행 비행기를 탔다. 모든 준비는 이미 끝난 상태였다. 김포를 떠나 알래스카를 거쳐서 도착한 뉴욕의 여름은 뜨거운 도시의 열섬효과 탓에 혀를 내두를 정도로 무더웠다.

규태가 뉴욕에서 머물 숙소로 정한 곳은 센트럴파크에 인접한 4베드룸 콘도였다. 가지고 온 짐을 풀며 멀리 보이는 센트럴파크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대충 짐을 정리하고 나오자 대기하고 있던 경호책임자인 패트릭이 뉴욕에서의 주의사항을 말해주었다.

“해가 진후에 센트럴파크로 나가는 건 위험합니다. 밤사이에 강력사건들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답니다. 해가 뜨기 전에 일찍 나가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지하철을 이용할 때도 주의가 필요합니다.”

“내가 지하철을 탈 일이 있겠어요?”

뉴욕경찰국(NYPD)출신의 패트릭은 몇 가지 사례를 들며 얼마나 뉴욕의 밤거리가 위험한지를 연신 설파했다.

젊은 규태의 일탈을 미리 막기 위한 예방조치였다. 80년에 들어서면서 미국경제가 침체하면서 뉴욕의 치안도 상당히 흐트러진 상태였다. 뉴욕의 집값도 나중에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낮았다.

뉴욕이 다시 활기를 되찾는 것은 90년대 이후였다.

서울에서 같이 출발한 오장우도 짐 풀기를 마쳤는지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앉은 오장우도 멀리 보이는 센트럴 파크에 시선을 고정했다.

“도심한복판에 공원이 있으니 정말 좋군요. 저도 이곳에 집 한 채 살까요? LA에 저택을 살 생각이지만 뉴욕에 사두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지금 개인적으로 투자를 하면 나중에는 돈이 조금 될 겁니다.”

회사에서 여기저기 뉴욕 부동산을 매수하고 있다. 오장우도 개인적으로 뉴욕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회사의 투자를 따라 한 개인적인 투자가 크게 성공해서 오장우가 가진 현금이 많았다.

“그나저나 미국의 경제가 좋지 못한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지나오면서 보니까, 제가 공부하던 때에 비하면 활기가 떨어졌어요.”

“일본과 독일의 수출 때문에 제조업이 초토화되다시피 했잖습니까. 디트로이트 쪽은 타격이 아주 큽니다.”

“이대로 미국이 몰락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신문지상에 일본의 경제침략을 떠들어대면서 미국의 몰락을 논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많아졌다.

“그럴 리가요. 아직 미국이 쇠퇴하려면 한참 멀었습니다.”

90년대 거품이 터지면서 일본경제는 장기간 침체에 빠져든다. 독일 역시 비슷한 침체의 길을 걷다가 유럽통합을 통해 부활하지만 말이다. 하여간 80년대 후반, 두 나라의 경제성장은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플라자합의의 결과로 두 나라의 통화가치는 무서운 속도로 빠르게 상승했다.

“정말 그럴까요?”

“국력에는 경제력만이 아니라 더해서 군사력도 포함돼야 합니다. 지금이야 소련의 위협 때문에 미국이 참고 있지만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 마무리되면 그때는 더 이상 참지 않을 겁니다.”

“하긴 전통의 제조업은 몰락했어도 새롭게 시작한 컴퓨터는 미국이 꽉 잡고 있지요. 회사가 투자한 마이크로소프트나 델 같은 회사의 주식가격도 잘 올라가던데요. 하지만 실무자들은 불안한 모양입니다. 굳이 IBM이나 GM같은 대기업을 제외하고 아직 시장이 성숙하지 않은 첨단기업쪽에만 투자를 집중한다고 말입니다.”

오장우의 말에 규태가 이마를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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