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36화 (36/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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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다

유성에 새로 지어진 집에서 가족이 모인 것은 처음이었다.

규태는 가족들에게 조용히 그동안의 벌어들인 개인투자금의 결과를 설명했다. 아버지의 투자금이 34억, 어머니 27억, 작은어머니 25억으로 늘었다.

만족스런 결과였기에 집안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모두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보니 저녁식사를 마치고 대뜸 술판이 벌어졌다. 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규태도 어른들이 모인 곳에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할 말이 많아서였는지 규태를 작은어머니가 반갑게 맞았다.

“네가 준 회사를 살펴보았는데 부채가 많은 걸 제외하면 사업구성은 좋더구나.”

작은어머니가 부양건설이 자산으로 가지고 있는 성남 소재의 두 개의 빌딩을 마음에 들어 했다.

“부양건설, 회사가 나쁘지 않아요. 사업규모에 비해서 미수금이 커지고 고율의 대출이 많아서 이자부담을 버티지 못하는 거지. 재무구조만 개선하고 미수금을 회수하면 앞으로 사업을 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겁니다.”

“그럼 인수해야지. 이렇게 좋은 조건인데 하지 않으면 바보지.”

지금까지 작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의 자금을 담당하는 여장부답게 작은어머니는 거침이 없다.

“그런데 창투사가 올해 그렇게 많이 벌었니? 증권사도 인수를 했다면서?”

“증권사도 두 개나 인수를 했데.”

“두개는 아니고 하나는 이미 블록딜로 주식을 팔았습니다.”

“싸게 팔지는 않았을 것 아니야?”

“그렇죠, 하여간 지금은 가지고 있는 증권사가 기룡증권이라고 하나입니다.”

어머니 남여사가 끼어들었다. 이미 규태에게 자신의 투자자금이 얼마로 늘었는지를 들은 어머니 남여사의 입 꼬리가 하늘로 향해 있었다.

“증권투자 수익이 아주 많은데 앞으로도 계속 투자를 할 생각이니? 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올해는 주식시장이 좋지 않을 것 같은데 부동산에 투자를 해야 하지 않아?”

“어머니 말씀대로 올해까지는 주식시장이 좋아서 많이 벌었는데 앞으로는 조금 힘들 것 같네요. 당분간은 주식보다는 채권하고 부동산 쪽을 보고 있어요.”

“그런데 말이야, 내가 몇 번이나 물어보려다 말았는데 도대체 네가 그동안 번 돈이 얼마나 되는 거냐?”

어머니의 질문에 자리에 모인 식구들이 신경을 집중했다. 모두들 과연 규태가 얼마나 벌었는지를 궁금해 했다.

난처한 얼굴로 가만히 뺨을 긁던 규태가 속으로 계산을 마쳤다.

“대충 창투사와 증권사에 투자한 금액을 합치면 1,000억 정도가 되는 것 같은데요.”

“........”

“........”

“하아! 이건 뭐 한두 푼이어야지. 할 말이 없구나.”

막연하게 돈을 많이 벌었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액수를 들어보니 한숨이 나왔다.

듣기만 해도 입이 벌어지는 액수가 아닌가.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도 마치지 않은 젊은 나이에 이룬 성과다. 어른들이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큰조카가 이렇게 돈도 많이 벌었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어요.”

혹시라도 아들이 방탕하게 살까싶어선지 부친 김상웅이 나서서 단도리를 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좋기는 좋다만 돈이란 게 요물 같아서, 많으면 또 많아서 문제가 일어나는 법이다. 돈이 많다고 사고치지 말고 항상 주변에 겸손하거라. 주변에 소문 나지 않게 조심하고. 돈 많다고 주변에 자랑해 봐야 손 벌리는 사람만 늘어나고 질시를 받기 십상이다.”

“주위에 알릴 필요도 없고 또 돈을 쓰고 싶은 곳도 없네요.”

후배들을 만나 술 한 잔을 산다고 해도 비싼 곳을 가지 않았다. 이미 전에 방탕한 삶은 살만큼 살아봤다.

남여사가 남편을 타박했다.

“당신도 참 규태가 허랑방탕하게 살 아이도 아닌데 뭘 그렇게 걱정을 해요.”

“그래도 조심을 하라 이거지. 아버지가 다 큰 자식 놈한테 이런 소리도 못해!”

부친의 언성이 높아졌다. 규태의 투자로 큰돈을 벌게 되면서 알게 모르게 절대적으로 집안에서 군림하던 김상웅의 위상이 낮아진 것이 사실이다.

모친이 남편이 더 화를 내기 전에 재빨리 발을 뺏다.

“아이고, 제가 잘못했습니다. 계속 말씀하세요.”

“흠흠, 하여간 조심을 하란 말을 하고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여름에 제대를 하면 미국으로 간다고 들었다. 거기서도 몸조심하는 것은 물론이고 행실도 바르게 해야 한다. 미국은 총도 무섭지 만 마약도 횡행한다고 들었다.”

“여자도 조심해야지요. 우리 장손이 노랑머리 여자하고 살겠다면 그것도 곤란해요.”

작은 아버지 김정웅도 한마디를 보탰다.

식구들이 그 말에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만 해도 아직 국제결혼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때였지만 한 번도 외국여자와 결혼하면서 부모에게 반대를 들어보지 못했던 규태였다.

“왜요? 제가 외국여자랑 결혼하는 게 싫으세요? 꼭 결혼은 한국여자하고만 해야 하는 건가요?”

“다른 게 아니고 말이 안 통하잖니, 내가 이 나이에 영어를 새로 배울 것도 아니고 며느리는 말이 통했으면 좋겠다는 말이지.”

“나도 그렇다. 말이 잘 통하면 좋겠어. 친딸처럼 함께 다닐 수 있으면 더 좋고 네동생 미려는 너무 곰같이 무뚝뚝해서. 그래서 말인데 규태야."

모친의 목소리가 은근하게 변하지 규태는 속으로 불안했다.

“예.”

“여기저기서 선이 들어오는데 선 볼 생각 없니?”

“조금도 생각 없는데요.”

모친의 말을 규태는 단칼에 가차 없이 거부했다. 아직 나이도 어린데 굳이 결혼이라는 무덤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아이고 좋은 아이들이 많던데. 아까워서 어쩌누.”

“좋은 아이?”

“중매쟁이들이 가져온 사진을 보니까 한결같이 내 마음에 쏙 들더라구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달려간 모친이 주섬주섬 사진첩을 꺼내 들고 왔다.

“아이고! 예쁘네. 와아! 형님, 집안도 좋아요. 어머어머! 이집안 자식도 있네.”

여자들의 사진이 주르륵 나오는 사진첩을 보며 작은 어머니가 감탄을 터트렸다. 말만 하면 다 알만한 집안에서 규태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소리였다.

사실 이전과는 다르게 심각하게 여자에 관심이 사라져서 몸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지를 고민하고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병원에 가본 적이 있었다.

걱정과는 다르게 몸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하여간 저는 전혀 관심 없습니다.”

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거부하는 규태를 보며 가족들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사업에 필요한 정략결혼을 할 것도 아니고 정치인들과도 엮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입맛만 다시는 가족들에게 규태가 서둘러 주제를 바꾸었다.

“하여간 작은 아버지가 건설사를 인수하는 문제는 서두르지 않기로 하지요. 가격만 올라갑니다. 부양건설에서도 섣불리 회사를 내놓으려 하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은행과 협의를 해서 하나 하나 풀어나가려면 가을까지는 기다려 보시지요. 은행하고도 이야기를 해봐야 하니까요.”

은행이야기가 나오자 작은 아버지가 쌓였던 분통을 터트렸다.

“은행 놈들은 맑은 날에는 우산을 팔아먹으려고 들고 비올 때는 우산을 걷어가는 놈들이야. 그놈들하고 이야기해봐야 뻔하지. 이번에도 네가 투자이익금을 보내주지 않았으면 위험할 뻔했다. 그렇게 필요없을때는 돈 빌려가라고 사정하던 놈들이 경기가 안 좋아지니까 대출금 회수하겠다고 단번에 안면을 몰수하더라.”

“우리가 돈이 없어서 은행돈 빌릴 것도 아닌데 뭐가 걱정이에요. 그런데 규태야 국내은행이 아니라 외국은행에서 돈을 빌린다고 들었는데 그 정도 금리로 대출받는 게 가능하니?”

작은 규모의 사업을 하다 보니 거래하던 은행에 쌓인 게 많은 김정웅이었다. 작은 어머니도 고개를 갸웃했다.

규태의 하는 사업과 외국은행의 접점이 하나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외국에 투자할 일이 있어서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차마 외국투자에 성공해서 막대한 자금을 쌓아두고 있다는 소리는 하지 못했다. 가뜩이나 규태가 국내에서 번 돈만 해도 걱정이 태산인 부모님들이다. 해외투자에 성공해서 100억 달러가 넘는 돈을 벌었다면 심장마비가 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외국은행의 대출금리가 국내은행보다 낮은 시절이었다. 거기에 규태의 압박까지 더해져서 이야기가 되고 있는 대출금리가 낮았다.

“자금문제만 없다면 회사인수를 고민할 필요가 없지 한번 해봐라.”

“형 말대로 한번 해보지요. 그런데 네가 말한 황이사란 사람은 믿을만하니?”

규태는 작은아버지 김정웅에게 부양건설 인수팀을 만들 때 황이사의 도움을 받도록 조언을 했었다.

“황이사가 경찰 정보과장 출신이라 정보에 빠른 사람입니다. 부양건설에 대한 정보는 바닥까지 정확하게 알아 올 겁니다.”

“정보과장출신이라고? 그렀다면야.”

황규철이사의 경력을 듣고는 작은아버지도 이해를 했다. 경찰 정보과는 방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곳이다. 이리 저리 듣는 정보가 많을 테니 걱정이 한결 덜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김정웅이었다.

“아버지, 학교재단법인의 설립은 어떻게 돼가고 있나요? 지금쯤은 일이 마무리가 될 줄 알았는데 소식이 없어서요.”

“재단법인을 하나 세울까. 아니면 인수할까를 망설이는 중이다. 나중에 제사 지낼 때 지방에 학생이란 말을 떼고 싶었는데.”

오랜 공직생활을 끝내려니 김상웅의 가슴한쪽에 미련이 많이 남았다. 퇴직금의 금액을 떠나서 6급에서 5급으로 오르면 제사를 지낼 때 직위의 이름을 써넣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작은 소망이 있었던 것이다.

부친의 말에 규태가 작게 웃었다. 김상웅이 공직을 끝내고 교육재단을 설립하는 것에 머뭇거리는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다.

“아이고! 아버지, 나중에는 장차관을 지내지 않는 한 전부 지방에 학생이라고 쓸 겁니다.

“큼, 뭐 그렇다는 거지.”

김상웅이 숨겼던 속내를 들켜서인지 어색하게 헛기침을 했다.

“나중일이 뭐가 중요하다고, 형도 재단 만드는 거 빠르게 준비해요. 아들이 든든하게 받쳐 주겠다. 뭘 그렇게 재단을 만드는데 미적거리는 건지.”

“넌 왜 그렇게 날 채근하는 건데? 내가 재단을 만들면 네가 좋은 게 있냐?”

“형님! 어떻게 그렇게 생각이 없어요. 조카 생각도 좀 하고 그래요.”

“조카? 아! 지연이. 지연이가 사범대학였어?”

“사대는 아니지만 교직을 듣는다고 하더라고요. 교직 듣고 시험 봐서 합격하면 교사가 될 수 있답니다. 형님이 재단을 만들면 우리 딸내미 취직은 걱정 없잖아요.”

“그렇구나, 나도 그 생각은 못했구나. 중국어를 전공하니 네가 데리고 있으면 되잖아.”

“중국어는 배워서 어디에 써먹습니까? 대만하고 사업을 할 것도 아닌데요.”

이때만 해도 중국어를 배운다면 전부 대만사람들이 쓰는 민남어를 배우는 것을 의미했다.

중국과 수교를 하기 전이라서 중국어를 배우고 졸업하면 취업할 곳도 적었다.

“그건 걱정마세요. 지연이는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규태가 큰소리를 땅땅 쳤다. 이놈이 무슨 자신감으로 이러나 싶은 눈으로 보았지만 규태는 내심 자신이 있었다. 92년에 중국과 수교를 하면 중국어에 대한 수요가 폭발한다. 따로 북경어를 따로 배워야겠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

“규태가 저렇게 자신을 하니 걱정할 필요 없겠네요. “

이미 집안에서 인정을 받는 규태다. 무슨 말을 해도 일단 믿고 보는 것이다.

몸이 좋지 않아 술자리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 할머니도 가세해 자꾸 결혼이야기를 꺼내자  규태는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자리에 앉아 있으면 보나마나 규태가 집중공략대상이 될 것이 뻔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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