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34화 (34/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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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증권의 상장

“이런 젠장! 또 곽사장이 한 소리하겠는데.”

보나마나 전화 한 통화 없다고 규태 욕이나 하고 있을 곽병호다.

서둘러 전화기를 들었다.

“곽사장님 오랜만입니다.”

“오! 김본부장 안 죽었네? 어떻게 기억하시고 전화를 다주시나.”

잔뜩 비꼬는 곽병호의 목소리에 규태는 서둘러 변명을 했다.

“아이고, 제가 군생활에 바쁘다 보니 정신이 없어서요.”

“미국투자 때문이 아니라?’

어느 놈이 꼬지른거지? 규태는 순간 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하하하, 그건 또 어떻게 아시고요?”

“기룡증권이 갑작스럽게 뉴욕사무소를 낸다고 해도 주의 깊게 보고 있었는데 요즘 정신이 없다고 하더군. 미국에 투자를 많이 한 모양이야?

“무슨 기룡증권같이 작은 회사가 미국투자를 합니까? 잘못아신 겁니다. 그런 이야기는 전화상으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잘 지내셨지요?”

규태는 서둘러 주제를 돌렸다.

“그래 어쩐 일인가?”

“내일 상장일이지 않습니까? 돌아가는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나쁘지 않아. 공모주 청약경쟁률도 높았고 내 생각에는 상장 후에 14,000원선에서 시초가가 결정될 것 같아. 다른 증권사 주가가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지만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2만원까지는 금방 가겠지.”

“그 정도는 금방 갈 테지요. 대선이 끝나면 주식시장이 한번 크게 움직일 겁니다.”

“자네가 그렇다면 그렇게 움직이겠지. 그나저나 섭섭해 이제 자네 안중에 미성증권은 없는 모양이야.”

전에 한번 말을 편하게 하라고 했다고 곽병호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기겁을 한 규태가 서둘러 말을 돌렸다.

“제 사정상 서울에 가기는 힘들고 대전에 내려오시면 술 사드리겠습니다. 한번 내려오시죠.”

“알겠네. 그 약속 잊지 말게나. 상장 후에 급한 일이 없으면 내가 당장 뛰어가지.”

전화를 끊고 난 후 규태는 머리를 긁었다. 직접적으로 아는 것 같지는 않고 기룡증권의 움직임을 보고는 지레짐작한 것으로 보였다. 기룡증권에서도 미국에 투자한 것을 아는 사람은 몇이 되지 않는다.

곽사장이 아무리 불평을 해도 규태가 미쳤다고 미성증권을 끼워주겠는가.

해외투자는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보안유지가 어렵다. 투자자금을 조달하는 과정부터가 불법에 가까운 편법이기에 외부에 알려지면 잡힐 꼬투리가 많다.

1980년대의 한국시스템을 규태는 믿을 수가 없었다. 몸에 밴 조심하는 습관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1980년의 한국시스템과 2020년의 중국시스템은 유사한 측면이 많다. 그래서 규태는 중국투자에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직접투자를 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간접투자를 통해서 중국에 투자가 가능했다. 해외자본 투자가 급했던 90년대에 상해의 푸동개발을 위해 여러 펀드를 만든다. 펀드에 자금을 투자해도 수익이 쏠쏠하다. 또 중국에 진출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방식도 위험 부담이 없다. 이를테면 소프트 뱅크, 애플이나 테슬라같이 투자할 기업은 널렸다.

그나저나 곽사장이 어떻게 미국투자를 알게 된 걸까? 규태는 미간을 찌푸렸다. 고민이 하나 늘어나 찜찜한 기분이었다.

미성상장 주가는 시초가가 14,000원으로 결정되었다. 아침부터 주가가 움직이는 모습을 본 구봉만은 만족했다. 거래소에서 거래를 개시하면서 축하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아침 일찍 올라온 구봉만이다. 증권거래소에 미성증권 직원들 그리고 구봉만을 위시한 창투사의 사람들이 함께 자리를 함께해 상장을 축하했다.

14,000원에 시작한 주가가 붉은 기둥을 만들며 상승세를 보였다. 아직 하루에 움직일 수 있는 주가의 진폭은 8%,상한가가 4%에 불과하다. 급격한 상승은 어렵지만 그만큼 급락의 위험을 적었다.

시장의 분위기만 받쳐준다면 미성증권의 주가는 2만원을 주가를 당분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6개월의 의무보유기간이 끝나고 25,000원 수준에서 엑싯할 수 있다면 만족이다.

창투사의 지분은 112억 원을 투자해서 40%의 주식을 보유했다가 공모주 청약을 하면서 구주매출로 인해 22%로 낮아졌다. 목표대로 주식을 전부팔면 570억이다. 112억을 지분 투자하여 이미 배당으로 받은 80억을 포함하면 총 538억의 수익을 거두는 것이다.

“어이쿠! 상한가네요!”

14,600원의 상한가까지 곧바로 올라가서 잔량이 쌓이는 것을 보며 구봉만이 박수를 쳤다.

옆에서 잔뜩 긴장하고 있던 곽병호도 환호를 내지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처음 상장하는 날이라 거래소를 찾아온 두 사람이 관계된 직원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상장을 하느라 바빴지만 그동안 노고가 한순간에 씻겨 내린 듯 몸과 마음이 개운해졌다.

긴장이 풀렸는지 구봉만이 농담을 했다.

“곽사장님께서 한잔 사셔야겠습니다.”

“제일 많이 번 대주주께서 어째 투정이 심하십니다. 돈을 많이 번 분이 사셔야지요.”

“많이 벌어도 제 돈도 아니고 투자자들의 돈이지 않습니까. 곽사장님은 실질적으로 30%의 지분을 가진 회사의 주인 아니십니까.”

“하하하, 그러시다면야 제가 사야죠.”

구봉만의 대답에 만족했다는 얼굴로 곽병호가 술을 사겠다고 나섰다. 회사의 사장자리에 앉아있지만 언제라도 창투사에서 마음이 바뀌면 자리에서 쫓겨날지 모르는 처지다. 끊임없이 창투사의 자금이 엑싯할 것인지를 확인하려 들었다.

“농담입니다. 가볍게 점심이나 같이 하시죠.”

“제가 대접을 해드려야 하는데 말입니다. 물어볼 일도 산처럼 쌓였고요. 정말로 창투사의 지분을 엑싯하실 지도 궁금하고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KF창투는 미성증권 주식을 6개월 후에 전부 매각할 겁니다. 됐습니까?”

“사람마음이 조석변이 아닙니까. 아침에 다르고 저녁에 다르고, 제가 불안할 수밖에 없지요.”

“사람 참, 커다란 덩치에 걸맞지 않게 의심만 많아가지고는. “

혀를 끌끌 차는 구봉만이지만 곽병호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내년 봄에 있을 유상증자는 참여하시겠지요?”

“당연한 거 아닙니까. 증자금액이 조금 많기는 하지만 당연히 참가를 해야지요. “

상장 후 곧바로 유무상 증자를 해 자본금을 500억에서 1000억으로 늘릴 계획이었다. 증시의 활황이 끝나기 전에 최대한 많은 자금을 확보해야 했다.

“앞으로는 창투사의 자금을 어디에 투자할 계획입니까?”

“글쎄요. 이리 저리 알아보아도 투자할 회사 찾기가 쉽지가 않네요. 당분간은 그냥 현금으로 가지고 있을 생각입니다.”

곽병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비상장사를 상장시키는 IPO업무는 증권사의 업무 중 하나다. 창투사와 협의를 해서 진행을 하는 게 쉬웠기에 이리 저리 알아보고 있지만 마땅한 회사가 나오지 않았다.

“하여간 앞으로도 계속 협력관계를 계속하지요. 김 본부장한테는 서운한 게 많아요. 증권사를 가졌다고 이제 미성증권은 쳐다보지도 않는 거 같아서요.”

“그럴 리가 있겠어요. 아직 기룡증권은 상장도 되지 않는 작은 증권사인데 양사가 협력할 일이 많아지면 많아졌지 줄어들 일은 없을 겁니다.”

투정을 부리는 곽병호를 구봉만이 달랬다.

“미국투자 건은 어떻게 됐습니까? “

궁금한 게 많은 듯 구봉만을 채근했다.

“미국투자가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했다고 해도 기룡증권에서 투자를 진행한 거라. 나도 알지 못하는 일이예요. 내가 관할하는 건 어디까지나 창투사의 일입니다.”

구봉만이 금시초문이라는 얼굴로 시치미를 딱 뗐다.

“정말 이러실 겁니까? 김본부장이 투자를 하고도 구사장님에게 말을 하지 않을 사람입니까.”

“정말이라니까요. 김본부장이 개인적으로 투자해서 기룡증권사를 인수한 건데, 그쪽 일을 창투사에 알려주겠습니까. “

이미 투자의 여부정도는 알고 있지만 섣불리 입 밖으로 내지 않고 조심했다. 보안을 지키라는 규태의 신신당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곽병호와 일적으로 만나면서 친분을 유지하고 있지만 회사의 일까지 세밀하게 알려줄 사이는 아니었다.

“쩝, 섭섭하네요. 나만 쏙하고 빼 놓고 일을 진행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미국에서 큰일이 벌어졌는데 말이죠.”

주가가 폭락했지만 규태의 투자솜씨라면 미국투자로 막대한 이익을 거두었을 것이다. 블랙먼데이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듣고 곽병호는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외부와 담을 쌓고 사는 한국증권시장이라 타격은 걱정보다 적었지만 말이다.

“한국시장이 외부에 충격을 받지 않는다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블랙먼데이로 폭락한 미국시장의 영향을 한국은 전혀 받지 않았다는 것 보고는 우물 안 개구리를 떠올렸습니다. 당장만 해도 대통령 선거에 모든 관심이 집중될 뿐이지 외국의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지 않습니까. “

“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한국증시도 변화가 있겠지요. 급하게 마음을 먹지 말고 천천히 생각합시다.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시절이 지난지도 몇 년 되지 않았어요.”

“그러고 보면 상전벽해입니다. 모래밭이었던 여의도가 이렇게 번화해 질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앞으로도 빠르게 발전하겠지요. 그 변화에 얼마나 맞춰나갈 지가 회사의 명운을 가를 겁니다.”

가까운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가볍게 반주까지 곁들여 곽병호와 담소를 나눈 구봉만이었다.

대전으로 내려가는 차안.

“거참 곽사장, 질척거리는구만. 회사의 경영권은 빼앗기고 싶지 않고 우리 투자정보는 알아내려고 기를 쓰고 말이야.”

일이 있어서 대전으로 내려가는 구봉만의 차에 동승한 황규철이 대답했다.

“이쪽도 의심을 해봐야 합니다. 저도 은밀하게 알아보고 있지만 저번에 회사에서 발견한 도청기 설치 건은 의문이 많습니다. 정보기관에서 설치했다고 보기에는 너무 어설퍼요.”

“허참! 처음에 김본부장이 보안, 보안 노래를 부르기에 이해를 못했는데......”

금융기관에 무슨 보안을 유지할게 있을까 싶었는데 도청장치를 발견하곤 크게 놀랐다.

“사람 마음이란 게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지 않습니까? 미성 곽사장도 불우한 처지에 있다가 창투사의 투자로 상장까지 시켜놓으니까 살만한지 마음이 조급한 것 같습니다.”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KF창투사의 자금투자가 없었다면 곽병호는 그냥 쓸쓸하게 증시의 활황을 지켜보기만 하다가 시간이 지난 후 다른 곳에 회사를 넘겼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처음 곽사장 보았을 때는 사람이 그렇게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는 은근하게 우리 쪽 사람들을 홀대한다면서.”

구봉만이 혀를 찼다.

“이젠 연을 끊는 게 답인 것 같습니다. 김본부장 개인지분도 상황을 봐서 정리해 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구봉만도 황규철의 말에 마음으로 동의를 하지만 이건 함부로 나설 건이 아니었다.

“글쎄요, 황이사가 건의를 해보세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건의입니다. 선을 분명하게 하는 게 좋아요.”

회사직책으로는 규태가 밑의 직원이지만 어디가지나 외부 일을 하기위한 방편이다. 회사의 주인은 엄연히 규태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손을 벌리는 곳이 많아서 골치가 아프시겠습니다.”

“정치란 게 그런 거 아닙니까. 더군다나 대선이에요. 다들 목숨 걸고 뛰는데 이쪽에서 가만히 있으면 나중에 가만히 두겠습니까? 골치가 아프더라도 적당히 응대를 해야죠. 여당만이 아니라 야당 쪽도 얼굴에 철판 깔고 덤벼드는데 어쩌겠습니까?”

대통령 후보가 넷이나 되다보니 손을 벌리는 놈들이 한둘이 아니다.

작은 창투사지만 돈이 많다는 소문이 퍼져서인지 노골적으로 금전 지원을 요구 해왔다. 하지만 이건 구봉만의 일이었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구봉만이 책임을 져야 한다.

받은 먹은 정치인이 신의를 지키는 꼴을 보지 못했다. 정치인이란 상황이 불리해지면 안면몰수하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자들이다. 정치자금 일에서 구봉만은 규태를 철저하게 제외했다.

해외에서 막대한 자금을 벌었다는 것을 알면 가만히 있을 놈들이 아니다. 갖은 협박과 술수를 총동원해서 빼앗으려 들것이었다.

“버티다 보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오겠지요.”

“봄이 정말로 오기는 할까요?”

신문에서는 당장이라도 정권이 바뀔 것처럼 떠들어댔지만 아직 제대로 봄이 오기는 이르다.

대전으로 달리는 차안에서 구봉만은 밀려오는 취기를 몰아내려 눈을 감았다.

주로 서울 사무소에 머무는 터라 오랜만에 보는 황규철이었다.

황규철에게 보고를 듣는 규태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그래요? 미성증권 곽사장이 도청을 시도한 배후로 의심된다고요?”

“예, 정보기관 쪽에서도 깜짝 놀라던데요. 절대 자신들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도청의 배후로 제일 먼저 떠올린 존재는 안기부 아니면 기무사다. 제일 의심스럽지만 이 둘은 대선을 앞두고 제정신들이 아니다. 한가하게 창투사에 도청장치를 설치할 간 큰 놈은 없을 터였다.

“어째서 그쪽을 의심하는 겁니까?”

“미성증권에 투자정보를 넘기지 않은지 오래됐습니다. 가끔 매매주문을 넣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곽사장이 섭섭하다고 하더군요.”

“우리 쪽 동향이나 투자정보를 알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이번에도 구사장에게 끈질기게 달라붙어서 투자정보를 들으려 했답니다.”

“그 정도야 약과지요. 귀엽기도 하고요.”

상대의 투자정보를 빼내려고 살인도 마다하지 않던 세상에서 살았던 규태다.

“개인지분까지 팔고 미성증권과 인연을 끊는 게 어떻습니까?”

황규철의 말에 규태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도청을 시도했다는 것만으로 인연을 정리할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일이 생기면 미성증권과 함께 일을 해야 할지도 몰라요. 앞일은 모르는 겁니다. 이번 일은 적당히 넘어가도록 해요. 가볍게 경고를 해주는 것은 잊지 말고요. 그나저나 곽사장 재미있는 사람이네요.”

그냥 조용히 넘어가면 이쪽을 우습게 볼 수도 있다. 잇몸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규태의 모습이 어쩐지 섬뜩해서 황규철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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