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33화 (3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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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먼데이

「뉴욕증시 피의 월요일(Blood Monday), 대공황은 다시 올 것인가? 사상최대의 폭락으로 투신 잇달아.」

뉴욕 타임스

「증시 패닉, 하루의 가격폭락 사상최고 기록, 경제정책의 실패인가?」

월스트리트 저널

하루 종일 신문과 방송으로 떠들어대는 소리에 미국사회가 대공황의 공포에 질식되었다. 서둘러 당국자들이 나서서 진정을 시키려 들었지만 패닉에 빠져든 증권시장은 잠시 반등했지만 다시 바닥으로 내리꽂혔다.

2246에서 하락을 시작한 다우지수가 1,738로 하락.

단 하루만에 22.6%의 하락이라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아우성에 막대한 투자수익이 발생했음에도 입을 다물고 속으로 삭여야 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이번 폭락의 원흉으로 꼽혀서 십자가에 매달려 화형을 당할 판이다.

“다들 입조심은 시켰겠지?”

처음에는 급락하는 증시에 환성을 지르던 직원들이었지만 너무 급격한 하락에 다들 할 말을 잃었다.

“예,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아요. 잘못하면 증권거래위원회의 조사는 물론이고 FBI의 조사까지도 받을지 몰라요.”

큰일이 벌어지면 그 원흉을 지목하는 과정이 진행된다. 막대한 수익을 거둔 쪽은 당연히 의심의 눈길을 받는다.

“수익이 커도 너무 큰데?”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 옵션 양매수로 투자했지 않습니까?”

오선한 과장의 말에 오장우가 머리를 흔들었다.

“한번 원흉으로 지목되면 증거고 뭐고 필요 없어. 그냥 십자가에 매달아 버릴 거다.”

못사는 나라에서 온 투자자가 폭락장을 이용해서 큰 수익을 거뒀다는 것은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가만히 있어도 은근한 인종 차별을 당하는 나라다.

“다행인건 처음보다 계좌를 여러 개 만들어서 큰 수익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처음 계획은 열 개 정도의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해 투자하는 것 이었지만 그 숫자를 대폭 늘렸다.

아무리 계산을 해보아도 도저히 그 숫자로는 정체를 숨기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50개가 넘는 계좌를 만들어 분산했다.

10월 19일은 옵션 만기가 끝난 바로 다음날이다.

처음에는 옵션가격이 높아서 상대적으로 수익이 크지 않은 것이 불만이었지만 이제는 수익이 크지 않아서 마음이 놓였다.

팔 수 있는 만큼은 팔아 선물거래는 대부분 청산이 끝났지만 가격이 급격하게 변동하면서 가격변화가 큰 옵션거래량이 많지 않아 청산을 못하는 중이다.

옵션을 청산하는 방법은 두 개다. 하나는 만기까지 기다려 청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간에 매매 하는 것이다. 10월물의 만기가 지난 지 하루가 지났으니 만기가 끝나길 기다리려면 시간이 너무 길었다.

“좌우지간 예측대로 라면 계속 증시가 흔들릴 거다. 그때마다 조용히 처분해 나가야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익금의 규모가 문제가 아니야. 보안을 지키는 게 최우선이야.”

“알겠습니다. 철저하게 주의를 주도록 하겠습니다.”

“리처드, 알겠지만. 이건 보통문제가 아니에요.”

“ 나도 알아. 데이브, 이건 심각한 상황이야. 사회가 혼란해지면 죄 없는 아무나 지목해서 마녀사냥을 벌이는 법이야. 막대한 수익을 거두었다? 범인으로 만들기는 더할 나위없지.”

은퇴해서 유유자적 전원생활을 즐기던 리처드 그레이엄이지만 금융계에서 잔뼈가 굵은 노장이다.

기룡증권의 정체를 드러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투자를 총괄해서 대표할 인물이 필요했다. 오장우의 인맥을 동원해서 초빙한 인물이 바로 리처드 그래이엄이었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서 삼십년이 넘는 세월을 재직하고는 은퇴하여 코네티컷에서 사냥을 즐기던 리처드였다.

월가와 언론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 수밖에 없다.

“수익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고 정체를 철저하게 숨겨야 합니다.”

“당연한 소리. 잘못하면 계좌가 거래정지 당할 수도 있어.”

수익이 나도 보통 났어야지. 이번 폭락으로 장부상 백오십억 달러가 넘는 수익이 발생했다. 백인투자자가 수익을 냈다고 해도 원흉으로 지목될 판이다.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온 투자자가 그 돈을 벌었다. 시기와 질투에 찌든 놈들이 무슨 짓을 벌일지 몰랐다.

아직 남부의 시골에 가면 악명 높은 KKK가 횡횡하는 세상이었다.

하여간 이번 투자의 결과는 리처드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의 사촌동생이자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의 교수 벤저민이 부탁하지 않았다면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자리였다.

투자규모가 작고 회사의 이름이 너무 낯설었다. 한국이란 나라의 작은 증권사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기에 그래이엄의 이름이 낮지 않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오장우의 제안을 받아 들였지만 결과는 기대이상, 아니 충격적인 것이다.

“그래서 리처드의 이름이 필요한 거 아닙니까.”

리처드의 조부인 벤저민 그래이엄은 영국출신의 투자자로 여러 저서를 통해 이름 높은 저술가이자 컬럼비아대학의 교수를 역임한 유명인사다.

그의 제자 중에 월가와 행정부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한 제자들이 많았다.

오장우의 변죽에 리처드가 삐죽하게 웃었다.

“그런데 자네 보스가 이번 일을 정확하게 예측했다고 했지? 처음에는 정말 터무니없다고 판단했었지만 건네 준 자료를 분석해 보면 폭락의 조짐이 있기는 했어. 그래도 이정도의 규모는 아니었단 말이야.”

“달러화 약세 우려와 프로그램 매매의 불안정성이 대폭락을 일으킨다는 예측은 정말......”

누가 들어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정확하고 예리한 진단이 아닌가.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흔드는 오장우다,

“이번 일을 경험하면서 난 자네 보스가 미래를 예언하는 오라클처럼 느껴지네. 아니 이번에는 대폭락을 예언했으니 트로이의 멸망을 예언한 카산드라라고 해야 하나?”

대폭락과 일시적인 반등 그리고 다시 하락하는 패턴마저도 규태는 정확하게 예측해 냈다.

“한국에서 하는 주식투자도 너무나 정확한 예측을 하는 바람에 신이 들렸다란 말을 듣습니다.”

“신이 내렸다? 그게 무슨 말인가?”

“나쁜 의미로는 귀신이 씌었다는 말이고 좋은 뜻으로는 신이 강림했다는 의미도 되겠네요.”

“뉘앙스를 보면 신이 강림했다는 말 쪽에 가깝겠군. 이정도로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해서 투자를 한다면 자본주의의 신이 강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럴지도 모르지요.”

오장우는 다급한 얼굴로 달려와서 뉴욕에 사무실을 개설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밀어붙이던 규태의 얼굴을 떠올렸다.

확신에 찬 얼굴로 뉴욕의 사무소를 개설시켰고 투자자금도 마련했다.

“한번 보고 싶군. 지금 군대에 있어서 미국에 오지 못한다고 했나?”

“예, 한국은 건강한 성인 남자라면 군대에 가야합니다. 내년 여름이면 복무가 끝나니까 그때 만나보시지요.”

“엄청나게 기다려지는 시간이로군.”

“군대를 마치면 당장 미국으로 달려올 겁니다. 보스의 말로는 미국의 주식시장에 투자할 회사가 널렸다고 하더군요.”

“이번에는 좋은 예언이었으면 좋겠어. 이번 같은 일은 늙은 내 심장에 너무 해로와. 그렇지만 오라클의 다음 예언이 기다려지는군.”

뉴욕사무소에서 만든 페이퍼 컴퍼니의 숫자도 많지만 거래계좌도 수백 개로 투자금액을 쪼개 전체적인 수익을 가렸다.

11월에 옵션만기일이 지났을 때 최종적으로 거둔 투자수익의 합계는 세금을 빼고 118억 달러였다.

원화로 환산하면  9조 6천억이 넘었다. 현대와 삼성의 전체 상장주식을 더하고 한전과 포철까지 합친 금액정도였다.

수출입서류를 위장한 결산 보고서를 팩스로 받아들고 내역을 확인한 규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쌓아두었던 긴장감이 한순간에 풀어지며 온몸에 힘이 빠진다. 언제나 커다란 투자를 끝을 낸 후 습관처럼 밀려오는 기분 좋은 허탈함이다.

텔레비전만 틀면 나오는 소식은 12월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 대한 것들, 세계를 뒤흔든 블랙먼데이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정보기관들도 하나같이 선거에 목을 매고 있으니 규태의 동향에 주의를 기울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무실에서 돌아가는 정황을 아는 유일한 인물이 복일모였다.

“일모야,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말 알지?”

“압니다! 알아요! 어디 가서 입조심 하라는 소리잖아요.”

“알면 됐다. 이번 달에는 아직 보안검사 안했다. 전화통화도 주의해.”

사무실에서 도청장치가 발견되어 한번 발칵 뒤집힌 게 지난달이었다. 누가 설치했는지는 자세하게 파고들지 않았다.

규태가 전화할 때의 전화감도가 이상할 때도 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입장이었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는 하도 손을 벌리는 사람이 많아서 막대한 자금이 소모되었다.

누가 당선될지를 아는 규태였지만 입을 굳게 다물었다.

3김의 통합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고 있지만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양김을 갈라놓기 위해 물밑에서 돈을 동원한 매수와 협박 같은 온갖 협잡질이 벌어졌다.

그리고 만에 하나 한사람이 포기라도 하는 순간. 재집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순간에는 친위 쿠데타가 예정되어있다. 심지어 야당 대통령이 당선되면 암살하는 극비 계획도 은밀하게 진행 되었다. 절대로 야당에게 정권을 넘겨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가득한 판국에 순진한 사람들은 양김중의 하나만 포기하면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가능할 것이라고 여겼다.

나중에 기밀이 해제된 한국대통령 선거에 대한 CIA보고서를 본적이 있던 규태였다.

“본부장님,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될까요?”

“내가 점쟁이도 아닌데 어떻게 아냐?”

“하도 신통하니까 말이죠. 어떻게 하나도 틀리는 게 없어요?”

내가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가지고 있는 자료를 분석하고 앞으로 일을 예측을 하는 거지.”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요. 혹시 본부장님 꿈에 동자가 보이고 그래요?”

“동자는 무슨, 개새끼하나 꿈에 보이지 않는다.”

“뒤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린다는 말이예요.”

“신들렸다고?”

“예.”

“직원들이 바쁘지가 않는가 보네? 뒷담화나 하고. 한번 구사장님한테 말해서 바쁘게 굴려줘?”

“우리 회사에 바쁠 게 뭐가 있어요? 아 맞다! 투자하겠다는 사람, 돌려보내는 게 바쁜 일이긴 하지요.”

“끄응.”

규태의 입에서 저절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생각해보면 창투사 직원만큼 널널한 사람들이 없다. 힘들게 영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찾아오는 고객도 많지 않다.

그러면서 월급은 다른 회사에 비할 바가 없이 많이 받아간다.

“직원들을 정리해야 하나?”

심각한 표정을 한 규태의 말에 복일모가 펄쩍 뛰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지금도 최소한으로 꾸려 가는데.”

“농담이다. 그렇게 정색을 하고 그래.”

“농담할게 따로 있죠! 미성증권 상장이 내일이란 건 잊지 않으셨죠?”

9월로 예정되었던 상장일이 여러 사정으로 미뤄지다가 결국 날자가 정해졌었다. 미국의 투자로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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