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31화 (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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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화가 났습니다.

“아이고 이 자식아 졸업을 하고는 집에 얼굴도 자주 비치지를 않으니.”

어젯밤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새벽에 들어온 규태는 어머니에게 등 싸대기를 받고는 몸을 배배 꼬았다.

“으악! 어무이 손이 매운걸 보니 아직 안 죽었네. 나 새벽에 들어와서 몇 시간 자지도 못했단 말이야. 군대 가는 사람을 이렇게 괴롭혀도 되는 거야.”

안 떠지는 눈을 억지로 뜨며 규태가 투덜거렸다.

“군대는 무슨 군대! 훈련 들어갔다가 4주 만에 나오는 놈이.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일어나봐 내가 할 말이 있어서 그래.”

부스스한 몰골을 한 규태를 억지로 깨운 남 여사가 꿀물을 건넸다. 한 모금 들어가니 뒤집히는 속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무슨 말인데?”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다.”

“아버지? 아! 외할아버지.”

“그래 네가 전에 한 말이 있다고 하던데 그게 무슨 말이냐? 나한테는 자세하게 이야기를 안 해 주시고 너한테 전화를 하라고 하시던데.”

가뜩이나 지끈거리는 머리가 더욱 아파졌다. 이야기를 꺼낸 것이 언제인데 이제야 겨우 결정을 내린 모양이다. 규태의 머릿속으로 스친 것은 다른 말이 아니다.

아부지 돌 굴러 가유~

해장국도 시원하게 들이키고 정신을 차렸다. 술기운이 채 가시지 않아 몽롱했지만 전화기를 붙잡고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아버지 저 규태인데요. 잘 지내셨죠.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서요.”

- 그래 다른 게 아니고 네가 지난번에 이야기 했던 거 말이다. 땅 팔라던 거. 그거 사가라. “

“땅이요? 대로변에 그 땅이요.”

- 그래 주유소 옆에 땅.

“외삼촌이 와서 또 난리 피웠죠?”

갑작스럽게 전화를 해서 이런 소리를 하는 걸 보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뻔했다.

“큼, 그놈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순간 규태의 머리끝까지 열이 확 치밀어 올랐다. 외할아버지는 법 없이도 살, 그야말로 충청도 양반의 표본 같은 분이다.

그런 양반의 밑에 어떻게 큰외삼촌 같은 개차반이 태어났는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예전처럼 집안이 난장판이 될 판이었다.

“알았어요. 제가 저녁에 외갓집으로 갈게요.”

전화를 끊은 규태가 이리저리 외삼촌들과 이모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한참 통화를 끝낸 규태가 한숨을 돌리자 옆에서 팔짱을 낀 남여사가 규태를 노려보았다.

“전화 통화하는 거 들었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정남이가 또 말썽이라고? 재산을 나눠? 아버지가 멀쩡하게 살아계신데 무슨 소리야. 똑바로 말해라 김규태.”

싸늘한 목소리로 얼음장같이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는 어머니를 보며 규태는 마른침을 삼켰다.

충청도 양반의 딸답게 좀처럼 화를 내지 않으시는 분이시지만 한번 터지면 완전 지옥이다.

“어머니도 들어서 아시겠지만 큰외삼촌이 자꾸 할아버지 재산에 욕심을 내는 모양이에요. 외갓집에서 난장을 피우는 모양이더라고요. 아예 재산을 미리 자식들에게 나누어 줘버리면 난리를 피우지도 못하겠죠.”

“정남이 그녀석이 또! 그놈의 자식은 어려서부터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깡패새끼들하고 어울려 놀더니 언제 정신을 차린다니. 고등학교도 가지 못하고 중학교만 졸업하더니만. 결혼을 해서 애까지 낳은 놈이!”

속에 담아둔 동생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온 듯이 어머니가 규태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집안의 큰아들이면 큰아들답게 듬직한 맛이 있어야 하는데 어릴 때부터 사고만 치고 다니던 동생이 커서도 말썽이었다.

거기에 집에서까지 난리라니!

“그래서 아예 재산을 미리 나눠주는 거죠.”

“그러면 가만히 안 있을 텐데. 난리를 피울 텐데.”

“난리를 피우면 좀 맞아야죠.”

“네가?”

“조카가 때리면 그러니까. 형남삼촌한테 맡겨야죠.”

큰외삼촌의 동생이자 규태의 둘째 외숙인 형남은 UDT출신이다. 형 못지않게 어린 시절 말썽도 많이 부렸지만 군대에 갔다 오더니 정신을 차렸는지 얌전하게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하지만 한번 돌아버리면 예전 성미가 나온다. 싸움실력이라면 박살을 내기에 충분했다.

“정남이 친구들 중에 깡패들이 있어서.”

“그놈들이 깡패는 무슨. 양아치들이죠. 만약 그놈들이 끼어들면 같이 박살을 내버릴 거예요.”

시골이라면 어디에나 있는 할 일이 없이 어슬렁거리는 논두렁 깡패. 겁도 없이 외갓집의 일에 끼어들면 아주 뜨거운 맛을 보여줄 참이었다. 미리 황규철에게 전화를 걸어 경호 인원들을 불러들였다.

저녁식사를 한 일찍 마치고는 어머니를 모시고 외갓집으로 달려갔다. 규태가 직접 차를 몰고 가는 뒤편에 차량 한 대가 표시나지 않게 따라붙었다.

외갓집이 좁은 집이 아니지만 한꺼번에 모든 형제들이 모이자 북적거렸다. 딸만 넷에 아들이 넷이다.

큰외삼촌을 제외하고도 일곱이 모여서 사방에서 떠드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야기꽃을 피우는 외가식구들의 이야기가 길어길 듯 하자 규태가 거실로 사람들을 모았다.

미리 준비한 커다란 지도가 벽에 걸렸다. 말로 하는 것 보다는 눈으로 보여줘야 설명하기가 편하다.

“이건 뭐니?”

큰 이모의 질문에 규태가 검지를 흔들었다.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제가 설명을 끝낸 다음에 질문을 해주세요. 이 지도는 석교동 지돕니다. 여기 파랗게 테두리를 친 부분이 있지요. 이게 할아버지 명의로 되어있는 땅이고요. 여기 빨갛게 테두리를 친 땅이 최근 들어서 큰외삼촌에게 넘어간 땅입니다.”

어쩐지 낯익은 지도가 보인다 했더니 고향동네의 지도란 사실에 눈을 크게 뜨고 지도를 보았던 식구들이 비명을 질렀다.

“아버지 이게 뭡니까? 왜 저렇게 형한테 넘긴 땅이 많아요?”

“아빠 이건 아니지. 아무리 큰오빠라고 해도, 다른 자식들한테 말도 안하고 이러는 게 어디 있어. “

이미 1/4이 큰외삼촌 명의로 넘어가 있는 것을 본 외삼촌들과 이모들이 아우성을 했다. 자식들에게 할 말이 궁한 할아버지가 천장만 멀뚱하게 보았다.

“자자! 모두 조용히 하시고요. 그래서 이번 자리는 더 이상 큰외삼촌에게 할아버지 땅이 넘어가기 전에 외삼촌들하고 이모들에게 땅의 명의를 넘기는 것을 의논하기 위해서 모인 겁니다. 제가 미리 지분을 쪼개봤거든요. 이거 보고 다시 이야기를 하지요.”

외삼촌들의 지분은 이모들의 지분에 비해서 두 배가 많았다. 외삼촌들 중에서도 나이순으로 가격이 비싼 토지를 넘기는 것으로 정리를 한 규태의 자료를 보자 외가식구들이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잠시 시간을 준 규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외삼촌들과 이모들이 전부 만족하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이정도 선에서 정리를 하면 적당하게 분재가 마무리가 되는 거죠. 나머지는 나중에 할아버지가 나누어 주실 테고요.”

자식들에게 나누어줘도 외할아버지에게는 상당한 양의 토지가 남았다.

별종 같은 큰외삼촌만 제외하고는 나머지 형제들은 욕심이 크게 없는 사람들이다. 가장 불만이 많을 둘째외삼촌도 입을 다물었다. 이미 규태와 입을 맞춰 놓았기 때문이다.

둘째형이 입을 다물 자 셋째와 막내 외삼촌도 눈을 도로록 굴려 자신의 몫으로 떨어질 땅을 살펴볼 뿐 큰소리를 내지 못했다.

“다 좋은데 큰언니 몫은 없네? 왜 없는 거야?”

규태의 어머니 남 여사를 어릴 때부터 잘 따라던 막내이모의 질문이었다.

“호호호, 막내야. 내가 이번에 주식에 투자해서 큰돈을 벌었거든 난 아버지 재산 필요 없단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어머니가 의기양양하게 자랑을 했다. 어디 가서 돈 많이 벌었다는 소리를 하면 도둑이라도 들까봐 입을 다물고 있지만 모처럼 형제들을 만나니 입이 가벼워졌다.

“주식? 얼마나 벌었는데? 응! 언니.”

시집 갈 때 갓난아이였던 탓에 늘 어리광만 부리는 막내의 애교에 슬며시 녹아내린 남여사가 귓가에 작은 소리로 말하자 막내이모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정말? 정말이지? 대단하다! 우아!”

감탄을 연발하는 막내의 모습에 다른 형제들이 궁금증을 드러냈다.

“아! 얼만데? 너만 알지 말고 나한테도 말해줘.”

“막내야 말해봐. 누나가 얼마를 벌었다는 거야.”

셋째이모가 막내의 옆구리를 찔렀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자 막내이모의 눈이 남여사를 향했다. 슬쩍 고개를 끄덕이자 기다렸다는 듯 막내이모의 입이 열렸다.

“글쎄 언니가 투자해서 번 돈이 20억이 넘는데.”

입을 크게 벌리고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저마다 감탄의 기색이 흘러나왔다. 자연스레 큰딸인 규태 어머니의 어깨가 으쓱했다.

잠시의 정적이 지나자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진짜 언니 돈이야?”

“큰 형부 돈이 아니라 언니가 투자해서 번 돈이 맞아?”

“큰 누나 나 돈이 좀 필요한데.”

“나도! 큰언니 전에 약속한 것처럼 나 시집갈 때 집 사줄 거야?”

동생들의 아우성을 기분 좋은 표정으로 즐기던 남녀사의 입이 열렸다.

“다들 조용! 내 돈 맞아. 너희 큰 형부는 따로 투자해서 나보다 더 벌였다. 에이 나도 돈 빼지 않고 더 많이 투자하는 건데.”

“자자, 이제 조용히들 하시고 불만이 없으시면 이렇게 추진을 하겠습니다. 외할아버지 이렇게 하실 거죠?”

자식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멀뚱하게 천장을 보던 할아버지의 입이 열렸다. 옆에서 아내까지 그렇게 하라는 눈으로 보고 있는데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 규태말대로 하자.”

그제야 규태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규태도 고민이 많았다. 자신의 재산도 아닌 할아버지의 재산을 규태가 독단적으로 분재하자고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술에 술탄 듯, 물에 물탄 듯 한 할아버지의 행동이 이어지면 결과는 불을 보듯이 뻔했다.

아예 외가식구들을 모아서 못을 박아야 후에 일어날 불상사를 막을 수가 있다.

할아버지의 말이 끝나자 형제들이 남여사에게로 몰려들었다.

사실 시골 땅이 비싸봐야 얼마나 하겠는가. 당장 농사를 지을 것도 아니고 자식들 입장에서는 땅의 명의만 바뀌는 것에 불과했다.

형제들의 관심은 주식투자로 큰돈을 벌었다는 큰언니이자 큰누나에게로 몰렸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밖에서 들려오는 고함소리에 깨졌다. 화가 나서 붉은 얼굴로 올라온 큰외삼촌이 고함을 쳤다.

“나빼고 모여서 무슨 수작들이야! 나빼고 한 의논은 전부 무효야, 무효.”

“너 이개자식 잘 걸렸다. 내 그렇지 않아도 한번 손을 봐 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나타나?”

벼르고 있었다는 듯 둘째 외삼촌이 나섰다.

“이 자식이 형한테 무슨 짓이야!”

“형? 형같은 소리하네. 아버지한테 행패 부려서 집안 재산을 야금야금 빼돌리려는 수작을 알았지만 그래도 큰아들이라고 참았는데 이 개자식. 네 몫으로 빼돌린 재산이 얼마라는 걸 이제까지는 입을 다물었더라.“

“나 이집 큰아들이야! 내가 제사를 지낼 거니까 당연히 너희들보다 많이 받아야지.”

“더 할 말도 없고 말할 필요도 없다. 너 앞으로 내 눈에 띄지마라 죽여버릴테니까. 아버지한테 행패까지 부렸다면서.”

“이자식이! 너 죽고 싶냐?”

큰외삼촌이 주먹을 휘둘렀다. 그 주먹을 가볍게 피한 둘째외삼촌이 뺨을 후려쳤다.

“어이쿠!”

짝하는 소리에 얼굴 반쪽이 검붉게 달아올랐다. 바닥에 나뒹군 큰외삼촌이 다시 일어나 주먹을 휘둘렀지만 둘째 외삼촌이 맞아줄 리가 없다.

양쪽 뺨을 왕복으로 두드려 맞고 도저히 힘으로 안 될 것 같으니 울분을 못 이겨 씩씩 거리던 큰외삼촌이 욕설을 내뱉더니 밖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도망치듯이 빠져나가는 형을 보며 둘째 외삼촌이 걱정을 했다.

“저거 언제 인간되려고. 친구들 부르는 거로구만. 아씨, 그놈들 몰려오면 대책이 없는데.”

한손이 여러 손을 당할 수 없다. 큰외삼촌과 어울리는 친구들 중에는 제법 싸움을 잘하는 이들도 끼어있다.

옆에서 큰외삼촌이 둘째외삼촌에게 두드려 맞는 모습을 속 시원하게 지켜보며 팝콘 각을 재고 있던 규태가 나섰다.

“외삼촌 걱정하지 마요. 그놈들이 우르르 떼로 몰려온다고 해도 전부 박살이 날 테니까. 이미 바닥에 주욱 깔았어요.”

회사의 주인이 필요하다는 소리에 서울에서부터 달려온 경호회사의 직원들이 밖을 지키고 있다.

큰소리를 치는 규태의 말에 막내외삼촌이 조르륵 밖으로 달려갔다가 소리를 질렀다.

“형 진짜야. 밖에 사람들이 많아.”

“경호회사 직원들이니까 걱정할 것 없어요. 큰외삼촌이 친구들을 몰고와도 이미 손을 써놨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요.”

큰외삼촌의 행패에 불안해하던 형제들이 안심을 했는지 표정이 밝아졌다.

이마를 찌푸린 할아버지의 모습을 힐끔하고 곁눈질로 살핀 규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앞으로 딴 생각 못하게 이번에 아주 혼쭐을 내줄 생각입니다.’

우르르 몰려왔던 깡패들이 경호원들에게 박살이 나서 경찰서로 배송되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신고를 받고 달려왔던 경찰들도 앞에서 신분증을 제시한 경호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경례까지 붙이고 돌아갔다. 이미 서장에게 연락을 받았는지 일처리가 물처럼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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