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29화 (29/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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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

일본에서 돌아온 규태는 개인계좌에서 가지고 있던 주식의 일부를 팔아 일본으로 보냈다.

다음으로 진행한 것이 기룡증권의 조직개편작업.

회사의 크기가 커지면서 자리는 많이 늘었지만 일 할 사람을 구하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았다.

오장우가 꾸준하게 연락을 해온 해외인맥을 불러들였지만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브로커리지 파트를 제일 먼저 강화해야 하는데 마땅한 사람이 있지만 시간이 필요합니다.”

“서두들 필요는 없어요. 기룡증권은 아직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말을 하려고 했습니다만 회사의 지점을 늘리는 일에 속도를 냈으면 합니다.”

규태가 그동안 기룡증권의 지점수를 늘리는 일을 서두르지 않아 오장우가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섭섭해 했다. 하지만 규태가 가진 계획은 달랐다.

“기룡증권은 당분간 지점을 열 개 정도만 늘린 다음 안정적으로 운영할 생각입니다. 약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다른 증권사들하고 다르게 IPO(기업공개)와 해외투자에 특화한 작지만 강한 증권사로 만들고 싶습니다.”

“아직 한국의 증권회사 입장에서는 브로커리지수입이 절대적입니다.”

“브로커리지를 포기하자는 말은 아니지만 솔직히 기룡증권이 여타 다른 증권사에 비해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선뜻 오장우는 대답을 못했다. 비상장사에 자본금 규모도 작다. 대중에게 인식된 인지도도 형편없다.

“......경쟁력은 키우면 됩니다.”

“키우다가 증시불황을 만나면요? 증시 활황이 얼마나 갈 것 같습니까?”

“적어도 한동안은 계속 되지 않겠습니까?”

규태는 속으로 혀를 찼다. 시장에 밀접하게 붙어있는 사람은 불황의 기운을 쉽게 느끼지 못한다. 증권사가 흔하게 하는 일이 호황이면 지점을 늘리고 불황이면 늘어난 영업직원들을 쥐어짠다. 똑똑한 인재를 받아서는 바보로 만들어서 쓰레기통에 버리는 짓이다.

“앞으로도 증시 호황이 1년 정도는 지속되겠지요. 그다음 에는요?”

“조정을 받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조정이 길어봐야 얼마나 되겠습니까?”

“길게 간다면 요? 조정기간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길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요.”

89년에서 92년까지의 주가조정은 급작스럽게 팽창한 증권시장에 커다란 압박을 주었다. 그리고 조정이 끝난 시작되는 다음의 상승기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통신주와 자산주, 저Per주와 같은 주식이 해외투자자 유입이 커지며 각광 받는 시대로 변화하는 것이다.

“그래도 증권사 지점을 늘리는 일은 중요합니다. 매매수수료가 한국증권사의 가장 큰 수입원입니다. 포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니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규태는 차분하게 오장우를 설득했다.

“우리 10년 앞을 보고 회사를 만들어 가시죠. 당장 코앞만 보고 달려가다간 언제 발밑에 돌부리가 튀어나와 넘어질지 모릅니다. 증권시장이 호황을 보이건 불황을 보이건 상품투자로 꾸준하게 흑자를 내고 인재를 양성하다보면 정상의 자리가 코앞으로 다가올 겁니다. 앞으로 20년 후엔 기룡증권을 일본 노무라증권보다 크게 키우는 게 제 목표입니다.”

규태는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원대한 꿈을 오장우에게 털어놓았다.

오장우가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노무라증권은 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투자증권이다.

노무라증권은 차근차근 선진국의 증권업을 따라잡겠다는 장기목표를 가지고 준비한 탓에 조만간 세계제일의 투자은행이 되겠다는 야심이 대단했다.

한국에서도 알아주지 않는 작은 증권회사가 노무라를 따라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힘든 일입니다. 아니 불가능한 일입니다. 지금 일본에 세계규모의 회사가 몇 개나 되는지 아십니까? 손가락으로 세지도 못할 정도입니다. 금융기관의 규모도 일본은 이미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로 커지고 있습니다.”

상장조건조차 갖추지 못해서 앞으로 몇 년은 비상장으로 남아있어야 하는 기룡증권이 세계제일의 투자은행을 노리다니 오장우가 보기엔 허황되기 그지없는 목표다.

“하여튼 제 목표는 그렇습니다. 앞으로 제가 군대에 가게 되면 오사장님이 전적으로 회사를 이끌게 될 텐데. 한 가지만 명심해 주십시오. 꾸준한 인재를 받아들이고 인재의 양성을 계속해야 합니다. 지점의 규모를 늘리는 일에 투자하기 보다는 인재의 양성에 투자하십시오. 회사의 이익은 브로커리지의 확대로 거두는 게 아니라 투자이익으로 대신하면 됩니다. 미국이던 일본이던 유럽이던지 간에 가리지 않고 금융기관들과 협력관계를 맺어서 직원들을 파견하십시오. 그렇게 사람을 키우다 보면 언젠가 제 목표가 이루어질 테니까요.”

나이 마흔이 넘기 전에 세계제일의 투자은행을 만들고 은퇴하여 유유자적하면서 사는 것이 규태의 진짜 꿈이다. 하지만 오장우에겐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그러기위해서는 오장우는 오랫동안 규태를 대신해서 죽도록 회사 일을 해야 한다.

시커먼 규태의 속마음을 알지 못하는 오장우는 규태의 마음을 바꾸려 시도를 했지만 결국에는 포기했다.

일본 버블의 붕괴를 직격탄으로 맞는 노무라는 90년대엔 파산위기를 맞는다. 규태의 진짜 마음속의 목표는 미국 제일의 투자은행인 JP모건을 넘어서는 것이다.

증권전산작업과 본사업무의 진행을 지켜보며 규태는 대학졸업을 준비했다. 봄이 오면 군대에 가야한다. 4월은 입대하기에 적당한 계절이었다.

일본에서 소프트뱅크의 투자에 성공한 이후 규태는 의욕이 사라졌다. 들고 만 있으면 200억 달러까지 오르는 대박투자다. 미국에 진출해서 마이크로 소프트와 애플, 오라클 같은 기술주에 투자하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던 규태였기에 소프트뱅크에 대한 지분투자는 길을 가다가 공돈을 주은 것이나 마찬가지.

대학 졸업식은 간단하게 진행되었다. 겨울이 지나가지 않은 추운 날씨 탓에 운동장에서 하는 식에는 참석하지 않고 부모님께 학사모를 씌어드리고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졸업을 하고 나니 후련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다. 솔직히 학교에 다니면서 일을 하자니 귀찮은 일이 많았었다.

4학년 때는 거의 학교에 나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젠 다시 학교란 곳을 다니지 않을 것이었다.

가족들과 졸업식후의 점심식사를 즐긴 규태는 창투사로 출근했다.

“졸업 축하합니다.”

오랜만에 들린 창투사 사무실에서 졸업을 축하하는 직원들에게 답례를 하고 자신의 방에 들어선 규태는 자리에 앉아서 서류를 보고 있는 복일모를 보았다.

“그동안 심심했던 모양이로군.”

“당치도 않은 말씀이세요. 저도 나름 바빴단 말입니다. 황이사님이 절 그냥 놀게 뒀겠어요. 게다가 증권사 사람들도 저를 들볶았단 말입니다.”

규태 생각에도 황규철이 멀뚱하게 놀고 있을 복일모를 그냥 내버려둘 사람이 아니다. 다른 증권사들이 복일모를 괴롭히는 것은 규태가 기룡증권과 미성증권의 대주주가 된 이후 다른 증권사에 주문을 넣지 않은 탓이었다.

바쁘게 이리저리 다니느라 바쁜 규태를 대신해서 애꿎은 복일모만 닦달을 당한 것이다.

“김하성대리가 어지간히 괴롭힌 모양이로군.”

“김대리 목소리만 들려도 소름이 돋는다니까요. 저를 괴롭히다 못해 나중에는 아예 여기에 자리 깔고 버티던데요.”

어지간히 학을 뗐는지 복일모가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강제로라도 끌어내겠는데 규태와 형 동생사이다 보니 복일모도 대하기가 껄끄러웠다.

전화기가 울리는 소리가 들리자 화들짝 놀라는 시늉을 하는 복일모를 보며 쓴 웃음을 지은 규태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이구! 이게 누구신가. 서울로 날라버린 후 연락한번 없는 분이 어쩐 일이신가. 회사에서 자리를 지키고 계시고?”

삐진 감정이 듬뿍 담긴 김하성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울리며 들렸다.

“잘 지내셨습니까? 목소리 들으니 건강하신 것 같은데 제가 조금 바빠서요. 할 말 없으시면 끊겠습니다.”

”잠깐 잠깐! 야! 전화 끊기만 해봐! 나하고 할 말 있지 않아? “

“이제 조금 났네요. 시간이 나시면 나중에 찾아뵐게요. 아니다. 거기로 가면 지점장이 또 대접한다고 난리를 칠 테니까. 오후 장이 끝나면 찾아오시죠. 저도 오랜만에 이쪽에 출근을 해서 정리할 일들이 있어서요.”

“끄응, 알았다. 내가 장이 끝나고 찾아가는 걸로 하지.”

김하성과의 전화를 끝낸 규태는 2층의 대표실을 찾아갔다.

의자에 앉아서 서류를 보고 있던 구봉만이 반갑게 규태를 맞았다.

“이쪽에서 보는 건 오랜만이네. 졸업식에 가보지 못하게 해서 섭섭했네.”

“창투사만이 아니라 증권사의 직원들도 모두 참석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큰일도 아닌데 법석을 떠는 것도 그래서요.”

“그래 당분간은 대전에 있을 생각인가?”

“예, 회사에 처리할 일들이 밀려있더군요. 당분간은 대전에 있을 생각입니다.”

“자네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네.”

규태가 외부 인사를 만나기 싫어하는 것을 아는 구봉만이 입에 담을 인사들은 몇 없다.

“정치인들이 자주 제 이야기를 하던가요?”

“만나고 싶어서 안달은 하지만 체면 때문에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

“그러면 됐습니다. 나이어린 제가 앞에 나서기는 그러니까 지금처럼 구사장님께서 적당히 만나서 기름칠도 하고 그러세요. 무시하고 싶지만 저희회사 기반이 너무 없어서 외풍에 약하니까요.”

“그래 회사만 잘 운영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지. 입으로는 자본주의라고 말만하지 이건......”

은행원으로 삼십년이 넘게 살다보니 알려지지 않은 것들을 많이 아는 구봉만이다. 멀쩡한 회사를 부도나게 하고 잘 운영하던 회사를 강제로 강탈한 짓을 벌인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권력자들만 그런게 아니다. 경쟁자를 몰락시키기 위해 벌이는 재계의 암투도 상상을 초월한다.

규태는 지금처럼 정치와 재계에서 한발짝 물러서서 관망하는 자세를 계속 취할 것이었다.

***

부동산 사무실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손님들로 붐비는 사무실에서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곽태하가 규태를 발견하고 반가운 얼굴로 눈인사를 했다.

조애리가 상담하는 전화를 바쁘게 끝내고는 인사를 했다.

“결혼식에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지도 못했는데 돈이라도 충분히 넣어야지요.”

바쁜 일정 탓에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규태가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요. 그렇게 큰돈을.......”

“두 사람이 잘 살라고 보테준겁니다. 신혼인데 시작을 너무 어렵게 하면 보기에도 좋지 않고요.”

조현민의 벌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가진 것이 하나도 없다보니 결혼을 준비하면서 빠듯했다. 곽태하로부터 사정을 전해 듣고는 신혼집을 구하는 자금을 보태주었다.

조애리와 신혼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손님을 보낸 곽태하가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두 마리 바퀴벌레 때문에 나만 죽는다고요.”

“신혼부부사이에 끼어서 일을 하려면 어쩔 수 없지.”

“하하하, 선배마저 그런 식으로 말하면 곤란하죠. 내가 이렇게 남은 게 누구 때문인데.”

곽태하도 규태를 찾아 창투사로 온다는 것을 막았다.

부동산 사무실은 지금도 가뜩이나 바쁜 곳이다. 태하마저 빠져나가면 산모인 조애리가 어떻게 감당을 하겠는가. 거기에 곽태하가 제대로 일을 시작하려면 군대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너는 졸업하고 군대마치면 오라니까. 어차피 88올림픽 끝나면 부동산 일이 조금은 한가해 질 거다.”

“정말 그럴까요?”

“지금이야 경제도 잘 돌아가고 올림픽도 가까워서 건축경기가 뜨겁지 만 올림픽 끝나면 시들해질 거다.”

“아쉽네요. 그럼 그 후에는 어디에 투자해야하죠?”

부동산중개라는 게 바쁜 만큼 수익이 들어오는 사업이다. 시작하자마자 단꿀을 빨았으니 이런 시장이 계속 될 거라고 기대하는 것도 잘못은 아니다.

“자금만 축적해 놓으면 투자할 곳이야 널렸으니 큰일이야 있겠냐.”

“선배는 군대 언제 가는데요? 창투사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서울에서 증권사로 출근한다던데. 그건 무슨 소리예요?”

“창투사에서 증권사에 투자를 하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 바쁜 일은 대충 끝났고 졸업도 했으니 이젠 군대 가야지.”

“에이 방위병이 무슨 군대야. 나중에 제대도 아니고 소집해제라고 부르던데.18개월이야 눈감고 있으면 금방이지.”

“그렇게 생각하면 나대신 니가 가라. 군대.”

지금 생각해도 속이 쓰리다. 1년만 일찍 회귀를 했으면 신체검사에서 손을 썼을 텐데 굳이 신검이 끝난 다음에 회귀를 해서 손을 쓰지도 못했다.

재검을 볼까도 생각했지만 복잡한 일이 발생할까봐 두 눈을 꾹 감고 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속에서는 욕이 저절로 흘러 나왔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가는 군대다. 힘들면 힘든 데로 편하면 편한 데로 징그러운 것이 군대다.

“하하하, 그렇게는 못하지. 나도 내년에 졸업하면 군대를 가야하는데 생각할수록 끔찍하네.”

이미 신체검사에서 1급 현역판정을 받은 곽태하였다. 덩치가 커다란 놈이 부르르 떠는 것을 본 규태가 물었다.

“저쪽 방은 조용하다?”

“그 아줌마들 코가 쑥 빠져서 요즘 잘나오지도 않던데.”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으니 상황이 어떤지 알도리가 없다.

“어떻게 해서 그런다니? 시장도 좋잖아?”

“형이 한 말 듣지 않고 반대로 가서 주식시장은 올라가는데 가지고 있는 주식은 제자리에서 놀고 있으니 미칠 노릇이지. 참다 참다 도저히 못 참겠는지 보름 전에 지점에 가서 육과장인가 하는 사람하고 대판 싸웠는지 한참을 씩씩 거리더라.”

“육과장 대단하네. 반대로 투자한 사람을 계속 붙잡고 있게 하기도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그걸 해내네.”

규태는 쓰게 웃었다. 생각보다 육과장은 정말 대단한 능력자다.

“아줌마도 형 말만 들었으면 얼마나 좋아. 나는 돈 생길 때마다 투자를 해서 지금 얼마나 따듯한지 몰라. 흐흐흐.”

주식이야기가 나오자 환하게 웃는 곽태하였다. 규태의 추천을 잊지 않고 그대로 지켜서 막대한 수익을 거두는 중이다.

주식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 없는 조애리와 조현민의 사이에서 자랑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었다.

오랜만에 보는 규태에게 시원스레 자랑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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