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25화 (25/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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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장 증권사에 투자하다

“따로 회사를 차립시다.”

황규철이 가지고 온 스무 장이 넘는 이력서를 살핀 규태가 말했다.

“회사를요? 어떤 회사를 말입니까?”

“고민해봤는데 생각보다 쓸 만한 인력이 많더군요. 황실장님이 소개한 사람들이 전부 마음에 드는데 숫자는 제한 되어있지 않습니까? 차라리 따로 회사를 차리면 인력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습니다.”

“사업이 될까요? 자본도 많이 들어갈 겁니다.”

황규철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전에 시도해 보지 않은 일이 아니다. 군대를 나온 사람들이 힘을 합쳐 경호업체를 만들었지만 버티지 못하고 폐업했다. 시장이 크지 않아서 대기업을 끼지 않으면 경쟁에서 이기지 못한다.

“경제성장이 지속되면 경호시장이 폭발적으로 증가할겁니다. 저도 이번 일을 겪으면서 깨달았지만 치안이 불안하지 않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인맥이 없으면 회사영업이 힘 듭니다.”

여전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황규철을 규태가 설득했다. 그가 기억하는 한 시간이 흐를수록 보안시장의 성장세는 커진다.

믿을만한 사람들을 자리를 잡게 하고 미래 성장산업을 남들보다 먼저 손에 쥘 수 있는 일거양득의 기회였다.

“경찰출신들까지 모아서 회사를 차리면 됩니다. 사람들을 선발해서 미국과 일본에 연수를 보내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될 테지요. 사장을 하실 분을 한번 알아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이미 규태가 회사를 만들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일할 사람만 구하면 된다. 미성증권의 주식인수와 함께 진행해야 하는 사안이라 일거리가 늘어난 것이다.

황규철은 머릿속으로 그가 아는 인맥들을 떠올렸다.

여러 번 협의를 거친 끝에 결판이 났다. 미성증권주 총 40%의 지분은 9,000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하고 인수대금을 36억을 지불했다.

추가적으로 규태 개인 명의로 13%의 지분을 인수했다.

협상과정에서 인수가격이 오른 것은 주식시장에서 증권주 강세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선도주인 대우증권의 주식 가격이 빠르게 올라 23,000원을 넘었고 나머지 증권주도 그 뒤를 따랐다. 자연스럽게 비상장 증권주의 가치도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규태는 경영지원 본부장의 자리에 올라 증권사 명의로 여의도 KBS 별관 옆에 7층짜리 대로변 건물을 67억에 인수했다. 보안을 강화해서 미리 발급한 신분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 정해진 장소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만들었다.

미성증권은 본사와 지점들의 전산화작업을 빠르게 진행했다. 자본금을 300억으로 증자하는 일이 끝나자 곽병호사장은 서울시내와 전국대도시를 돌아다니며 신규 지점의 개설 작업을 통괄했다.

규태는 본사에 남아 상품 주식과 채권의 평가를 전산화 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에 더불어 방만하게 운영되던 상품주식과 채권을 전부 매각하고 증권주와 무역주를 매입했다.

또 직원들에게 컴퓨터를 지급하고 손으로 써서 서류를 작성하는 일을 금지했다. 부서를 세부적으로 나누고 조사와 기획 부서를 신설했다.

신문에 직원채용광고를 내고 급여체계도 개편했다. 영업점 개설 작업에 바쁜 일정을 소화하던 곽병호사장과 부딪힌 것은 규태가 책정한 직원의 월급수준이 기본에 비해 너무 높다는 것이다.

“곽사장님, 현재의 급여체계에서 미성증권에 올 대졸자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또 경력자들은요?”

“그래도 생각보다 월급이 너무 높아. 회사가 버는 것도 충분치 않은 판국에.”

“상품으로 산 주식가격이 빠르게 올라가지 않습니까? 자금여력은 충분합니다.”

“주식투자만큼 믿을 수 없는 게 없네. 당장 내일이라도 떨어질 수도 있어.”

“당분간은 계속 오를 겁니다.”

“언제까지 오를 거란 법은 없지 않나. 월급은 한번 올리면 내리기 힘들어.”

경제성장이 빠른 만큼 사람을 구하기도 힘이 들어서 월급이 빠르게 오른 추세다. 예전 증권사의 월급이라면 사람을 구하는 일이 더 힘들어지는데도 곽병호는 고집을 부렸다.

“이정도로는 끄떡없습니다. 경제가 좋아지고 있고 주식시장도 상황이 좋아지고 있지 않습니까. 앞으로 다른 증권사들도 급여의 상승속도가 빨라질 겁니다. 처음 약속대로 2년간은 제 뜻에 따라 주십시오.”

규태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뜻을 관철했다. 규태가 볼 때 증권사의 월급은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신입사원의 첫 월급이 20만원 수준, 가장 많이 받는 단자사 직원의 월급이 70만원이다. 이런 판국이니 쓸 만한 대졸자가 증권사에 입사할 리가 없었다.

“총무부장님, 입사 지원 서류는 많이 들어옵니까?”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꾸준히 들어옵니다.”

“직원 면접이 끝나면 직원 교육도 해야 합니다.”

“준비는 하고 있습니다만 처음 해보는 일이라서.”

자신 없다는 얼굴을 하는 총무부장을 보며 규태가 달랬다.

“인원이 적어서 인사와 총무를 함께 하셨지만 회사가 커지면 나눠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사자리는 올라야죠?”

“사장이 옆에 있는데 내 허락도 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막냇동생분도 회사에 자리를 잡아야죠. 회사가 커질 때 역량을 키워야 합니다. 형제가 나란히 경영에 참가해도 나쁠 것이 없고요.”

총무부장 곽민호는 사장 곽병호의 동생으로 부친에게 물려받은 회사지분 5%를 가지고 있다.

규태가 인수를 할 마음을 먹었다면 인적청산을 시도하겠지만 처음 계획대로 증권사를 주식시장에 상장한 후에 보유한 주식을 팔 예정이다.

“이거 참! 내가 바지사장도 아니고.”

겉으로는 기분이 좋지 않은 표정을 했지만 곽병호의 얼굴에 스치는 안도의 기색을 규태는 알아차렸다.

곽병호사장의 속마음은 규태가 회사를 차지하고 다시 넘기지 않을까하는 고민이 가득했다.

그가 어떻게 생각하던지 규태는 큰 욕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번에 증시에 주식을 상장 시키고 난후에도 계속 위기는 찾아온다. 89년부터 92년까지 주식시장은 긴 침체기를 가진다. 그 이후에 대기업에 소속되지 않은 증권사들은 IMF의 파도 속에서 쓸려나간다. 그때 망하는 증권사와 은행들을 주어도 충분하다.

급하게 만들어진 커리큘럼이지만 일주일을 예정하고 시작된 지점장에 대한 교육은 만족스러웠다. 교육에 참가한 대상자는 회사의 선임 차장 셋과 스카우트로 뽑아온 7명의 경력직이 함께 교육을 받았다.

이전까지는 증권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체계적인 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주식 차트를 보는 기본적인 방법과 회사를 분석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까지 증권전산과 연결된 실무교육동안 참가자들의 열의가 불타올랐다.

“신기하구만, 손으로 그래프를 그리지 않아도 되고 이렇게 편한 주가분석이 가능할 줄 몰랐네.”

서초지점장으로 내정된 고광우부장이 감탄했다.

주가 그래프를 보는 방법은 주식시장에 오래 버티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알지만 많은 종목을 수작업으로 그리는 것에 대한 불편으로 주요 종목 몇 개만 그릴뿐이다.

본사 건물 1층에 설치된 영업점의 주식 시세 판을 보면서는 신세계를 보는 것 같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시장에서 가격이 변할 때마다 계속 가격표시가 바뀌는 모습은 전화주문에 익숙하던 그들에게는 정말 낯선 풍경이다.

색분필 들고 뛰어다니던 시절이 떠올랐는지 예비 지점장들이 저마다 감탄했다.

“사원때 가격 정정한다고 뺑이 쳤는데 격세지감이로구만.”

“세상 좋아졌다.”

“이거 설치하는데 얼마야? 미성증권이 창투사를 끌어들여서 돈벼락을 맞았다더니 정말이로구만.”

전산화에 대한 말은 많았지만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자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미성증권에 창투사자금이 들어와서 자본을 확충했다더니 작은 증권사치고는 꽤나 발 빠른 대응이었다.

“어린놈이 설치다고 고깝게 보는 사람도 많다더구만.”

경영지원본부장인 규태에 대한 뒷담화도 빠지지 않았다. 전체 증권사 직원의 숫자가 적다보니 고참이 되면 대부분 안면이 있는 사이다. 지점장들 사이에서 이야기를 주도하는 고광우는 본사에서 영업지원업무를 오래했다.

“아이고 형님들, 김본부장이 주식 투자에 도사랍니다. 회사도 이번에 상품주식 사서 대박이 났어요.”

“진짜야? “

지점장을 시켜준다니 스카우트에 응했지만 미성증권의 덩치가 작아서 내심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말하면 입 아픕니다. 상품주 400억 어치 샀는데 지금 200억 넘게 벌었대요. 본부장이 주식을 사고 파는데 실력이 예술이랍니다.”

“회사가 이익이 많이 나면 좋지. 지점을 갈구는 것도 약할 테고.”

증권사가 주식중개 수수료에 목을 매면 지점에 대한 압박이 심해진다. 상품주식으로 이익이 많이 나면 지점에 대한 압박이 느슨해지는 것은 인지상정. 지점장들에겐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이건 비밀인데.”

고부장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뭐야? 쓸데없이 궁금하게 만들지 말고 털어놔봐.”

“본부장이 말하기를 회사의 수익구조를 중개수수료 수익보다는 상품수익으로 거두는 전략으로 해 나갈 거랍니다.”

“정말 그렇게 할까?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거 아냐?”

“게다가 앞으로 주식시장이 활황을 유지할거라고 공격적으로 지점을 늘려간답니다.”

“그게 무슨 좋은 소식이야. 지점 늘어나면 영업만 힘들어지지. 가뜩이나 미성증권은 회사이름이 약해서 영업하기도 힘든데.”

”영업점 늘어나면 영업 잘하는 지점장들 승진 시켜서 지역별로 영업본부장 체계로 만든 다니까요.“

나직한 고부장의 말에 지점장들이 반색을 했다.

“정말인가!”

“그게 사실인가?”

다들 월급장이 인생이라 지금까지 영업점장이 마지막이다. 위로 올라가려면 영업담당 이사가 되어야 하는데 지점수가 적다보니 자리가 하나나 둘 나는게 고작. 그 좁은 바늘구멍을 넘어서려면 사주와 인척이거나 심복이 아닌 이상 지점장 몇 년 하다가 퇴직하는 게 순서다.

지점을 늘리고 지역마다 쪼개서 이사급으로 한다면 지금 함께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뽑힐 확률이 높다.

눈을 반짝이는 지점장들을 보며 고광우부장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가 받은 특명은 지점장들의 사기를 높이는 것이다.

“정말이지 않고요.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 이사님들 나오시겠네.”

교육을 마치고 이른 저녁시간부터 시작된 술자리에서 고광우는 미래가 불안정한 작은 증권사로 옮겼다는 자괴감이 사라지고 지점장들의 사기가 올라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곽병호 사장은 성북동에 있는 집으로 동생과 함께 퇴근했다. 곽병호는 집안의 서재에 들어서자마자 마음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꺼냈다.

“속으로 걱정을 많이 했는데 확실하게 회사에 욕심이 없는 것이 맞는 것 같지? 너를 이사자리로 올리려는 걸 보면 말이야.”

규태가 술이라도 잘 마시면 술자리로 불러내 속마음을 떠볼 텐데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술자리라면 질색을 하며 거절했다.

“저도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리저리 떠보았는데 확실하게 주식팔고 나갈 생각이더군요.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허참! 나 같으면 한번 욕심을 내볼 것도 같은데.”

“오히려 본부장은 외국시장 투자에 관심이 많던데요. 미국주식시장 이야기를 하는 것 보면 그쪽 투자를 할 것 같습니다.”

“미국에 투자하는 건 불가능하잖아.”

“앞으로도 계속 투자를 막지는 않겠지요. 88올림픽을 앞두고 규제가 많이 풀렸잖습니까.”

“올림픽은 할 수나 있을지 몰라. 데모를 이렇게 하는데 말이야. 건국대에서 천명이 넘는 학생들이 잡혀갔다는데?”

“정권에서는 목숨을 걸고 밀어붙이고 있잖습니까.”

“소요사태가 심각해지면 모르지. “

“하여간 안심해도 될 겁니다. 어려서 그런지 회사를 자식처럼 생각하는 우리들과는 틀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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