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22화 (2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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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장 증권사에 투자하다

80년대 후반 경기의 급속한 성장과 함께 인력부족이 심해서 상대를 나오고 학점만 좋으면 어지간한 기업과 은행들은 복수로 합격했다.

창투사같이 작은 조직에서 제대로 된 인력을 구하기는 인맥을 통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을 하나부터 교육을 시켜야 한다.

규태가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황규철과 그가 이끄는 조사팀이다. 회사에서 지급하는 월급 말고도 경비를 아낌없이 지원했다. 인터넷이 없는 세상, 작은 정보라도 하나 얻으려면 발로 뛰거나 인맥을 통해 얻어야한다.

처음에 4명으로 시작한 조사실의 인원을 추가로 3명을 늘렸다.

그 결과물이 추석을 보내고 회사에 출근한 규태의 책상위에 올라왔다. 증권 감독원의 직원에게서 얻어낸 증권사의 인원, 지점, 수익현황에 관련된 자세한 보고서였다.

상장된 증권사를 제외하고도 비상장인 증권사의 숫자가 23개, 그중에서 제대로 된 인적구조를 가진 회사는 없다.

장기에 걸친 주식시장 침체로 지점 한 개만을 가진 증권사도 많았고 증권회사이름만 걸었지 사실 명동 사채업자와 크게 다르지 않는 채권의 중개업무를 하며 회사를 유지했다. 자본금 규모도 작았다.

“황실장은 이 두 개 증권사를 추천하시는 겁니까?”

“두 회사의 자본을 확충해서 올해 실적을 만들면 내년 하반기에는 상장요건을 갖출수 있습니다.”

“대주주가 회사를 상장시키려고 할까요?”

비상장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일부러 상장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상장을 하려면 회사주인의 의지가 중요하다.

“창투사의 자금으로 자본구조를 개선시켜서 상장하겠다면 반대하지 않을겁니다. 창투사의 규정에 경영권을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도 마음을 먹는데 도움을 줄 겁니다.”

창투사의 펀드로 상장사에 대한 주식투자를 막는 규정이 없다. 창투사의 설립초기라 그런지 자금의 운영에 대한 규제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엄격하게 막는 것이 하나있으니 투자하는 회사의 경영권을 가져오는 것이다.

규태는 찬찬히 황실장의 보고서를 살폈다.

그가 추천한 미성증권은 지점수가 3개, 직원들의 숫자도 55명으로 미니 증권사다. 작년과 재작년 소규모 흑자를 기록했다.

주요수입은 주식과 채권의 중개업무.

회사의 자금 규모가 작아서 인수주선 업무에서 밀리고 있다. 보유하고 있는 상품주식과 채권의 평가금액이 450억, 부채합계가 380억이다.

회사전체의 자금흐름은 나쁘지 않지만 성장성이 없어서 이대로 가다간 경쟁사들에게 밀려서 죽는 모양이다.

증권시장이 활황세를 보이자 상장증권사들은 대규모 유,무상증자로 자기자본을 확충하려고 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 한발짝 비껴나서 자신들과 크게 다르지 않던 신세였던 경쟁사들이 돈벼락을 맞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니 속이 바싹바싹 타들어 갈 것이다.

또다른 투자대상으로 지목한 해성증권 역시 비슷한 규모. 창투사의 자금에 여유가 있으니 두 개를 동시에 투자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보고를 마친 황규철이 방을 나가자 규태는 속으로 계산을 해보았다.

가족들의 주식계좌를 정리하고 72억을 창투펀드에 넣었다. 복일모와 함께 증권사에 들렸다가 돌아온 규태를 기다리는 건 회사를 옮긴 김하성이었다.

“얼굴 보기가 힘들어요?”

“회사 옮긴 다음에 정신이 없었어. 이제 겨우 한숨 돌렸다.”

“살만한가 보네, 얼굴에 기름이 흐르네.”

“지점장 눈치 안보니까 살 것 같다.”

“그 사람은 왜 그런데요?”

“내가 아냐? 하여간 이런 꼴 저런 꼴 안보니까 살이 찐다. 살이 쩌.”

얼마나 지났다고 김하성은 눈에 띄게 살이 쪘다.

“어쩐 일이세요?”

“당연한 거 아니야. 영업하러 왔지. 너희 회사가 요즘 난리도 아니라면서, 본사에서도 특별히 신경을 쓰는 눈치야. 상무님이 영업하라고 당부를 하더라.”

“확실히 규모가 커지긴 했지.”

규태도 순순히 인정했다. 그렇지 않아도 주식거래를 하면서 시장이 작아서 버겁게 생각

했다. 어지간한 주식은 매매량이 작아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잘 부탁합니다. 실장님.”김하성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예, 예,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지 않아도 기존 증권사에 있던 가족 계좌도 창투사로 옮기면서 거래증권사도 바꿀 생각이었으니까요.”

창투사의 매매규모가 커서 증권사 지점 한곳에만 몰아줄 수 없다. 새로 만든 창투펀드의 매매를 김하성에게 주면 될 것이다.

“지점장이 뭐라고 안하디.”

“뭐 씹은 표정이지만 어쩌겠어요. 내 계좌까지 가져오고 싶었지만 천천히 옮겨야지. 그나저나 지점에 가니까 아는 얼굴이 없던데? 거기도 새로 사람 많이 뽑았나봐.”

“증권사 마다 난리다. 전국에 증권사 지점은 많이 생기는데 쓸 만한 경력직은 없어. 나이 좀 먹은 사람들 중에 제대로 주식하는 사람이 없잖냐? 이쪽도 마찬가지야. 증권사 출신은 거의 없고 은행출신이 많아.”

“은행 출신이? 거기가 월급이 더 많이 주잖아요. 미래도 그렇고.”

“나는 모르겠는데 은행이 답답하다고 나오는 젊은 애들이 많아. 여하튼 증권시장이 활황은 활황인가 보다.”

한참동안 앉아서 수다를 떨다가 김하성이 돌아갔다.

규태는 이마를 찌푸렸다. 생각보다 인적자원의 고갈이 빨랐다. 중소형증권사에 투자해서 지점을 늘리려면 꽤나 고전할 것 같다는 생각에 규태는 머리를 흔들었다.

“이지영대리님 자금의 입출금의 내역이 특별한 게 없나요?”

“예, 직원들 급여가 나가는 것 하고 조사실 직원들이 요청한 물품이 나가는 것 말고는 많은 지출은 없습니다.”

사업하는 사람은 도장을 꼭 쥐고 있어야 한다. 제아무리 투자를 해서 돈을 번다고 해도 뒤로 세면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다. 규태는 회사의 돈이 나가는 것을 주 단위로 이지영대리에게 보고 받았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화요일에 이지영이 주간 자금 출납현황을 들고 규태에게 보고를 하는 것이다.

또 영업부와 크로스로 조사실에서 투자자 현황을 체크한다.

현금을 다루는 금융기관은 금전사고가 자주 발생한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 금융기관들은 직원들에게 다른 업종보다 많은 월급을 지불한다. 신입사원 때부터 돈을 숫자로 생각하는 교육을 시킨다.

황규철의 조사실에서도 직원들의 동향을 주기적으로 살핀다. 가정환경, 도박, 음주, 돈을 쓰는 씀씀이를 꼼꼼하게 살핀다.

“직원들의 교육은 어떻습니까?”

“증권협회와 은행연합회에서 하는 교육과정을 받아서 시간이 나는 직원들을 보낼 생각입니다.”

창업초기의 혼잡이 끝나고 다들 시간 여유가 생겼다. 이럴 때를 이용해서 직원들에게 교육을 시켜야 한다. 사장인 구봉만도 규태와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쓸 만한 직원을 구하기 힘이 드니 만들어야 한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규태는 최대한 시간을 내서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나이 어린 규태를 껄끄럽게 여겼던 직원들도 이내 규태의 친화력에 빨려들었다.

9월에 14,900원을 정점으로 하락을 시작한 대우증권 주가가 12,000원선에서 버티는 것 같더니 그 아래로 하락했다. 10월에도 증권주의 하락은 이어졌다.

“11,900원에 2만주, 11,800원에 15,000주.”

규태가 주문지에 써주는 대로 복일모가 증권사에 전화로 주문을 넣었다.

매입 1순위는 대형 증권주다. 대우증권과 대신증권과 같은 증권주에 낮은 가격으로 매수주문을 넣었다.

그다음으로 투자하는 대상은 건설주와 무역주. 현대건설, 동아건설, 삼환기업, 대우 등의 대형주를 매수했다.

회사의 자본금이 103억, 창투사 펀드에서 운영하는 자금이 600억, 규태의 계좌에 들어있는 돈이 277억, 도합 980억이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4,500억, 증권주에서 가장 큰 규모의 대우증권의 시총이 1,400억이다.

규태가 공격적으로 주식을 매입하면 주식시장이 출렁거렸다.

“대우증권 3만주 매도, 대신증권 2만주······.”

규태의 증권주 매입으로 하락하는 속도가 주춤하면서 매물이 줄었다. 이럴 때는 흔들어야 한다.

규태가 매수를 멈추고 매도를 늘리자 증권주가 파랗게 질려서 빠르게 하락했다. 하한가에 붙은 가격까지 밀어붙이자 매수세가 실종됐다.

하한가에 매수주문을 쌓았다.

규태는 매도와 매입을 번갈아 가며 보유 주식수를 늘렸다.

10월내내 매달려서 말일에 이르러 모든 주식매입을 마무리했다. 회사의 자금을 총동원한 매입이었다.

창투사의 서울사무실을 명동에 마련했다. 이때만 해도 한국의 지하자금들은 영향력이 대단했다. 명동의 사채시장에 가면 자금이 필요한 회사들이 어음을 들고 와 할인해서 자금을 융통했다.

어음할인을 주 업무로 하는 단자사가 생겼어도 그 영향력을 크게 줄지 않았다.

증권사들도 명동에 위치했지만 점차 여의도로 본사로 옮기는 추세였다.

미성증권의 본사도 명동에 있었다.

규태의 지시를 받은 황규철이 미성증권의 사장실을 방문했다.

“굳이 창투사의 도움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냐는 회사내부의 말들이 많습니다.”

처음 곽병호도 제안을 받았을 때는 반신반의했다. 아직 한국에서 창투사의 업무란 게 생소했기 때문이다.

곽병호가 조금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면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세운 회사지만 미성증권은 증권업계에서 약정고 29번째, 이대로 가다간 고사할것이란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은퇴한 아버지 곽성우도 처음에는 의욕을 가지고 미성증권의 규모를 확장하려 했지만 82년 일어난 삼보증권 파동을 보며 뜻을 접었다.

삼보증권은 지점수 28개에 자본금이 80억이던 한국 제일의 증권사였다. 진로와 남한제지의 기업공개를 담당했고 증권사에 조사부를 설치하는 선진적인 경영을 했다.

한때 주식약정고가 2조가 넘는 삼보증권은 82년에 발생한 190억의 시재부족으로 파산했다. 삼보증권을 대우에서 인수해서 대우증권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제 증권 전산화를 하지 않는 증권사는 살아남기 힘들 겁니다. 상장회사들은 올해부터 지점에 전광판을 설치한답니다.”

“비용이 만만치가 않아요. 지점하나 전광판 다는데 2억이 넘게 듭니다.”

증권사들의 최대관심은 증권전산화다. 상장 증권사들이 큰 규모의 증자를 하는 것도, 비상장사들이 위기를 느끼며 노심초사하는 것도 전산화 자금이 만만치 않다는 것.

시대가 변하고 있었다.

“앞으로 미성증권이 살아남으려면 지점수를 늘려야 하고 그 지점들은 주가 전광판을 달아야 합니다. 막대한 자금이 소모될 텐데 고민입니다.”

“직원들도 추가로 뽑아야 합니다. 앞으로 주식시장이 계속 활황을 보이면 능력 있는 직원들의 부족이 심각해질 겁니다. 공격적으로 경력직을 뽑고 지점을 선제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미성증권의 본사직원들이라고 해봐야 23명, 그중 제대로 교육을 받고 자리를 지키는 사람은 없다. 지점 세 개에 있는 직원들의 숫자도 여직원을 포함해 32명. 마음먹고 지점을 늘리고 싶어도 영업할 사람이 없다.

증권사 지점을 만들려면 지점장을 뽑아야한다. 지점장은 영업할 지점을 계약하고 영업직원을 선발하는 전권을 받는다. 일종의 독립채산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KF창투의 제안은 자본금을 확충하고 직원들을 뽑아야 한다는 겁니까?”

“주식의 45%를 주당 8,000원에 인수하겠습니다. 증자를 통해서 300억까지 회사의 자본금을 늘리는 작업을 하도록 하죠. 그리고 적당한 경력자를 스카우트해서 지점을 늘리는 겁니다.”

곽병호는 회사의 75%를 가진 대주주다. 투자가 이루어지면 곽병호는 30%의 주식이 남는다.

“내게 남는 주식이 30%라면 경영권을 내놓아야 한다는 소리가 아닙니까?”

곽병호는 회사의 경영권이 자신의 손에서 벗어날 수도 있는 상황에 거부감을 느꼈다.

“창투사는 경영권을 가져올 수 없게 법으로 정해 놓았습니다.”

“누가 법대로만 한답디까.”

곽병호가 코웃음을 쳤다. 명동사채바닥에서 듣고 배운 것이 남의 말을 쉽게 믿지 말라는 것이다. 법으로 정해졌다고 한번 삼킨 경영권을 순순히 내놓겠는가.

“저희 대주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이게 한국에서 첫 번째로 이루어지는 일이라 주변에서 보는 사람이 많다고 굳이 욕심을 부려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생각이 없답니다.”

“내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니! 썩 기분이 좋은 소리는 아니군요.”

“사장님을 말하는 게 아니라, 활황을 보이는 증권업을 말하는 겁니다. 이게 언제까지 갈지 모르는데 이번기회에 회사의 규모를 키워야죠. 자칫 때를 놓치면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할겁니다.”

“때를 놓친다? 실기······. 한번 생각은 해보겠소. 내가 대주주이긴 하지만 설립자인 부친의 의견도 들어야 하고 말이오.”

곽병호는 신중하게 생각하고 움직이기로 했다. 돈이 눈앞에 어른거리지만 회사의 경영권을 놓칠 위험에 섣불리 판단을 내리기 힘들었다.

투자제안서를 전달한 황규철은 조심스럽게 네 개의 증권사에 투자의향서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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