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20화 (20/220)

────────────────────────────────────

────────────────────────────────────

추석에는 좋은 일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이거 진짭니까?”

몇 번이고 유치환이 입에 거품을 물고 구봉만에게 물었는지 모른다.

“진짜지, 그럼 가짜겠는가? 펀드에 납입된 금액으로 증권주에 투자해서 막대한 이익을 보았네. 김실장이 한 달은 투자를 할 생각이 없다고 단자사에 CD로 넣었네.”

“말도 안 돼! 정말 미쳤네요!”

“내일모레가 추석이지 않은가? 추석보너스를 기대하게, 두둑하게 넣어 주겠네.”

“추석보너스요? 얼마나 주실 생각입니까?”

보너스 이야기가 나오자 유치환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직장인의 최고기쁨이 뭐겠는가. 두툼한 월급봉투와 보너스다.

“월급 책정할 때 알아봤지만 생각보다 김실장이 통이 크더군. 300%정도로 이야기가 끝났네. 더 주고 싶은데 사회분위기도 그렇고 주변 눈치도 봐야 해서.”

“마누라가 좋아하겠네요. 회사 옮길 때 그렇게 싫어했는데. 응어리가 조금은 풀리겠네요.”

“미선이가 자네가 회사 옮기는 걸 반대했나?”

구봉만이 지점장으로 시절, 은행의 동료직원이던 오미선과 유치환의 결혼식 주례를 봐주었었다.

“멀쩡한 직장인 은행 놔두고 생판 처음 들어보는 창투사로 이직한다는데 좋아하겠습니까.”

“그럴 거라고 짐작은 했네.”

“처음 월급봉투 받아들고는 좋아하던데요. 은행 다닐 때보다 월급이 50%는 늘었으니까요. 백만 원이 넘는다고 좋아하더라고요.”

“나도 자네를 데리고 오면서 고민이 많았네. 굳이 은행 잘 다니는 사람 꼬여서 낭패를 보게 할까 싶어서 말이야. 하지만 이리저리 알아보니 소문이 짜하더군. 김실장 투자실력을 믿었네.”

“그 친구가 나이는 어려도 진짜 귀신인 것 같습니다. 이지영대리 말에 의하면 개인자산이 백억이 넘는데요. 그것도 일 년 만에 얻은 이득이랍니다. 지점에서도 아예 도사라고 부른답니다. 주식도사.”

“김실장이 그 정도 부자일지는 몰랐구먼. 지금은 더 늘었으면 늘었지 줄어들지 않았을 테니 회사사장으로서 든든하구먼.”

대주주가 개인 돈이 많으면 회사를 운영하기가 편하다.

규태의 나이가 있으니 앞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다. 큰 잘못이 일어나지 않으면 최소 십년은 구봉만의 자리를 보장받은 터였다.

“든든하기만 합니까? 전 아주 어깨춤이라도 추고 싶습니다. 제가 나온다고 할 때 택목이 그자식이 비웃으며 했던 행동을 생각하면 아주 그냥.”

“됐네, 나도 눈과 귀가 있으니 그 사람이 나 은행에서 나가고 어땠는지 들었네. 굳이 입에 담아서 좋은 날 귀를 더럽힐 필요가 있겠나.”

“알겠습니다. 하여간 좋은 소식이니 직원들에게 알려야겠네요.”

“한 가지 당부를 하자면 직원들에게 알리기는 하지만 밖에다가 떠들고 다니지는 말라고 하게. 소문이 나면 온갖 파리들이 날아다닐 거야.”

“무슨 걱정을 하시는지 알겠습니다. 자칫하다가는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청탁이 밀려올 수도 있겠네요.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영업은 편하겠네요.”

은행에 다니면서도 온갖 못 볼 꼴은 다 봤다. 돈이 조금 된다 싶으면 잡놈들이 들끓는다. 그래도 돈 있는 사람들에게 은근히 정보를 풀면 투자할 사람이 줄을 설 것이다.

유치환이 희희낙락 밖으로 나가자 구봉만도 애써 지은 근엄한 표정을 풀었다.

아직 제대로 일이 진척되기 전이라 입을 다물고 있지만 김규태와 여러 가지 일을 준비하는 중이다.

처음 말을 들었을 때는 긴가민가했지만 처음부터 조짐이 좋았다. 나이를 먹어서 냉정하게 차가와진 피가 끓어오름을 느꼈을 정도다.

“증권사라? 증권사를 인수한다라?”

유치환이 나가고 밖에서 환호성이 들리자 구봉만의 얼굴에 저절로 보름달처럼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깔끔하게 꾸민 휴게실에 앉아서 이지영과 노태희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회사에 여직원이라고는 둘뿐이라 자주 이야기를 하게 된다.

“지영대리님 정말 대박이지 않아요? 다른데도 이렇게 많이 줘요?”

“어머, 얘는 이렇게 주는 곳이 많겠니.”

이지영은 빛이 나는 얼굴로 조잘대는 노태희를 보며 한 살이라도 어린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랄하는 지점장과 대판 싸우고 안면이 있는 규태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직을 하기는 했지만 걱정을 안한 게 아니다.

그녀만 그런 게 아니라 창투사란 회사가 처음 생긴 회사다 보니 회사직원들 모두가 마음속에 불안을 담고 있는 것이다.

주변에서는 이상한 회사면 어떻게 하냐며 가만 집에서 있다가 시집이나 가라고 만류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난 처음 회사 왔을 때 이상한 곳인 줄 알았어요. 3층에서 왔다 갔다 하는 아저씨들도 험상궂게 생겼고.”

비밀이라도 이야기하듯이 목소리를 낮추는 노태희를 보며 이지영이 실소했다.

“그 아저씨들이 조금 무섭게 생기긴 했지. 깡패가 아니라 경찰출신이라 그렇지.”

“은행에서 돈 찾아올 때 같이 가니까 든든하긴 해요.”

추석에 나눠줄 상여금의 계산을 막 끝낸 참이다. 복잡한 계산도 규태가 만들어준 회계프로그램이면 금방이었다.

“정말 신기해요. 직원들에게 컴퓨터를 나눠준 것도 그렇고 회사가 돈을 잘 버니까 좋긴 좋아요.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사무실을 이렇게 꾸며놓은 곳도 없다던데. 벽에 그림들 많이 걸려있어서 미술관 같지 않아요?”

우아하게 차를 한잔 마시면서 이지영은 주변을 보았다.

얼마나 돈을 들였는지 사무실은 방문하는 사람들의 눈을 크게 만들었다. 벽에 걸어둔 그림만 해도 값이 얼마냐.

이것도 투자라며 규태가 밀어붙여서 구입 한 그림들이다.

손님들도 많지 않아서 여유롭기 그지없다. 증권사에 남아있었다면 몰려드는 손님들과 일에 치여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평생주임일줄 알았는데 대리로 올려준 것도 마음에 들었고 월급도 증권사와 비교할게 아니었다. 이직을 한 게 정말 잘한 일이라고 이지영은 차를 한잔 마시면서 스스로를 칭찬했다.

추석이 가깝다 고는 하지만 사흘이나 남았는데도 작은집 식구들이 총알같이 달려왔다.

“규태야 이 거짓말 진짜지? 진짜 거짓말 아니지?”

통장에 찍힌 금액을 보며 작은아버지 김정웅이 되물었다.

처음 투자했던 금액은 전부 이자까지 처서 찾아갔다. 이익금의 20%를 뗀다고 했을 때는 조카 녀석을 돕는다는 생각으로 그냥 넘겼는데 금액이 커지니 슬며시 불편한 마음을 가졌다.

하지만 조카 녀석이 내민 통장에 담긴 금액은 불평이고 나발이고를 한꺼번에 날릴 정도로 파괴력이 컸다.

“작은 아버지, 그게 언제 적 조크예요. 최신판으로 개발 해봐요.”

“안 웃기냐? 하여튼 고맙다.”

통장을 어루만진 김정웅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형과 함께한 사업 말아먹고 야반도주하다시피 해서 부산에 돌아가서는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혼자 몸도 아니고 가족들을 끌고 산동네에서 살 때는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악으로 재기를 다짐했었다.

단칸방에서 사업을 다시 시작해서 겨우 먹고 살만한 수준까지 올라왔지만, 원청에서 하청으로 다시 재하청으로, 손에 떨어진 공사를 마쳐도 이익을 고사하고 손해나 보지 않으면 다행.

자신의 이름으로 된 통장에 적혀있는 44억이 넘는 금액은 그동안의 고생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회한을 젖게 만들었다.

“이 정도에서 놀라시면 안 되죠. 내년까지는 계속 가지고 투자를 하시면 내년 봄에는 진짜 놀라실 겁니다. 3배 봅니다.”

“3배? 여기서······.”

“그 정도는 돼야 사업자금으로 쓰죠. 내년 봄에 인수할 회사를 알아보시죠. 봄까지는 주식투자를 계속 하겠습니다.”

김정웅은 당장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애써 심호흡을 해서 흥분을 가라앉혔다.

큰소리를 땅땅치는 규태의 말에 김정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식을 듣고 달려올 때는 당장 돈을 빼고 사업자금으로 하고 싶었지만 생각을 달리했다.

신문에서는 호황이라고 난리를 치지만 막상 현장에서 부딪히는 김정웅의 느낌은 달랐다.

국제상사가 부도난 이후로 부산바닥의 경기는 엉망이다.

“회사인수라? 부산바닥이 엉망이야. 공사 어음 회수가 안 된다. 공사를 할수록 손해만 나니, 사업 접어야 할 판이야.”

“작은 아버지, 부산에만 건설사가 있는 게 아니잖아요. 부산은 엉망이지만 울산은 다르잖아요. 거기에 있는 회사들은 수출이 잘돼서 싱싱 잘만 돌아가잖아요.”

부울경이라고 해서 부산과 울산은 인접한 도시지만 경기가 사뭇 달랐다.

“울산의 건설사를 인수한다고?”

“울산 말고 서울 쪽의 건설사도 있잖아요. 돈만 있으면 어디든지 회사인수 못하겠어요. 작은아버지가 다른 사업을 할 것도 아니잖아요. “

“그건 그렇지 젊어서부터 배운 게 이건데. 서울은 너무 멀고 애들 때문에라도 힘들 것 같고 울산정도는 알아보자.”

“큰집으로 이사를 할까? 아니면......”

통장을 본 어머니 남 여사는 허공을 둥둥 떠다녔다. 애써 어머니를 만류하며 어른들을 따로 모은 규태다.

“아버지는 공직에 계속 있을 실거예요?”

“나와 봐야 할 일도 없으니 그렇게 해야겠지.”

김상웅도 고민해봤지만 반평생을 공무원생활을 해온 터다. 나가봐야 특별하게 하고 싶은 일도 없다. 돈 많다고 한가하게 여행이나 다니며 소일하는 것도 취향이 아니다.

“학교법인을 하나 만들면 어떨까요?”

“돈이 부족할걸? 내가 그쪽을 그렇게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지금이야 부족하지만 앞으로는 여유가 생길 거예요. 아버지도 공무원 생활을 마음에 들어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주변에 아시는 재단 이사장들도 많으시니 그쪽으로 한번 생각해보세요. 작은 아버지는 내년에 인수할 회사를 고민해 두시면 될 거 구요.”

처음 듣는 소리에 시선이 김정웅을 향했다.

“규태가 울산의 건설사를 인수하면 어쩠겠냐는 말을 해서요.”

“부산경기가 안 좋다면서 울산이면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다.”

아버지가 규태의 편을 들었다. 은근히 부산경기가 좋지 않다는 소문에 동생의 사업이 잘못될까 싶어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제생각도 울산이면 나쁠 것 같지 않네요. 주변에서도 울산경기가 아주 좋다고들 하더군요.”

은근히 발이 넓은 작은어머니다.

“울산의 건설사를 인수하면 자연스럽게 땅을 사야 할 겁니다. 땅을 사도 부산보다는 울산이 앞으로 전망도 좋고요. 아직 가격도 싸잖아요.”

“땅이라고!”

모두의 귀가 쫑긋해졌다. 사업은 불안해도 땅을 많이 사둔다면 걱정이 없다.

“제가 작은 아버지 사업을 울산으로 옮기라고 하는 것도 울산 땅이 앞으로 많이 오를 것 같아서예요.”

90년대 이후로 울산의 경기가 좋고 개발이 활발하게 이어져서 토지가격이 크게 오른다.

“이렇게 어른들을 모신 건 앞으로 제가 관리하던 계좌들을 창투사의 펀드로 옮길 생각이라 섭니다.”

“차린 창투사는 잘되고?”

“이번에 증권주 투자를 해서 많이 벌었습니다. 지금하고 크게 달라질 건 없어요. 돈도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찾을 수 있도록 할거구요.”

“그렀다면야, 나는 불만 없다.”

김상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투자에 귀신같은 아들이 내린 판단이다. 그가 판단해도 달라질게 없다.

모두가 찬성을 해서 자금을 창투사에 넣기로 결정을 내렸다.

규태는 이전 생에서 갑작스럽게 부를 이룬 사람들이 몰락하는 사례를 수도 없이 보았다.

사람이 커다란 충격을 받으면 이성을 잃는다. 미리 미리 예방을 해, 작은 충격으로 여러 번 나누어 받으면 그런가 보다한다.

큰돈을 벌면 사람이 변한다고들 한다. 돈을 많이 번다고 사람이 하루에 다섯 끼를 먹는 것도 아니고 큰집에 산다고 저절로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가진 것이 많으면 걱정이 는다. 집안에 현금 백억이 있다고 생각해보라 어지간한 사람은 도둑걱정에 밤에 잠을 이루기 힘들다.

돈이 많은 것을 해결해주지만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가족 간의 유대가 깊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다툼이 일어난다.

규태의 방에 모인 동생들에게 하나씩 봉투를 돌렸다. 봉투에 담긴 금액이 만족스러웠는지 하나같이 얼굴이 밝았다.

“오빠야가 돈 많이 벌어서 이렇게 좋네.”

사촌동생 지연이가 웃으며 인사를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 친구들하고 어울리느라 용돈이 부족한데 이게 웬 떡인가 싶은 모양이다.

동생들도 귀가 있으니 형이자 오빠인 규태가 주식투자를 잘해서 집안에 돈을 많이 벌어주었다는 소식은 듣고 있다.

학생신분이라 그런가 하고 넘어가지만 이렇게 손에 풍족한 용돈이 들어오면 실감이 나기 마련이다.

“민태는 하고 싶은 거 없냐?”

“아버지일이나 같이 했으면 했는데.......”

“같이 해, 작은 아버지가 너하고 싶다고 하면 받아 주실 거다.”

이전에야 사업이 작아서 언제 문을 닫을지 몰라 김정웅이 아들의 뜻을 막았지만 이젠 사정이 다르다. 사업규모가 커지고 하나뿐인 아들이 돕는 다면 얼마나 든든하겠는가.

“진짜야? 대학을 건축과로 진학해야 하겠네.”

반색하는 민태를 보면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웠다. 이전 생에도 민태는 큰 욕심 없이 우직하게 살았다. 규태가 도움을 주자 큰 사업을 잡음 없이 꾸려나갔다.

규태는 막냇동생 태진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언제나 문제를 일으키는 집안의 트러블메이커. 나이 먹어서도 욜로를 실천하는 선구자다.

“왜 나를 그런 불량한 눈으로 보는데?”

“사건이나 치고 다니는 놈을 내가 어떻게 보겠냐?”

“아! 진짜 그자식이 약한 애를 괴롭히는걸 보고도 내가 가만히 있어야겠어.”

동급생을 두드려 패서 치료비를 물어주느라 어머니 남 여사의 재정 상태를 일순간 파탄에 빠트린 주범이 큰소리를 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