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19화 (19/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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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투사 설립

“지금까지 들어온 자금이 전부 180억입니다.”

운영하기 편하게 50억으로 자른 펀드를 네 개로 만들어야 할 정도로 투자자 모집은 성황이었다.

설립이후 첫 영업을 시작한 창투사로 밀려든 자금을 집계한 영업부장 유지환이 사장 구봉만에게 보고했다. 밀려온 손님들이 가져온 수표와 현금을 남자직원 둘에게 맡겨서 은행을 보내고 나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모여든 자금의 규모를 보면 예상한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규정으로 정해진 수수료가 1%수준, 회사의 연간 운영비로 책정한 2억을 감당할 정도다. 첫날 모집된 펀드로 회사의 유지가 가능했기에 직원들의 얼굴이 밝았다. 물론 투자 성공시에 받는 수수료는 별도다.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투자수익률이 100%가 넘어가면 이익금에서 떼가는 운영수수료가 20%라고 투자자에게 주는 투자설명서에 적어 넣었다.

눈 나쁜 사람은 보지도 못한다.

회사의 구성은 자료조사와 분석, 투자, 영업, 총무 4개의 파트로 직원들의 숫자는 규태까지 11명이다. 사장 구봉만이 인맥으로 5명의 직원을 황규철이 2명을 뽑았다.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입니다. 이정도면 나쁜 출발은 아니지요.”

회사 자본금 20억 원 중에 퇴직금을 쪼개 5천을 자본금으로 납입한 구봉만이다. 나머지 19억 5천은 규태가 가족들의 명의로 납입했다.

“이달 안에 오십억 정도추가로 더 들어올 것 같습니다. 앞으로 펀드 수익이 얼마나 나올지가 영업의 관건입니다.”

보고를 하는 유지환의 시선이 투자를 담당하는 규태를 향했다. 3년 만기 회사채가 12%,은행예금금리가 8% 수준이다. 펀드에 투자하면 이자율이 15%가 넘는다는 영업으로 끌어온 돈이 25억이다.

창투사라고 해봐야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그저 은행의 하나겠거니 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투자를 담당하는 규태의 실력에 따라 창투사의 운명이 결정된다.

“수익은 걱정하지 마세요. 1년 후에 펀드를 결산하면 다들 깜짝 놀랄 겁니다.”

규태는 내심 자신이 있기에 큰소리를 쳤다. 머릿속에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아도 증권주가 조정에 들어갔지만 기간은 길지 않을 것이다.

대우증권의 최고주가가 5만원이 넘는다는 걸 기억하고 있기에 규태의 장담에는 힘이 실렸다.

영업부장으로 영입한 유지환은 구봉만과 지점시절의 인연으로 영입한 케이스.

규태의 사람이라기보다는 구봉만의 사람이다. 구봉만이 쉽게 규태의 말을 믿지 못하는 유지환을 안심시켰다.

“여기 김실장이 나이는 어려도 주식투자 솜씨가 보통이 아니에요. 아는 사람은 알지만 신들렸다고 할 정도로 주식을 잘 본다고 합니다. 유부장도 한번 김실장을 믿어 보세요.“

“사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은행은 돈을 다루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움직이며 연공서열이 분명한 조직이다. 이십년 가까이 은행 일을 하면서 채득한 습관처럼 보수적인 유지환의 시선에 규태는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앞에서 대놓고 이야기 하지 못하지만 그가 보는 규태는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다.

사회적 분위기가 보수적인 시절, 규태가 대주주이면서도 앞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다. 물론 유지환이 믿던 믿지 못하던지 간에 규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사장님께서도 이번에 수고 하셨습니다.”

“하하하, 가볍게 능력을 발휘해 봤어요. 사장 자리에 있으면서 밥값을 한 것 같아서 마음이 놓입니다.”

구봉만도 기존에 알던 자산가들의 돈을 끌어왔지만 가장 큰 활약은 정책지원 자금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지원정책의 하나로 배정된 지원금을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5%짜리 30억의 자금을 받아왔다. 구봉만이 자랑을 할 만 했다.

창투사 영업을 시작하면서 황규철의 직원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은밀한 움직임이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영업이 마감되고 나서야 황규철이 3층에서 내려왔다.

“이렇게 다들 모였으니 내 한마디 하겠습니다. 첫날 순조로운 출발을 했지만 앞으로 어려운 일이 많이 생길 겁니다. 여기 나와 세 사람이 회사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모두 다 힘을 합쳐서 회사의 발전에 힘을 합칩시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장 구봉만의 당부처럼 자리를 함께한 네 명이 회사의 제일 위에 위치한 임원들이다.

사장에 구봉만, 조사실장에 이사대우 황규철, 영업부장 이사대우 유지환,

회사 초창기라 6개월의 시간이 흐른 다음 자연스럽게 대우를 빼고 이사로 진급을 시켜주기로 약속을 하고 영입했다.

처음 구봉만이 염두에 두고 추천한 사람은 유지환이 아니었다. 그가 영업본부장 시절에 직속으로 데리고 있던 직원이었다. 그가 은행을 나오지 않겠다고 해서 제안을 거절해 유지환이 영입된 것이다.

규태는 구봉만이 처음 추천한 김태목이란 사람은 온다고 해도 거절할 생각이었다. 황규철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런저런 문제가 많은 사람이다. 뒷돈을 받고 대출을 알선하는가 하면 사내의 성추행 문제도 있었다. 요약하자면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전형적인 소인배다.

그런 사람을 받아들여서 회사 물을 흐릴 순 없다.

영입한 직원들은 전부 황규철이 조사를 해서 문제가 없는 직원만 받아들였다. 규태가 선택한 사람은 단 한명 증권사에 다니던 이지영이었다.

동방증권 지점 여직원들중 최고참이던 이지영이 퇴사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곧바로 낚아챘다. 그리고 회사의 자금담당자로 임명했다.

영업첫날의 성공을 축하하는 회식을 하지 않는다면 80년대의 사무실이 아니다. 오후 다섯시가 되자 칼같이 회사 문을 닫고 식당으로 몰려갔다.

규태는 창투사를 만들면서 인테리어와 사무자동화에 자금을 아끼지 않았다. 이 시절 어지간한 은행보다도 깔끔하게 꾸며서 방문하는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지게 만들었다.

구봉만이 자체 건물도 아닌데 과도한 투자라 만류했지만 규태의 생각은 달랐다.

자금을 맡기러 오는 사람들은 회사의 실내인테리어에도 영향을 받는다. 투자은행들이 막대한 자금을 들여가며 실내를 꾸미는 게 돈이 넘쳐나서만은 아니다.

회사를 잘 꾸며 놓으면 손님들도 회사를 믿고 직원들도 회사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다.

사무자동화도 마찬가지, 서류를 손으로 작성하는 일이 보통인 시기지만 규태는 과감하게 모든 직원들에게 컴퓨터를 보급했다.

사무실에는 뚱뚱한 CRT모니터와 8088AT 컴퓨터를 업무용으로 설치했다. 10M 하드디스크에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하는 이시기 최신형 컴퓨터였다.

컴퓨터를 나누어 주었어도 소프트웨어가 문제였다. 이리저리 알아본 끝에 삼보에서 라이선스로 가져온 보석글이란 문서작성 프로그램과 영문으로 나온 Lotus 123을 깔았다.

나중에는 둘 다 새로운 프로그램에 밀려서 사라지지만 둘 다 훌륭한 프로그램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전까지 모든 것을 손으로 작업해야 했던 사람들에게는 신세계였다.

그다음으로 회사의 사무실에 증권사에 주가를 물어볼 필요 없이 증권전산과 회선을 연결하여 직접 주식시세를 볼 수 있게 만들었다.

회원사가 아닌 곳과 직접 연결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중간에 증권사 지점을 경유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회선 두 개를 사용하는 비용만 5천이다.

3층에 만들어진 트레이딩 룸에 앉아 주식시세를 보는 규태는 그나마 여유가 생겼다. 주가의 등락과 거래량을 확인할 수 있고 손으로 그리지 않아도 그래프들이 자동으로 보인다.

아쉬운 것은 아직 전산체결시스템이 만들어지지 않아 주문을 하려면 전화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중에 회사의 자금 47억과 펀드에 납입된 금액 240억을 전부 증권주를 매수했다. 증권주라면 종목을 가리지 않고 매물이 나오는 대로 거두어들였다.

주식을 사지 못하고 주가가 치솟을까봐 신경을 곤두세웠지만 크게 주가를 건드리지 않고 주식 매입을 마무리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회사의 자금 47억, 펀드자금 240억 도합 290억의 자금을 증권주 매입에 쏟아 부은 것이다. 개인적인 투자자금의 주식투자도 함께였다.

증권주에서 크기론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동서증권의 자본금이 300억, 시가총액이 450억에 불과한 시절이다.

규태는 점점 연못속의 고래가 되어 감을 느꼈다.

규태가 증권주 매입을 끝내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한동안 주춤하던 증권주가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시작하자마자 상한가까지 단숨에 달려가는 주가를 보며 규태와 함께 일하는 복일모가 신이 났다.

“와우! 미쳤는데요! 전부 다 올라요.”

“거래량이 확 줄어 들었는데? 앞으로도 계속 올라가겠다.”

규태는 거래량의 감소를 긍정적으로 보았다. 주가가 상승하는데도 거래량이 줄어드는 것은 악성매물이 소화되고 더 이상 나올 매물이 없다는 소리.

자리에 앉아서 손익계산을 해본 복일모가 탄성을 터트렸다.

“오늘 하루에만 10억이 넘게 벌었네요.”

“그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

회사가 만들어지면서 구봉만 사장이 제일 신경을 쓴 것이 규태와 함께 할 직원을 뽑는 것이다. 규태가 불편할까 싶어서인지 상고를 졸업하고 군대를 막 제대한 20살의 복일모를 규태의 밑에 두었다.

“실장님은 항상......”

“항상 뭐?”

“말 안할래요. 말 하면 혼날 것 같아. “

“그래 지금처럼 말하기 전에 한번 생각하고 말해라.”

복일모의 나이가 어려선지 머릿속에 떠 오른 말을 거침없이 하는 통에 규태나 다른 선배들에게 여러 번 혼이 낫다.

잔뜩 흥분한 복일모의 입에 규태가 뜨거운 코코아 한잔을 타서 물렸다.

“사람들에게 이야기는 흘렸어?”

“지영이 누나하고 밥 먹으면서 슬쩍 흘렸어요. 대우증권주식을 많이 샀다는 것 정도로만요.”

“조만간 다른 직원들도 다들 알겠군.”

회사의 돈으로 증권주를 집중 매입한다는 소식을 복일모를 통해 사내에 흘렸다. 구체적인 투자내역은 비밀을 유지했지만.

복일모를 통해서 파악한 직원들의 가장 큰 고민은 다니는 창투사가 과연 이익을 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면 곤란하다.

신뢰를 주려면 투자이익이 나는 것을 보여주면 간단하다.

“대우증권이 6500원에 30만주, 동서증권이 7500원에 10만주, 대신증권 8700원에 12만주, 여타 주식들 해서 전부 47억어치를 매입했습니다. 펀드자금 240억도 전부 주식을 매입했고요.”

규태가 내민 주식매입 내역서를 구봉만이 세밀하게 보며 물었다.

“전부 다 증권주군요? 오늘 주가는 어떻습니까?”

“증권주 전부 상한가까지 상승했습니다.”

“정말입니까? 어허! 이거 정말 좋은 소식이군요. “

구봉만이 무릎을 쳤다. 회사의 자금 전부를 증권주에 투자하겠다는 규태의 말에 구봉만은 속으로 걱정을 많이 했었다. 여기저기 아는 이에게 의견을 청해 들어봐도 증권주가 한동안은 힘들 것 같다는 소리가 많이 나왔다.

규태만 증권주가 재차 상승할거라면서 회사의 자금을 긁어모아 매입을 강행한 것이다. 회사의 주인이 하겠다는데 누가 말리겠는가? 따르기는 하지만 속으로 걱정이 많았다.

“이제 시작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오를 겁니다.”

“얼마나 오를 것 같습니까?”

“제 예상으론 100%상승을 봅니다.”

구봉만이 절레절레 흔들었다.

“주식을 하는 전문가들도 김실장처럼 자신 있게 주가를 예측하지 못할 겁니다.”

“제가 좀 겁이 없습니다. 경제상황이나 시장의 흐름을 살펴보면 제 예측과 크게 다르지 않게 움직일 겁니다. 바닥에서 올라오면서 쌓였던 악성매물들이 사라졌는지 증권주의 거래량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김실장이야 전문가니 믿고 있겠습니다.”

규태는 회사 안에서 입장이 미묘했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어린나이에 실장의 자리에 오른 대주주다.

구봉만사장이나 황규철실장, 막내 복일모와만 편하게 대화를 나눌 뿐이다. 다른 직원들은 규태의 눈치를 보았다.

오히려 2층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은 구봉만 사장이 직원들과 편하게 어울렸다.

규태는 직원들이 불편해 할까봐 3층의 트레이딩 룸에서 잘 나오지 않았다.

86년 6월부터 시작된 증권주의 랠리는 7월과 8월이 되어서도 멈추지 않았다. 한여름의 무더위가 가신 9월초. 대우증권주가가 14,000원을 넘어갔다.

매입한 가격대비 100%가 넘는 수익률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주식들을 사고 팔면서 유유자적하게 책을 읽으며 소일하던 규태는 트레이딩 룸에 붙어서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매도했다. 거래량과 가격이 오르내리는 정도를 감안하며 주문을 내길 사흘, 증권주의 선도주인 대우증권이 14,900원까지 상승했다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증권가가 조정 받을 기미를 보이자 남은 주식들을 공격적으로 매도했다.

6,500원에 매수한 대우증권을 평균단가 13,300원에 팔았고 동서증권은 17,300원의 가격으로 대신증권은 16,100원으로 파는 등 전체적으로 투자수익이 120%에 달했다.

47억을 투자한 회사자금으로는 56억을 펀드자금 240억으론 280억의 투자수익을 거두었다.

규태의 개인적인 투자로 회사의 자본금을 납입하고 남은 48억을 투자해서 129억을 벌어들였다. 가족들의 명의로 된 신용계좌들도 전부 정리했다.

작은아버지의 계좌가 44억 아버지의 계좌가 10억, 어머니의 계좌가 8억, 작은어머니의 계좌가 7억 5천, 여동생의 계좌가 2억 5천만 원이 되었다.

주식을 정리한 내역들을 발표하자 회사가 발칵 뒤집혔고 집안도 난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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