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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투사 설립
“증권주 팔고 전자주 샀어요?”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우중충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장금란이 규태의 말에 대구를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육과장이 하도 전화를 해서 내가 홀랑 넘어가 버렸어.”
울상을 한 그녀에게 더 이상 따지기도 뭐한 규태였다. 증권사 영업직원이 전화를 해 큰소리치며 교체투자를 권유하면 어지간한 투자자는 넘어간다.
“내가 팔지 말라니까.”
“증권주는 많이 올랐고 오리온이 많이 조정을 받았으니 사두면 돈이 된다고......”
규태는 증권주의 투자를 권유하고 보유를 추천했다. 따르던 따르지 않던 그것은 투자를 한 사람의 자유다.
하루가 멀다 하고 줄기차게 전화해 괴롭히던 장금란이 규태와 소원해졌다. 옆에 있는 송희자의 얼굴 표정도 좋지 않았다.
가지고 있는 주식의 주가가 두 배 이상 올라가면 참지 못하고 팔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게다가 주가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어지간한 사람은 참지 못한다.
규태가 여기저기 증권주 매수를 추천하면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증권주가 큰 상승한 장에서도 결국 증권주로 돈을 번 사람은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한 팔수가 없는 우리사주를 가지고 있는 증권사 직원들이었다.
한번 이익을 보고 판 주식이 올라가버리면 처음에 산 주식의 가격이 떠올라서 다시 매수를 하지 못한다.
규태로선 장금란에게 할 만큼 했다. 이미 장금란에게 경고하지 않았던가.
머리를 흔든 규태가 사무실을 나왔다.
기분 좋게 들어왔던 부동산사무실에서 오물을 뒤집어 쓴 듯한 불쾌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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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이 안 사졌다고요? 증권사 실수라고 하시는 겁니까? 왜 화를 내세요? 확인해 본다니까요? 주문전화는 녹음되어 있을 테니 확인해 본다니까요? 장 끝나고 전화 다시 주세요.”
틀림없이 시장가에 주문을 넣었는데 체결되지 않았다는 항의전화였다. 주식시장이 좋아지면서 체결에 대해 따지는 전화가 많았다. 하도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나니 주문전화는 전부 다 녹음해둔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실내공기가 후덥지근했다.
객장 안을 채운 사람들이 뿜어내는 열기까지 합쳐진 탓에 김하성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대리님, 여기 전표요.”
여직원이 전표를 가져와 김하성의 앞에 두었다. 전표에 적혀있는 내용을 찬찬히 살핀 김하성이 도장을 찍었다.
“여기요. 입금이에요.”
전표를 다시 여직원에게 돌려준 김하성의 시선이 주식현황을 향했다.
전장 마감시간이 가까워왔지만 증권주는 여전히 강했다. 그에 반해서 작년 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전자주 오인방은 영 맥을 못 추고 비실거렸다. 다른 종목들이 강하게 상승하는데 유독 전자주가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을 보며 김하성은 쓴웃음을 지었다.
“여기요, 출금하시겠데요.”
다른 생각을 할 시간도 없었다. 창구마다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 개의 창구로 충분했던 일들이 다섯 개로 창구를 늘였는데도 줄이 줄어들지 않았다.
손님들이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손으로 하는 작업이라 진척이 느리다.
돈에 관련된 일이라 조금만 신경을 쓰지 않아도 금방 표가 난다. 거액의 입출금이 이어지다보니 경비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전표확인하고 도장을 찍다보니 훌쩍 점심시간.
업무마감이란 푯말을 놓고 김하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리 선약이 있어서였다.
조용히 할 말이 있는지 지점의 조과장이 점심식사를 하자고 한 것이다.
“죽을 맛이네요. 손님들은 밀려오고 일처리는 늦고, 뻑하면 확인전화에 항의전화에.”
“시장이 좋으니까 그런 거야. 시장이 바닥이여 봐라 죽상을 한 투자자들이 객장에서 난동부리고 그런 난리도 없다. 건설주 파동, 일어났을 때 깡패 놈들이 칼들고 찾아온 적도 있었어.”
조과장의 전매특허 나 때는 말이야 가 시전 되었다. 김하성은 머리를 흔들었다. 이미 수십 번은 들은 레퍼토리지만 신이 난 조과장의 입은 쉴 줄을 몰랐다.
“과장님 그 소리 수십 번도 더 들었어요. 육과장님은 왜 그랬대요?”
업무대리라고 영업에선 한 발작 밀려났지만 김하성도 귀가 있다. 육과장에게 걸려오는 항의전화가 점점 강도가 높아졌다.
처음에는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면 풀렸지만 요즘 걸려오는 전화는 고성이 오갔다.
“육과장뿐인 줄 아나. 그놈아가 좀 많이 물렸지. 최과장도 마찬가지야.”
“이상하잖아요? 둘이 그렇게 비슷한 종목에 투자해서 물리는 건?”
“이상하긴! 지점장이 꼬드겼다. 지점장도 너한테 지점 영업실적이 몰리니까 나눌라칸거지. 나한테도 뭐라 카드만 난 그냥 쌩 까버렸다.”
조과장은 흥분하면 말이 빨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사투리가 나온다.
“지점장이 왜 그랬을까요?”
“모른 척 하기는, 너 다른 데로 갈까봐 그런 거지. 잘하는 영업직원 업무대리에 박아놓고 빼지 않는 것도 그렇고, 지점장이 여우인기라.”
조과장의 말처럼 김하성은 지점 안에서 점점 고립되어 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던 과장들도 요즈음에는 김하성을 은근히 외면하고 고개를 돌렸다.
사무실에서 그나마 하성과 어울리는 사람이 조과장이다.
“저 이제 막 대리 달았어요. 지점장이 이렇게까지 저를 견제해야 할까 싶네요.”
“영업직원이 직급이 뭔 상관이고. 영업 잘하는 놈이 장땡이다. 장땡! 너 기 죽이고 손님들 과장들한테 넘겨줄라고 벌인 일인데 잘못하면 줄초상 나게 생겼다.”
“줄초상은요.”
“아이다. 육과장하고 최과장이 손님들 꼬드겨서 증권주 팔고 전자주 산 금액이 얼만줄 아나. 지그만치로 백억이 넘는다. 안 팔라고 하는 손님들한테 전화해서 그렇게 팔라 했다 아이가.”
“빌어먹을!”
김하성이 앓는 소리를 냈다.
“문제는 내려하는 증권주는 계속 오르고 산 전자주는 땅바닥에 처박히니 난리가 나는 기라. 증권주를 가지고 있으면 20% 이익을 봤는데 전자주사서 반대로 20% 깨졌으니 그게 을마고? 지점장이라 나 몰라라 발 뺀 지 오래고. 네가 생각할 때 증권주가 계속 오를 것 같나? 바닥에서 100%가 넘게 올랐다.”
조과장이 김하성과 조용히 점심을 먹길 바란 것은 지점의 분위기도 전해주고 증권주에 대한 그의 판단을 듣기 위함이다. 그의 손님들 가운데 증권주로 이익을 본 사람들이 팔시기를 재고 있었다.
“오르긴 많이 올랐는데 규태 녀석이 계속 증권주가 강세를 보일 거라고 해서. 팔아도 다시 증권주로 잡고 있어요.”
“그놈아가 그랬다고? 그럼 나도 계속 가지고 가야하겠네.”
“과장님은 규태 녀석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놈아? 여우다 여우! 지점장 같은 좀생이 여우가 아니라 천년 묵은 여우. 내가 이 바닥에 들어오면서 험한 꼴 여러 번 보면서 결심한 게 있다. 딱 20년만 채우고 회사 때려치운다고 말이다. 이제 15년차다. 그동안 이런 놈 저런 놈 많이 봤지만 그 노마가 하는 꼴을 보면 기가 찬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하는 꼴은 다 늙어서 무덤 들어갈 날 기다리는 노인네처럼 노련해.”
김하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규태가 어린나이답지 않게 주가흐름을 잘 맞추기는 하지만 노련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규태 나이가 몇 살인데요. 노련하다고 하기는?”
“바보야! 그놈아 적이 없잖나! 어린놈이 단기에 엄청난 돈을 벌었으면 적이 많아야 하는데 주변에 그놈 싫어하는 놈 본적 있나?”
뒤통수를 한 대 몽둥이로 얻어맞은 것처럼 김하성은 전율을 느꼈다.
시기와 질투.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의 밑바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 주식바닥이다. 그런 진흙탕에서 적을 만들기는 쉬워도 적이 없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내 명동지점에서 오래 근무했잖냐. 주식시장에서 큰손들도 많이 봤는데 그놈아가 꼭 그런 분위기란 말이야. 그중에서 오래가는 놈은 시기와 질투를 받지 않는 놈이다. 게다가······.”
말을 하려던 조과장이 하성의 눈치를 살폈다.
“게다가 뭔데요?”
“내 그놈아 매매내역을 봤는데······.”
아이고!
하성이 이마를 짚었다. 제아무리 고객정보관리가 개판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남의 거래내역을 보는 것은 불법이다.
아무도 그것을 문제 삼지는 않지만 하여튼 규정을 어긴 것 사실이다.
“조과장님, 그거 나중에 문제가 생길수도 있어요.”
“문제는 누가 관심이나 갖는다고.”
“감사에서 시비를 걸면 지점장이 징계한다고 지랄을 할 텐데.”
조과장이 코웃음을 쳤다.
“자르고 싶으면 자르라고 그래.”
지점장과 사이가 좋지 않은 조과장이다. 지점장이 못마땅한 조과장을 자르지 못하는 것은 김하성의 실적이 급등하기 전엔 조과장의 영업실적이 지점에서 발군이었기 때문이다.
“하도 투자성적이 좋아서 들여다보니 그놈아 신 내림이라도 받았는지 기가 막히더라. 어찌 그리 조정 들어갈 때마다 타이밍을 잡는지. 내가 따라갈 수가 없더라. 여하튼 귀신 붙은 놈을 상대하려면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김하성의 귀가 솔깃했다.
“상대할 방법이요?”
“흐흐흐, 따라 하면 된다. 그놈아 사면 같이 사고 팔면 같이 팔고. 얼마나 쉬운 일이고? 나도 앞으로도 증권주나 사고 팔면 되겠네.”
기가 찼지만 나쁜 대처도 아니다. 조과장은 촉이 빠르다.
조과장까지 규태의 주가예측에 동감을 표시하자 김하성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회사를 옮길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네 손님들 단단히 챙겨라. 내손님들 중에도 그놈아 펀드 만들면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더라.”
식사를 하면서도 불길한 느낌이 떠올라 김하성은 입맛을 잃었다.
업무가 마감되자 서둘러 김하성은 자신의 손님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불길했던 예감처럼 하성의 손님들 과반수가 규태의 펀드에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금액만 따지면 백억이 넘는 액수를 투자하겠다는 소리였다.
김하성의 관리 하에 있는 자금이 그 정도이니 다른 이들까지 합하면 규태가 만드는 창투펀드의 규모가 생각보다 클 것 이다.
“이거 증권사 그만두고 규태가 만드는 창투사로 옮겨가야하나?”
대학 기말고사가 끝나고 무더위가 찾아왔다. 준비했던 일들이 마무리되어 중소기업청에 신고를 하고 창투사가 만들어졌다.
KT창업투자회사.
자본금 20억, 직원 아홉 명으로 시작하는 회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