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16화 (16/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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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독립합니다

“이거 뻘 짓했구먼. 오만 잡놈들 좋은 일만 시켜주고.”

포장마차에서 혼자 쓴 소주를 마시면서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본 규태는 속이 아렸다.

주변을 챙긴다고 노력을 했지만 실속은 없다.

후배 현민이나 태하도 속마음을 털어놓을 정도로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부동산 사무실을 차린 것도 크게 고민하지 않고 일을 벌였으니 큰 애착이 없었다.

게다가 89년 이후엔 신도심개발로 구도심은 점점 활기를 잃어버리며 부동산가격도 내려간다. 건물 매매를 중개하면서도 찜찜한 마음이다. 이럴 때는 미래를 아는 게 병이다.

혼자서 소주 반병을 마시니 적당히 취기가 올라 알딸딸했다. 규태는 결코 취하도록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 오랜 세월동안 글로벌 투자를 하면서 생긴 습관이다.

선후배와 자주 술자리를 가지고 어울려도 결코 취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적당히 알코올이 들어가니 골치 아픈 일들이 쉬워 보인다. 돈이야 되지만 중개사일은 골치 아픈 일이다.

차라리 작은 건설회사라도 인수해서 사업하는 게 훨씬 나아 보인다. 땅값이 오를 지역이며 상가나 아파트를 지을 토지를 선점하면 된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술잔을 기울이는 그의 옆자리에 기다리던 사람이 앉았다. 규태와 7년 차이 나는 고등학교 선배 정의영이었다.

시경에 근무하는 정보통으로 막내외삼촌의 친한 친구다.

“빌어먹을 놈, 바빠 죽겠는데 왜 불러?”

“왜 부르긴요? 그냥 한잔하려고 불렀죠.”

“바쁜 선배 부르려면 좋은 대로 부르지 이게 뭐냐, 하늘같은 선배를 모시는데 겨우 포장마차야? 얼씨구 안주는 또 이게 뭐야. 아저씨, 안주 좀 좋은 걸로 내줘봐요. 이 자식이 나이는 어려도 돈 많은 부자거든. 먼저 국수 한 그릇 말아주시고.”

“선배는 시간도 없다면서?”

“야 요즘 같으면 오줌 싸고 그거 털 시간도 없다. 아주 전쟁이야, 전쟁.”

“그렇게 바쁜가?”

“이쪽은 조용하지만 서울은 난리도 아니거든. 잘못하면 나도 불려가게 생겼다.”

그동안 강압으로 억눌렀던 민주화열기가 터져 나오는 시기. 경찰서도 난리가 아닌 모양이었다.

“선배야, 정보 쪽이잖아. 경비 쪽이 불려가야 하는 거 아냐.”

“얘가 잘 모르는군, 이쪽도 마찬가지야. 전경 애들도 고생하겠지만 잘못하면 내가 대학교 안으로 들어갈지도 모른단 말이다. 대학생 흉내라도 내야하나.”

“선배 얼굴에? 위에서도 생각이 있으면 선배 같은 노안을 대학교로 보내겠어? 젊은 애들 보내겠지. 지난번에 내가 선배를 대학에서 보고 얼마나 황당했는지 알아?”

“그러면 다행이고. 얼마나 바쁜지 점심도 걸렀다. “

국수 한 그릇을 허겁지겁 비운 정의영이 소주한잔을 들이켰다.

“크으, 이 좋은걸 까맣게 잊었네. 이제 좀 살 것 같다.”

“밥 좀 제대로 먹고 다녀라. 그러다가 젊은 나이에 훅 간다. 얼굴 한번 보기가 이렇게 힘들어.”

“나 경찰간부출신이야. 경찰도 말이야, 줄이건 백이건 없으면 진급도 못해. 내가 눈치 하나로 이 자리까지 온 사람이다. 뭐 때문에 날 불렀는데?”

“오늘 사무실에 이상한 사람이 왔는데. 명함에는 대흥상사라고 적혀있더라고.”

“남산 애들이네. 짜식들 역시 정보가 빠르네. 우리 서장님도 투자 쪽으로 네 소식 물어보더라. 김도사가 요즘 뭐에 투자하는지 말이야. 집에서 사모님이 정보 알아보라고 갈구는 모양이던데.”

“역시 투자정보때문이구만?”

“다른 거 있겠냐. 서장님도 위로 더 올라가고 싶어도 나이도 있고 앞길이 뻔히 보이는데 은퇴자금 마련해야지. 네 투자정보에 아주 관심이 많아요.”

”이러다 나 건수 잡히면 잡혀가는 거 아니야? “

“걱정도 팔자다. 너 요즘 학교도 잘 안가잖아. 그쪽하고는 담쌓고 산다던데.”

“눈치 빠르게 몸 사리는 거지.”

“데모하는데 앞장만 서지 않으면 큰문제가 생기겠냐? 그나저나 그거 많이 올라야 하는데. 그래야 나도 단칸방 면하고 장가 좀 가지. 집에서 난리다. 틀림없이 올라 가는 거 맞지?”

이 시대 기준으론 30살 정의영은 노총각이다. 집안의 도움을 받지 못해 지지리 궁상을 떨며 살았는데 규태의 투자조언을 듣고는 대우 증권주를 잔뜩 샀다.

“불안하면 그냥 팔던 가. 선배가 나한테 투자자문 받고 비용 지불할 것도 아니면서 캐 묻기는.”

“남산 애가 왔다 가서 간이 확 쪼그라든것 같은데 자문료로 이렇게 불안해하는 후배의 마음을 다독이고 있잖냐. 그러니까 하나만 물어보자. 너 창투사 차린다면서, 그걸 왜 하려고 해? 듣기론 중소기업에 투자하는 회사라던데 그 말 듣자마자 언제 망하나 싶더라. 차라리 사람들 돈 모아서 주식투자나 하지?”

“크윽!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구먼. 내가 창투사 차린다니까 사람들이 은근히 걱정하던데. 내가 어리숙하게 하라는 대로 중소기업에 투자를 하겠어. 펀드를 합법적으로 만들려니 그러는 거지.”

“하긴 함부로 사람들 돈 모아서 투자하는 펀드 만들면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골치 아프지.”

규태가 쓰게 웃었다.

“당연히 문제가 생기지. 사람마음이 화장실 갈 때랑 나올 때가 다르잖아. 주식투자로 아무리 큰돈을 벌어줘도 수수료문제로 다투게 될게 뻔해. 싸움 벌어지면 내가 일방적으로 불리하잖아. 나라에서 법으로 하지 말라는 거니까. 법률상으로 펀드조성은 투자신탁회사만 하게 되어있으니까?”

“차라리 네가 투자신탁 회사 만들면 안되냐? 돈도 많은 놈이.”

의성의 말에 규태가 가슴을 쳤다.

“그게 그렇게 쉬운 것 같으면 관치금융이라고 하겠어. 전국에 투자신탁회사가 세 개야. 재무부에서 투자신탁을 새로 허가할 것 같아? 작은 증권사 인수가 쉽지만 아쉽게도 그 정도 돈이 없네요.”

“네가 펀드 만들어서 그 돈으로 주식투자만 한다면 나도 투자할거다. 네가 돈 많이 벌 수 있다고 해서 주식투자를 하긴 하지만 이거 여간 복잡하고 신경 써야할게 많은지 모르겠다. 경찰일도 바쁜데. 그냥 수익 잘나올 것 같은 펀드에 처박아 두면 귀찮지 않겠지.”

이게 보통 사람들의 반응이다. 돈은 벌고 싶지만 복잡한 것도 싫어하는.

“하여간 걱정하지 마. 너에 대한 이야기가 들리긴 하지만 나쁜 건 아니니까. 나는 간다. 나중에 한가하면 편하게 한잔하자.”

정의영이 앞에 놓인 소주 한잔을 더 마시곤 총총히 사라졌다.

혼자 남은 규태는 쓸쓸하게 술잔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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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내 팔자야. 남편도 모자라서 자식 놈 술 수발까지 들어야 하나.”

늦은 잠에서 깨어난 규태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으며 해장국을 먹었다. 소주 두병을 마시고 나서 집에 들어온 것까지는 기억을 하는데 그 다음 기억이 나지 않았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지만 얼큰한 국물이 들어가자 그나마 속이 좀 풀렸다.

“나 어제 실수한 거 있냐?”

대학생이 되었다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여동생 미려가 잔뜩 할 말 많다는 얼굴로 빙글거렸다. 취한 김에 어떤 행동을 했는지 몰랐지만 여동생의 반응을 보면 한참 놀림을 받을 행동을 한 모양이었다.

“실수는 무슨! 엄마 껴안고 사랑한다고 난리치고 할머니보고는 엉엉 울고 어제 난리도 아니었다. 사진을 찍어 놨어야 하는데.”

미려가 아쉽다는 얼굴로 규태의 옆자리에 앉아서 쫑알 거렷다.

“이기지도 못할 술을 어찌 그리 마시고 다니누?”

할머니도 옆에서 규태에게 한 말씀을 하셨다. 규태는 부끄러운 마음에 그저 얼굴을 수그리고 해장국만 들이켰다.

눈치를 보니 실수를 했어도 두 분의 기분이 나쁜 것 같지 않아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주말에 꽃구경이나 가죠? 진해까지 가기는 너무 멀고 대청댐 주변에도 벚나무 많으니까 거기로 가시죠.”

4월 벚꽃이 활짝 필 시기다. 가족들과 함께 꽃구경을 간 기억이 없었다.

“어머님 몸이······.”

어머니가 수술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할머니의 건강을 걱정했지만 할머니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난 괜찮다. 그렇지 않아도 날이 풀리니 밖에 돌아다니고 싶어 좀이 쑤셨는데 우리 손주가 구경시켜준다지 않니.”

“천천히 갔다 오죠. 아버지가 시간이 되시려나?”

“그 양반은 포기해라. 주말이면 운동하러 간다고 새벽같이 사라지는 사람인데.”

주중은 물론이고 주말까지 바쁜 아버지 김상웅씨였다.

“그날 뭘 입고 가지? 봄이 왔는데 마땅하게 입을 옷이 없는데. 오라비 어떻게 생각해?”

기회를 만났다는 듯 미려가 규태에게 들러붙었다. 규태의 지갑에든 카드를 노리는 사나운 시선이 느껴졌다.

“네 것만 사지 말고, 엄마하고 할머니도 모시고 가서 사.”

“그거야 당연하지. 비싼 거 산다.”

행여나 다시 뺏길까 싶어 후다닥 사라지는 여동생의 뒷모습에 규태가 쓰게 웃었다.

“엄마하고 할머니도 비싼 걸로 사세요.”

“얘는 비싼 건 무슨.”

“난 비싼 걸로 사련다. 손주 녀석이 돈 잘 버니 용돈도 두둑하고 얼마나 좋은지 몰라.”

나이를 먹어도 여자는 여자인지 새 옷을 사게 된 엄마와 할머니도 얼굴이 밝았다.

점심까지 먹고 느긋하게 출근한 규태는 사무실에 현민의 자리가 비어있는 것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늦게 까지 술을 마셨는지 자리에 앉아있는 태하의 얼굴이 푸석했다.

“둘이 얼마나 마신 거냐?”

“몰라, 3차까진 기억이 아는데. 하여간 집에 들어가니까 새벽이었어. 형도 술 마셨어?”

“해장은 했냐?

“머릿속 생각이 복잡해서 생각도 없어.”

“큰일 없으면 일찍 들어가라.”

“오후에 계약 약속 있어. 현민이하고 어제 이야기를 해봤는데 그녀석도 고민이 많은 모양이야.”

“심각한 이야기냐? 심각한 이야기면 회의실로 들어갈까?”

“아니 아줌마들은 아직 안왔어.”

“어쩐지 조용하더라. 말 해봐라 현민이가 뭐라고 하데?”

“현민이가 사고 쳤대.”

“사고? 무슨 사고?”

“여자 친구가 애를 가졌대. 3달째래.”

규태의 입에서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그렇게 입이 닳도록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고 조심하라고 이야기를 했건만.

“낳겠데? 병원가면······.”

“현민 이는 낳을 생각인가 봐. 여자 친구하고 결혼도 하고. 그래서 돈이 필요한가봐. 형은 위험한 거래는 못하게 하지, 돈은 필요하지, 현민이도 속으로 참고 있는 게 많았더라고.”

“결혼은 이르지 않냐? 현민이 아직 대학생에 군대도 해결하지 못했잖아.”

규태의 말에 태하가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돈 잘 버는 이 빠졌잖아. 형덕분이긴 하지만.”

“징그럽게 그렇게 웃지 마! 생기기는 산 도적 같이 생긴 놈이.”

“현민이 문제도 있고 나도 이번 기회에 속마음을 털어놓을게. 형, 솔직히 부동산 접을 생각이지?”

“크게 미련 없다. 이거 시작한 것도 너희들 자격증 따라고 닦달해 놓고 그냥 버려두기 뭐해서 시내에 자리하나 만든 거니까. 어제 현민이가 하는 모양 보니 오만정이 다 떨어졌다. 나도 내가 병신인가 싶기도 하고.”

“현민이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할머니 손에 자랐어. 할머니도 작년에 돌아가셨고. 그 녀석 세상에 일가붙이라고 하나도 없어. 친척들하고도 왕래안한지 오래고. 어제 술 마시면서 울면서 자기는 자식을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하더라. 나한테 무릎까지 꿇으면서 도와달라고 부탁하더라.”

“바보 같은 놈. 그런 일이 있으면 진작 나한테 이야기를 했어야지.”

“나한테도 입 다물고 말 안했는데 뭘. 사고 친 게 창피했는지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거린 모양이야.”

“박 사장하고 동업안한데?”

“형, 현민이도 바보 아니야. 그 사람들 믿지 못할 사람들이란 것 정도는 알아. 그냥 매물 준다니까 어울린 것뿐이야.

“그렇다면 다행이고. 4월까지 사무실 너희 둘이 인수받는 걸로 처리하고 권리금은 얼마나 줄 거냐?”

“권리금도 받게?”

“이 사무실 내놓으면 얼마나 받을 것 같으냐? 아무리 못 받아도 이천은 넘게 받을 것 같은데?”

“우리가 돈이 어디 있어? 사무실 보증금도 빠듯한데.”

“천천히 갚아. 하지만 꼭 받을 거다.”

받아서 나중에 돌려줄 생각이지만 단단하게 엄포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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