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15화 (15/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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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독립합니다.

1986년의 대한민국은 독재국가다.

돈 많은 대학생 하나 정도를 잡아다가 간첩으로 조작하고 쓱싹 해버려도 어디 가서 하소연도 하지 못한다.

규태가 중학생때 광주 항쟁이 일어났다. 계엄군이 탱크로 광주를 밀었다는 소리를 친구들끼리라도 주위에서 누가 들을까 싶어 이불을 뒤집어쓰고 했었다. 그렇게 대통령이 된 사람이 집권하는 시절이다.

대통령의 욕이라도 하면 그대로 잡혀 들어갔다. 그나마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대학이었다.

87년의 6월 항쟁을 준비하는 86년은 말 그대로 격변기였다.

땡하고 9시뉴스 시간이 되면 나오는 첫마디가 ‘전 대통령은’ 이어서 땡전 뉴스라 불리는 방송국의 뉴스에서는 고도성장하는 한국경제의 발전을 자랑하기 바빴다.

평범한 사람들은 지역에 연고를 둔 프로야구의 경기결과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롯데와 해태의 경기라도 있는 날이면 출신지 별로 신경전을 벌였다.

엄혹한 시절에 살아가는 규태의 선택은 납작 엎드리는 것이다.

시경 정보과의 경찰들이 지나가는 말로 전해주는 소식으론 이미 규태도 요시찰 대상이었다.

주식투자로 많은 돈을 벌었다는 소식이 계속 이어지면 사람들이 보는 규태는 성공한 투자자가 되고 적당한 겉모습까지 갖춰지면 유능한 투자전문가가 된다.

86년부터 시작된 증권주의 상승은 사회현상이다. 수출로 벌어들이는 막대한 자금, 성장하는 기업들을 지원하고 낙후한 증권시장을 변화시키려는 정부의 의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증권, 무역, 은행의 트로이카 주가 상승하고 그 선두에 선 것이 증시활성화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는 증권주가 오르는 것이다.

작전주라면 규태도 입을 닫고 주변 사람만 투자를 하도록 했을 것이다.

주변이 부자가 되면 운신이 넓어진다.

규태가 증권주 매수를 적극 권유했지만 사는 사람은 절반이다. 투자하지 않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방송과 신문에서 증권시장은 복마전으로 그려진다. 도박과 같은 취급으로 주식투자가 마땅치 않거나 투자할 마음은 있어도 수중에 돈이 없는 경우다.

“대흥상사 오주헌이라?”

방금 전 찾아왔던 손님이 건넨 명함을 살피며 규태가 이마를 긁었다.

최대한 모습을 가리고 평범한 모습을 하려했지만 정보 쪽에 있는 사람들은 특유의 티가 난다. 건물을 매수하고 싶다며 상담을 했지만 속내는 규태를 살피기 위한 시찰이다.

“시경 정보과 다음으로 안기부네.”

대화를 나누면서 이따금 정치문제를 떠보는 말에 대답하는 규태의 등골이 서늘했다.

학교를 성실하게 다니고 싶어도 이렇게 감시하는 눈이 많으니 대충 F만 면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상담실을 나온 규태는 태하와 현민에게 주의를 주었다. 도청까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말실수라도 했다가는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안에서 정치얘기는 하지 마, 하고 싶으면 밖에 나가서 해. 특히나 정부쪽 비판이야기는 금지다.”

심각한 얼굴을 한 규태의 말에 현민과 태하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현민이! 너 내가 변호사 사무실에서 온 연락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알만한 녀석이 전화 온 걸 깜빡하고 잊어버려. 여긴 학교가 아니라 직장이야. 장난처럼 직장생활 생각이면 당장 때려치워!”

목소리가 커지자 안쪽에서 장금란이 머리를 내밀다가 화를 내는 규태를 보더니 황급히 들어갔다.

생각할수록 괘심했다.

단순하게 자신을 따르는 후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중개사 자격증 따게 해줘, 사무실에 고용해서 생각하지도 못한 돈도 벌게 해주었다.

아직 어린놈들이라 직장과 학교를 구분하지 못하고 규태를 대했다. 자리를 비우는 것도 마땅치 않았다.

“그리고 기회에 한마디 하자. 너 왜 이렇게 자리를 자주 비우는 거야. 연애를 하려면 저녁에 하라고!”

죄가 없는 태하 녀석이 소처럼 눈만 끔뻑거렸다. 하지만 현민의 반응은 달랐다.

규태가 잔소리를 이어나가자 대뜸 맞받아쳤다.

“사람이 실수를 할 수도 있지. 그런 거 가지고 소리까지 질러. 그동안 내가 얼마나 참고 있었는데. 잘됐네! 나도 그동안 화가 나도 참고 있는 것 많았는데 더러워서 때려 친다. 내가 데리고 온 손님들을 사고 가능성이 크다고 거절하고 인정작업은 왜 안 하겠다 고해서 다른 부동산한테 매물 빼앗기냐고! 세상이 똥물인데 선배 혼자 맑은 물이야? 돈 되는 일들은 전부 거절하면서 도박 같은 주식투자나 부추기지 않나!”

“너 그게 무슨 말이야?”

“여기 아니면 내가 일할 데가 없는 줄 알아? 나도 사람들한테 내 사무실 차리면 성공할거라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야. 마침 잘됐네! 그만두라니까 내 그만둔다.”

와락 고함을 지른 현민이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 모습에 규태는 머리가 띵했다.

화를 가라앉히고 자리에 앉은 규태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현민은 사무실을 자주 비웠다.

“허참! 이렇게 뒤통수를 맞는 건가?”

여자 친구를 만나느라고 그랬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다른 부동산사무실 사람하고 어울리더니 규태에 대한 불만이 많았던 모양이다. 부동산에서 손쉽게 돈을 버는 방법은 여러 개가 있다.

손님이 내놓은 부동산을 자기가 사서 가격이 오르면 되파는 것.

인정작업이라 해서 매수자와 매도자의 중간에서 가격을 다르게 불러서 차액을 취하는 것이다.

규태는 이런 방법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거래를 할 때야 그냥 넘어갈 수 있어도 나중에 문제가 생긴다.

부동산 사무실처럼 독립이 쉬운 직종은 없다. 사무실 하나만 차리면 끝이다. 현민은 자격증까지 가지고 있으니 금상첨화, 독립하라고 주변에서 꼬드긴 모양이었다.

속이 화끈거려서 찬물을 마셨다.

사무실을 열고 반년. 이제 현민도 경험이 쌓였고 자기 손님도 있다고 생각하니 독립할 마음이 생긴 것이다.

대충 현민의 머릿속이 짐작됐다.

“저 녀석, 너한테 다른 말 없었지?”

“다른 말 뭐요? 그냥 현민이가 한 말에 너무 신경 쓰지 마요. 형이 화내니까 저놈도 욱해서 하는 말일 텐데.”

영문을 모르는 태하의 반응에 규태가 머리를 내저었다. 친한 태하에게도 속마음을 털어 놓지 않은 모양이었다.

“저 놈 독립할 생각인 것 같은데.”

“에? 아니 그럴 리가요. 나한테도 별말 없었는데.”

“내가 나가서 말해봐. 정말 그렇다면 나도 준비는 해야 하니까.”

부동산 사무실을 길게 가져갈 생각이었으면 규태도 현민의 행동에 타격을 받았겠지만 내년쯤이면 사무실을 정리할 요량이었다.

이리저리 다니면서 돈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어두는 것은 규태가 오지랖이 넓어서가 아니다. 창투사를 만들고 펀드를 조성하면 투자할 사람을 모아야 한다.

속사정을 아는 사람이면 창투사에 누가 투자를 하겠는가. 말이 창투사지, 운영은 사모펀드처럼 할 생각이었다.

공식적인 금융기관이라면 관치금융의 까다로운 통제 하에 들어가겠지만 창투사는 한 발짝 벗어난 위치다.

슬쩍 눈을 돌리면 이곳만큼 편하게 투자할 자금을 모으고 운영하기 쉬운 곳이 없다.

규태는 자리에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태하를 기다렸다. 이야기가 길어지는지 태하도 돌아오지 않았다.

시끄러운 밖이 조용해지자 장금란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동생, 시끄럽던데 해결됐어?”

“현민이가 잘못한 게 있어서 화 좀 냈더니 부르르 떨면서 대꾸를 하더라고요.”

눈치를 보는 게 장금란은 뭘 아는 모양이다.

“저기 동생, 이거 내가 본 건데. 사거리 아래쪽에 부동산하는 박사장 알지? 현민씨 그 사람패거리하고 자주 어울리더라고.”

“그럴 거라고 짐작했어요. 나한테 대거리하는 게 그냥 하는 게 아니고 미리 준비를 한 모양이야.”

장금란은 푼수처럼 보이는 행동거지와 다르게 보통 여우가 아니다. 집안에서 살림만 한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계산도 빠르고 머리도 잘 굴러 갔다.

“그래서 그렇구나. 현민 이는 사무실 그만둔대?”

“아직은 모르죠. 태하가 나가서 얘기를 나누는 중인데.”

아직은 긴가민가하지만 이미 규태는 현민의 앞으로 행동을 짐작했다.

“현민씨 그만두는 거 안 말리고? 말리면 다시 올 줄 모르잖아.”

“마음을 정했으면 제 하고 싶은 대로 하겠죠.”

생각보다 시큰둥한 규태의 반응이었는지 장금란이 고개를 갸웃했다.

“동생 보기보다 냉정하네? 현민씨 그 사람들하고 어울리면 이용당하다가 크게 손해 볼걸. 박 사장 패거리 반 사기꾼인데.”

금란의 말에 규태가 코웃음을 쳤다.

“반은 무슨, 그냥 사기꾼들이지. 그 인간들 가져오는 물건들 치고 정상인게 없었어요.”

“그런데 왜 안 말려?”

“말을 물가로 데려갈 순 있지만 강제로 물을 못 먹인다 하지 않습니까. 자기 자식도 마음대로 못하는데 후배라지만, 남을 어떻게 내 맘대로 하겠습니까.”

“오호! 나는 동생이 하도 주식에 영험해서 도 닦는 도사님인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보네.”

금란의 말에 규태가 펄쩍 뛰었다.

“금란 누님이 자꾸 도사, 도사 하니까.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잖아요.”

“투자종목 맞추는걸 보면 진짜 도사잖아. 호호호”

그녀가 하는 모양을 보니 오늘도 가진 주식이 많이 오른 모양이다. 자랑을 하고 싶어 근질거렸는데 싸우고 있으니 눈치를 본 것이다.

“오늘 얼마나 올랐어요? “

“아침에 시작한 가격이 4,550원이야.”

“많이 올랐네.”

“너도 가지고 있으면서 반응이 왜 그래. 요즘 통 주식에 신경 안 쓰는 거 같아.”

섭섭해 하는 금란이었다.

“신경을 안 쓰기는, 가지고 있으면 올라갈 텐데. 자꾸 들락거려봐야 팔고 싶은 마음밖에 안들 텐데.”

“이정도면 50% 수익이 나는데 팔면 안 될까?”

주변에서 들쑤시는 건 현민만이 아닌 모양이다.

“안되긴? 파세요. 이익 봤으면 팔아 야지.”

“에이 반응이 왜 그래?”

“팔자고 부추기는 사람이 있는 모양인데. 팔아 야지.”

“사실 증권사 육과장이 자꾸 수익이 난 증권주 팔고 조정 받은 오리온 전자주식을 사자고 해서.”

“마음대로 하세요.”

금란의 눈이 동그래졌다.

“정말 그래도 돼?”

“내주식도 아닌데 주식 주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해야지 뭘.”

평소와는 다른 시큰둥한 반응에 장금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진짜 나 화낸다! 똑바로 말 안 해! “

생각하지 못했던 현민의 일로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금란은 계속 규태와 얼굴을 봐야할 사이다.

“육과장은 담당도 아닌데 왜 끼어 들어서 사고 팔라고 난리치는 거죠? 지금 증권주 팔면, 가을에 육과장 죽이고 싶어질걸요”

이런 규태의 대답을 기다렸던 금란이었다.

“그럼 동생은 앞으로도 증권주가 올라갈 거라고 예측하는 거지? “

“당연하죠. 이제 시작이에요. 돈 있으면 계속 증권주를 사도 모자랄 판에 전자주? 그 인간하고 상종하지 마요. 그 사람 말 들은 투자자는 앞으로 죽을 맛이겠네요.”

증권사 안에서 영업직원들 간에 손님 뺏기는 종종 일어난다. 손님이 담당을 바꾸고 싶다는데 어쩌겠는가.

육과장이 잘나가는 김하성대리의 손님을 빼앗을 요량으로 제 딴에 꾀를 부린 모양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수익이 난 종목을 팔고 오르지 않은 종목을 사는 것이다.

증권주의 급등은 계속되고 삼성전자나 오리온 같은 전자주의 주가는 2,3년간 큰 진폭이 없다.

육과장의 조언을 듣고 손해를 보는 사람이 나온다면 제 팔자지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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