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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는 주식은 널리 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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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매매를 하다보면 언제나 칼날 위에 선 것 같이 정신이 예민해진다. 예측한 대로 시장이 흘러가면 다행이지만 생각과 반대로 시장이 움직이면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다.
투자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항상 평상심을 유지해야 한다. 성공에 희희낙락 하지 않고 실패했을 때는 빨리 잊어야 한다.
규태는 80년대의 느린 주식매매에 점점 익숙해지는 것을 느꼈다. 온 몸의 세포하나하나가 깨어나고 머릿속은 쉼 없이 매매에 필요한 그래프를 그렸다.
증권주가 앞장서 움직이기 시작하자 은행주와 무역주도 뒤따라서 용트림을 시작했다.
2,800원의 바닥에서 상승하기 시작한 대우증권이 3,500원의 매물벽에 막혀서 주춤하는 모양새다.
전장 동시호가부터 거래량이 급증하며 +2%의 상승한 3,520원으로 시작했다. 들고 있는 대우증권 주식을 3,490원에 주문을 넣었다.
선입선출, 먼저 들어온 주문부터 처리하는 게 거래소의 원칙이다.
만주단위로 잘라서 내놓은 주문중에 절반이 매매됐다.
수화기를 붙들고 시장부와 통화를 하는 김하성의 눈앞에 가격을 낮춘 정정 주문지를 내려놓았다.
김하성이 빠르게 이전 주문을 정정주문을 넣었다.
기다리길 십 여분, 매도 주문을 한 주식이 모두 처분됐다.
동원증권과 대신증권은 아직 팔 타이밍이 아니다.
규태는 시계를 보았다.
오전 11시 20분
전장의 끝이 10분 남았다. 이때의 증권시장은 9시 30분에 시작해서 11시 30분에 끝나는 전장, 오후 1시 30분에서 3시 30분까지 후장으로 나누어 거래를 했다.
규태의 주문을 처리하느라 정신없었던 김하성이 마무리 통화를 끝내고 기지개를 폈다.
“휴우, 시장이 강하긴 강한 모양이다. 70만주를 한꺼번에 부었는데도 크게 꺾이지 않는걸 보면.”
치열하게 주문을 처리한 김하성이 얼굴이 달아올랐다. 주문을 넣고 확인하고 가격정정까지 처리하는 과정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한순간이라도 삐끗하면 사고가 터진다.
“수고했어요. 내가 점심을 살게.”
간단히 계산해도 대우증권 매매차익만 5억이다. 김하성이 머리를 흔들었다.
“너는 진짜 사람들이 돈 귀신이 붙었다더니! 사는 종목마다 족족 오르는구나. 많이 벌었으니 비싼 걸로 사줄 거지?”
“점심에 비싼 거 먹을 일 있나. 오후 장에 나머지 팔고 저녁때 비싼 거 먹으면 되지.”
“동원이랑 대신도 팔려고? 증권주가 조정 들어갈 것 갔냐?”
“단기에 20% 올랐으면 매물이 나올 때도 됐지. 작년에 물린 물량들이 풀리는 것 같아.
단기차익을 노리는 매매도 있을 테고. 그래봐야 조정이 길어지지는 않고 하루 이틀정도 약하게 조정 받을 것 같은데.”
“단기조정이라? 하여간 네 말처럼 증권주가 강하긴 강하다. 상승하면서 거래량 늘어나는 것 보면. 앞으로도 계속 오를 것 같아.”
규태의 조언을 받아들여 증권주를 잔뜩 샀는지 김하성의 얼굴이 밝았다.
잠시 농땡이를 부리던 김하성이 득달같이 달려온 여직원에게 불려갔다. 매매를 하는 동안은 건드릴 수 없지만 바쁜 업무시간이었다.
규태의 눈에 입출금을 하려고 길게 늘어선 줄이 보였다.
쌓여있는 전표를 확인하고 입출금결제를 마친 김하성이 12시가 되어서야 겉옷을 입고 나왔다. 그 뒤를 따라 여직원 몇이 조르르 따라왔다.
바쁜 김하성을 대신해서 규태의 주문을 처리해준 여직원들도 있었다.
“오늘 김 사장님이 돈 벌었다고 사는 거라면서요? “
미리 정한 약속은 아니지만 직원들에게 밥 한끼 사는 정도야, 가볍게 생각한 규태였다.
“아이고 김 대리님 때문에 지갑에서 돈 나가겠네. 이렇게 예쁜 분들이 사달라면 사드려야죠.”
어떤 말이 웃겼는지 여직원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여상을 졸업하고 증권사에 취직한지 2년에서 5년, 지점에서 제일 나이 많은 여직원이 8년 경력의 27살 이지영주임이다.
이 시기로 따지면 노처녀라 시집가라는 주변의 압박을 꿋꿋이 버텨는 중이었다.
규태는 영업직원들과는 술자리를 하지 않지만 여직원들의 모임에는 가끔 끼어들어 밥값을 계산해 줬다.
김하성과 함께 간 곳은 특이한 한정식 집이었다. 이리 저리 골목길을 헤집고 들어간 한정식 집은 도심에 위치했다고 믿기지 않는 넓은 정원을 가진 주택이었다.
말끔하게 정돈된 정원을 가로지르며 규태도 내심 감탄을 했다. 집의 넓이도 넓이지만 정원에 심어놓은 나무를 가꾸어 놓은 모양이 여간 공을 들인 것이 아니었다.
“이런 곳이 다 있었네?”
여직원들도 처음 오는 듯 신기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비싼 집이라서 나도 한번 밖에 안 와봤어.”
작은 소리로 김하성이 소곤거렸다.
이야기를 하느라 시끄러웠던 여직원들도 조용한 식당분위기에 입을 다물었다.
“나가서 은행에서 돈을 좀 찾아와야겠다. 현금이 모자랄 것 같아.”
규태가 김하성에게 눈을 부라렸다. 점심을 사주는 것은 큰 문제가 없지만 이런 곳이면 미리 두둑하게 현금을 챙겼을 텐데 말도 없이 오다니.
카드라도 받으면 문제가 없는데 아직 카드 사용이 원활하지 않을 때였다.
“흐흐흐, 여긴 카드도 받아. 네가 가진 카드면 계산 할 수 있을걸.”
규태의 고민을 단숨에 해결해 주는 소리였다.
“내가 가진 카드가 뭔지 알고?”
“왜 몰라? 지난번에 네가 술살 때 확인했다.”
퉁명스런 규태의 반응에 김하성은 태평했다. 어차피 계산은 규태가 하기로 한 것. 김하성의 반응에 규태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골탕을 먹이겠다는 속셈이 눈에 보였다. 들어가는 입구에 사용가능한 카드의 표식을 확인한 규태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커다란 방에 펼쳐진 넓은 상위에 가득하게 음식이 놓였다.
주문이 없어도 쉰 가지가 넘는 반찬과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밥, 넉넉하고 정갈한 상차림이었다.
조용히 귓속말로 호들갑을 떨며 상위의 음식을 맛보는 여직원들과는 달리 규태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미슐렝 가이드 3스타의 프랑스의 요리에서 중국국빈에게 제공되는 100가지 요리의 만한전석까지 동서양의 명품 요리들을 두루 섭렵한 규태다. 이 정도로 감탄할 수준이 아니다.
기대와 다른 반응에 김하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 처음이라며? 전에 와 본적 있니? 반응이 영 떨떠름하다.”
앞에 놓인 육전을 맛보며 규태가 코웃음을 쳤다.
“당연히 처음이지. 대학생인 내가 어떻게 이런 곳을 알겠어. 형은 어떻게 여길 알게 된 거야? 증권사 대리가 알만한 수준의 집은 아닌데? 이거 말이 한정식이지 저녁때면 요정 역할도 하겠는데.”
언뜻 보이는 직원들의 외모가 수려했다.
“큼, 나는 큰형님이 데리고 와서 알게 됐지.”
하성의 큰형인 주성은 행정고시를 합격한 후에 내무부에 과장으로 있다.
“용케 예약을 받아주었네. 큰형님 파워가 센 건가? 이런 곳은 아무나 드나들기 힘들지. 가격도 가격이지만 드나드는 사람들의 신분 때문에 함부로 손님을 받지도 않을걸. 분위기 보아하니 여기 국장급 아니면 눈치 보여서 못 올걸.”
규태는 속으로 음충한 생각을 했다.
‘흐흐흐, 아버지한테 여기서 식사하자고 했다간 경기를 하시겠네. 한번 모시고 와볼까?’
가볍게 밥 먹으러 가서 까마득한 직장 상사들을 주르륵 만나면 아버지 등에 식은땀이 저절로 날 것이다.
한가하게 밥을 먹으면 좋겠지만 여직원들의 교대시간에 맞추어야 했다. 적당히 배를 채운 일행은 바쁘게 식사를 마쳤다.
한껏 부른 배를 땅땅 두들기며 시작된 오후 장에 남은 주식 대신증권과 동원증권 전부를 팔았다.
장이 마감한 후 매매내역과 주식잔고를 확인한 규태는 털레털레 사무실로 돌아왔다.
‘이거 뭐가 이상한데?’
돈은 많이 벌고 있지만 매매가 너무 불편했다. 지금 이야 상승초기라 거래량이 받쳐 주지만 주가가 급등하면서 거래량이 말라버리기 라도 하면 규태만 좆 되는 거다.
계좌가 여러 개다 보니 주문하기도 계산하기도 복잡했다. 지금처럼 미수로 매매하면 증권사 만 좋은 일을 시켜주는 꼴이다.
해결 방법은 간단했다. 규태의 계좌 하나만 현금계좌로 두고 나머지는 전부 신용거래로 사버리면 간단한 일이다.
지점장이 지점의 신용한도 때문에 신용을 주지 못한다면 고객이 쓸 수 있는 절대마공 ‘내 돈 다 빼‘를 시전하면 된다.
규태의 매매실적을 보면 지점장이 본사의 허락을 받아낼 것이다. 곰곰이 생각하던 규태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런 등신, 혼자 잘난 척은 다하면서 이런 간단한걸!’
당장 증권사로 급하게 달려간 규태는 퇴근하려는 지점장을 붙들고 ‘내 돈 다 빼’ 신공을 시전 하여 결과를 얻어냈다.
실적이 줄어들 것을 걱정하는 지점장이 울상을 지었지만 규태가 알게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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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로 희희낙락하며 들어오는 규태를 보며 현민은 속으로 혀를 찼다.
‘아예, 증권사에서 살아라! 살아!’
주식으로 큰돈을 버는 것은 알지만 현민은 애초부터 주식에는 관심이 하나도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선 주식시장이나 카지노나 하등 차이가 없었다. 주식투자로 돈 조금 벌었다고 날아다니는 주변 사람들이 못마땅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옆자리 앉은 태하를 본 그가 머리를 흔들었다. 어딘가 살짝 돈 것처럼 희죽거리는 모습이 규태선배와 똑 같은 놈이었다.
그의 시선이 상담실이라 이름은 붙여놓았지만 아줌마들의 아지트로 변한 마굴로 향했다.
‘저 아줌마들도 처음에는 사람 같더니 요즘은 아예 둥둥 떠다니네. 사람이 땀 흘려서 돈을 벌어야지! 어디 주식투기로 돈을······.’
못마땅한 얼굴로 책을 편 현민의 뒤통수를 규태가 힘껏 때렸다.
“아야! 왜 때려요?”
얼마나 아픈지 하늘이 노랬다.
“이놈의 자식이 하늘같은 선배를 어딜 그런 불경한 눈으로 바라봐!”
“선배면 선배답게 굴어야지. 후배들한테 모범이 되도 모자랄 텐데. 주식투기 같은 걸 가르쳐요? 잘한다! 잘해. 말이 좋아 투자지 그게 도박판이랑 뭐가 달라요!”
버럭 하고 고함을 지르는 후배의 모습에 규태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지몽매한 후배 놈아! 네가 진짜로 대학에서 경영을 전공하는 경영학도가 맞는 거냐? 경영학을 배운 다는 놈이 주식시장을 도박하고 똑같이 생각해?”
“다르긴 뭐가 달라요, 똑같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현민을 째려보던 규태의 시선이 말 잘 듣는 후배 태하를 향하자 부드러워졌다.
“한심한 놈. 어이 태하야.”
“넵! 선배님, 오늘은 얼마던가요?”
“종가가 3,450원이다.”
“그럼 제가 225만원을 벌었군요.”
태하의 말에 현민의 귀가 쫑긋하고 움직였다.
“225만원? 네가 그만큼 벌었다고?”
“정확하게 내가 주식을 산지 일주일만이지. 음하하하, 여자들과 놀러 다니느라 정신을 못 차리는 네놈하고 차원이 다른 몸이시다. 규태형님의 조언을 이 뛰어난 투자자께서 놓치지 않은 결과라 할 수 있지. 네놈도 생각이란 걸 한다면 투자를 하거라.”
뭔가 사소한 원한이 가득 담긴 것 같은 태하의 말에 현민은 물러나지 않았다.
“악마야 물러나라! 내가 도박판에 뛰어들 것 같으냐! 어림도 없다. 명색이 친구란 놈이 도박판으로 나를 끌어들이려 들어! 내가 주식을 사면 성을 간다! 성을!”
굳은 표정으로 한사코 손을 내젓는 현민을 보며 규태가 속으로 끌끌거렸다.
‘사람이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지. 주식이 더 올라가봐라. 네가 그때도 버틸 수 있나. 그래도 버티면 내가 인정해주마. 그나저나 성을 갈면 뭐로 갈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