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금융재벌-12화 (1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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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는 주식은 널리 알려라

출근하면서 증권사에 들렀다. 점점 객장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는지 주차장 입구에 만차 표시가 떴다.

‘에이, 슬쩍 주차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 차사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나 보네.’

속으로 투덜거린 규태가 차를 부동산 사무실의 주차장으로 몰았다. 도심에 있는 건물치고는 주차장이 넓어서 규태의 사무실에서 차를 2대 주차해도 문제가 없었다.

나중에는 구도심은 부족한 주차장 때문에 난리가 난다. 차가 드문 시절에 만들어진 건물들이라 주차장에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다.

미래의 모습을 떠올리며 주차장 한쪽에 차를 세운 규태는 터덜터덜 증권사로 걸어갔다. 아직 겨울이 지나지 않아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객장을 한 바퀴 주욱 살펴 아는 얼굴들과 대충 눈인사를 했다. 여직원들의 뒤편에 업무대리의 자리에 앉아있던 김하성이 규태를 발견하곤 밖으로 나왔다.

“여이, 브라더.”

한쪽 손을 들며 인사를 하는 규태를 하성은 미친 놈 보듯이 보았다.

“뭐냐! 그 해괴망측한 인사는?”

“큼, 반가워서 그렇지.”

미래의 유명한 어떤 영화에서 나온다고 할 수 없으니 헛기침을 하며 넘어갔다.

“잠깐만.”

이리 저리 주변을 살피던 김하성이 규태를 끌고 흡연실로 들어갔다. 아침시간이라 그런지 늘 붐비는 곳에 사람이 없었다.

“너 어제 증권주를 대량으로 샀더라.”

“형님 바쁘잖아, 그냥 내가 주문 넣어버렸지.”

“에휴, 영업은 주문을 받아야 하는데 이게 뭔가 싶다. 그런데 앞으로 증권주가 오를 것 갔냐? 증권주에 몰방 찍었던데?”

“흐흐흐, 그걸 내가 쉽게 말해줄 것 같은가?”

“어떤 걸 원하냐?”

“정성이 가득한 뜨거운 커피한잔!”

“오냐, 정성이 가득한 자판기 커피 마시러가자.”

자판기에 동전을 넣어 커피를 받아들고 한 모금 마시자 얼어붙은 몸이 사르르 풀렸다.

“이제야 살 것 같네. 요즘 진짜 바쁘더라? 손님들이 많이 늘었나봐?”

“대전에 증권사 지점이 몇 개 없잖냐. 위치로 보나 우리증권사가 독점이나 마찬가지지.”

“조금 있으면 지점들 우수수 생길 텐데 뭘. 형은 어쩔 거야? 아직 말 없어?”

“이야기 하고 있는 곳이 있는데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빨리 말 안할래. 당분간 증권주가 오를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마음이 급하듯 김하성이 규태를 채근했다.

“당분간이 아니라, 몇 년간 오를 거야. 시장은 좋은데 증권주 너무 싸잖아. 정부에서도 증권사 전산화를 추진 중이고 이게 한두 푼 들어가는 게 아니거든. 어떻게든 증권사 주가를 띄우려고 들겠지.”

증권사들 마다 해마다 한, 두 번 유상증자를 한다. 증권주의 폭등시기가 끝난 후 소형증권사들도 수천억 원의 현금을 손에 쥘 정도로 큰 규모의 유상증자였다.

“그럴까? 바닥이 길긴 했지.”

증권주의 침체가 길어지다 보니 투자자들이 아예 포기한 주식이었다.

“돈만 있으면 내가 증권사를 인수하고 싶을 정도라니까.”

“작년 같으면 몰라도 지금은 팔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

소형증권사의 자본금이 100억 수준인 시절이다. 가지고 있는 현금이 5억만 되도 증권사 인수를 시도해 보겠는데.

거기까지 생각한 규태가 머리를 흔들었다. 너무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 지난 생에서도 그놈의 욕심 때문에 적을 너무 많이 만들었었다.

돌아온 규태가 예전과 다르게 최대한 놈을 납작 엎드리고 주변을 건사하는 것은 적을 만들지 않고 아군을 늘리기 위해서다.

돈을 많이 벌어도 규태의 가슴을 휑했었다. 자랑질을 하고 싶어도 마음 놓고 할 사람이 없었다.

“팔 사람이 없긴! 현대에서 국일증권 인수한다던데. 아마 대전지점도 내겠지?”

김하성이 화들짝 놀랐다. 김하성과 이야기가 오가는 곳이 국일증권이 이름을 바꾼 현대증권이었다.

“너 어디에서 그 말 들었냐?”

허를 찔린 김하성이다. 미래 당신 입에서 들었다고 말 할 수 없으니 규태가 사이비 도사흉내를 냈다.

“에헴! 내가 앉아서 천리를 보고, 서서 미래를 본다.”

“진짜냐?”

“진짜겠냐?”

농담을 혹해서 진담처럼 받아들이니 오히려 규태가 당혹스러웠다.

“네가 하도 용한 것 같아서 신 내림이라도 받은 줄 알았지.”

“하여간 앞으로는 증권주만 사고 팔면 실적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야. 물론 자기 돈은 처박아 두는 거 잊지 말고. 형님도 투자하는 거 전부 증권주에 박아놓고 놀러 다녀. 우리사주 받으면 꾹 손에 쥐고 있고.”

증권사 영업직원의 절반이 채용 2년 안에 사라진다. 영업실적압박에 자기 돈과 집안 돈 끌어들여 투자를 하다가 막대한 손해를 보면 일에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증권사 지점장 10년이면 남는 게 빚밖에 없다는 시절이다.

김하성이 지금 증권주에 투자하고 우리사주까지 더해지면 3년 후 거액을 만지게 될 것이다.

“우리사주 그거 돈이 될까?”

우리사주란 말에 반사적으로 김하성이 움찔했다. 증권시장이 침체기라 증자하면 실권주가 발생하니 직원들에게 떠넘기는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우리사주다.

“그걸로 나중엔 여직원들도 억대로 벌었다는 소리 나올걸.”

“진짜? 에이 그건 너무 갔다. 여직원들이 받아봐야 몇 주나 받는다고.”

아이고! 그걸로 뉴스에 나오고 얼마나 떠들어 댔는데 89년엔 증권사 여직원이 최고의 신붓감이었다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지만 사람은 닥치지 않으면 의심하기 마련.

얼마나 커다란 증권주 광풍이 부는 지 아는 규태만 가슴을 쳤다.

한참을 커피를 마시며 떠들다가 사람들이 하나 둘 흡연실로 들어오자 김하성에게 인사를 하고 지점을 빠져나왔다.

눈치를 보니 규태의 충고대로 김하성도 증권주 투자를 시작 할 모양이었다.

‘그래 형님, 돈 많이 벌어라. 부자 돼서 내 뒤통수치지 말고.’

닫혀있는 사무실을 여니 한기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서둘러 난방을 켜고 커피포트로 끊인 물로 차를 한잔 마시니 그제야 살 것 같았다. 3월이 가까워 오는데 꽃샘추위의 매서운 기세가 여간하지 않다.

호호 입으로 불면서 천천히 차를 마시며 조금은 한기가 누그러진다. 하늘이 꾸물꾸물한 것이 한바탕 눈이 쏟아질 것 같은 모양이다.

잎이 떨어져 텅 빈 가로수와 도로를 메운 차량행렬을 지켜보던 규태는 최대로 올린 난방기에서 뿜어내는 열기로 덥혀지는 사무실 공기를 느끼며 자리에 앉았다.

책상위의 다이어리를 펼치고는 그동안 안면을 익힌 사람들을 하나 둘 정리했다.

시계를 보니 아침의 바쁜 일과들은 끝나고 한숨 돌릴 타임.

수화기를 든 규태가 전화를 돌렸다.

“아! 형님, 저 규태에요. 예, 잘 계시죠. 지난번에 약속했던 것 때문에 전화 드렸죠. 들고 있는 현금으로 증권주를 사시라고요......”

열통이 넘게 전화를 하다 보니 목이 칼칼해서 보리차를 마시고 크게 기지개를 켰다. 하루 종일 난방을 켜 놓으면 공기가 너무 건조하다. 가습기를 틀고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게 카세트를 만졌다.

익숙한 비발디의 사계, 봄이 흘러나왔다.

빰빰빠바바 밤  빰빰빠바바 밤

입에서 소리가 나오는 대로 흥얼거리며 다시 다이어리를 확인했다. 잘못해서 빼먹는 사람이 있으면 나중에 피곤하다.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내는 장금란과 친구 송희자에게 증권주 매수를 강력 추천했다.

“증권주가 그렇게 좋아 난 당분간 현대차하고 삼성전자 가지고 있으려고 했는데?”

“그거 아직 안 팔았어요? 내가 전에 팔라고 했잖아?”

“아니 그게......”

말문이 막혀서 딴청을 피우고 있는 송희자를 보며 규태가 머리를 흔들었다. 어디를 가나 이런 청개구리는 꼭 있다.

“어머! 어머! 이 계집애가 나한테는 팔았다고 해놓고.”

장금란이 친구의 등짝을 찰싹 소리가 나게 때렸다.

“그거 팔라니까. 앞으로 몇 년 동안은 그 주식들이 크게 올라가 수가 없어요. 내가 전에 말했다시피 단기간에 급등해서 조정을 받을 거라니까.”

“그래도.......”

주식하고 사랑에 빠졌는지 가지고 있는 주식을 처분하기를 여전히 망설이는 송희자에게 규태가 단호하게 말했다.

“금란 누님이 옆에서 감시해요. 아니 내가 앞으로 열배는 올라갈 주식을 찍어줬는데 그걸 마다하고 이게 무슨 일이야. 내가 답답하다 답답해.”

큰소리를 치는 규태의 모습에 송희자의 귀가 솔깃했다.

“10배? 그 말 진짜야?”

주식하는 사람이 그 말에 넘어가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10배가 넘을걸! 내가 누님이 산 주식이 열배가 넘지 않으면 성을 바꾼다.”

송희자의 고개가 갸웃했다. 옆에서 장금란이 호들갑을 떨었다.

“진짜! 진짜지? 나 당장 가서 증권주 산다. 그런데 그중에서 뭐로 살까? ‘

“대우나 대신증권, 이 두 개 중에 하나로 골라 봐요.”

종목까지 찍어줬는데 가만히 있을 장금란이 아니다. 아직도 망설이는 송희자를 억지로 끌고 증권사로 달려갔다.

사무실에 앉아 처리할 일을 하고 있는 사이 증권사로 달려갔던 장금란과 송희자가 돌아왔다.

의기양양한 장금란과 잔뜩 지친 모습을 한 송희자를 보니 어떤지 상황을 알 것 같았다.

키가 170에 가까운 덩치 큰 송희자를 160이 조금 넘는 장금란이 이리저리 휘두르는 모습이 아이러니 했다.

“나 두 개 다 샀다. 가지고 있는 현금 탈탈 털었어. 이 계집애도 가진 거 팔고 전부 증권주 사달라고 하고 왔어.”

“하성형님만 대박 났네. 역시 누님은 통이 커.”

득의만면한 장금란의 코가 하늘로 향했다.

“그런데 두 분은 어떻게 친해진 거야?”

장금란은 나중에 말하는 차가운 도시여자의 외모다. 하지만 성격은 활발하고 말도 많은 성격. 반대로 송희자는 커다란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도 소심하고 낯을 가렸다. 지금처럼 규태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장금란이 송희자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얘, 나랑 중학교 때부터 친구야. 좁은 논산 바닥에서 일 이등을 다투던 사이라고 할까. 이게 머리가 얼마나 좋은지, 내가 죽어라고 공부해도 넘어설 수가 없더라니까.”

“그럼 일 이등을 다투던 사이가 아니라, 금란 누님이 이등, 희자누님이 일등이었던 거네.”

“내가 한번은 이겼다.”

옆에서 조용히 앉아있던 송희자가 끼어들었다.

“그땐 내가 감기 때문에 제 컨디션이 아니었어.”

소심한 송희자가 반응하는 걸 보면 나름 둘이 경쟁하는 사이인건 확실했다. 방금 둘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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